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행한 뒤에 눈물의 후회를 한다면, 허공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담마다사 이병욱 2014. 9. 28. 10:42

 

행한 뒤에 눈물의 후회를 한다면, 허공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일탈을 꿈꿀 때

 

종종 원치 않는 메일을 수신할 때가 있다. 이른바 스팸메일이다. 그런 스펨메일 중에 그대여 일탈을 꿈꿔라!”라는 제목이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활력을 주라는 말인데 퇴폐업과 관련된 내용이다.

 

누구나 한번쯤 일탈을 꿈꾼다. 일탈(逸脫)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조직이나 사상, 규범으로부터 빠져 벗어남이다. 정해진 궤도를 벗어난 행위를 말한다. 이를 탈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뉘앙스는 약간 다르다. 탈선(脫線)말이나 행동이 일반적인 규칙이나 규범 등을 벗어나 나쁜 방향으로 빗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탈선은 불선한 행위를 유발하는 것을 말하고, 일탈은 루틴한 일에서 벗어나 변화를 주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퇴폐업과 관련 된 메일의 문구는 잘못된 것이다.

 

인연과(因緣果: hetu-paccaya-phala)

 

모든 행위에는 과보가 따른다. 설령 그것이 선한 행위이든 불선한 행위이든 과보를 피할 수 없다. 마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이 어느 것 하나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법을 피해 갈 수 없다. 이런 인과법에 조건이 추가 되면 연기법이 된다. 그래서 연기법은 인연과로 이루어진다.

 

인연과는 원인()’조건()’결과()’의 합성어이다. 이를 빠알리어로 헤뚜빳짜야팔라(hetu-paccaya-phala)’라 한다. 이는 십이연기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십이연기에서 느낌과 갈애에 대한 관계를 보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라 되어 있다. 이를 빠알리어로  “Vedanāpaccayā tahā라 표현된다. 여기서 느낌(Vedanā)은 원인(:hetu)이 되고, 이 원인을 조건(: paccayā)으로 하여 갈애(tahā)가 발생화는데, 이 때 갈애는 결과(:phala)가 된다. 이렇게 연기법은 원인-조건-결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연기법에서 조건(paccaya)이 빠진다면 緣起(paticca-samuppada)’가 성립되지 않는다.

 

인연과에 대한 현대적 해석

 

인연과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 있다. 이는 불교tv사이트에서 김응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인()은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작용이라 한다. 이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 행위는 주변환경()과 맞아 떨어졌을 때 하나의 결과()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전생의 지은 업에 따라 현생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는 숙명론적 운명관으로 부터 탈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주변환경에 좋은 영향을 주어 주어진 자신의 운명을 얼마든지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반대로 그 역도 성립된다. 지금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주변환경에 악영향을 주어 나쁜 결과를 갖게 되었을 때 그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적극적 의미로서 인연과에 대한 가르침을 펼쳐서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개척해 나가 궁극적으로 해탈과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듯이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어떤 식으로든지 주변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신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자신은 물론 주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자신의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은 행위에 따른다.

 

행한 뒤에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면

 

그렇다면 어떤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까? 이는 다음과 같은 법구경 게송에서 알 수 있다.

 

 

Na ta kamma kata sādhu

ya katvā anutappati,
Yassa assumukho roda

vipāka paisevati.

 

행한 뒤에 후회하고

얼굴에 눈물 흘리며 비탄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dhp67)

 

 

Tears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위에 따른 것이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후회하는 일은 어떤 것일까? 주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DhpA.II.40에 따르면, 현세에서 회상하는 순간에 후회스럽고 비탄스러울 뿐만 아니라 미래에 비참한 운명의 상태의 태어남을 가져오므로, 그 결과가 고통스런 행위는 훌륭한 것이 아니고 칭찬할 만한 것도 아니고 유익한 것도 아니다.

 

(법구경 721번 각주)

 

 

눈물을 흘릴 정도의 후회스런 일은 무엇을 무엇일까?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중죄를 저지를 케이스에 해당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인을 하였을 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우발적인 것이든 계획적인 것이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목숨을 앗아 갔다는 사실은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과보를 피할 길이 없다.

 

잠자리에 드는 순간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것은 자신의 더로운 업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악행을 하면, 두 곳에서 슬퍼하니 이 세상에서도 슬퍼하고 저 세상에서도 슬퍼한다. 자신의 업의 더러움을 보고 비탄에 빠지고 통탄에 빠진다. (dhp15)”라고 하였다.

 

행위를 하고 난 다음 후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행위를 할 당시에는 모를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안정화 된 잠자리에 드는 순간이나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이전에 행한 일이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면 잘못된 행위임에 틀림 없다.

 

허공을 나는 새처럼

 

모든 행위는 자취를 남긴다. 마치 길을 가는 나그네가 발자취를 남기듯이 누구나 삶의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선한 것 일수도 있고 악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흔적이 다시태어남(再生)’을 가져 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어떻게 남기기 않는가? 법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Yassāsavā parikkhīā

āhāre ca anissito,
Su
ññato animitto ca

vimokkho yassa gocaro,
Ākāse va sakuntāna

pada tassa durannaya

 

번뇌를 부수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고

텅비고 인상을 여의어

활동영역에서 해탈한 님들,

허공을 나는 새처럼,

그들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 (Dhp93)

 

 

 

Bird

 

 

게송에 허공을 나는 새처럼(Ākāse va sakuntānaṃ)라는 구절이 있다. 허공을 나는 새는 자유롭다. 어떤 걸림도 없다. 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허공을 나는 새처럼, 그들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라 하였다.

 

자취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하늘을 나는 새의 자취는 사람이 있는 발자국을 남기기 않기 때문에 찾기 어려운 것이다미래의 존재로 태어날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해탈한 사람들에 해당된다. 그래서 번뇌가 다한 자의 행위에는 걸림이 없다. 어떤 행위를 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새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201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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