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여근석은 왜 잊혀졌을까? 삼막사 남녀근석과 제2 여근석
동청계사 서삼막사
5월5일 어린이날 삼막사를 찾았다. 사는 곳에서 가까이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다. 관악산 서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날씨가 좋으면 서해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천년고찰이다.
사는 곳을 중심으로 본다면 삼막사는 서쪽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청계사는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 두 사찰은 120만명이 몰려 사는 안양권(안양, 군포, 의왕, 과천)에서 불자들이라면 즐겨 찾는 전통사찰이다. 그래서 ‘동청계사’ ‘서삼막사’라 부를 수 있다.
청계사와 함께 늘 즐겨 찾는 곳이 삼막사이다. 두 곳 모두 마을버스가 입구까지 들어 가기 때문에 걸어 가기에도 부담 없는 곳이다. 차도가 절 입구까지 나 있어서 차로도 접근이 가능하지만 삼막사의 경우 관악산 도립공원 내에 있기 때문에 통제가 된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삼막사는 입구주차장에서 약 40분 가량 걸린다. 그러나 신도들을 위하여 ‘셔틀카’가 운행된다. 9인승 스타렉스가 수시로 운행하는데 기사에게 물어 보니 천원을 내면 된다고 한다.
삼막사등산로는 경인교대입구에서부터 시작 된다. 예전에 채석장이었던 곳이 언젠가 캠퍼스로 바뀌면서 아카데믹한 분위기가 되었다. S자형 도로를 따라 올라 가다 보면 삼막사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좀 더 빨리 가려면 계곡길로 가야한다.
삼막사 계곡길은 급경사져 있다. 이렇게 급경사진 길을 올라 가다 보면 시간이 단축된다. 그러나 소위 깔딱고개를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마치 마라톤에서 30키로 미터 이후에 막판 스퍼트를 하듯이 깔딱고개를 넘기만 하면 곧바로 삼막사이다.
전에 보지 못하던 일주문
깔딱고개를 넘자 마자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일주문이다. 최근 일이년간 오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만든 것 같다.
일주문에는 ‘삼성산삼막사’라 쓰여 있다. 관악산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삼성산을 주산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새워진 일주문을 보니 절이 품격있어 보인다. 일주문, 천왕문 등이 있을 때 절의 사격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계사에는 아직까지 일주문이 없다. 절의 규모로 보았을 때 삼막사 보다 훨씬 더 큼에도 일주문이 없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이다. 삼막사에 일주문이 생겼으니 조만간 청계사에도 일주문이 건립 될 것으로 보인다.
삼막사의 무료 국수공양
삼막사 하면 떠 오르는 것이 있다. 관악산을 즐겨찾는 등산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수공양이다. 삼막사를 찾는 이에서 무료로 국수를 공양하는 것이다. 불자이건 등산객이건 구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요일 점심 때가 되면 긴 줄이 형성된다. 이에 대하여 ‘큰집처럼 막 퍼주는 삼성산 삼막사(三幕寺)(2007-02-0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삼막사 국수공양은 유명하다. 그래서 매스컴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 된 바 있다. 거의 십년 이상 무료로 국수공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IMF 경제위기 당시 실직한 사람들에게도 국수공양을 하였고 그 이후에도 국수 먹기를 원하면 누구나 무료로 먹을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등산객들과 불자들은 삼막사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된 것 같다.
이천원을 받았던 청계사
이처럼 무료로 국수공양 전통이 있는 곳이 삼막사이다. 그러나 동쪽 청계산자락에 있는 청계사의 경우 달랐다. 일요일 점심 때 가면 국수를 주는데 무료가 아니었다. 불자이건 등산객이건 모두 이천원을 받았다. 이와 같은 청계사의 조치에 대하여 인터넷에서 비판글을 보았다. 스스로 절을 찾아 가는 이에게 마치 장사하듯이 국수값을 받는 다는 것이다.
불자들이 절을 찾아 가면 맨손으로 가지 않는다. 이 법당 저 법당 다니면서 참배하고 불전함에 돈을 넣기 때문에 국수값 이천원 이상은 시주 하게 된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국수 정도는 무료로 공양하는 것이 나을 듯 하다. 그럼에도 청계사에서는 꼬박꼬박 국수값 이천원을 받았다. 그러나 청계사에도 변화의 바람은 부는 것 같다. 교계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서울 근교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청계산에 위치한 청계사에서도 무료 사찰 공양을 접할 수 있다. 의왕 청계사(주지 성행스님)는 주말마다 소박한 비빔밥을 등산객들에게 제공한다. 특히 청계산이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지면서 청계사를 찾는 등산객의 수도 상당수다. 주말에는 보통 500명 이상이, 봄이나 가을과 같은 등산 시즌에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을 위해 청계사에서 제공하는 메뉴는 나물로 맛을 낸 비빔밥이다. 소박하지만 산행을 마치고 사찰을 찾은 등산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한 끼 식사 제공이 아닌 공공복지 성격 강하다”, 불교신문 2013-10-07)
불교신문 기사에 따르면 청계사에 무료로 공양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무료가 아니었다. 이전에는 국수 한 그릇에 이천원을 받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이 기사를 본다면 예전부터 무료로 공양을 하고 있는 줄 알 것이다.
청계사에서 무료로 점심공양을 제공하고 있다니 다행스런 일이다. 진작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다. 스스로 절로 찾아 간 이에게 점심 한 끼 제공하는 것은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그렇게 하지 않고 마치 영업 하듯이 돈을 받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오래 간만에 찾아 보니 변화가
삼막사는 십수년 전부터 즐겨 찾는 곳이다. 사시사철 찾다 보니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것쯤은 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래 간만에 찾다 보니 변화가 있었다. 가장 먼저 일주문이 새로 건립 되어 있었고, 천불전과 앞 마당에는 모두 돌이 깔아져 있어서 깔끔해 보였다.
삼막사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연등에 꼬리표를 달고 행사에 대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준비중에 있는 스님에게 반배의 예를 올리고 물어 보았다. 세월호 관련 플레카드가 왜 붙어 있지 않은지에 대해서이다. 그러나 몇일 전까지는 붙어 있었다고 하였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철거하였다고 한다. 왜 철거하였을까? 온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고 거리에는 애도하는 플레카드가 붙어 있는데 사찰에서 볼 수 없다니 매우 의아해 하였다.
안양팔경중의 하나
삼막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무엇일까? 무어니 무어니 해도 ‘남녀근석(男女根石)’일 것이다. 남근과 여근 형상의 바위를 말한다. 자연 암석으로서 남자와 여자의 성기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남녀근석이라 한다.
삼막사 남녀근석은 안양팔경중의 하나이다. 참고로 안양8경은 제1경 관악산 망해암 일몰, 제2경 삼막사 남녀근석, 제 3경 평촌 중앙공원, 제4경 삼막천 만안교, 제5경 수리산 최경환 성지, 제6경 안양 유원지, 제7경 병목안 삼림욕장 석탑, 제8경 안양 1번가이다.
이런 안양8경에 대하여 ‘안양 (安養) 8경은 억지 8경(2008-11-08)’이라고 비판글을 올린 바 있다. 여덟 가지에 맞추기 위하여 무리하게 끼워 넣기 식으로 선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8경 가운데 역사와 문화를 고려 할 때 망해암과 삼막사 두곳 뿐임을 강조한 바 있다.
안양8경에서 삼막사와 남녀근석이 선정 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삼막사는 불교문화와 민간신앙이 어우러져 있음을 말한다. 특히 남녀근석이 있는 칠성각이 접합장소라 볼 수 있다.
남근석은 어디로 갔을까?
남녀근석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러나 여근석만 있을 뿐 남근석이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찾아 보아도 남근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넓다란 바위만 있을 뿐 그 위에 솟아 있어야 할 남근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여근석은 그대로 있다. 그런데 여근석을 보니 옛날의 그 여근석이 아니다. 여근석 안에는 항상 물이 차 있었으나 지금 보는 여근석은 물이 말라 있고 더구나 잡초만 놓여 있을 뿐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미신행위를 한다고 하여 파괴해 버린 것은 아닐까라고. 만약 파괴하였다면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을 보아도 남근석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남근석이 있던 자리에 남근석이 제거 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여근석은 그대로 있는데 남근석이 보이지 않았다. 하도 이상해서 종무소에 가서 물어 보았다. 그러나 틀림없이 남근석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더 올라 가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여근석과 비슷한 또 하나의 여근석을 보고 착각하였던 것이다.
예전에 보았던 남녀근석이 그대로
남녀근석은 계단을 따라 죽 올라 가다 보면 나온다. 착각한 여근석은 ‘삼귀자’ 문양 바로 옆에 있었다. 오랜만에 와보니 착각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또 하나의 여근석을 발견하였다는 것은 수확이다.
계단을 따라 한참 가다 보니 예전에 보았던 남녀근석이 나왔다. 그대로 보전 되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성성기 모양을 한 남근석과 여성성기 모양을 한 여근석이 옛날 그대로 있었다.
동전으로 마찰한 흔적도
삼막사 남녀근석은 거리가 약 오륙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먼저 남근석을 보면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우뚝 솟아 있는 바위 형태가 남자의 성기를 닮았다고 해서 남근석이라 한다.
남근석을 좀 더 가까이서 보았다. 홈이 패인 사이로 동전이 붙어 있다. 그리고 동전으로 마찰한 흔적도 보인다.
왜 물이 마르지 않을까?
이번에는 여근석을 보았다. 남근석과 약 오륙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는 여근석은 여성의 성기모양이다. 커다란 바위의 중앙 부분이 움푹 패인 형상을 하고 있다.
여근석을 좀더 가까이서 보았다. 두 부분으로 갈라진 사이에 동전이 붙어 있다.그런데 갈라진 사이에 물이 고여 있다. 이 물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설에 따르면 물이 한번도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물이 솟아나는 것일까? 그런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누군가 물을 부어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항상 물이 고여 있고 마른 법이 없다.
성기숭배 사상
인터넷백과사전에 따르면 삼막사남녀근석은 성기신앙 중의 하나라 한다. 예부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바위를 숭배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기 숭배 사상은 “수렵 채집의 풍족과 풍농·풍어·다산과 무병 장수를 목적으로 하여 선사시대부터 행해져 왔으며, 고려·조선시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무속·풍수 신앙·동제·미륵 신앙 속에 어우러져 이어지고 있다”라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삼막사 남녀근석의 성기숭배사상은 불교가 들어 오기 이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677년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면서 이 바위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불교가 민간신앙을 포용한 것으로 본다.
칠성각에서 기도하면
남녀근석 바로 옆에는 칠성각이 있다. 주로 아이 낳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도장소라 한다. 그래서일까 전국각지에서 사람들이 찾는 명소라 한다.
제2의 여근석을 발견하고
삼막사는 불교와 민간신앙이 어우러진 곳이다. 그래서일까 안양팔경에 ‘삼막사 남녀근석’이라 하여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삼막사와 민간신앙을 대표하는 남녀근석이 함께 선정된 것이라 보여진다.
그런데 이번 삼막사 방문에서 우연하게 제2의 여근석을 발견하였다. 십수년간 삼막사를 즐겨 찾았으나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분명 여성의 성기모양을 한 바위이었다. 그러나 남성성기모양의 바위가 없었다.
여근석만 있고 남근석이 없어서일까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 같다. 그런데 우연히 여근석을 보고서 바로 옆에 남근석이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 파괴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남근석 자리를 아무리 보아도 파괴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렇게 본다면 삼막사에는 남녀성기 모양이 갖추어진 남녀근석이 있고, 여자의 성기모양만 있는 또 하나의 여근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2의 여근석은 왜 잊혀졌을까?
이번 삼막사 방문에서 제2여근석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렇다면 제2여근석은 이미 알려져 있는 것일까? 인터넷검색을 해 보았으나 그런 내용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삼막사에는 남녀한쌍의 근석이 있기도 하지만, 여근석만 있고 남근석은 없는 제2의 여근석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녀한쌍이 갖추어진 남녀근석은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근석만 있는 경우 방치 되어 있어서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그런 여근석이 있는 줄 조차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무심히 지나친다. 그러나 이번 삼막사 방문에서 우연히 제2 여근석을 발견하였다.
제1남근석
남근석 자리에 남근석이 있다.
제1여근석
물기가 항상 있다
제2남근석 자리
남근석 자리에 남근석이 없다.
제2여근석
물기가 없다
남녀가 함께 해야 자녀를 얻을 수 있다. 만약 남성만 있다거나 여성만 있는 경우 자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남녀근석의 경우 쌍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짝이 없는 제2 여근석은 버려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짝이 있는 여근석과 짝이 없는 여근석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물기라 볼 수 있다. 짝이 있는 여근석의 물기가 마르지 않는다. 누군가 계속 물을 넣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짝이 없는 여근석의 경우 잊혀져 있고 버려져 있어서 항상 메말라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남녀가 한쌍으로 이루어져야 자녀를 생산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연히 제2 여근석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남근석 없는 여근석은 의미가 없다. 단지 바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본다며 남녀가 쌍을 이루어야 세상이 성립됨을 알 수 있다. 짝이 없어서 잊혀지고 버려진 제2 여근석을 보면서 왜 여자에게는 남자가 있어야 하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해 주는 것 같다.
2014-05-0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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