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불상보다 탑묘, 꽃과 향과 함께 안료(顔料) 공양을

담마다사 이병욱 2014. 2. 23. 14:50

 

 

불상보다 탑묘꽃과 향과 함께 안료(顔料) 공양을

 

 

 

확장된 성지순례 개념

 

불교성지순례 발원을 세웠다. 그래서 매년 1회 성지순례를 떠나고 있다. 그런 성지의 개념은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곳은 모두 대상이 된다. 그러나 성지의 본래 의미는 부처님의 행적과 관련 있는 곳이다.

 

이슬람에서는 평생 한 번 이상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메카가 있는 곳을 향하여 하루에도 몇 차례 기도를 한다. 중앙아시아등 북동쪽 신도들은 메카가 있는 남서쪽 방향으로 향할 것이고, 터키의 경우 남쪽, 인도네시이아의 경우 서쪽을 바라 보고 기도할 것이다. 그래서 메카는 성지순례의 대명사로 떠 올랐다.

 

기독교인들의 성지는 예수의 행적과 구약에서의 모세, 그리고 제자들의 행적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뿐만 이집트, 터어키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유럽의 성당 등은 성지로 취급하지 않는 것 같다. 비록 오래되어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일지라도 순례의 대상은 될 수 있지 모르지만 성지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성지는 바이블을 근거로 하는 지명이 대상이라 볼 수 있다.

 

불교도에게 있어서 성지의 개념은 확장 된다. 불상이나 탑 등 불교의 상징물과 관련이 있는 곳은 성지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사찰순례 떠나는 것도 성지순례간다라고도 말한다.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곳 모두에 대하여 성지로 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곳은 불교도에게 있어서 사실상 성지나 다름 없다. 그래서 성지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에서도 부처님의 행적이 남아 있는 인도 뿐만 아니라 불교유적지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성지로 보고 성지순례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성지개념이 확장 되다 보니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 불교유적지나 불교사원이 있는 곳도 성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네 곳 있는데

 

성지순례와 관련 하여 부처님의 말씀이 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말씀 하신 내용이다. 아난다가 이제 세존께서 가시고 나면, 마음을 잘 닦는 수행승들이, 여래를 친견하는 것을 맞아 들이지 못하고 존경을 표하는 것을 환영하지 못합니다. (D16, 111)”라고 말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면 다시는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대한 말이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Cattārimān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āni savejanīyāni hānāni. Katamāni cattāri:

'Idha tathāgato jāt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 savejanīya hāna.

'Idha tathāgato anuttara sammāsambodhi abhisambuddh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 savejanīya hāna.

'Idha tathāgatena anuttara dhammacakka pavattitan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 savejanīya hāna.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 savejanīya hāna.

imāni kho ānanda cattāri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āni savejanīyāni hānāni.

Āgamissanti kho ānanda saddhā bhikkhū bhikkhuniyo upāsakā upāsikāyo idha tathāgato jāto ti pi, idha tathāgato anuttara sammāsambodhi abhisambuddhoti pi, idha tathāgatena anuttara dhammacakka pavattitantipi,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 ti pi. Ye hi keci ānanda cetiyacārika āhiṇḍantā pasannacittā kāla karissanti, sabbe te kāyassa bhedā parammaraā sugati sagga loka upapajjissantiti.

 

 

[세존]

“아난다여, 믿음이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아야 하고 경건해야 할 이와 같은 네 가지 장소가 있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1)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태어났다.’라고 믿음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고,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

 

2)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았다.’라고 믿음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고,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

 

3)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렸다.’라고 믿음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고,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

 

4)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잔여가 없는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라고 믿음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고,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

 

아난다여, 믿음있는 수행자들, 수행녀들, 청신자들, 여자 재가신자들이. ‘여기서 여래가 태어났다.’라고,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았다.’라고, ‘여기서 여래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렸다.’라고, ‘여기서 여래가 잔여가 없는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라고, 아난다여, 누구든지 이러한 성지순례를 한다면, 그들 모두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마하빠리닙바나경-Mahā Parinibbāna Sutta-완전한 열반의 큰 경, 디가니까야 D16,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열반이 들기 전에 네 곳을 들러 보아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부처님이 탄생한 룸비니(Lumbini), 부처님이 위 없는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gaya),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한 사르나트(Sarnath), 부처님이 열반에 든 꾸시나라(Kusinara) 이렇게 네 곳을 말한다. 이 네 곳에 대하여 경전에서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 즉 수행승이 보아야 할 곳이라 말씀 하셨지만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네 곳을 보아야 할까? 그것은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한다(dassanīya savejanīya)’는 뜻은 무엇일까? 주석에 따르면 경외의 념을 일으킨다는 것은 볼 가치가 있고, 경외의 념을 일으키는 뜻이라 한다. 또 복주석에 따르면 경외의 념을 일으킨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수반하는 앎을 지난다.”라는 뜻이라 한다.

 

부처님이 태어난 장소를 보면 두 가지 마음이 들 것이다. 하나는 존경의 마음이고 또 하나는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 일 것이다. 전자는 바르고 원만하게 꺠달은 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라 볼 수 있고, 후자는 자신을 되돌아 보며 경책히는 마음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곳, 깨달음을 얻은 곳, 처음 설법한 곳, 열반에 든 곳을 볼 때 마다 마음을 다시 잡는 것이다. 그래서 사대성지는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지순례를 한다면

 

그런데 경에서 성지순례를 한다면 (cetiyacārika)”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Cetiya‘a sepulchral monument; a pagoda.制多, 支提, 塔廟, 靈祠’으로 부처님 사대 성지를 뜻하고, cārika 는 ‘a journey; wandering’의 뜻으로 cetiyacārika는 ‘성지순례’를 뜻한다. 이렇게 가정법으로 번역한 것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다음과 같이 각주 하였다.

 

 

Smv.582에 따르면, 그 때 그 때의 탑묘 정원을 청소하고 자리를 씻어내고 보리수에 물을 주며 도는 자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승원의 탑묘를 예배하자.’라고 출발하여 청정한 마음을 지니게 되면, 도중에 죽더라도 곧바로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는 뜻이다.

 

(‘성지순례를 한다면’에 대한 각주, 전재성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사대성지를 순례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순례하러 가는 도중에 죽었을지라도 천상에 태어날 것이라 하였다. 이는 순례를 하는 자는 물론 순례 하러 가는 자 모두 청정한 마음상태이기 때문이라 한다. 임종 직전에 청정한 마음상태라면 그 청정한 마음을 대상으로 하여 재생연결식이 일어나 선처에 태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 하신 것이라 볼 수 있다.

 

순례와 관광의 차이는?

 

요즘은 성지순례 개념이 확장 되었다. 불교유적과 불상, 불탑이 있는 곳이면 불교성지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지순례와 관광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경에서 표현 되어 있듯이 청정한 마음이라 본다. 불교유적지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으로 대하면 성지순례라 볼 수 있지만, 단지 보는 것에 지나지 않다면 관광이라 볼 수 있다.

 

탑이 왜 불교의 상징일까?

 

아시아에는 많은 불교성지가 있다.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스리랑카 등 불교가 전승된 곳이다. 또 불교는 사라지고 유적만 남은 곳도 있다. 불자라면 한 번쯤 순례해야 할 성지이다. 그런데 불교국가의 성지에 가보면 나라마다 독특한 상징물이 있다. 대표적으로 ‘탑’이다. 그렇다면 왜 탑이 불교의 상징을 대표 하는 것이 되었을까?

 

어느 불교 국가이든지 사원에 불상이 있다. 그러나 불상이 출현 한 것은 부처님 사후 약 5세기 가량 지난 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불상이 없었다. 이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무불상시대’라 한다. 그 대신 ‘탑묘’가 있었다. 부처님 사리를 넣은 탑묘를 말한다. 그래서 탑묘가 신앙의 대상이었다.

 

부처님은 자신의 모습을 한 불상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탑묘에 대해서는 말씀 하셨다. 마하빠리닙바나경(대반열반경, D16)에서 아난다가 “어떻게 여래의 존체에 대처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부처님은 “전륜왕의 유체에 대하듯, 여래의 존체에 대처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래서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어떻게 시신을 수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알려주고 다음과 같이 탑묘 조성에 대하여 말씀 하셨다.

 

 

eva tathāgatassa sarīre paipajjitabba cātummahāpathe tathāgatassa thūpo kātabbo. Tattha ye māla vā gandha vā cuṇṇaka vā āropessanti vā abhivādessanti vā, citta vā pasādessanti, tesanta bhavissati dīgharatta hitāya sukhāyā"ti.

 

 

“… 아난다여, 전륜왕의 유체에 대처하듯, 여래의 유체에 대처하고 큰 사거리에 여래의 탑묘를 조성해야 한다.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안료를 올리고 경의를 표하고 마음을 정화시킨다면, 사람들은 오랜 새월 안녕과 행복을 누릴 것이다.”

 

(마하빠리닙바나경-Mahā Parinibbāna Sutta-완전한 열반의 큰 경, 디가니까야 D16-112,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탑묘 조성에 대하여 전륜왕에 대처하듯이 하라고 하였다. 구체적은 장소까지 언급하였는데 경에서는 “큰 사거리에 여래의 탑묘를 조성해야 한다. (cātummahāpathe tathāgatassa thūpo kātabbo)”라고 하였다.

 

이렇게 대로 사거리에 탑묘를 조성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마음으로 보는가? 부처님의 사리가 안치된 탑묘에 경의를 표하면 그 순간 만큼은 마음이 청정해질 것이다. 그런 생활이 오래 되면 그에 대한 과보로 선처에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오랜 새월 안녕과 행복을 누릴 것이다. (dīgharatta hitāya sukhāyā)”라 하였다.

 

탑묘에 올릴 공양물은 무엇인가?

 

그런데 경에 따르면 탑묘에 예배하는 방법까지 알려 주었다. 화환(māla)이나 향(gandha)이나 안료(cuṇṇaka)를 올리고 경의를 표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로 공양하라고 하였다.

 

경에서 언급된 화환(māla), 향(gandha)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육법공양이라 하여 부처님전에 등, 향, 차, 꽃, 과일, 쌀을 공양한다. 여기서 등은 일반적으로 촛불을 말한다. 향은 향나무로 만든 연기가 나는 향을 말한다. 이런 육법공양은 우리나라 불교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공양방식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경에서 언급한 것은 화환(māla), (gandha), 안료(cuṇṇaka) 이렇게 세 가지 뿐이다. 여기서 화환이라고 번역한 말라(māla)는 둥근 형태의 꽃다발을 뜻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꽃(flowers)’을 말한다. 그것도 돈주고 산 꽃이 아니라 지천에 깔려 있는 꽃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꽃을 꺽어서 공양하는 것이 아니다. 남방 테라와다 불교전통에 따르면 땅바닥에 떨어진 꽃을 주어서 공양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화환과 향은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세 가지 공양물 중애 안료(cuṇṇaka)가 있다. 이는 어떤 것일까?

 

안료(cuṇṇaka)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안료를 뜻하는 cuṇṇaka에 대하여 PCED194에서 검색해 보았다. 검색하니 영어로 ‘scented powder’라 한다. 이는 ‘향기로운 분말’이라는 뜻이다. 한자어로 ‘粉末, 塗粉’라 되어 있다. 그러나 cuṇṇaka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쭌나까()에 대하여 더 검색을 해 보니 ‘a preparation of chunam, paint (for the face, mukha˚)’라 되어 있다. 추남의 준비’, ‘(얼굴에) 칠하는 것의 뜻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추남(chunam)’이다.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chunam

 

Full Definition of CHUNAM

 

1) India :  lime used esp. with betel leaf in making pan

 

2):  a cement or plaster used in India that is usu. highly polished and decorated with paintings

 

Origin of CHUNAM

Tamil cuṇṇam, fr. Skt cūrna powder, flour, fr. carvati he grinds, chews; perh. akin to Slovak čren jaw, cheekbone, Latvian ceruoklis m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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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am)

 

 

추남에 대한 정의를 보면 ‘lime used esp’라 하였는데, 이는 ‘초능력에 사용되는 석회’라는 뜻이다. 또  ‘with betel leaf in making pan’라 하여 ‘냄비를 만들기 위한 베텔 잎사귀’라 하였다. 두 번째의 뜻을 보면 인도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광택을 내고 치장을 하는데 사용되는 세멘트나 회반죽 같은 것이라 하였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추남은 석회 같은 분말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분말을 꽃과 향과 함께 부처님 탑묘에 공양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빠알리사전 PCED194에 따르면 cuṇṇaka에 대하여 ‘cuṇṇakajatanti reduced to powder M.III,92 (atthikani)’라고 소개 되어 있다. 여기서 ‘M.III,92’는 PTS본 맛지마니까야 3 92페이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찾아 보니 cuṇṇaka가 들어 가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nahāpako3 vā nahāpakantevāsī vā kasathāle nahānīyacuṇṇāni ākiritvā udakena paripphosaka sanneyya. Sāssa4 nahānīyapiṇḍī snehānugatā snehaparetā santarabāhirā phuṭṭhā snehena, na ca pagghariī.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숙련된 때밀이나 때밀이의 제자가 놋쇠그릇에 목욕용 분말을 쌓아놓고 물로 차츰 뿌려서 섞으면, 그 목욕용 분말 덩어리가 습기를 포함하고 습기에 젖어들어, 안팎으로 침투하지만, 흘러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Kāyagatāsati sutta-몸에 대한 새김의 경, 맛지마니까야 M119-14,전재성님역)

 

 

‘몸에 대한 새김의 경(M119)’ 14절에 있는 내용이다. 경에서 ‘nahānīyacuṇṇāni’가 있다. Nahānīya‘bath-powder or anything useful for a bath’의 뜻으로 목욕용 분말을 뜻한다. cuṇṇāni cuṇṇā로 검색하면 ‘powder; chunam; soap-powder’라 되어 있다. ‘비누같은 분말이라 볼 수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cuṇṇā가 몸을 깨끗이 씻는 비누와 같은 의미라 보여진다.

 

경에서 대로 사거리에 탑묘를 조성하고 거기에 화환(māla)이나 향(gandha)이나 안료(cuṇṇaka)를 공양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안료를 뜻하는 cuṇṇaka는 몸을 청결하게 하는 일종의 비누 분말 같은 것이다. 따라서 탑묘에 추나까(cuṇṇaka ) 또는 추남(chunam)을 올려 놓는다는 의미는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겠다는 발원으로 보인다.

 

cuṇṇaka에 대하여 검색을 통하여 이것이 일종의 비누분말이라는 것을 알아 내었다. 공양물로서 분말은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부처님 당시 꽃이나 향과 함께 분말은 삼대공양물에 들어 갔다는 사실이다. 모두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탑묘를 장려하신 부처님

 

부처님은 자신의 형상을 한 불상을 만들라고 한 적이 없다. 그 대신 탑묘를 장려 하였다. 그것도 대로 사거리에 조성하고 꽃, , 분말 이렇게 세 가지를 공양물로 하면 마음이 청정해질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경에서 부처님은 왜 탑묘를 조성해야 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세존]

“아난다여, 이와 같은 네 종류의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는 님이 있다. 네 종류란 무엇인가?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 연기법을 홀로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 여래의 제자는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는 님이다. 전륜왕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

 

(마하빠리닙바나경-Mahā Parinibbāna Sutta-완전한 열반의 큰 경, 디가니까야 D16-113,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네 종류의 사람에게 탑묘를 조성하여 예배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 부처님, 연각불, 부처님 제자, 전륜왕을 말한다. 여기서 부처님 제자라고 한 것은 범부 수행승이 아니라 성문수행승을 말한다.

 

탑묘를 조성하는 이유는?

 

부처님이 말씀 하신 탑묘는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부도탑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큰스님이 입적하면 부도탑을 세워 주는데, 도력과 명망에 따라 그 크기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탑묘를 세우는 목적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세존]

“아난다여, 어떠한 이유로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인가? 이난다여, ‘이것은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의 탑묘이다.’라고 많은 사람이 청정한 믿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서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러한 이유로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1195)”

 

(마하빠리닙바나경-Mahā Parinibbāna Sutta-완전한 열반의 큰 경, 디가니까야 D16-113, 전재성님역)

 

 

부처님탑묘를 조성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청정한 마음을 갖게 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사리가 모셔진 탑묘에 꽃, 향, 분말을 공양하여 눈, 귀, 코 등 육근을 청정하게 하였을 때 선처에 태어날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런 탑묘조성 대상은 부처님 말고도 연각불과 제자와 전륭왕이다. 그래서 이 네 종류에 대하여 경에서는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라 하였다. 여기서 가치가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주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smv.583에서는, ‘왜 세존께서는 속가에 사는 죽은 왕의 탑묘의 조성은 인정하면서, 계행을 갖춘 범부 수행승의 탑묘의 조성은 인정하지 않았는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범부 수행승을 위한 탑묘의 조성이 허락되면, 스리랑카 섬은 탑묘를 위한 장소로 가득찰 것이다.’라고 논하고 있다.

 

(1195번 각주, 전재성님)

 

 

주석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탑묘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탑묘는 사리가 안치된 무덤과 같은 것이라기 보다 일종의 숭배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부처님제자라 하여 범부수행승 모두에게 탑묘를 만들어 준다면 전국토가 탑묘로 넘쳐날 것이라 한다.

 

탑묘신앙의 영향 탑돌이

 

초기경에 따르면 탑묘는 숭배의 대상이다. 그 탑묘에는 사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탑묘조성대상은 부처님, 연각불, 부처님제자(성문승), 전륜왕 이렇게 네 가지 종류의 사람이라 하였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불자들에게 있어서 탑묘는 경배의 대상이 된다.

 

탑묘는 무불상시대에 있어서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내려 오고 있다. 비록 부처님 사후 오백년이 지난 후에 불상시대가 시작 되었지만 부처님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탑묘이다. 그래서일까 전세계적으로 탑묘에 대한 신앙은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절의 가장 중심부에 석탑이 있는 것도 탑묘신앙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더구나 탑돌이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초기불교의 전통이 고스란히 전승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법당에 모셔진 불상보다도 탑묘에 예배하는 것이 초기불교 정신에 더 가까운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찰순례를 다니다 보면 대웅전만 있고 석탑이 없는 곳도 있다. 그런 경우 아무리 가람이 웅장하고 훌륭하다고 해도 허전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한쪽 귀퉁이가 깨지고 이끼낀 자그마한 삼층석탑이라도 하나 있다면 화려한 단청의 대웅전을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마음이 간다. 아마도 탑묘조성을 강조한 부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라 본다.

 

초기에는 탑이 가람의 중심이었다

 

그래서일까 각국마다 전통사찰을 보면 탑묘 중심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었다. 지금은 불타고 흔적만 남은 황룡사의 경우 구층탑을 중심으로 하여 가람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황룡사 구층탑 유적지

(백제 기술자들의 손으로 7세기 중반에 건립됨)

 

 

 

일본의 전통사찰 역시 탑을 중심으로 가람이 형성되어 있다. 아스카 시대 백제장인이 만들었다는 호류지(법륭사) 역시 탑중심이다.

 

 

 

  

호류지 목조5층탑

(현존 세계최고의 목조건축으로서 백제기술자의 손으로 7세기 초에 건립됨)

 

 

 

중국의 경우는 어떨까? 중국의 사찰을 모두 가 보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절이라는 백마사, 향산사 소림사를 가보았지만 탑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불상이 묘셔진 법당 중심이었다. 그러나 누각형으로 된 탑 중심의 전통사찰도 종종 볼 수 있다.

 

불교가 사라진 중국신장에서는 흔적만 남아 있다. 투루판에 고창고성이 있는데 이곳 중심에 ‘대불사’라는 절터가 있다. 징기스칸이 침략 하기 이전에 불교국가이었는데 탑묘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일부 복원 된 것이긴 하지만 감실에는 파괴된 불상이 있었다.

 

 

 

고창고성 탑

 

 

이런 탑묘 형식은 교하고성에서도 볼 수 있었다. 감실에 파괴된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흙으로 만든 탑은 사원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교하고성 탑

 

 

 

후대로 갈수록 불상중심으로

 

이처럼 불교가 전래된 동아시아 에서는 초기에는 탑이 중심지이었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불상이 있는 대웅전 중심으로 바뀌어 같다. 그 결과 종래의 목탑형식에서 석탑으로 바뀌고 또 시대가 지날수록 크기가 작아져서 대웅전 앞 마당을 장식하는 용도로 변질 되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탑은 여전히 불자들에게 신앙의 대상이다. 신심 있는 불자들은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석탑주위를 도는 탑돌이를 하기 때문이다.

 

 

 

탑돌이 하는 노부부

천안 광덕사 3층석탑

 

 

 

양곤의 까바예(Kabaye) 파고다

 

 

해외성지코스는 동남아도 해당된다. 불교국가인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등이 해당된다. 이들 불교국가에서도 탑이 중심이라 보여진다. 특히 미얀마의 경우 파고다라 하는데 양곤에 있는 까바예(Kabaye) 파고다가 있다. 이 파고다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사리가 안치 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원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사리는 인도의 산치대탑에 안치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는 19세기 중엽 영국의 커닝햄(Cunningham)이 발굴함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대로 부처님제자의 사리도 탑묘에 안치하여 경외의 대상으로 삼아라고 말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목갈라나존자의 사리

출처 http://www.pbase.com/dhammakami/image/43229704

 

 

 

 

 

 

 

산치대탑

인도 중부 마드야 프라데쉬주의 수도 보팔 근처 북부 46km 지점에 위치.

아쇼카 왕(기원전 286-232재위)이 기원전 3세기에 이 탑을 세웠음.

출처 http://hgc9395.egloos.com/7632593

 

  

그런데 두 존자의 사리중 중의 일부가 1950년 10월 20일 미얀마에 전해졌는데,  제6차 결집의 사적지에 세워진 양곤의 까바예(Kaba aye) 파고다에 안치 되었다고 한다

  

 

 

까바예(Kaba aye) 파고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출처 http://www.pbase.com/seowkiang/image/22597580

 

 

 

이와 같이 탑묘에는 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이나 제자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탑묘는 경배의 대상이 된다.

 

스리랑카의 다고바(Dagoba)

 

마하빠리닙바나경에서도 사리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사리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경에 실려 있다. 분배된 사리는 탑묘에 묘셔지게 되는데 경에서는 “우리도 사리를 보존하기 위해 큰 탑묘를 세울 것입니다.(D16-140)”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숭배의 대상으로서 탑묘에는 사리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리가 들어 있는 탑묘 숭배는 다름 아닌 부처님 숭배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불상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탑묘가 주된 숭배 대상이었다. 이외에도 보리수도 숭배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테라와다 불교의 종갓집이라 볼 수 있는 스리랑카에서는 보리수에 대한 숭배가 강하다고 한다. 이 모두가 부처님을 그리워 하고 부처님의 행적을 닮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테라와다 불교의 종주국이라 볼 수 있는 스리랑카에서도 탑묘를 볼 수 있다. 그것은 밥그릇을 거꾸로 엎어 놓은 듯이 보이는 복발형의 탑이다. 이는 스투파(Stupa)에서 유래 된 것이다.

 

스투파의 전형이 산치대탑이다. 3세기 아소카왕 당시 세워진 것이다. 이런 스투파는 반구형이 특징이다. 마치 그릇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밑에는 기단을 만들고 상부에는 상륜을 만들어졌다. 그런 모습을 오늘날 스리랑카에서 다가바(Dagaba) 또는 다고바(Dagoba)라 부르는 복발형 탑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에 있는 Ruwanwelisaya 스투파라 볼 수 있다.

 

 

 

Ruwanwelisaya 스투파

Ruwanwelisaya Chedi in the sacred city of Anuradhapura, Sri Lanka(위키백과)

 

  

 

전형적인 스리랑카 불교사원

 

불교에서 사원을 건립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수행승들이 거주처로 사용하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처님을 경배하는 장소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불교사원을 만들 때 가장 먼저 고려 하는 것이 이라 한다. 그래서 탑을 중심으로 모든 가람이 형성되는 것이다. 초기불교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스리랑카 사원 역시 다고바라 불리우는 스투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스리랑카 불교사원의 전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Abhayagiriya Monastery(위키백과)

 

 

 

그림을 보면 사원의 중심에 스투파(1번)가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수투파를 중심으로 각종 건물들이 배치 되어 있다.

 

이처럼 불교사원에 있어서 스투파, 즉 탑묘는 사원의 중심부에 있다. 이는 부처님이나 제자의 사리가 묘셔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 형상을 한 불상이 모셔져 있는 곳 보다 더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이는 초기경에서 부처님이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는 님이다.:(D16-113)”이라 하였고, 또 탑묘에 예배하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난다. .:(D16-113)”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탑묘가 사원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불상 보다도 탑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참고로 전형적인 스리랑카 사찰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깍까소 빅쿠가 촬영한 스리랑카 사찰을 보면 복발형의 백색의 수투파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스리랑카 양식의 기와집으로 된 누각형의 건축물이 보인다. 이것이 전형적인 스리랑카 사원의 모습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보리수이다.

 

스리랑카의 보리수신앙

 

스리랑카는 다른 불교국가와 달리 보리수신앙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2006년 스리랑카 웨삭일에 아깍까소 비구가 남긴 글을 보면 사람들은 스투파와 보리수(사실상 모든 사원에 하얀 스투파와 보리수가 있다)에 꽃 공양을 하거나 작은 오일그릇에 불이 켜진 그릇을 들고 보리수 주위를 돌기도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스리랑카 사원에는 복발형의 수투파가 당연히 있듯이 보리수 역시 당연히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스리랑카 사원에서는 사리가 담겨 있는 스투파와 보리수 이렇게 두 가지가 사원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스투파와 보리수가 함께 있는 스리랑카의 사원 모습을 보면 다음 사진과 같다.

 

 

 

  

스투파와 보리수가 있는 전형적인 스리랑카 사원

 

  

우상숭배한다는데

 

초기불교경전을 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신앙의 대상이 불상중심이 아니라 탑묘중심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초기경에서 부처님이 강조하신 사항이다.

 

부처님은 자신의 형상을 한 불상을 만들어 경배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대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면서 불상이 만들어지고 불상숭배가 일반화 되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전세계적으로 불자들은 불상을 숭배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불상에 절을 하고 기도를 한다.

 

불상에 절을 한다고 하여 우상숭배로 볼 수 없다. 만일 누군가  흙덩이나 돌덩이 그 자체에 절하고 기도한다면 우상숭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불상 그 자체가 아니라 가르침에 경배한다면 결코 우상숭배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상에 경배하는 모습을 보면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탑묘라 본다.

 

꽃과 향과 함께 안료(顔料) 공양을

 

우리나라에도 탑묘가 있다. 절에서 흔히 노는 삼층석탑이나 오층석탑이다. 그러나 불자들에게 아직까지 탑보다 불상인 것 같다. 불자들은 절에 가면 이전각 저전각 옮겨 다니며 참배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은 불상이 아니라 탑묘에 경배하라고 하였다. 이때 공양물은 꽃, , 분말이다. 이들 세 가지 공양물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꽃을 보고, 코로 향냄새를 맡고, 분말로 몸을 청결히 한다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승불교 전통의 우리나라에서는 육법공양이라 해서 향, 등과 함께 쌀을 올린다. 이를 사시마지라 하는데 부처님에게 올리는 밥이라 한다. 그러나 초기불교경전상에 표현된 탑묘공양물에는 밥이라는 개념이 없다. 열반에 든 부처님이 강림하여 향을 맡고 식사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에서 화환(māla)이나 향(gandha)이나 안료(cuṇṇaka)를 올리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경의를 표하는 것이고, 또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는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안료를 올리고 경의를 표하고 마음을 정화시킨다면(D16)’라고 말씀 하신 부처님의 말씀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세가지 중에 안료라 번역된 cuṇṇaka는 우리나라 불자들에게는 생소한 것이다. 아직까지 공안료를 공양물로서 올려 놓은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안료는 비누와 같은 세제분말을 뜻하는 한자어 안료(顔料)’로 본다.

 

cuṇṇaka에 대한 검색결과 이는 비누분말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비누가 자신의 몸을 청결하게 해 주듯이 비누를 공양물로 올린다는 것은 결국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은 업을 청정하게 하겠다는 발원으로 보인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불공을 드릴 때 꽃과 향과 함께 안료(顔料) 준비하는 것도 가르침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보여진다.

 

 

2014-02-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