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마하보디사원 땅밟기는 테러, 왜 기독교인들은 무례할까?

담마다사 이병욱 2014. 7. 9. 12:05

 

마하보디사원 땅밟기는 테러, 왜 기독교인들은 무례할까?

 

 

 

불교성지에서

 

아침에 컴퓨터 앞에 앉으면 늘 가는 곳이 있다. 즐겨찾기로 해 놓은 곳이다. 그런데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서 충격적인 동영상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개신교인 땅밝기파문 인도사원에서 찬송가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릭하여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땅밝기라는 말 때문이다.

 

기사를 보니 더욱 더 충격적인 것인 인도의 불교성지에서의 일이다. 그것도 사대성지 중의 하나라 불리우는 마하보디사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부처님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장소에서 기독교인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간증하듯이 울부짓는 듯한 모습이다.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동영상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기독교, 마하보디대탑 앞에서 송가

 

 

 

1분 가량의 이 동영상은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기타를 치며 찬송가그 사랑 얼마나를 함께 부르거나 큰 목소리로 기독교식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기사에 따르면 법보신문에서 최초로 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인도 스님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

 

법보신문에 들어가 보았다. 톱으로 올려져 있는 기사의 제목은 한국기독인들, 마하보디대탑서찬송가경악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7 4일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동영상은 어떻게 촬영 되었을까? 법보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법수 스님은 다음날 본지에 이 같은 소식과 함께 기독교인들이 마하보디사원 경내에서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동영상을 보내왔다. 이 동영상은 마하보디사원을 관리하는 인도 스님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이다. 마하보디사원에서는 2013 6월 폭탄테러 발생 후 휴대폰 등을 소지하고 입장할 수 없다.

 

(한국기독인들, 마하보디대탑서 ‘찬송가’ 경악, 법보신문, 2014-07-07)

 

 

 

 

기사에 따르면 마하보디사원을 관리하는 인도스님이 촬영한 것이라 한다. 이를 마하보디사원에서 정진중에 있는 법수스님이 입수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3일만이다.

 

법수스님이 이를 발견하고

 

법수스님은 이 광경을 처음부터 목격하였다고 한다. 운문사승가대학 출신인 법수스님은 마하보디사원에서 11111배 네 번째 정진을 회향하고 다섯 번째 입재를 위해 정진 중이었는데 마침 선교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이를 묵과 할 수 없어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성지에서 어떻게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할 수 있느냐며 즉각 중단할 것과 마하보디사원에서 퇴장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이다등의 말을 하며 오히려 자신들의 선교행위를 정당화 하였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이런 선교행위가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마하보디사원은 성지순례를 위해 방문한 태국과 스리랑카, 티베트, 일본 출신의 스님과 재가불자들로 붐볐다.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처음 보는 이 같은 광경을 호기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성지순례를 온 불교국가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촬영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13 6월 이슬람 무장단체의 폭탄테러 영향으로 휴대폰 소지가 허용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개 버릇 남 못 준다는데

 

우리 속담에 개 버릇 남 못 준다라는 말이 있다. 원래 이말은 제 버릇 개못준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쁜버릇은 좀처럼 고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개신교의 공격적 선교행태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봉은사땅밟기사건일 것이다.

 

봉은사땅밟기 사건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무엇이길래, 봉은사 땅밝기 동영상(2010-10-26)’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봉은사땅밟기 사건이 일어난 지 4년 만에 다시 해외에서 땅밟기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불교인들의 최대성지 심장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개 버릇 남 못 준다라는 우리속담이 다시 한번 틀림이 없음을 확인한다.

 

기독교인들의 집요함

 

봉은사땅밝기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4년 전이다. 그런데 확인 해 보니 동영상이 사라졌다. 설명문을 보니 해당 동영상은 tv팟 운영원칙에 의해 비공개 처리 되었습니다라는 메세지가 남겨져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항의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4년 만에 올린 글에서 동영상이 사라진 것을 보니 기독교인들의 집요함을 느낀다.

 

봉은사땅밟기는?

 

봉은사땅밟기는 어떤 내용일까?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찬양인도자학교-봉은사만행기.flv

 

 

 

봉은사땅밟기는 6분 가량으로 정지화면을 유사동영상으로 처리 한 것이다. 찬송가와 함께 봉은사 경내에서 자신의 땅임을 선포하는 수 많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법당에 들어 가서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가 하면 법당 기둥에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있다.

 

 

 

 

 

이 땅이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동영상 첫 머리에는 어느 기독교인의 음성이 소개 되어 있다. 바로 이말이 땅밟가를 하는 이유라 보여진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사실 저는 지방에 살아서 이렇게 도심에 이렇게 큰 절이 있을 것이라고는 사실 생각도 못했고 와서 너무나 놀랬는데 정말 하나님의 나라이고 이 땅이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분명 이땅은 정말로 하나님께 회복될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만이 승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아멘.”

 

(땅밟기 기독교인 OOO)

 

 

 

 

6분 짜리 동영상은 기독교인이 봉은사를 하나님의 땅이라고 선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된다. 그래서 이 땅이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이렇게 강남의 요지에 있는 천년고찰 봉은사는 기독교인들의 수중에 들어 갔다. 이는 기독교인들의 영토확장 방식이라 볼 수 있다. 해당 사찰에 가서 자신들의 땅. 하나님의 땅이라고 선포하면 자신들의 것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무례함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그런데 동영상을 보면 매우 무례함을 알 수 있다. 불자들이 불공을 올리고 있는 법당에 들어가서 자신들 마음대로 하나님의 땅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기독인들은 무례할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해서 일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사람들, 설령 불자일지라도 그들의 눈에는 모두 선교의 대상이고 개종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불쑥 예수믿고 복받으세요라고 하는 것이 조금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런 행위는 길거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에서 기타치며 집단으로 노래하고 율동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 축구장에서는 골세레모니로 나타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런 행위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경기도중의 기도세레모니

FIFA에서 경기중에 기도 세레모니에 대한 자제를 요청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공격적인 전도 활동에 국민들은 불편해 한다. 특히 불교도들은 매우 불쾌 하게 여긴다.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 밑바탕에 기독교우월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자신들의 종교는 문명의 종교이고 다른 종교는 미신행위나 하는 우상숭배의 종교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직 기독교를 믿지 않은 사람들을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구원해야 할 의무로 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라 한다. 이처럼 지옥에 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지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길거리에서, 전철안에서, 축구장에서 무례한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심지어 불교의 법당에서 땅밟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교의 심장부나 다름 없는 불교사대성지 중의 하나인 마하보디사원에서 땅밟기를 하였다. 기독교인들의 무례함이 절정에 달한 것이다. 

 

 

한국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도

 

2010년 이후 땅밟기라는 말이 크게 회자 되었다. 그런데 종종 땅밟기에 대한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이는 유튜브에서 땅밟기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수 많은 동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땅밟기에 한국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모양이다. 빨간 십자가 마킹과 예수 믿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노랑조끼를 입은 기독교인이 조계사 경내에 들어와 있고 휘젓고 다니는 장면이다. 이른바 조계사 땅밟기이다.

 

 

 

방콕사원 앞에서 워십(땅밟기)

 

땅밟기는 국내사찰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전국 유명사찰에 몰래 들어 가서 하나님의 땅임을 선포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선포 되면 모두 하나님의 영역이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버릇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해외에서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본 2012년 방콕사원 땅밟기가 그것이다.

 

 

7월31 방콕 사역(워쉽, 땅밟기)

 

 

 

노랑티를 입은 젊은이들이 단체로 음악과 함께 단체로 율동을 하고 있다. 왜 이들은 머나먼 타국에서, 그것도 불교사원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을까? 그래서 방콕사원 땅밟기를 키워드로 검색하여 보았다. 그러자 왕궁과 사원등을 땅 밟기하고 돌아 다녔습니다라는 일기형식의 글을 발견하였다. 들어가 보니 글은 삭제 되어 있다. 다만 검색창에 몇 줄 나와 있을 뿐이다.

 

 

 

 

 

차원을 달리하는 미얀마땅밟기

 

해외땅밟기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아마 미얀마땅밟기일 것이다. 이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없고 다음팟에 올려져 있다. 그런데 이 미얀마땅밟기 동영상은 이제까지 보았던 것과 차원을 달리 한다. 문제의 동영상을 보면 다음과 같다.

 

 

 

 

미얀마 법당에서 기독교 예배를? 미얀마 땅밟기 논란

 

 

 

검색에 따르면 미얀마땅밟기는 2010년에 일어난 일이다. 이 동영상은 세상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미얀마 불교사원 법당에 들어가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란 듯이 큰소리로 소리 높이 불렀다. 마치 남의 집 안방에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가 놀이판을 벌인 것과 하등의 다를 바 없다.

 

미얀마 스님의 망연자실한 모습

 

미얀마땅밟기에 대하여 프레시안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4 11초 분량의 이 영상은 지난 7 12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처음 공개됐으며, '미얀마 의료 선교 보고'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동영상에는 선교사를 포함한 개신교인 10여 명이 찬송을 부르고, 이를 신기하게 여긴 버마의 아이들이 이를 구경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동영상 중간 즈음에는 사찰의 한 승려가 한국인들 곁에서 당황스러운 듯 조용히 차를 마시는 장면도 나온다.

 

(봉은사 이어 동화사, '버마 법당 땅밟기'까지…도 넘은 개신교도, 프레시안, 2010-10-27)

 

 

 

 

 

 

개신교도의 도 넘은 선교행위를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개신교를 믿지 않은 국민은 불교도이건 아니건 모두 선교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버릇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전국민의 90%이상이 불교신자인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그것도 사원심장부에서 기타치며 찬송가를 불러 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미얀마 스님이 이들의 행위를 망연자실 한 듯한 모습으로 자지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처음 당해 본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라 보여진다.

 

 

 

 

 

 

사원 땅밟기는 테러나 다름 없다

 

법당안에서 땅밟기를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일까? 더구나 불교도에게 성스럽게 여기는 법당에서 기타치며 단체로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불렀다면 누가 보아도 비난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프레시안 기사에서는 이젠 '버마 땅밟기'까지? 사원 테러나 다름없다라는 소제목까지 붙였다. 땅밝기는 테러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미얀마땅밟기 동영상이 알려진 후 양식있는 기독교인들은 이를 부끄러운 행위라 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을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프레시안 기사에 따르면 언론회보도를 인용하여 종교 간의 진리 차이가 종교 간의 다툼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신들의 확신을 타인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라 하였고, “더구나 침략주의적이고 정복주의적인 태도는 폭력이라고 규정한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기독교인들의 불교사원에 대한 땅밟기는 테러임에 틀림 없다. 폭탄만 들지 않았을 뿐 법당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 하는 것은 곧 또한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다. 이런 선전포고에 대하여 불자들은 어떻게 대처 해야 할까?

 

작은 소리로 해 주세요

 

몇 일 전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식당안은 한산하였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기독교인 두 명이 밥을 먹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도가 꽤 길었다는 것이다. 대게 기독교인들은 짧게 기도하고 먹는 것이 보통이다. 천주교인들은 성호 한번 긋는 것으로 끝낸다. 불자들은 거의 기도가 없다. 그럼에도 두 명의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매우 오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마디 해 주었다. 남의 종교행위에 개입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긴 하지만 작은 소리로 해 주세요라고 요청하였다. 사실 두 사람의 기도소리는 두 여러 테이블 건너편에서도 들렸기 때문이다.

 

이날 따라 이렇게 행동을 하게 된 것은 그 날의 감정도 작용하였겠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고교시절 3년간 미션스쿨에서 기도에 대한 끔찍한 경험 때문이라 본다. 아마 이런 것도 요즘 흔히 쓰는 말인 트라우마라 할 것이다.

 

트라우마의 사전적 정의는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미션스쿨에서 고교시절 3년 동안 겪은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이 은연 중에 작용한 것이라 보여진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길게 기도하고 있는 기독교인에게 작은 소리로 기도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불자들의 피해의식

 

불자들은 피해의식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피해의식이다. 계속 당하고만 살아 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땅밟기와 같은 사건을 대할 때 불자들의 가슴은 무너진다. 그렇다고 평화의 종교인 불교에서 기독교인처럼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기독교인들이 법당안에 들어와 행패 부리듯이 하나님의 영토라고선포하여도 일부 기독교인들의 미치광이 짓이겠거니 하며 넘어 간다. 그러나 결코 그들은 일부가 아니다. 사실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땅밟기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날까?

 

그는 욕하고 나를 때렸다

 

기독교인들은 끊임 없이 도발하고 있다. 남의 집에 들어가서 행패 부리듯이 허락도 없이 법당에 들어가 기타 치며 노래한다. 이런 행위는 명백한 테러이고 불교에 대한 선전포고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런 행위에 대하여  눈에는 눈, 귀에는 귀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떻게 말씀 하셨을까? 법구경의 한 구절을 들 수 있다.

 

 

“Akkocchi ma avadhi ma        악꼿치 망 아와디 망

ajini ma ahāsi me,             아지니 망 아하시 메
Ye ta
upanayhanti                예 땅 우빠나이한띠

vera tesa na sammati.           웨랑 떼상 나 삼마띠

 

‘그는 나를 욕하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키고, 나의 것을 약탈했다’라고

사람들이 이러한 적의를 품는다면

그들에게 원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dhp3)

 

 

“Akkocchi ma avadhi ma       악꼿치 망 아와디 망

ajini ma ahāsi me”,            아지니 망 아하시 메
Ye ta
na upanayhanti            예 땅 나 우빠나이한띠

vera tesūpasammati.             웨랑 떼수빠삼마띠

 

‘그는 나를 욕하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키고, 나의 것을 약탈했다’라고

사람들이 이러한 적의를 품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원한은 사라진다. (dhp4)

 

 

Na hi verena verāni              나 히 웨레나 웨라니

sammantīdha kudācana,           삼만띠다 꾸다짜낭
Averena ca sammanti,            
아웨레나 짜 삼만띠

esa dhammo sanantano.            에사 담모 사난따노

 

결코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원한의 여윔으로 그치나니

이것은 오래된 진리이다.(dhp5)

 

 

Pare ca na vijānanti             빠레 짜 나 위자난띠

mayam-ettha yamāmase,            마얌 엣타 야마마세
Ye ca tattha vij
ānanti           예 짜 땃타 위자난띠

tato sammanti medhagā.           따또 삼만띠 메다가

 

우리가 여기서 자제해야 한다.’라고

다른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니

이러한 것을 자각하면

그 때문에 다툼이 그친다. (dhp6)

 

 

 

 

2014-07-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