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세월호 미공개 동영상

담마다사 이병욱 2014. 7. 18. 12:47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세월호 미공개 동영상

 

 

 

우루루쾅쾅하는 소리에

 

밤사이 천둥과 번개로 요란하였다. 번개가 칠 때 마다 번쩍 하며 순간적으로 세상이 환해 졌다가 조금 지나면 여지없이 우루루쾅쾅하는 소리가 났다. 장마라고는 하지만 마른장마라 하여 비가 오지 않았으나 지난 밤은 뇌전을 동반한 비가 제대로 왔다. 그러나 천둥소리가 너무 커서 잠이 깰 정도이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의 창이 부르르 떨 정도이었으니 죄를 짓고 산 사람들은 가슴이 뜨끔했을 것이다.

 

SBS 메인 뉴스에서

 

어제 저녁 SBS 메인 뉴스에서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장면을 보았다. 그것은 세월호유가족이 공개한 동영상이다. 현재 국회와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특별법제정을 위한 유족들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유족들이 이번에 처음 공개한 동영상에 따르면 한 아이가아 나, 살고 싶어 라고 울먹이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은, 지금 배가 기울었습니다라고 중개하듯이 말한다. 이어서 애들이 다 혼란한 상태구요” “여기 물이 다 찼어요  라고 말하면서 여기 보시면 지금 배가 기울었거든요” “지금 일자로 찍고 있는데 거의 60도 기울었어요라고 현장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60도가 기울어진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금 구조대가 오고 있대요라말한다. 하지만 이미 빠져 나갈 수 없음을 파악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한 아이가 소리친다. 그 목소리는 마치 세상을 원망하듯이 버럭 소리치며 다음과 같이 분노에 찬 목소리이다.

 

나는 살고싶습니다

 

SBS메인 뉴스에서 본 문제의 동영상을 검색하였다. 검색결과 동영상에서 학생의 처절한 절규의 말을 녹취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분노에 차 버럭 소리침)

나는 꿈이 있는데! (분노에 차 버럭 소리침)

나는! (분노에 차 버럭 소리침)

살고 싶은데! (분노에 차 버럭 소리침)

내가 진짜! (분노에 차 버럭 소리침)

 

이 썅

진짜 이거 욕도 나오고

나 울거 같은데!

나 진짜 이거 뉴스에 나오면

이 영상 보낼껍니다.

나 진짜 나 웁니다. (울먹임)

 

아 씨 나

개무섭습니다 지금

아 나 지금

이거 입고 있어요 지금

나 무섭다고! (분노에 차 버럭 소리침)

아니 구조대가 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냐구요

지금 구조대가 와도

300명을 어떻게 구합니까(울먹임)

승객 다 포함해서

1000명 될텐데

 

 

이거 어떻게 합니까 내가

아 씨 왓캔아이두

 

헬기가 이걸

어떻게 잡아 줍니까

해경이랑 어선이

오고 있답니다.

 

내가 왜 제주도를

오하마나호를!(분노에 차 버럭 소리침)  안타서

세월호를 타서

이런 진짜 욕도 나오는데

어른들한테 보여줄거라 욕도 못하고! (분노에 차 버럭 소리침)

 

진짜 무섭고

나는 지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이거 끈 꽉 묶었습니다 저는

 

나는 살고싶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아 나는 진짜 하고싶은게 많은데..(울먹임)

 

아 진짜 나 무서워요 지금

아 진짜 울거 같아요

 

나 어떻해요?(울먹임)

왓캔아이두

 

지금 이렇게 보면

굉장히 편안한 것 같죠?

씨바 니가 와봐요

 

! 진짜 여기까지, 종료 합니다.(체념한듯)

나 살고 싶습니다. ,

하나님 죄송합니다.

 

 

(출처: 세월 미공개 상 ' 꿈이 있는데.. 하필 세월호를 타서'

 

 

 

 

 

 

SBS메인 뉴스에서는 일부만 소리와 함께 보여 주었다. 이 대화는 인터넷검색으로 찾은 동영상에서 녹취한 것이다.

 

이 동영상을 촬영한 학생은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동영상은 4 16 9 10분경 단원고 2학년 6반 희생자 김동협학생의 미공개 동영상이다. 유족들이 국회에서 농성하는 과정에서 공개된 최초 동영상이다. 이 동영상을 보고 유족들은 오열하였고 일부는 실신하였다고 한다.

 

세상을 향한 외침

 

동영상으로 남겨진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마치 생중계 하듯이 절망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자신에게 점차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가는 것이 너무 억울 한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하다. 특히 나는 꿈이 있는데!” “살고 싶은데!”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분노에 가득 차 버럭 소리 지르고 있다.

 

영상속의 목소리는 돌아 오지 않았다. 다만 세상에 대하여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을 뿐이다. 자신은 죽고 싶지 않은데 죽어 가야만 하는 것이 억울한 심정을 말한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세상의 모순과 위선과 거짓에 대하여 절망적 상황에서의 외침이다.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산 자들은 언젠가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지금 시퍼렇게 살아 있다고 할지라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사람들의 운명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숫따니빠따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Animittamanaññāta

maccāna idha jīvita,
Kasirañca parittañca

tañca dukkhena saññāta.

 

세상에서 결국 죽어야만 하는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애처럽고 짧아

고통으로 엉켜있습니다. (stn574)

 

 

경에서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다라 하였다. 여기서 목숨이 정해져 있지 않다(animittam)’라 하였다. 주석에 따르면 행해야 할 일이 이루어진 특징이 없이(Prj.II.457)”라 되어 있다. 이를 좀더 쉽게 말하면 업의 대가를 치를 때까지는 죽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라고 각주 하였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경우에서든지 살아 남는 자가 있다. 아무리 악조건하에서도 살 사람은 산다고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은 기대수명대로 산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살다 보면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조심하여 방어운전 또는 예측운전한다고 하여도 뒤에서 받아 버리면 사고가 나듯이 이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은 무수한 삶의 변수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삶이란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남이 나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것이 미래의 일이다. 특히 나의 안전을 남에게 맡겼을 때 나의 삶을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남의 안전을 책임 져 줄 수 있지만, 남이 나의 안전을 결코 책임져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착해서 남의 일을 내일처럼 보아 줄 수 있지만, 나의 몸을 다른 사람에 의지하였을 때 나의 몸은 전적으로 상대방 하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탓을 때 나의 목숨은 이미 나의 목숨이 아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비행사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범위를 더 확장한다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데 있어서 비행기를 정비하는 정비사 또는 공항의 관제탑에서 일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운명이 결정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나의 몸을 차량이나 비행기나 기차, 또는 선박에 맡겼을 때 이미 나의 목숨이 아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숫따니빠따에서 세상에서 결국 죽어야만 하는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Animittamanaññāta maccāna idha jīvita, stn574)”라고 한 것에 공감한다.

 

바다에 뛰어 든 자들은

 

세월호에서 산 자들도 있다. 바다에 뛰어 들어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을 말한다. 세월호 일반승객 중에 해병대출신이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순간적으로 죽음을 직감하였다고 하였다. 방송에서 아무리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방송을 하였지만 죽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기 때문에 바다에 뛰어 들었다고 하였다. 이렇게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바다에 뛰어 든 것은 죽음을 직감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다에 뛰어 들어 목숨을 구한 생존자 중에는 단원고 학생도 여럿 있다.

 

친구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국회로 향하였다. 안산에서 국회까지 행진을 한 것이다. 거리로는 40키로 미터라 한다. 이렇게 백리길을 도보로 1 2일에 걸쳐서 행진 하였다. 이 과정에 대하여 오마이뉴스사이트를 통하여 생중계로 보았다.

 

 

 

 

생존학생들은 국회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그 먼길을 도보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한가지라 한다. 친구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행진 중에는 시민들도 따라 붙었다. 어느 시민은 배모양의 노랑모자를 쓰고 있다. 그 차림새가 특이해서 기자가 물어 본다. 그러자 참가자는 십년이든 백년이든 진상이 밝혀 질 때까지 알리겠다고 하였다.

 

 

 

 

생존학생들이 마침내 국회앞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 학생들의 뒤를 따르는 시민들이 6백명 가량 되었다. 학생들이 유족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는 끝이 났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곧바로 버스로 안산을 향해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잠시후 유족대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족대표는 기자의 질문에 학생들이 고맙고 기특하고 장하고..”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 애는 왜 여기 없지?”라고 아쉬움을 표현 하였다.

 

 

 

 

나는 꿈이 있는데!”

 

동영상에서 죽음이 임박한 학생은 음성을 남겼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외침이다. 그래서 나는 꿈이 있는데!” “살고 싶은데!”라고 절규하듯이 말한다. 그리고 아 진짜 나 무서워요” “왓캔아이두(What can I do?)”라고 죽음의 공포에 질려 울먹인다. 이런 장면을 보았을 때 누구나 자신의 마지막 임종장면은 어떤 것일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런 죽음은 기대수명대로 90세 가까이에나 오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알아차림을

 

부처님은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사람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반드시 기대수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그런 죽음이 10년후 가 될지, 1년 후가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수 많은 사건과 사고를 접한다. 뉴스로 접하는 사건과 사고를 보면 내일의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올지 아니면 다음생이 시작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Maraa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sā amatogadhā amatapariyosānā. Bhāvetha no tumhe bhikkhave maraasatinti?

 

[세존]

수행승들이여, 죽음에 대한 새김을 닦고 익히면 불사에 뛰어들고 불사를 궁극으로 하는 커다란 과보와 커다란 공덕을 얻는다. 그대들은 죽음에 대한 새김을 하여라.”

 

(Pahama maraasati sutta-죽음에 대한 새김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6.19,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죽음에 대한 새김을 하여라(maraasati)”라 하였다. 이는 죽음에 대한 알아차림을 말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한다면 죽음에 대한 명상이라 볼 수 있다. 부처님이 이렇게 항상 죽음에 대하여 알아차림을 유지하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숨쉬는 동안이라도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부처님은 죽음에 대하여 사띠할 것을 말한 것은 죽음이 언제 닥칠지 알 수 없기때문이다. 범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죽음은 나와 무관한 것으로 먼 훗날 늙어병들어 죽는 것으로 알 수 있으나 제자들은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다는 것쯤은 알 고 있다. 그래서 어느 수행승은 하루 밤과 낮 동안 살더라도 죽음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가면 갈수로 짧아져서 어느 수행승은 하루 낮이라 하였다. 이렇게 짧아 지다 보니 한끼 탁발음식을 먹는 동안, 네 다섯 모금을 씹어 삼키는 동안 죽음에 대한 알아차림을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수행승은 내가 숨을 내쉬고 들이 쉬는 동안만 살더라도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삶이라는 것은 한 마음이 일어 났다 사라지는 순간윤회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숨쉬는 동안 죽음을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수행승들이여, 이 수행승은 죽음에 대한 새김을 이와 같이 내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동안만 살더라도 세존의 가르침에 정신활동을 기울이면, 나는 많은 것을 이룬 것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Pahama maraasati sutta-죽음에 대한 새김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6.19,전재성님역)

 

 

사람이 30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10년을 살지 알 수 없다. 그런데 호흡하는 동안만 사는 것으로 간주 하자고 하였다. 지금 이 순간을 말한다. 지금 이 순간만 지나면 다음 생이 시작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삶의 태도가 바뀔 것이다.

 

하루 단위로 이루어지는 삶

 

대게 삶은 하루 단위로 이루어진다. 아침에 눈이 떠져서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태어남으로 본다면, 하루일과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죽음과 같은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은 하루윤회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루를 일생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하루윤회에 대한 뉘앙스의 가르침이 초기경에도 있다는 것이다. 먼저 부처님은 이 밤이 지나고 난 다음에 벌어질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날이 저물고 밤이 오면 이와 같이 ‘나에게 죽음의 조건은 많다. 뱀이 나를 물거나, 전갈이 나를 물거나, 지네가 나를 물면, 그 때문에 나는 죽을 것이고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것이다.

 

나는 걸려 넘어져서 떨어지거나, 점액이 나를 막히게 하거나, 날카로운 바람이 나를 괴롭히면, 그 때문에 나는 죽을 것이고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것이다.’라고 성찰한다.

 

(Dutiya maraasati sutta -죽음에 대한 새김의 경 2, 앙굿따라니까야 A6:20,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수 많은 죽음의 조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는 범부들이 생각하는 기대수명과는 다른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 날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뱀, 전갈, 지네 등을 죽음의 조건이라 하였다. 또 걸려 넘어지거나 점액등이 막혀서, 그리고 바람 등으로 죽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죽음의 위험이 도처에 널려 있음을 말한다. 설령 내가 아무리 조심하고 위험을 미리 피해 간디고 할지라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뱀 등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나열하였는데 이런 위험은 몰리야씨바까의 경(S36.21)’에서 여덟 가지 죽음의 요인과도 일치한다.

 

몰리야씨바까의 경(S36.21)에서

 

몰리야씨바까의 경에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하여 1) 담즙(Pitta), 2) 점액(Semha), 3) 바람(Vāta), 4) 체질(Sannipātikāni), 5) 계절의 변화(Sannipātikāni), 6) 불운한 사건(Visamaparihārajāni), 7) 우연한 피습(Opakkamikāni), 8) 업보의 성숙(Kammavipākajāni) 때문이라 하였다.

 

이 중 불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여덟 번째의 업보의 성숙(8)’이다. 그러나 업보의 성숙 외에 수 많은 죽음의 요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잠을 자다 뱀에 물려서 죽었다고 하였을 때 이를 어느 범주에 속할까? 아마도 우연한 피습(7)’의 범주에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걸려 넘어져서 떨어져서 죽었다고 하였을 때 불운한 사건(6)에 해당될 것이고, ‘점액이 나를 막히게하여 죽었다면 이는 2번 항 점액이 해당될 것이고, 날카로운 바람이 나를 괴롭혀 죽었다면 3번 항 바람에 해당 될 것이다. 이렇게 죽음의 위험은 도처에 깔려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행위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여덟 가지 항목에 공통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탕에 자신의 행위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뱀에게 물렸을 경우 우연한 피습(7)으로 볼 수 있지만 하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도 개입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우연의 피습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은 선박에 자신의 운명이 내 맡겨져 있었고 사고가 난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얽히고 설켜서 침몰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쨌든 그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사실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행위에 따른 것이다.

 

세월호희행자들은 억울하게 당했다. 그것은 움직이지말고 꼼짝말고 기다려라는 방송멘트 때문이다. 이에 순응한 사람들은 대부분 희생 되었고, 그럼에도 죽음을 직감하여 멘트를 무시하고 바다에 뛰어 든 사람들은 살아 남았다. 이런 것 역시 자신의 행위에 따른다.

 

이렇게 본다면 숫따니빠딴에서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다라 한 것에 대한 각주에서 업의 대가를 치를 때까지는 죽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라 하였는데, 이는 행위에 대한 과보가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우연의 피습이나 불운한 사건 등으로 죽음의 요인이 있다고 하지만 그 바탕에는 본인의 행위(kamma)가 소극적이나마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현재의 결과는 이전에 자신의 행위(kamma, )’가 개입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늘 죽음과 함께 있는 삶에서

 

부처님은 날이 저물고 밤이 오면 죽음의 조건이 많다고 하였다. 그 조건으로서 뱀, 전갈, 담즙, 바람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움직이는 모든 곳에 죽음의 조건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과 같다.

 

승용차, 버스, 기차, 선박, 비행기 등 탈것을 포함하여 도둑이나 강도를 만나서 죽을 수도 있고, 삭은 간판이 떨어져서 즉사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하루 밤도 긴 것이다. 지금 호흡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죽음이 엄습할 수 있다.

 

이렇게 늘 죽음과 함께 있는 삶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Tena bhikkhave bhikkhunā iti paisañcikkhitabba: "atthi nu kho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ratti kāla karontassa antarāyāyā"ti. Sace bhikkhave bhikkhu paccavekkhamāno eva jānāti: "atthi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ratti kālakarontassa antarāyāyā"ti, tena bhikkhave bhikkhunā tesayeva pāpakāna akusalāna dhammāna pahānāya adhimatto chando ca vāyāmo ca ussāho ca ussohi ca appaivāni ca sati ca sampajaññañca karaiyyāva.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이와 같이 나는 밤에 나에게 죽음을 초래하고 나에게 장애가 되는 악하고 불건전한 원리를 버리지 못했는가?’라고 성찰해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성찰하면서 이와 같이 나는 밤에 나에게 죽음을 초래하고 나에게 장애가 되는 악하고 불건전한 원리를 버리지 못했다.’라고 안다면,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악하고 불건전한 원리를 버리기 위해 극도로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하고 정근하고 불퇴전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려야 한다,”

 

(Dutiya maraasati sutta -죽음에 대한 새김의 경 2, 앙굿따라니까야 A6:20, 전재성님역)

 

 

경에서 악하고 불건전한 원리라는 말이 있다. 이는 ‘pāpakā akusalā dhammā를 말한다. 초불연에서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이라 번역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비담마에 따르면 탐욕, 성냄, 질투, 후회 등과 같은 14가지 해로운 마음부수(akusala-cetasika)’를 말한다.

 

경에 따르면 죽음의 순간이 와도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이 일어 나지 않게 하여야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임종 직전에 나무아미타불정근을 열번하면 아미타부처님의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는데, 평소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평소에 습관이 들어 있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임종순간에 악하고 불건전한 것에 휘둘릴지 모른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에 대하여 수습(修習)’이라 하였다. 평소 습관들이는 것이 수행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평소 열심히 수행해야 힘을 말씀 하셨다. 예를 들어 옷이나 머리가 불붙은듯 수행하라고 하였다. 지금 머리에 불이 붙었다면 먼저 끄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 극도로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하고 정근하고 불퇴전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라고 하였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남긴 학생은 말미에 하나님 죄송합니다라 하였다. 교회에 다니는 학생인 것 같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꼭 살아 남아 하고 싶었던 것을 하려 하였으나 죽음을 받아 들이면서 자신의 신에게 죄송하다고 한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신을 원망하기 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 들이는 것 같다. 이전까지만 해도 구조 가능성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였겠지만 막상 더 이상 구조 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의 신을 원망하기 보다 의지하였다고 볼 수 있다.

 

어른 들의 말만 믿은 결과

 

학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육성을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나는 살고싶습니다라 하였고, 울먹이면서 아 나는 진짜 하고 싶은게 많은데..”라 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른들한테 보여줄거라 욕도 못하고!”라며 버럭 분노함으로 어른 들에 대한 불만도 표출하였다. 이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합니다라는 말만 믿은 것에 대한 분노로도 보인다.

 

세월호희생자들은 안내방송을 곧이 곧대로 믿다가 당했다. “움직이지 말라  기다려라라는 말을 믿은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직감한 사람들은 모두 바다에 뛰어 들었다.

 

정부에서는 아직도 기다려 달라라 하는데

 

그런데 정부에서는 아직도 기다려 달라라고 말한다. 세월호 유족들이 특별법을 만들어 도대체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밝혀 달라고 하는데 여전히 기다려달라는 식이다. 이유는 수사권이다. 공무원 조직이 아닌 곳에 수사권을 준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족들은 단식농성에 들어가 있고 경찰과 대치 중에 있다.

 

세월호사건은 아직까지 밝혀진 것이 별로 없다. 유병언은 잡는지 안잡는지 알 수 없다. 유족들이 진상을 밝혀 달라며 농성을 하고 단식을 해도 정부에서는 요지 부동이다. 더구나 생존학생들이 친구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 달라고 하여 백리길를 걸어 왔지만 정부에서는 오로지 기다려달라라는 식의 말만 되풀이 한다.

 

“4 16일을 국민안전기념일로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 세월호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죽었다. 그토록 살고자 하였으나 어른들의 말만 믿고 기다리다 죽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유족들은 잘 아는 것 같다. 더 이상 기다리리라는 말에 속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화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기다려라라는 무책임한 말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족족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보상이 아닙니다.

4 16일을 국민안전기념일로 선포하여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화 하는 것입니다.”

 

 

 

2014-07-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