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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참회를 받아 들이네” 진정으로 뉘우칠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 7. 18:38

 

그대들의 참회를 받아 들이네진정으로 뉘우칠 때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 받아 준다. 설령 죽을 죄를 지었더라도 받아 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증오하고 원한에 사무칠 것이다.

 

허공에서 말하는 하늘사람

 

상윳따니까야에 특이한 경이 있다. 허공에서 부처님을 바라보는 천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웃자니쌍니까의 경(S1.35)이 있다. 부처님 면전에서 공손하게 물어 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보다 더 높은 허공에서 마치 아래로 내려 보듯이 게송으로 넌지시 물어보는 천신의 심리 상태는 어떤 것일까? 먼저 어떤 하늘 사람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는다.

 

 

Aññathā santamattāna aññathā yo pavedaye,
Nikacca kitavasse'va bhūtta
theyyena tassa ta.

 

(Ujjhānasaññisutta, S1.35)

 

 

자신의 원 모습은 아주 다른데

실제로 드러내냄이 전혀 다른 것이라면

사기꾼(*168)이 속임수로 돈을 버는 것처럼

그것은 도둑질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허점을 찾는 자 경, 상윳따니까야 S1.35, 각묵스님역)

 

 

[어떤 하늘사람]

자신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다르게 나타내는 사람(*274)

도박사가 사기를 치는 것처럼,

그가 향유하는 것은 도둑질이네.”

 

(웃자니쌍니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1.35, 전재성님역)

 

 

"If one shows oneself in one way

While actually being otherwise,

What one enjoys is obtained by theft

Like the gains of a cheating gambler."

 

(Faultfinders,  S1.35, 빅쿠보디)

 

 

왜 허공에서 말하였을까?

 

경의 각주에 따르면 하늘사람은 허공에서 게송을 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태도에 대하여 각묵스님의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67) “’허점을 찾는 천신(ujjhanasannika devata)이라 불리는 천상 세계(devaloka)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천신들이 여래께서 네 가지 필수품을 수용하는 것(catu-paccaya-paribhoga)을 두고 허점을 찾으러 왔기 때문에 법을 결집한 장로(dhamma-sangahaka-tthera)들이 허점을 찾는 천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SA.i.64)이 천신들은 사문 고따마는 비구들에게는 분소의를 입고 탁발음식을 먹고 나무아래 머물고 썩은 오줌으로 만든 약을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을 칭송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호사스럽게 산다고 비난을 하고, 매일 법을 설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서로 어긋난다고 비난하였다고 주석서는 적고 있다.(Ibid) 그들이 세존 앞에 나타나지 않고 허공에 서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세존을 존경하지 않는 태도이기도 하다.

 

(167번 각주, 각묵스님)

 

 

각주에 따르면 천신이 부처님 면전이 아닌 부처님 보다 더 높이 허공에서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게송을 읊은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위라 한다. 이는 천신이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들 가운데 좀 더 뛰어난 사람 정도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자들을 거느리고 탁발하는 등의 모습을 보고서 어떤 헛점이 없는지에 대하여 꼬투리를 잡으려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전재성님의 각주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그들은 부처님이 제자들과 학인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부처님이 스스로 행하는 것 사이에 어떤 모순이 있다고 거기에 반대하는 신들이다.”라고 각주를 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이 혹시 언행일치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무언가 헛점을 잡기 위하여 면전이 아닌 허공에서 내려다 보면서 말하고 있는데 이는 경의 제목이 말하듯이 ‘Ujjhānasaññisutta’ 이다. 이를 초불연에서는 헛점을 찾는 자의 경이라 하였고, 빅쿠 보디는 Faultfinders라 하여 허물을 찾는 자의 뜻으로 제목을 하였다. 그러나 전재성님은 빠알리원어 그대로 웃자니쌍니까의 경이라 하였다.

 

게송에서 사기꾼(kitava)’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주석에 따르면 새 사냥꾼은 나뭇가지나 잎사귀 뒤에 자신을 숨기고 있다가 새가 나타나면 잡듯이, 사기꾼도 분소의로 자신을 감추고 교묘한 말로 대중들을 속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 가지 필수품을 가져 가는데 이를 사기치는 것 내지 도둑질 같은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말한 것과 실제 행동하는 것이 다른 것아니냐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부처님의 헛점을 찾기 위하여

 

이렇게 하늘사람들은 부처님의 헛점을 찾기 위하여 허공에서 이모저모 살펴 보면서 게송으로 넌지시 말하고 있다. 이번에는 또 다른 하늘사람이 게송으로 읊었다.

 

 

Ya hi kayirā ta hi vade ya na kayirā na ta vade,
Akaronta
bhāsamānāna1 paijānanti paṇḍitāti.

 

(Ujjhānasaññisutta, S1.35)

 

 

[다른 천신]

“행하는 대로 말을 해야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말해서는 안되리.

말하는 대로 실천하지 않는 자를

지자들은 분명하게 알아본다네.” 

 

(허점을 찾는 자 경, 상윳따니까야 S1.35, 각묵스님역)

 

 

[다른 하늘사람]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말라.

하지 못할 것을 말한다면,

슬기로운 자는 곧 알아차리네.”

 

(웃자니쌍니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1.35, 전재성님역)

 

 

[Another devata:]

one should speak as one would act;

Don't speak as one wouldn't act.

The wise clearly discern the person

Who does not practise what he preaches."

 

(Faultfinders,  S1.35, 빅쿠보디)

 

 

이 게송에 대한 각주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이미 앞 게송에서 설명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언행일치가 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현자들은 이치를 알기에

 

이렇게 허공에서 부처님을 바라보며 헛점을 찾아 언행일치기 되어 있지 않음을 이야기 하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Nayida bhāsitamattena ekantasavaena vā,
Anukkamitave2 sakk
ā yāya paipadā dahā,
Y
āya dhīrā pamuccanti jhāyino mārabandhanā.

Na ve dhīrā pakubbanti viditvā lokapariyāya,
Aññ
āya nibbutā dhīrā tiṇṇā loke visattikanti.

 

(Ujjhānasaññisutta, S1.35)

 

 

[세존]

“단지 말한 것이나 일방적으로 들은 것만으로

이 굳건한 도닦음으로 나아갈 수 없노라.

현명한 자들은 올곧게 참선하여

마라의 속박에서 해탈하여 머물도다.  {110}

 

현자들은 이 세상의 형태를 잘 알기에

그것 두고 더 이상 논하지 않노라.

구경의 지혜로 알아 완전한 평화 얻은 뒤에

세상에 대한 집착을 모두 다 건넜도다.”169)  {111}

 

(허점을 찾는 자 경, 상윳따니까야 S1.35, 각묵스님역)

 

 

[세존]

“단지 말하는 것이나 오직 듣는 것만으로는

견고한 이 길을 좇아갈 수 없지만,

슬기로운 사람이 선정을 닦으면,

악마의 속박에서 해탈하네.

 

슬기로운 님은 세상이 방편임을 알아

참으로 흔들리지 않으니

지혜로써 열반에 들어

세간에서의 집착을 건넜네.”

 

(웃자니쌍니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1.35, 전재성님역)

 

 

[The Blessed one:]

"Not by mere speech nor solely by listening

Can one advance on this firm path of practice

By which the wise ones, the meditators,

Are released from the bondage of Mara.

 

 "Truly, the wise do not pretend,

For they have understood the way of the world.

By final knowledge the wise are quenched:

They have crossed over attachment to the world."

 

(Faultfinders,  S1.35, 빅쿠보디)

 

 

이 두 개의 게송은 하늘사람들의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한 게송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말하고 일방적으로 들은 것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빅쿠 보디의 번역을 보면 현자들은 세상의 길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속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하늘사람들이 보기에 마치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이나 하는 것처럼 또는 사기치고 도둑질이나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현자들은 이미 세상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결코 천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언행일치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자들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원리를 잘 알아 오염원을 소멸 시켰기 때문에 그 어떤 집착도 남아 있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 네 가지 필수품을 마치 도둑질 하여 얻은 사용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부처님에게 무릎 꿇고

 

이렇게 부처님이 설명하자 그제서야 하늘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 보았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경에 따르면 하늘사람들은 허공에서 땅으로 내려 온다. 그리고 부처님 면전에서 무릎을 꿇고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잘못이며 허물입니다.”라고 말하며 잘못 본 것에 대하여 용서를 빈다.

 

더 큰 헛점을 찾고자

 

그러나 부처님은 미소만 짓는다. 이는 하늘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다. 잘못을 빌면 한마디 말이라도 해 줄줄 알았으나 일언반구도 없이 미소만 짓는 부처님에게 화가 난 것이다. 그래서 더 큰 헛점을 찾고자 다시 허공으로 올라 갔다. 이전 보다 더 높은 허공에서 부처님을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다음과 같이 비난하는 게송을 읊는다.

 

 

Accaya desayantīna yo ce7na paigahati,
Kopantaro dosagaru sa vera
paimuccati.

 

(Ujjhānasaññisutta, S1.35)

 

 

“잘못을 드러내는 자들을 두고

받아들여 섭수치 않는 그 자는

안으로 분노 품어 성냄 휩싸여

그는 분명 증오에 묶여 있다네.” 

 

(허점을 찾는 자 경, 상윳따니까야 S1.35, 각묵스님역)

 

 

[어떤 하늘사람]

“진정으로 참회할 때

참회를 받아 들이지 않고

울화를 품고 분노가 무거운 자는

참으로 원한에 묶이네.”

 

(웃자니쌍니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1.35, 전재성님역)

 

 

"If one does not grant pardon

To those who confess transgression,

Angry at heart, intent on hate,

One strongly harbours enmity."

 

(Faultfinders,  S1.35, 빅쿠보디)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면 이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오히려 비웃는 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대부분 발끈 할 것이다. 경에서 하늘사람도 그런 케이스에 해당된다. 자신의 용서를 받아 들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 하늘사람은 더 높은 허공으로 올라가 더 큰 헛점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하여 울화를 품고 원한에 묶인 자라 하였다. 부처님에 대하여 속 좁은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폄하 한 것이다.

 

왜 미소로서 답하였을까?

 

그렇다면 부처님은 용서를 바라는 하늘사람에게 왜 미소로서 답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170) “’미소를 지으셨다(sitam patvakasi).’라고 했다. 왜 미소를 지으셨는가? 그 천신들이 [세존께] 어울리는 방법으로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들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인간인 여래를 세속의 요직에 있는 사람(lokiya-mahajana)과 같은 경지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다시 더 이야기를 계속하여 부처의 위력(Buddha-bala)을 드러낸 뒤에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리라.’라고 생각하시면서 미소를 지으신 것이다.”(SA.i.66)

 

(170각주, 각묵스님)

 

 

(*282) sita pātvākāsi : Srp.I.66에 따르면, 하늘사람들이 부처님의 진심에 맞도록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시람들과 부처님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그래서 미소를 지은 것이다.

 

(282 각주, 전재성님)

 

 

(78) Spk: Why did the Buddha display a smile? It is said that those devas did not apologize in a way that accorded with the Buddha's true nature (sabhavena); they acted as if there were no difference between the Tathagata, the supreme person in the world, and ordinary worldly people. The Blessed one smiled with the intention: "When discussion arises from this, I will show the power of a Buddha and thereafter I will pardon them."

 

(78각주, 빅쿠 보디)

 

 

부처님이 미소를 지은 이유에 대하여 빅쿠 보디는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빅쿠 부디에 따르면 “When discussion arises from this,”라 하였는데, 이는 “이로 인하여 논쟁이 일어 났을 때”라는 뜻이다. 미소를 지음으로서 하늘사람들의 오해 한 것을 말한다. 단지 미소 지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인데 자신들의 참회를 받아 주지 않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화를 벌컥 내며 또 다른 헛점을 찾아 더 높은 허공으로 올라 간 것이다. 하늘사람들은 진실로 용서와 참회를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속 좁은 인간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부처님은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이런 비난에 대하여 부처님은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Accayo ce na vijjetha no cidhāpagata siyā,
Ver
āni ca sammeyyu tenīdha kusalo siyā.

 

(Ujjhānasaññisutta, S1.35)

 

 

[세존]

“여기 이 경우에는 잘못이란 없었고

죄과(罪過)를 범한 것이 본래부터 없었으니

증오 역시 이미 만일 가라앉아 버렸다면

이 경우에 그는 결코 비난받지 않도다.”(*171)

 

(허점을 찾는 자 경, 상윳따니까야 S1.35, 각묵스님역)

 

 

[세존]

“세상에 잘못도 없고

허물이 없다면,

그리고 원한이 그치면,

세상에서 착하고 건전한 님이리.”

 

(웃자니쌍니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1.35, 전재성님역)

 

 

[The Blessed one:]

 "If there was no transgression,

If here there was no going astray,

And if enmities were appeased,

Then one would be faultless here."(*79)

 

(Faultfinders,  S1.35, 빅쿠보디)

 

 

하늘사람의 비난에 대하여 부처님은 어떻게 이해 시켰을까? 마치 하늘사람을 도발하게 만든 것처럼, 낚인 것처럼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어떤 말을 하였을까? 이에 대한 부처님의 게송을 보면 두 한글 번역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함

 

전재성님의 번역을 보면 잘못과 허물이 없고 원한이 그친다면 세상에서 착하고 건전한 님이리.”라 하였는데 이는 부처님은 허물이 없는 자이므로 원한을 품을 리가 없다는 뜻으로 본다. 이미 번뇌가 소멸 된 부처님에게 옹졸한 미움의 마음이 남아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묵스님의 각주를 보면 마치 주석의 내용을 옮겨 놓은 것처럼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각묵스님은 각주에서 번역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 하였다.

 

 

(*171) ‘이 경우에 그는 잘못이 없도다.’는 보디 스님이 채용한 Se의 ‘tenidha kusalo siya’를 따라서 옮긴 것이다. Ee1&2와 Be에는 kenidha kusalo siya로 의문문으로 나타나는데 주석서를 참조해도 의미가 통하게 옮기기가 힘들다. ‘비난받지 않도다.’로 옮긴 원어는 kusala(유익함)인데 복주서는 이것의 동의어로 anavajja(비난받지 않음)를 들고 있어서(SAT.i.96) 이렇게 옮겼다. 주석서도 본 게송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171번 각주, 각묵스님)

 

 

 각주에 따르면 kusala에 대하여 비난받지 않음의 뜻으로 번역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빅쿠 보디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 빅쿠 보디의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79)In pada d, I follow Se in reading tenidha, as against kenidha in Be and Eel and ko nidha in Ee2. Neither Spk nor Spk-pt offers any help with the meaning of the verse. I translate kusala here in accordance with Spk-pt's gloss, anavajja. At KS 1:35 this verse has been overlooked.

 

(79번 각주, 빅쿠 보디)

 

 

빅쿠 보디의 79번 각주를 보면 kusala에 대하여 anavajja의 의미로 번역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Then one would be faultless here”라 번역하였는데 이는 그때 그는 여기서 비난 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kusala의 의미는 비난받지 않는 자’ ‘결점이 없는 자라는 뜻이 된다. 이는 다름 아닌 번뇌 다한 아라한이다. 번뇌 다한 아라한이 미워하고 증오하고 원한을 가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참회를 받아 들이네

 

이렇게 부처님은 번뇌 다한 자는 결코 원한을 가지지 않는 허물없는 자임을 말한다. 그러자 하늘사람은 누구 잘못이 없습니까? 누가 허물이 없습니까? 누가 어리석음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누가 항상 슬기롭게 새김이 깊습니까?(S1.35)”라고 구체적으로 묻는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한다.

 

 

Tathāgatassa buddhassa sabbabhūtānukampino,
Tassaccay
ā na vijjanti tassa natthi apāgata,
So na sammoham
āpādi sova1 dhīro sadā sato.

Accaya desayantīna yo ce na paigahati,
Kopantaro dosagaru sa vera
2 paimuccati,
Ta
vera nābhinandāmi patigahāmi voccayanti.

 

(Ujjhānasaññisutta, S1.35)

 

 

[세존]

“여래요 깨달은 자요 모든 존재를 연민하는 자

그에게는 잘못도 없고 허물 또한 없노라.

실로 그는 미혹에 떨어지지 않으며

그가 바로 항상 마음챙기는 현자이니라. 

 

잘못을 드러내는 자들을 두고

받아들여 섭수치 않는 그 자는

안으로 분노 품어 성냄에 싸여

그는 분명 증오에 묶여 있도다.

나는 그런 증오를 즐기는 자 아니니

그러므로 그대들의 잘못을 섭수하노라.”  

 

(허점을 찾는 자 경, 상윳따니까야 S1.35, 각묵스님역)

 

 

[세존]

“모든 존재를 가엾게 여기는 여래에게는

어떠한 잘못도 없고 어떠한 허물도 없네.

그는 어리석음에 떨어지지 않고

슬기롭고 항상 새김이 깊다네.

 

진정으로 참회할 때 참회를 받지 않고

울화를 품고 분노가 무거운 자는 원한에 묶이네.

나는 원한을 즐겨하지 않기에

그대들의 참회를 받아 들이네.”

 

(웃자니쌍니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1.35, 전재성님역)

 

 

[The Blessed one:]

 "The Tathagata, the Enlightened one,

Full of compassion for all beings:

For him there are no transgressions,

For him there is no going astray;

He has not fallen into confusion,

And he is the wise one, ever mindful.

 

 "If one does not grant pardon

To those who confess transgression,

Angry at heart, intent on hate,

One strongly harbours enmity.

 

(Faultfinders,  S1.35, 빅쿠보디)

 

 

 

repetance

 

 

첫 번째 게송에서 허물 없는 자가 부처님임을 밝힌다. 그래서 ‘따타가따(Tathāgata)’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따타가따는 한자어로 여래라고 번역된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이렇게 오신님’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이번 게송에서는 한자어인 ‘여래’로 번역한 것이 눈에 띈다.

 

두 번째 게송에서는 부처님이 하늘사람의 참회를 받아 준다. 하늘사람의 참회에 대하여 미소로서 응답하여 한번 테스트 한 후에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자 참회를 받아 준 것이다.

 

진정으로

 

잘못을 하여 뉘우치면 받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럴 경우 테스트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경에서는 잘못을 뉘우치는 하늘사람에게 부처님은 미소로서 응답한다. 이를 오해한 하늘사람은 화가 나서 다시 더 큰 결점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진정한 참회가 아닌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하늘사람은 부처님에 대하여 단지 인간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신과 인간의 스승임을 알고 태도를 바꾼다. 그리고 진정한 참회의 모습을 보인다. 부처님은 이를 받아 들인다. 이렇게 진정하게 뉘우쳤을 때 받아 주어야 한다.

 

 

2014-01-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