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자신보다 수승한 자와 사귀라” 약발이 먹히지 않는 고집불통

담마다사 이병욱 2014. 2. 28. 15:50

 

자신보다 수승한 자와 사귀라약발이 먹히지 않는 고집불통

 

 

 

문화충격(culture shock)을 받고

 

오래 전에 일본에 갔었다. 장비검수라는 명목으로 일본업체에서 초청하여 간 것이다. 이때 느낀 것은 그들의 질서의식이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줄서기를 하고 거리에는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끔하게 차려 입고 흐트러짐 없이 보였다. 사회전체가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이었다. 이런 현상을 접하였을 때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날 정도이었다. 이제까지 무질서 하더라도 활기차게 움직이는 한국분위기와는 백팔십도 다른 것이어서 마치 촌놈이 된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런 감정이 문화충격일 것이다.

 

문화충격(culture shock)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였을 때 마음으로부터 받는 충격을 말한다. 문화충격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문화 환경이나 사회 환경에 있을 때 느끼는 감정불안을 서술하기 위해 쓰이는 용어이다.”라고 설명 되어 있다. 완전히 다른 문화나 이질적인 환경에 접하였을 때 느끼는 괴리감 같은 것이다.

 

문화충격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를 소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신만의 성을 쌓고 그 안에 스스로 갇혀 나오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 하지 못하는 사람들

 

문화쇼크는 외국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겨 날 때 마다 이에 대하여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역시 문화쇼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한 것만 고집한다. 010 으로 대표 되는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고 있으나 011 등 예전의 번호를 고집하며 쓰기에 익숙한 핸드폰을 놓지 않는 경우도 해당 될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 하지 못하는 것은 변화된 환경에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부하기도 하고 심지어 혐오감을 갖기도 한다.

 

최근 일하는데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바꾸었다. 버전이 자꾸 올라 가지만 사용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오래 된 버전을 사용하였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버전을 가진 자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자료를 주고 받을 때 마다 매번 버전 다운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신 버전을 깔게 되었다. 모든 기능이 업그레이드 된 프로그램이다. 사용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여러가지 기능이 추가 되어 있어서 오히려 사용하기 편하다. 이렇게 버전이 높아 지면 이전 버전의 문제점이 해결 되어 사용하기가 편리 하다. 그럼에도 예전 버전을 고집하는 것은 그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완고 해진다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부류는 변화에 적응 하는 사람들이고, 또 한부류는 현상태를 고수 하는 사람들이다. 이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전자에 대하여 진보적이라 하고, 후자에 대하여 보수적이라 한다. 그래서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기를 바라고,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관습과 전통이 계속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진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수도 아닌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이념에 대한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와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보수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마저 굳어져서 변화에 대하여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변화를 싫어 한다. 이렇게 사고가 고착되다 보면 모든 것을 자신 위주로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고집불통이 되고 완고해지는 것이다.

 

 

 

 

stubbornness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경우

 

약을 주면 약효가 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약을 주어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고집불통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약을 주지 않아도 낫지 않는 사람, 약을 주면 낫는 사람, 약을 주지 않아도 낫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를 말한다. 이중에서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는 이런 사람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는 어떤 환자의 경우 적당한 자양분을 얻거나 적당한 자양분을 얻지 못하거나, 적당한 의약품을 얻거나 적당한 의약품을 얻지 못하거나, 적당한 간병인을  얻거나 적당한 간병인을 얻지 못하거나 상관없이, 그의 질병은 치유 되지 않는다.

 

(환자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3:22,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병이 치유되는데 있어서 자양분, 의약품, 간병인 이렇게 세 가지를 들고 있다. 그런데 이 세가지 조건을 구비하여도 병이 낫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아상으로 가득찬 고집불통형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어 보수화된 사람들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오로지 자신이 경험한 것만이 바르고 타인의 생각은 틀렸다고 보는 사람들을 말한다.

 

왜 비우라 하였을까?

 

완고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소귀에 경읽기나 다름 없다. 도무지 받아 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Apārutā tesa1 amatassa dvārā ye sotavante pamuñcantu saddha, S6:1)”라 하였다. 가르침을 받아 들이려면 지금 믿고 있는 신앙이나 사상을 먼저 비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려 한다면 ‘회의론자’가 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것은 많이 비워낸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그래야 가르침을 받아 들일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 아직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아이나 청소년 들과 같이 여백이 많은 경우이다. 이런 경우 역시 가르침이 받아 들여 질 수 있다. 한마디로 약을 투여하면 약효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는 어떤 환자의 경우 적당한 자양분을 얻어서 적당한 자양분이 결여 되지 않고, 적당한 의약품을 얻어서 적당한 의약품이 결여 되지 않고, 적당한 간병인을 얻어서 적당한 간병인이 결여 되지 않으면, 그의 질병은 치유 된다.

 

(환자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3:22, 전재성님역)

 

 

경을 보면 “결여 되지 않으면”이라 하여 조건문으로 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약을 주면 낫고 약을 주지 않으면 낫지 않는 다는 말이다. 청소년의 경우 여백이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주면 받아 들이고, 가르침이 없으면 받아 들일 수 없는 것과 같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사람들

 

그러나 약을 주거나 주지 않거나 질병이 낫는 경우도 있다. 이를 가르침에 비유하면 누군가 가르침을 주건 주지 않건 스스로 가르침을 찾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경우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는 어떤 환자의 경우 적당한 자양분을 얻거나 적당한 자양분을 얻지못하거나, 적당한 의약품을 얻거나 적당한 의약품을 얻지못하거나, 적당한 간병인을 얻거나 적당한 간병인을 얻지못하거나 상관없이 그의 질병은 치유 된다.

 

(환자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3:22, 전재성님역)

 

 

약을 주면 반드시 낫는 케이스가 있다. 가르침을 전하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가르치 주건 주지 않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 가장 이상적인 케이스이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근기가 수승하다고 말하고 전생부터 불교와 인연이 있다고 말한다.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을 표로 만들어 보면

 

이렇게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이를 의약품의 비유로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No

경전 문구

 

 

1

적당한 의약품을 얻거나 적당한 의약품을 얻지 못하거나 그의 질병은 치유 되지 않는다

가르침을 받아 들이지 않음

-고집불통

-완고한 노인

(여백없음)

2

적당한 의약품을 얻어서 적당한 의약품이 결여 되지 않으면 그의 질병은 치유 된다.

가르침을 주면 받아 들임

-어린이,청소년, 청년

(여백있음)

3

적당한 의약품을 얻거나 적당한 의약품을 얻지못하거나 상관없이 그의 질병은 치유 된다.

스스로 가르침을 찾음

근기가 수승한 불자

 

 

세 가지 케이스에 대한 표를 보면 포교방향을 어디로 정할지에 대하여 알 수있다. 첫번째 항목에서 고집불통이나 완고한 노인의 경우 포교 해도 그다지 효과가 없음을 말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어린이나 청소년, 청년 포교를 하는 것이 더 낫다. 가르침을 받아 들일 만한 여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 포교는 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이나 청소년 포교는 늘 외면 받는다. 그런데 세 번째 항목을 보면 스스로 가르침을 찾는 자들이 있다. 자신이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스승을 찾아 나서는 케이스이다. 이런 케이스는 포교할 필요가 없다.

 

한번 사상이 형성 되면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모두 다르다. 그 얼굴로 평생살아 간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성향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한번 타고난 성향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한번 사상이 형성 되면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서 갖게 된 신앙이 평생 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점차 고착화 된다. 그래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크게 의존하여 새로운 변화를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마치 병에 걸린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약발이 먹히지 않은 것과 같다.

 

툭하면 발끈하는 사람

 

이처럼 약발이 먹히지 않은 사람에게 부처님은 세 종류의 사람중의 하나로 보았다. 그런데 앙굿따라니까야에 따르면 세 종류의 사람 시리즈 중에 종기와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

 

 

수행승들이여, 누가 마음이 종기와 같은 사람인가?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화를 잘 내고 울화가 많아서 조금만 말을 걸어도 성내고 골내고 짜증내고 증오하고 공격하고 미움과 분노와 불만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수행승들이여, 상처난 종기를 나뭇가지나 돌조각으로 찌르면 많은 고름이 흘러 나오는 것처럼,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화를 잘 내고 울화가 많아서 조금만 말을 걸어도 성내고 골내고 짜증내고 증오하고 공격하고 미움과 분노와 불만을 드러낸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을 두고 마음이 종기와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종기와 같은 사람, 앙굿따라니까야 A3:25, 전재성님역)

 

 

툭하면 화부터 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사소한 것에도 발끈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비판이나 비난이 쏟아지면 그 즉시에서 맞받아 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성질 급한 사람에 대하여 종기와 같은 사람이라 하였다.

 

종기를 건드르면 툭 터지면서 고름이 나온다. 성내는 것도 일종의 고름과도 같이 더러운 것이다. 더러운 고름은 성내는 것, 짜증내는 것, 증오하는 것, 공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완고한 사람들이다. 꽉막혀 있어서 더 이상 들어 갈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 어떤 가르침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판단이 맞고 남의 생각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종기 같은 사람은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도 볼 수 있지만 넷상에서도 볼 수 있다.

 

자애와 연민을 보내는 이유

 

세 가지 종류의 사람 시리즈에 있어서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 약발이 먹히지 않는 사람, 종기와 같은 사람에 이어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은 어떤 케이스일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사귀지 말아야 하고 친하지 말하야 하고 섬기지 말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은 계행과 삼매와 지혜가 우리 보다 저열한데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자애를 배풀고 연민을 베풀 뿐, 사귀지 말아야 하고 친하지 말하야 하고 섬기지 말아야 한다.

 

(사귀어야 할 사람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3:26, 전재성님역)

 

 

아무나 사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행과 삼매와 지혜가 우리 보다 저열한 사람은 사귀지 말라 하였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나와 동등하거나 나 보다 나은 사람을 사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시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계행이 안좋은 자에게는 자애와 연민을 베풀라 하였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악행을 지었을 때 그에 대한 과보를 받을 것이 뻔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애와 연민을 보내는 것이다.

 

자신보다 수승한 자와 사귀라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Nīhīyati puriso nihīnasevi

Na ca hāyetha kadāci tulyasevī,

Seṭṭhamupanama udeti khippa

Tasmā attano uttari bhajethāti.

 

 

[세존]

“저열한 자와 사귀면 퇴락하기 마련이지만

동등한 자와 사귀는 자는 퇴락하지 않네.

수승한 자와 사귀면 빠르게 성장한다.

그러므로 자신보다 수승한 자와 사귀라. (A3:26, 전재성님역)

 

 

저열한 사람을 시중들면 저열하게 되고

동등한 사람을 시중들면 저열하게 되지 않으며

수승한 사람을 섬기면 빨리 향상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보다 수승한 사람을 섬겨야 하리. (A3:26, 대림스님역)

 

 

 

2014-02-2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