진흙속의연꽃

한발짝 떨어져 바라 보았을 때, 커피와 글쓰기 그리고 고독한 수행자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2. 29. 11:11

 

한발짝 떨어져 바라 보았을 때, 커피와 글쓰기 그리고 고독한 수행자

 

 

 

동창회에 참석 하였는데

 

동창회에 참석하였다. 같은과 학우들의 모임이다. 10여명이 참석하였는데 대부분 늘 보던 얼굴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얼굴을 내미는 친구도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옛날 그대로 방식이다. 그 동안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갖가지 사연이 있었음에도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 시절에 온 듯 하다. 다만 세월에 장사 없다고 겉으로 드러난 얼굴의 변화는 피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는 말이 있듯이 생각 그 자체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 시절 그 때의 마음이 지금까지 고정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해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모임에서는 모임에 맞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드문드문 참석하는 동창회이다. 그래서 참석할 때도 있고 거르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참석 하였다. 오랜 만에 참석하는 친구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창회 참석하기를 약간 꺼려 하는 것은 술 마시는 분위기 때문이다. 으레 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한 술판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에는 전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마시긴 마시지만 입에 대는 정도에 그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주량껏 마신다. 그렇게 먹고 마시고 떠들고 해야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이 보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어느 모임이든지 빠지지 않는 것이 이다. 술이 있어야만 모임이 활성화 되고 정상적으로 돌아 가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크고 작은 모임이나 심지어 단 둘이 모여도 술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거리에는 갖가지 술을 파는 곳은 넘처난다. 그러나 커피나 차를 할 수 있는 곳은 가물에 콩나듯이 희귀해 보인다. 그렇다면 모임에서 반드시 술이 있어야만 되는 것일까?

 

이른 아침 TV를 보았더니 인문학강좌가 있었다. 강신주님 강좌이다. 후반부를 보았는데 끌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커피글쓰기에 대한 것이었다. 이 강좌를 듣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 인터넷 다시 보기를 찾았으나 당일의 것은 아직 올라 오지 않았다. 다만 이전 회에 대한 것이 올려져 있는데 비숫한 내용이 글로 남겨져 있다. 그래서 남겨진 글을 참고하고 기억을 되살려 강신주님이 말한 것을 구성하였다.

 

강신주님은 집단문화에 대하여 먼저 말하였다. 지금은 잘 볼 수 없지만 한 때 관광버스에서 노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있었다. 달리는 관광버스에서 버스가 들썩일정도로 춤판이 벌어진 것을 말한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젋었을 적의 분위기를 내는 것에 대하여 미성숙한 것이라 하였다. 나이는 먹어 늙어 가지만 사고방식은 옛날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과 같다. 나이가 들었다고 하여 따라서 모두 정신능력까지 계발되어 향상되지 않음을 말한다. 마음은 청춘이라 하여 나이가 들어서도 항상 청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마음이 발달하지 않았음을 말하며 이는 다른 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홀로 있는 사람이 있다. 무리 중에 홀로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을 말한다. 남들이 모두 어울려 놀 때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사색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은 또래와 비교하여 정신연령은 높은 것이다. 이 경우에도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도 장려한 법담(法談)

 

지금 어떤 모임이 있다. 그런데 이 모임은 다른 모임과 다르게 커피나 차를 들며 담소한다. 으레 모임에서 나오기 마련인 술이나 안주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커피나 차를 앞에 놓고 대화하였을 때 그 대화의 내용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이는 술과 안주를 앞에 놓고 이야기하는 내용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일까 불가에서는 차를 앞에 두고 마주 않는 것을 차담이라 하였다.

 

차든 커피는 정신을 맑게 한다. 맑은 상태에서 이야기하면 이성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 술을 마심에 따라 감성에 지배 받는 것과 달리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이끌어 가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부처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법담이 오갈 것이다. 이런 법담은 부처님도 장려 하였다. 그래서 망갈라경(Sn2.4)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Khantī ca sovacassatā            칸띠 짜 소와짯사따

samaānañca dassana,           사마나난짜 닷사낭
K
ālena dhammasākacchā            깔레나 담마사깟차

eta magalamuttama         에땅 망갈라뭇따망

 

인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6)

 

(Magalasutta- 위대한 축복의 경, 숫따니파타Sn 2.4, 전재성님역)

 

 

 

Dhamma Talk

 

 

 

경에서 담마사깟차(dhammasākacchā)라는 빠알리어가 있다. 이는 법에 대한 토론(discussion about the Law)’을 말한다. 담마(dhamma)가르침또는 이라는 뜻이고, 사깟짜(sākacchā)대화(conversation; discussion)’라는 뜻이므로 담마사깟차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토론 또는 이야기라는 뜻이 된다. 이를 다른 말로 담마토크(dhamma talk)’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불자라면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됨을 말한다. 그 외 다른 이야기를 하면 잡담이 되어 버린다. 팔정도에 말하는 거짓말(musāvādā), 이간질 (pisunāya), 욕지거리(pharusāya), 꾸며대는 말(samphappalāpā) 등 정어에 대한 항목이 있는데 이중 꾸며대는 말(samphappalāpā)’이 잡담에 해당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들

 

그렇다면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먼저 초기경전을 보면 잡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그래서 세존 께서는 말리까 공원의 띤두까 나무로 둘러싸인 공개토론장인 에까쌀라 강당을 찾아 가셨다.

 

그 무렵 유행자 뽓따빠다는 많은 유행자의 무리와 함께 앉아서 시끄럽게 왁자지껄 큰 소리로 떠들면서 여러 가지 잡담, 예를 들어 왕에 대한 이야기, 도적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사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대에 대한 이야기, 꽃다발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수레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부락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도로에 대한 이야기, 목욕장에서의 이야기, 망령에 대한 이야기,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시비비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Poṭṭhapādasutta-뽓따빠다의 경, 디가니까야 D9,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수 많은 이야기가 소개 되어 있다. 이를 잡담이라 하였다. 그런 잡담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 경에서는 무리와 함께 앉아서 시끄럽게 왁자지껄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 잡담이라 하였다. 그래서 갖가지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런 잡담은 요즘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23가지 잡담리스트를 보면 여자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등이 보이기 때문이다.

 

잡담의 특징은

 

잡담의 특징은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초기경전에도 묘사 되어 있다. 주로 공개토론장에서 외도들이 떠드는 소리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사상이 더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큰소리를 냈을지 모르지만 이야기릏 하다 보면 옆길로 새서 여자 이야기 등 23가지 잡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부처님 제자들은 쓸데 없는 잡담을 하지 않았다. 이는 팔정도에서 ‘정어’로서 규정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시대는 잡담이 넘쳐 난다. TV를 보면 개인기라 하여 연예인들의 입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TV를 보면 끊임 없이 떠들어 댄다. 특히 종편방송에서는 썰전등 잡담으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잡담은 각종 모임에서 빠질 수 없다. 어색한 분위기를 타개 하기 위하여 음담패설이 등장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는 등 끊임 없이 떠 벌린다.

 

하지만 잡담을 듣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다만 말하는 사람은 발설함으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해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여자의 경우 하루에 25,000단어를 내 뱉어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남자는 이보다 적은 15,000단어를 말해야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이라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말을 함으로써 스트레스 해소 효과도 있는 것이다.

 

나홀로 술 마시기

 

모임에서 술을 마시면 시끌벅적해진다. 그렇다고 모임에서 커피나 차를 마신다고 하여 시끌벅적해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을까? 모임의 성격상 화제를 주도하는 사람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이에 맞장구치는 사람이 나오고 또 다른 견해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잡담으로 흐르기 쉽다.

 

그렇다면 쓸데 없는 잡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은 혼자 있는 것이다. 혼자서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것이다. 혼자 커피나 차를 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이는 나홀로 술마시는 것과 대비된다.

 

술을 혼자 마시는 경우가 있다. 술이라는 것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어울리며 마시는 것이 특징인데 술을 혼자 마신다는 것도 일종의 자신과의 대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술잔을 앞에 놓고 자신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에 있어서는 커피나 차를 마주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나홀로 술을 마시는 것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 되기 쉽다. 후회, 회환, 아쉬움 등 주로 좋지 않았던 일들이다.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취하게 되어 감정이 격해지고 감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나홀로 술마시는 것은 청승맞게 보이고 알코올 중독의 첩경이라 한다.

 

나홀로 커피 마시기

 

하지만 나홀로 커피나 차를 대하는 것은 이성적이다. 그래서 자신의 세계를 대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강신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세계가 있다. 자신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자신을 주체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그와 동시에 고독해지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에는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우리들과 다른 것은 그들은 그의 세계에 흠뻑 빠져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강신주님, 10 : 강신주의 , 철학에게 걸다 커피, KBS 1TV 2013-12-26방영)

 

 

강신주님은 커피와 글쓰기에 대하여 강연하였다. 커피를 마주 하는 것은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고, 동시에 고독해지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대중과 분리 되어 자신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세계에 흠뻑 빠져 들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시나 소설, 문학작품, 인문학, 철학 등 위대한 글이 자신과 대면하였을 때 나온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강신주님은 커피를 대하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은 닮은 꼴이 있다고 하였다.

 

한발짝 떨어져 바라 보았을 때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쓸 때 마다 느끼는 것은 고독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웃고 떠들고 잡담하면서 결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 항상 함께 하는 것은 커피 아니면 차이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혔을 때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잠깐 동안 여유를 가졌을 때 그 때 새로운 생각이 떠 오른다. 또 진도가 많이 나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데 결론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는 하던 글쓰기를 중단하고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그러면 불과 일이분도 되지 않아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서 단번에 글을 완성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강신주님에 따르면 한발짝 떨어져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강신주님은 커피와 글쓰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였다.

 

 

커피와 자기 자신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치 글을 쓰는 것과 같다. 글을 쓰는 것은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의 세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고독한 일이지만 그 글이 떨어진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준다. 커피도 그러하다. 마주 앉은 사람의 세계를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강신주님, 10 : 강신주의 , 철학에게 걸다 커피, KBS 1TV 2013-12-26방영)

 

 

강신주님에 따르면 커피를 마시는 행위나 글을 쓴다는 것은 한발짝 떨어져 나와 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를 숲으로 비유하였다. 숲에 있을 때는 숲을 볼 수 없지만 숲에서 벗어나 숲을 바라보았을 때 숲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독한 수행자

 

글쓰기는 외롭고 고독한 작업이다. 작업이라 하여 생계를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좋아서 쓰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는 것이 좋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좋고 또 공유해서 좋은 것이다. 그래서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글쓰기는 철저하게 나홀로 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여 하얀 여백을 메꾸어 나갔을 때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게 기록 된 것이 닳아 없어지지 않고 끝까지 남을 것이다. 숫따니빠따에 그들이 죽어 버린다면, 이름만이 남아 불릴 뿐입니다.(stn808)”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가도 글은 남을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님은 불교와 인연이 깊다. 최근 교계신문에 따르면 조계종 승가대학 사이버 동영상 강의에 불교와 사회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교관련 매체에서 기고도 하고 강연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강신주님의 커피와 글쓰기강연을 보면 마치 고독한 수행자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숫따니빠따에서 볼 수 있는 무소의 뿔과도 같은 것이다. ‘무소의 뿔경(Sn1.3)’에 실려 있는 첫 부분 두 개의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교제가 있으면 애착이 생기고,

애착을 따라 이러한 괴로움이 생겨나니,

애착에서 생겨나는 위험을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stn36)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정을 나누며,

마음이 얽매이면, 유익함을 잃으니,

사귐에서 오는 이러한 두려움을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stn37)

 

 

  

2013-12-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