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약자들이 억울하다고 느낄 때 몰락의 징후가, 최상자가 정의롭지 못하면

담마다사 이병욱 2014. 9. 22. 18:48

 

약자들이 억울하다고 느낄 때 몰락의 징후가, 최상자가 정의롭지 못하면

 

 

 

대립과 갈등만 남은 세월호사건

 

세월호사건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지 오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남은 것은 갈등과 대립과 반목만 보인다. 무엇 보다 안타까운 것은 유가족대표들이 폭행사건에 연루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또 어떤 이유로든지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 함정에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정권에 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너무 쉽게 넘어 간 것이라 본다.

 

어느 종편방송을 보았다. ‘저격수다라는 프로이다. 이프로에서는 다섯명의 저격수가 출연한다. 모두 보수신문사의 기자들이다. 프로이름대로 특정인물을 상대로 하여 저격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말로서저격한다. 그래서 저격수다라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매우 일방적이다. 특히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타겟이다. 그런데 이번 대리기사사건과 관련하여 저격수다를 보면 잔인하기 그지 없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서 저렇게 해도 되나?”라고 의문이 들 정도로 인정사정 없다.

 

약자들이 억울하다고 느낄 때 몰락의 징후가

 

세월호사건이 났었을 때 국민들은 모두 슬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갈등만 남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최근 휴심정에 기고한 김경재목사는 광화문 광장과 우리 사회가 양 진영의 분노로 가득 차 있다.”라 하였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낡은 문명이 몰락할 때나 국가사회가 병든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하면, 사회 중심부 집단이 독점적 힘을 가지고 주변부 집단한테 불공정하거나 불의한 대우를 가하게 된다. 낡은 계급투쟁론이 아니더라도 소외되는 집단이나 개인은 억울하다는 분노감정을 축적해가는 것이고, 어떤 계기를 만나면 폭발하여 ‘형제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비극적 형제살인 사건이 왜 발생했던가를 경전의 기록에서 보면, 공정성 결여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주 하느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다.” 차별당한 카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분을 참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특별기고] 카인의 분노와 냉소적 항변, 김경재목사, 휴심정 2014-09-21)

 

 

김경재목사는 진보적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불교에 대해서도 매우 이해가 깊어서 불교평론에 글이 실리기도 하였다.

 

김경재목사는 문명이나 국가가 몰락할 때의 징후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불공정한 일이 발생할 때라는 것이다. 특히 강자가 약자를 업악할 때를 말한다. 그래서 약자들이 억울하다고 느낄 때몰락의 징후가 시작 되는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본다면 세월호참사와 관련하여 유가족들이 겪는 억울함, 박탈감, 눈물 그리고 유가족을 범죄시하고 적대하는 종편방송, 보수단체회원, 일베 등의 출현은 이 사회가 병들었다는 신호라 볼 수 있다.

 

정의롭지 않은 공권력

 

세월호와 관련하여 수 차례 문화제 형식의 집회에 참여 하였다. 그 때 마다 느낀 것은 점차 고립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공권력에서 나타난다.

 

100일 째 되는 날 문화제에서는 경찰병력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포위망이 좁혀진다. 그러다 최근에는  몇 겹으로 경찰병력이 둘러 싸고 있어서 마치 독안에 갇힌 쥐의 신세처럼 되고 있다. 그런 공권력은 일종의 폭력이다.

 

국가를 대리하는 것이 정부이다. 그런데 정부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힘을 행사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경찰병력을 동원한 공권력이다. 그런데 모든 힘은 폭력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공권력 역시 폭력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경찰병력은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의롭지 않은 힘이다.

 

힘이 있는 자들은 힘을 행사 하고 싶어 한다. 무기를 가지면 무기를 사용하고 싶듯이, 힘을 가진 자들은 그 힘을 행사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군 병영내 구타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힘이 있는 국가기관이 힘을 행사할 때 어떻게 될까? 그것도 정의롭지 못하게 힘을 행사하면 불법이 된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사건이 대표적이다.

 

원로 신학자의 분노

 

힘이 있는 자들은 넘쳐 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런 힘이 좋은 의미로 사용되면 약자들이 살맛 나지만, 악용되면 약자들이 살기 힘들어진다. 힘 있는 자들이 불공정하고 불법적 행위를 하였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이에 대하여 김경재목사는 다음과 같이 기고하였다.

 

 

힘 가진 자들의 불공정성, 불법행위에 대한 은폐심리, 선악 이분법 진영논리, 3가지가 우리 사회의 전진과 인간화를 가로막고 있는 핵심 걸림돌이다. 민생문제 해결하자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마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한국 경제와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책임자들이나 되는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는 형국이다. 윤 일병 구타살인 사건은 병영 막사에서 주먹과 군홧발로 일어났었다.

 

그런데 ‘피로감 담론’을 퍼뜨리는 수구언론과 권력집단은 나치가 유대인들 가슴에 ‘다윗별’을 붙여 사회로부터 왕따시켜버린 것처럼, 여론으로 위장한 사회 막사 안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말과 글로써 구타하고 소외시키는 모양새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진 후에라야 비로소 불의를 잊지 않되 용서, 치유, 평화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특별기고] 카인의 분노와 냉소적 항변, 김경재목사, 휴심정 2014-09-21)

 

 

기고문을 보면 원로 신학자의 분노가 느껴진다. 평소 점잔은 글쓰기로 알고 있었으나 글에 분노가 실려 있다. 그것은 힘을 가진 자들의 불공정함에 대한 것이다. 특히 세월호유가족들에 대한 보수진영의 가혹하고 잔인한 행위에 대한 분노이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마치 한국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철없는 노인들의 보수단체, 그리고 패륜적인 일베, 또 잔인하고 무자비한 종편채널에서 불행에 처한 불쌍한 유가족들을 향한 언어폭력을 말한다. 

 

임계점에 이르면 폭발하고 말 것

 

광화문광장에서의 양진영의 분노는 마치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와 같다. 이렇게 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최고책임자에게 책임이 있다. 최고책임자가 마음 한번 바꾸면 쉽게 해결 될 일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지도자를 잘못 뽑았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힘 있는 자들이 힘 없는 자들을 힘으로 억압하면 불공정한 것이다. 그런 사회 역시 정의롭지 않고 불공정한 사회이다. 그런데 이런 불공정함이 모이고 모이면 어떻게 될까? 아마 임계점에 이르면 폭발하고 말 것이다.

 

정의롭지 못함의 경(A4.70)에서

 

초기경전에 정의롭지 못함의 경이 있다. 이 경을 보면 마치 현재 한국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Yasmi bhikkhave samaye rājāno adhammikā honti, rājayuttāpi tasmi samaye adhammikā honti. Rājayuttesu adhammikesu brāhmaagahapatikāpi tasmi samaye adhammikā honti. Brāhmaagahapatikesu adhammikesu negamajānapadāpi tasmi samaye adhammikā honti.

 

수행승들이여, 왕들이 정의롭지 못하게 되면, 왕자들도 정의롭지 못하게 되고, 왕자들이 정의롭지 못하게 되면, 사제들과 장자들도 정의롭지 못하게 되고, 사제들과 장자들이 정의롭지 못하게 되면, 도시와 지방의 백성들도 정의롭지 못하게 된다.

 

(Adhammikasutta- 정의롭지 못함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4.70, 전재성님역)

 

 

부처님당시 고대인도에서 왕은 곧 나라나 마찬가지이었다. 나라가 곧 왕의 소유물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왕이 정의롭지 못하는 경우 연쇄반응이 일어 날 수 있음을 말한다. 기강이 해이지고 불법이 판을 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파급효가가 백성에 까지 미칠 수 있음을 말한다.

 

정의롭지 못하게 되면, 해와 달도

 

정의로운이라는 말은 빠일리어 ‘dhammikā에 대한 번역이다. Dhammikā‘righteous’의 뜻으로 공정한, 바른, 정의의의 의미이다. 초불연에서는 법답게라 번역하였다. 그렇다면 국왕에서부터 정의롭지 않았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Negamajānapadesu adhammikesu visama candimasuriyā parivattanti. Visama candimasuriyesu parivattantesu visama nakkhattāni tārakarūpāni parivattanti. Visama nakkhattesu tārakarūpesu parivattantesu visama rattindivā parivattanti. Visama rattindivesu parivattantesu visama māsaddhamāsā parivattanti. Visama māsaddhamāsesu parivattantesu visama utusavaccharā parivattanti. Visama utusavaccharesu parivattantesu visama vātā vāyanti visamā apañjasā. Visama vātesu vāyantesu visamesu apañjasesu devatā parikupitā bhavanti. Devatāsu parikupitāsu devo na sammādhāra anuppavecchati. Deve na sammā dhāra anuppavecchante visamapākīni sassāni bhavanti. Visamapākīni bhikkhave sassāni manussā paribhuñjantā appāyukā ca honti. Dubbaṇṇā ca dubbalā ca bavhābādhā ca.

 

사제들과 장자들이 정의롭지 못하게 되면, 해와 달도 바르게 돌지 못하게 된다. 해와 달도 바르게 돌지 못하면 행성들도 바르게 돌지 못하게 된다. 행성들도 바르게 돌지 못하면,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돌지 못하게 된다.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돌지 못하면, 계절과 년도가 바르게 돌지 못하게 된다. 계절과 년도가 바르게 돌지 못하면, 바람이 바르게 불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불면, 신들이 분노하게 된다. 신들이 분노하면, 비가 바르게 내리지 않게 된다. 수행승들이여, 바르게 익지 않은 곡식들을 인간이 먹으면, 수명이 짧아지고, 용모가 추하고 힘이 쇠하고 질병이 많게 된다.

 

(Adhammikasutta- 정의롭지 못함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4.70, 전재성님역)

 

 

한나라의 최고통치자가 바르지 못하면 우주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와 달의 운행에 지장을 주게 되고, 이런 영향으로 비가 오지 않을 수 있음을 말한다.

 

임금의 부덕한 소치로

 

극심한 가뭄이 들면 백성들은 임금의 부덕을 탓했다. 그렇다면 가뭄이 들었을 때 왕들은 어떻게 하였을까? 가뭄과 관련하여 조선왕조실록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1413       계사년 태종 14 7 5王川君 <유창> 등을 북교(北郊), 백악(白岳), 목멱(木覓), 양진(楊津), 한강(漢江)에 보내어 기우제(祈雨祭)를 행하고 중() 1백명을 흥천사의 사리탑에 모아서 조계종 판사 <尙形>에게 향을 받들어 비를 빌게 하고 또 여러 무당에게 한강(漢江)에서 기도하게 하고 검교(檢校) 공조 참의 <최덕의>를 보내어 저자도(楮子島)에서 화룡제(畵龍祭)를 행하였다.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에 전지(傳旨)하였다. “옛부터 큰물(洪水)이나 가뭄(旱災)의 재앙은 모두 임금의 부덕한 소치였다. 이제 중과 무당을 모아서 비를 빌지만 마음은 실로 편하지 못하다. 비록 비의 혜택을 얻는다 하더라도 결코 승무(僧巫)의 힘은 아니며 다만 비를 걱정하는 생각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는 또한 기도나 제사를 그만두고 인사(人事)를 바로 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1, 서운관지 3)

 

(고대 조선 측후 변천사, 김상원 / 한국기상전문인협회원, 기상소식 2004 10)

 

 

기상청 기상홍보과에서 작성된 기상소식지에 실려 있는 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14(1414)에 가뭄이 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기우제를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실록에서는 옛부터 큰물(洪水)이나 가뭄(旱災)의 재앙은 모두 임금의 부덕한 소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라에 큰 가뭄이나 홍수가 나면 모두 임금의 덕이 부덕하여 발생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죄수를 석방하여 민심을 부드럽게 하고, 금주조치를 하여 사회기강을 바로 잡곤 하였다.

 

궁녀들의 원한의 소치인가 합니다

 

태종14년 가뭄과 관련하여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궁녀들의 원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에 대하여 세자가 임금에게 이제 가뭄이 심하니 이것이 궁녀들의 원한의 소치인가 합니다. 원컨대 궁녀로 하여금 윤번으로 입시(入侍)하게 하여 남녀의 정을 다하게 하면 거의 화기(和氣)에 이르러서 가뭄의 재해(災害)를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한 것이다. 궁녀들의 원한으로 가뭄이 든 것이 아닌가 하여 궁녀들의 원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세자가 왕에게 간청한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 세월호유가족들의 눈물이 생각난다,

 

세월호유가족들의 눈물을 수 없이 본다. 가장 먼저 자식을 잃어서 울었다. 이후에는 분하고 억울해서 울었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지만 대통령은 매몰차기만 하다. 이렇게 불쌍하고 억울한 사람들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 그 과보는 어떤 것일까?

 

 

일배(2014-09-03)

 

 

유관의 상소를 보면

 

자연재해가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조선왕조실록은 초기경전에서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정의롭지 못함의 경(A4.70)’에서도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가뭄과 같은 재앙이 발생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사헌부의 상소내용을 소개 하고 있다. 유관이 올렸다는 상소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날이 가물거나 비가 내리는 것은 하늘의 운행(運行)입니다. 9년의 큰물(洪水)이나 7년의 가뭄은 요() 임금과 탕() 임금도 편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기(旱氣)가 몹시 심하여 산천(山川)이 바싹 말라 버린 것은 임금의 공구수성(恐懼修省)할 바를 보인 것이요, 가뭄이 재앙이 되지 않고 백성이 병들어 죽는 자가 없는 것은 인정(仁政)을 시행함이 본래 민심(民心)에 흡족하여 원망함이 없는 까닭입니다.

 

삼대(三代) 이후로 역대(歷代)의 임금이 모 재이(災異)를 만났는데 공구수성(恐懼修省)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혹은 궁인(宮人)을 골라서 내보내고, 혹은 감선(減膳)하고, 철악(徹樂)하고, 혹은 죄수들을 잘 다스리고, 혹은 궁핍한 백성들을 진휼하여 무릇 천심(天心)에 이르는 일을 행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진실로 먹는 것을 백성은 으뜸으로 여기고 백성은 오로지 나라의 근본(根本)이니 좌시만 하고 구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조선왕조실록, 태조14, 유관의 상소)

 

(고대 조선 측후 변천사, 김상원 / 한국기상전문인협회원, 기상소식 2004 10)

 

 

상소문을 보면 임금이 마음 씀씀이 대하여 말하고 있다. 큰 홍수나 가뭄이 들었을 때 이는 임금의 부덕의 소치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에게 인정을 베풀라고 상소하고 있다. 이렇게 백성을 으뜸으로 여기고 인정을 베풀었을 때 천심을 얻을 것이라 하였다.

 

대통령이 정의롭지 못하다 보니

 

앙굿따라니까야 정의롭지 못함의 경(A4.70)’에 따르면, 왕이 정의롭지 않았을 때 연쇄 반응을 일으켜 우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가뭄이 들고 민심이 흉흉해져 수명이 짧아지고, 용모가 추하고 힘이 쇠하고 질병이 많게 된다(A4.70)”라 하였다.

 

그러나 왕들이 정의롭게 되면, 왕자들도 정의롭게 되고, 대신들도 백성들도 정의롭게 될 것이라 하였다. 이와 같은 정의로움은 결국 우주에 까지 영향을 주어 해와 달이 바르게 돌게 되어 곡식이 잘 자라서 수명이 길어지고 용모가 아름다워지고 힘이 있고 질병이 없게 된다.(A4.70)”이라 하였다. 이렇게 최고책임자의 마음 먹기에 따라 국민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이렇게 본다면 최고책임자는 정의로워야 한다.

 

하지만 최고책임자는 우리사회의 긴장과 갈등과 대립만 남아 소모적인 싸움만 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 자식을 잃은 세월호유가족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의롭지 못한 행위이다.

 

최상자라고 여겨지는 자가 정의로우면

 

우리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 정의롭지 못하니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 역시 정의롭지 못하다. 이런 정의롭지 못함은 연쇄반응을 일으켜 우리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래서 욕먹은 잘을 욕하고, 맞은 자를 또 때리듯이, 가학적인 종편채널, 철부지 노인들의 보수단체, 그리고 벌레 같은 일베 등 온갖 패륜이 판을 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사실상 최고책임자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경전의 근거로도 알 수 있다.

 

 

Gunna ce taramānāna jimha gacchati pugavo,
Sabb
ā tā jimha gacchanti nette jimha gate sati.

 

Evameva manussesu yo hoti seṭṭhasammato,
So ce adhamma
carati pageva itarā pajā,
sabba
raṭṭha dukha seti rājā ce hotadhammiko.

 

Gunna ce taramānāna uju gacchati pugavo,
Sabb
ā tā uju gacchanti nette ujugate sati.

 

Evameva manussesu yo hoti seṭṭhasammato,
So ceva dhamma
carati pageva itarā pajā,
Sabba
raṭṭha sukha seti rājā ce hoti dhammikoti.

 

 

[세존]

소들이 강을 건너는데,

우두머리 황소가 잘못 가면,

지도자가 잘못된 길로 가기 때문에

모두가 잘못된 길을 따르네.

 

인간에게서도 마찬가지라.

최상자라고 여겨지는 자가

정의롭지 못하면,

그 백성들이야 말해 무엇하리.

왕이 정의롭지 못하면,

왕국전체가 고통을 겪으리.

 

소들이 강을 건너는데,

우두머리 황소가 바로 가면,

지도자가 바른 길을 가기 때문에

모두가 바른 길을 따르네.

 

인간에게서도 마찬가지라.

최상자라고 여겨지는 자가

정의로우면,

그 백성들이야 말해 무엇하리.

왕이 정의로우면,

왕국전체가 행복을 누리리.

 

(Adhammikasutta- 정의롭지 못함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4.70, 전재성님역)

 

 

 

2014-09-2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