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무상한 것 가운데 항상함을 보면서, 마음의 고향 동국대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4. 8. 10. 10:09

 

 

무상한 것 가운데 항상함을 보면서, 마음의 고향 동국대에서

  

 

 

대한민국 수도의 심장부에서

 

아주 특별한 여행을 하였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휴가를 보냈다. 비록 당일치기에 지난 것이지만 대한민국 수도의 심장부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런 여행의 테마를 무상과 무아와 괴로움으로 잡아 보았다. 원래 순서가 무상--무아이지만, 이렇게 바꾸어 말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동국대와의 인연

 

특별한 여행의 시작은 동국대에서부터 시작 하였다. 동국대를 시작으로 하여 남산에 올랐다가 광화문으로 향하는 일정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 동국대를 또 다시 몇 년 만에 와 보았다.

 

동국대와의 인연은 꽤 깊다. 중학교 다닐 때 자주 왔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 동국체전이라 하여 동국학원의 산하 학교들의 학생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체육대회 마지막날에 제등행렬이 있었다. 그 날은 다름 아닌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동국대운동장에서

 

동국체전이 열릴 때 쯤이면 일주일 전부터 예행연습을 하였다. 장소는 동국대운동장이었다. 남산 기슭에 스탠드가 반만 있는 운동장이다. 그 한쪽 켠에 전교생이 모여 카드섹션과 응원 연습을 한 것이다. 그 때가 중학교 1학년때이다.

 

그 이후로 이런 연습이 있었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는다.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1학년 봄에 오전 수업이 끝나면 동국대 운동장으로 이동하여 그 날의 행사를 위하여 연습에 연습에 거듭하였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동원된 것이나 다름 없지만 힘들게 연습하고 그 감격을 맛 보아서일까 마치 엇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운동장을 세월이 지난 후 바라 보고 있다.

 

 

 

 

백상(白象)의 변화를 보며

 

동국대에 가면 늘 확인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동국체전이 열렸던 대운동장과 백상(白象), 그리고 본관 앞에 있는 여래입상과 정각원이다. 이 네 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기 때문에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 변화가 있는 듯 하다. 백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운동장 입구에 마치 아쇼카석주처럼 꼭대기에 하얀 꼬끼리가 있었으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없어진 것이 아니다. 정각원 올라 가는 계단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세월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백상은 언제 제작되었을까?

 

백상은 분명히 이동되어 있다. 그러나 옛날처럼 기둥 위에 있는 모습이 더 나아 보인다. 그런 백상은 언제 제작 되었을까? 안내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석판에 새겨져 있다.

 

 

사자여 그 사나움 여기 멈추고

범이여 이 그늘에 고개 숙여라.

흰 코끼리 가장 크고 어진 힘으로

끝 없는 과거의 빛을 여기 모아 와

미래 영원 이끌려 일어 섯나니....

 

불기 2515 5 8

지은이 미당 서정주

쓴 이 청담 김동익

 

 

불기2515년이년 언제쯤일까? 올해가 불기 2558년이니 불기2515년은 1971년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학교 1학년 당시가 1973년도이니 그 때 당시 본 백상은 만들어진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듯 세 마리의 코끼리가

 

동국대상징은 코끼리인 모양이다. 코끼리상은 백상뿐만 아니라 본관 앞에도 있기 때문이다. 세마리의 코끼리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넘친다. 이 코끼리 상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안내판을 보니 2001년도 작품이다.

 

 

 

 

 

불교의 상징동물은 무엇일까?

 

불교의 상징동물은 무엇일까? 여러 상징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사자를 들 수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을 코끼리, 황소, 사자로 묘사한 장면이 많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동물이 사자이다. 이는 사자의 경(Sīha sutta, S22.78)에서도 알 수 있다.

 

짐승의 왕인 사자가 포효하면 동굴에 사는 자는 동굴에 들어 가고, 물에 사는 자는 물로 들어 가고, 새들은 허공으로 날아 오른다. 그런데 부처님이 무상의 가르침을 펼칠 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천신들이 설법을 듣고 두려움전율감동에 빠진 다고 하였다. 이렇게 보았을 때 불교의 상징동물은 사자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아쇼카석주에도 사자가 조성 되어 있다.

 

 

Asoka's Pillar(Vaishali, Bihar, INDIA)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부처님을 사자로 비유한 노래도 있다. 나라시하가타가 그것이다. 모두 9개로 이루어져 있는 게송에는 부처님의 고결한 덕성과 신체적 특징에 대하여 사자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 한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Vaṭṭasumaṭṭasusaṇṭhitagīvo,        왓따수맛따수산티따기워

sīhahanū migarājasarīro,         시하하누 미가라자사리로

kañcanasucchavi-uttamavaṇṇo,     깐짜나숫차위 웃따마완노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잘 생긴 목은 둥글고 부드러우며, 턱은 사자와 같고,

몸은 짐승의 왕과 같고, 훌륭한 피부는 승묘한 황금색이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Narasīhagāthā-인간사자의 노래 6번 게송, 전재성님역)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고 난 후 6년이 지난 후 카필라성을 방문하였다. 부처님은 궁전에 들어 가지 않고 제자들과 탁발하였는데 이런 장면을 발코니에서 야소다라왕비가 지켜 보면서 일곱살 된 아들 라훌라에게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과 고결한 덕성에 대하여 설명하는 장면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과 불교의 상징은 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코끼리나 황소를 상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쇼카석주에도 사자가 있어서 마치 사자후가 연상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사자를 테마로 한 상징을 보지 못하였다.

 

동국대학교 법당 정각원(正覺院)

 

국내에는 불교를 건학이념으로 설립된 대학이 몇 개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종합대학교로서는 동국대학교가 가장 역사가 깊다. 그래서 건학이념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정각원이라 볼 수 있다.

 

정각원은 동국대학교 법당이다. 중학교시절에도 정각원을 보았다. 그것은 특이 하였기 때문이다. 모두 현대식 건물인데 유독 전통양식의 건물이 보였다. 그것도 한자로 正覺院(정각원)’이라 표기 되어 있었다. 현재 위치에 있는 그 자리에 있었다.

 

 

 

 

주변환경은 자꾸 바뀌어도 정각원 건물 만큼은 옛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안내판을 보니 정각원은 옛 궁궐의 정전 이었던 것이다.

 

경희궁의 승정전이었다는데

 

안내문에 따르면 정각원 건물은 원래 경희궁의 승정전이었다고 한다. 왕이 정사를 보던 장소이다. 광해군당시(1617-1620)에 지은 것이라 한다. 그런데 1910년 일제가 일본인들이 다닐 학교인 경성중학교(구서울고자리)를 경희궁(신문로)에 설립하면서 승정전이 이곳으로 옮겨 졌다고 한다.

 

현재 보는 정각원은 승정전 건물이 해체되어 그 부재를 이용하여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그 때가 1926년이라 한다. 이렇게 본다면 현 정각원 건물은 1926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가면 17세기 초반에 지은 것이다.

 

이처럼 유서 깊은 건축물이어서 일까 정각원 건물은 다른 법당과 달라 보인다. 궁궐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양의 돌계단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근정전의 축소판처럼

 

정각원 은 정면5, 측면4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내부는무척 넓다. 궁궐의 정전이어인지 전통양식의 법당과는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 천정에는 경복궁의 근정전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의 용상이 보인다. 마치 내부의 형태가 마치 근정전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어좌가 있던 자리에 불단이

 

궁궐양식이어서일까 내부에 어좌만 갖다 놓으면 정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좌가 있던 자리에는 불단이 설치 되어 있다. 그리고 천정에는 다른 법당처럼 연등이 걸려 있다. 그러나 후불탱화나 벽면 탱화는 일체 보이지 않는다. 궁궐 건물에다 다만 불단만 설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토요일 오후 한적한 시간에

 

정각원은 법당형식을 갖추었지만 전통법당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토요일 오후 한적한 시간에 몇 사람들의 사람이 앉아 있다. 한 분은 교직원으로 보이는데 참선하고 있고, 또 한사람은 일반인으로 보이는데 졸고 있다. 그리고 어느 여인은 계속 절을 하고 있다.

 

 

 

 

 

 

 

 

 

 

 

 

동국대의 상징은 무엇일까?

 

국내최대불교대학인 동국대의 상징은 무엇일까? 백상, 정각원 등 이 있지만 본관 앞에 있는 여래입상이라 볼 수 있다. 이 여래입상은 동국대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중학교 당시 카드섹션등 예행연습을 하기 위하여 처음 동국대에 갔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청동으로 된 여래입상이었다.

 

 

 

 

거룩하게 생긴 불상

 

동국대에 오면 늘 찾는 곳이 여래입상이다. 이는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당시 불상이라고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무당집에서 본 불상이 있긴 있었지만 이처럼 거룩하게 생긴 불상은 처음 본 것이다.

 

 

 

 

 

 

 

1964동국대학교총학생회발원건립

 

청동여래입상을 보면 사방에 석축물로 감싸져 있다. 그 때 당시에도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여래입상은 언제 세워진 것일까? 뒷편을 보니 설립일자가 나와 있다. 1964년에 동국대학교총학생회발원건립이라 되어 있다. 총학생회에서 건립발원하여 세워 졌다는 것이 의외의 일로 보여진다.

 

그런데 안내문을 보니 팔정도 부처님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여덟 개의 석주가 사방을 감싸듯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중학교 당시 본 여래입상 주변에는 아무것도 설치 되어 있지 않았다고 확신 한다.

 

 

 

 

 

베롱나무 꽃과 석탑이

 

여래입상이 있는 너른 광장에는 석탑도 보인다. 두 기의 석탑이 있는데 하나는 고려시대의 3층탑이고, 또 하나는 조선시대의 7층탑이다. 파란 하늘에 붉은 베롱나무 꽃과 석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 3층석탑

 

 

 

 

 

 

 

 

 

조선시대 7층석탑

 

 

동국대는 마음의 고향

 

동국대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중학교를 종립중학교인 동대부중에 배정 받아 그 인연으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1학년 때 부처님오신날을 맞이 하여 동국체전이 성대하게 열렸다. 그 때 당시 동국학원 계열의 학교 여러 곳이 대운동장에 모여서 행사를 하였다. 그래서 약 1주일 가량 매일 가다시피 하였다.

 

그 때 본 대학교의 교정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대학생들이 모습이 몹시 한가롭고 여유러워 보였다. 남녀 대학생들이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이 마치 딴 세상 처럼 보였다. 마치 대학생활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렀다. 오랜 만에 찾아간 동국대학교 역시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활기에 넘쳤다. 건물이나 상징물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마치 흐르는 물처럼 연령대가 똑 같은 청년들이 들락 날락하는 곳이 대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상하게 세월은 지나갔지만 변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운동장과 백상과 정각원과 여래입상이다. 그 중에 백상은 석주 모양의 꼭대기에서 내려와 정각원 계단 도중에 있지만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이다. 정각원 법당은 이번에 처음 들어가 보았기 때문에 이제까지 겉모습만 본 것이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본관 앞에 있는 석가여래입상이다. 지금은 팔정도 부처님이라 하여 이름이 바뀐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때 당시에는 단신으로 서 있었다. 그 상호를 보니 마치 오랜만에 친척이나 친구를 만난듯이 익숙하다.

 

무상한 것 가운데 항상함을 보면서

 

제법무상이라 하였다. 일체법이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이곳 동국대에서 변화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래입상이다. 주변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몰라보게 바뀌었지만 항상 그 자리에 서 부처님은 서 있다. 청년들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여래입상 만큼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하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이를 제행무상이라 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그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고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제행무상의 법칙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정법일 것이다. 부처님이 발견하신 연기법을 말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원리로서 확정 되어 있는 연기법은 변함이 없다. 이 연기법을 과거의 부처님이 발견 하였다. 부처님이 이렇게 서 있는 한 정법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이렇게 무상한 것 가운데 항상함을 보면서 남산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2014-08-1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