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적이 적을 대하고, 소치기 난다와 관련된 이야기(Nandagopalavatthu, Dhp42)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0. 24. 10:31

 

 

적이 적을 대하고, 소치기 난다와 관련된 이야기(Nandagopalavatthu, Dhp42)

 

 

 

 

의리를 강조하지만

 

범죄 영화를 보면 의리를 강조한다. 이렇게 의리를 강조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범죄집단은 그다지 의로운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툭하면 배신하기 때문에 의리를 강조한다. 마치 오공화국시절 슬로건이 정의사회구현이었는데 이런 슬로건을 내 건 자체가 정의로운 사회이지 않음을 스스로 표출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이유로 조직폭력배와 같은 범죄집단에서는 피의 맹세를 한다. 하지만 의리는 끝까지 가지 않는다. 원래 악하고 불건전한 생각을 가진 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민감하여 배신과 보복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조폭이나 도둑, 강도들은 그들만이 벌이는 나쁜 행각이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뉴스로 들을 때 마다 그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도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적보다 잘못된 마음이 더

 

부처님은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Diso disa ya ta kayirā      디소 디상 양 땅 까이라

veri vā pana verina             웨리 와 빠나 웨리낭

micchāpaihita citta          밋차빤이히땅 찟땅

pāpiyo na tato kare.            빠삐요 낭 따또 까레

 

(Cittavagga, Dhp42)

 

 

적이 적을 대하고

원적이 원적을 대하는 것 보다

잘못 지향된 마음이

자신을 대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

 

((Dhp42, 전재성님역)

 

 

たいし、

にたいして、

どのようなことをしょうとも、

なことをめざしているはそれよりもひどいことをする。

 

(Dhp42, 中村元)

 

 

적과 적이 겨루고

원수끼리 물고 뜯으며 싸운다 한들

못된 마음이 저지르는 해로움보다는

그래도 그 영향이 적을 것이다.

 

(Dhp42, 법정스님역)

 

 

心豫造處 심예조처

往來無端 왕래무단

念無邪僻 염무사벽

自爲招惡 자위초악

 

(Dhp42, 한역)

 

 

원한과 같은 나쁜 마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그 대상에게만 피해를 줄 뿐,

그러나 타락되고 집착된 헛된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크나큰 피해를 준다.

 

(Dhp42, 거해스님역)

 

 

Whatever an enemy might do

to an enemy,

or a foe to a foe,

the ill-directed mind

can do to you

       even worse.

 

(Dhp42, Thanissaro Bhikkhu)

 

 

 

이 게송은 잘못 지향된 마음을 경책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이 적을 대하고, 원적이 원적을 대하는 것 보다 더 나쁘다고 하였다.

 

적이 적을 대한다는데

 

적이 적을 대한다(Diso disa ya ta kayirā)’ 는 말은 무슨 뜻일까? 주석에 따르면 적이 적을 보고 행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설명 되어 있다. 여기서 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각주에서는 강도의 예를 들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를 들어 강도가 다른 사람에게 행한 상해나 재난을 의미한다. 어떤 강도는 동료를 배반하고, 가정이나 토지나 가축과 관련하여 남에게 범죄를 저지르면서, 다른 자가 강도로서 자신에게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본다.

 

(법구경 632번 각주, 전재성님)

 

 

각주에 따르면 강도가 강도당한 케이스를 설명하고 있다. 이럴 경우 일반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들 모두가 적이다. 그래서 (, disa)과 적(, disa)이 대한다거나  적과 적이 겨룬다라 하였다.

 

원적(怨敵)이 원적(怨敵)을 대하고

 

두 번째 구절을 보면 원적이 원적을 대하는 것 보다(veri vā pana verina)라 하였다. 여기서 원적이라 한 것은 한자어 怨敵(원적)’을 말한다. 빠알리어로는 veri’인데 이는 ‘inimical (해로운, 적대하는, 반하는); revengeful. (m.), an enemy’의 뜻이다. 첫 번째 구절에서 언급한 적보다 더 강도 높은 뜻이다.

 

원적은 원한을 가진 적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법정스님은 원수로 번역하여 원수끼리 물고 뜯으며 싸운다 한들이라 하였다. 타닛사로빅쿠는 foe’라 하여 enemy보다 더 강한 뜻으로 사용하였다. Foean armed adversary’의 뜻으로 무장한 적을 말한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나까무라 하지메는 にたいし、にたいし라 하였다. “증오하는 사람이 증오하는 사람을 대하고, 원한을 가진 자가 원한을 가진 자를 대하듯이라는 뜻이다.

 

원수와 같은 적이 서로 대면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veri vā pana verina: DhpA.I.324에 따르면,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 적의를 가진 다른 원적을 보면서, 그 원적이 다른 관계된 사람에게 어떠한 재난이나 상해를 가하듯, 원적은 자신의 완고한 잔인성 때문에, 가정을 억압하고 토지를 파괴하고 목숨조차 빼앗을 것이다.

 

(법구경 633번 각주, 전재성님)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기본적으로 잔인하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인 자는 또 다른 악한 자에게 피해를 당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잘못 지향된 마음 때문이다.

 

열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의 길

 

게송에서 적이 적을 대하고, 원적이 원적을 대한 다는 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그래서 도둑이 도둑질을 하는데 도둑의 집을 털 수 도 있는 것이고, 강도가 강도질 할 때 강도에게 강도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번 지향된 마음이 악하고 불건전하면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조폭들이 의리를 강조하는 것도 의리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듯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적과 적이 겨루고 원수끼리 물고 뜯으며 싸운다는 말이다.

 

게송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구절에서 적과 원적이 서로 대한다는 언급을 하였을까? 이는 이어지는 문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잘못 지향된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 지향된 마음이 자신을 대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micchāpaihita citta pāpiyo na tato kare)”라 하였다.

 

잘못 지향된 마음(micchāpaihita citta)은 무엇을 말할까? 이는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이다. 초기경에서는 열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의 길, 즉 십악도를 말한다. 그것들 때문에 그 자신에게 커다란 해악을 끼친다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적이나 원적은 다른 적이나 원적에게 단지 이 현세에서 불행과 죽음을 몰고 오지만, 마음이 열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의 길 위에 잘못 지향되면, 이 현세에서 재난과 상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네 가지 낮은 존재로 태어나게 되고 Dps.24, Sdk.26에 따르면, 백천 생 동안 머리를 들 수 없다.

 

(법구경 634번 각주, 전재성님)

 

 

강도가 강도를 해치고, 원한 맺힌 자가 원한 맺힌 자를 해치고 있다. 그러나 남의 일이다. 설령 적이 적을 해치고, 원적이 원적을 해친다고 하여 결국 과보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불행해 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일이다.

 

그런데 그들처럼 잘못 지향된 마음이 나에게도 일어나서 행위를 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하여 현세와 내세에서도 불행을 겪을 것이라 하였다. 이는 악행을 하면, 두 곳에서 슬퍼하니 이 세상에서도 슬퍼하고 저 세상에서도 슬퍼한다. 자신의 업의 더러움을 보고 비탄에 빠지고 통탄에 빠진다. (dhp15)”라는 게송에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내세에 네 가지 낮은 존재로 태어난다고 하였다. 이는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와 같은 악처를 말한다.

  

소치기 난다와 관련된 이야기(Nandagopalavatthu)

 

이 게송의 의미를 더 잘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이 게송이 설해진 인연담을 보면 알 수 있다. 인연담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Nandagopālakavatthu

 

Diso disanti ima dhammadesana satthā kosalajanapade nandagopālaka ārabbha kathesi.

 

Sāvatthiya kira anāthapiṇḍikassa gahapatino nando nāma gopālako goyūtha rakkhati aḍḍho mahaddhano mahābhogo. So kira yathā keiyo jailo pabbajjāvesena, eva gopālakattena rājabali pariharanto attano kuumba rakkhati. So kālena kāla pañca gorase ādāya anāthapiṇḍikassa santika āgantvā satthāra passati, dhamma suāti, attano vasanaṭṭhāna āgamanatthāya satthāra yācati. Satthā tassa ñāaparipāka āgamayamāno āgantvā paripakkabhāva ñatvā ekadivasa mahābhikkhusaghaparivuto cārika caranto maggā okkamma tassa vasanaṭṭhānāsanne aññatarasmi rukkhamūle nisīdi. Nando satthu santika agantvā vanditvā paisanthāra katvā satthāra nimantetvā satthāha buddhappamukhassa bhikkhusaghassa paīta pañcagorasadāna adāsi. Sattame divase satthā anumodana katvā dānakathādibheda anupubbi katha kathesi. Kathāpariyosāne nandagopālako sotāpattiphale patiṭṭhāya satthu patta gahetvā satthāra anugacchanto dūra gantvā, ‘‘ tiṭṭha, upāsakā ’’ ti nivattiyamāno vanditvā nivatti. Atha na eko luddako vijjhitvā māresi. Pacchato āgacchantā bhikkhū na disvā gantvā satthāra āhasu – ‘‘ nando, bhante, gopālako tumhāka idhāgatattā mahādāna datvā anugantvā nivattento mārito, sace tumhe nāgacchissatha, nāssa maraa abhavissā ’’ ti. Satthā, ‘‘ bhikkhave, mayi āgatepi anāgatepi tassa catasso disā catasso anudisā ca gacchantassāpi maraato muccanūpāyo nāma natthi. Yañhi neva corā, na verino karonti, ta imesa sattāna antopaduṭṭha micchāpaihita cittameva karotī ’’ ti vatvā ima gāthamāha –

 

(담마빠다 앗타까타, Dhp42, Nandagopālakavatthu, PCED194)

 

 

 이 시가 설해진 데는 다음과 같은 인연담이 있다. DhpA.I.322-324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꼬살라국에 계실 때, 소치기 난다와 관련된 이야기(Nandagopalavatthu)이다.

 

싸밧티 시의 부호인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소를 보살피는 소치기 난다가 있었다. 난다도 많는 재산을 가진 부호였다. 그는 소의 다섯 가지 생산물을 가지고 아나타삔디까의 집에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난다는 부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으나 난다의 지혜가 성숙하기를 기다리던 부처님께서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많은 수행승의 무리와 함께 탁발을 하다가 그의 지혜가 무르익은 것을 알아채고 길을 벗어나 난다의 저택 근처의 한 나무아래 앉아 있었다. 난다는 부처님께 와서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부처님을 초대했다. 그는 부처님과 오백 명의 수행승을 초대하여 이레 동안 소의 다섯 가지 생산물로 공양을 올렸다.

이레 째 되는 날 부처님께서는 감사의 보답으로 보시에 대한 법문을 비롯하여 차제로 설법하였다. 법문이 끝나자 난다는 흐름에 든 경지를 성취했다.

난다는 법회가 끝나자 부처님의 발우를 받아들고 먼데까지 배웅을 하였다. 부처님께서는제자여, 그만 멈추어라.’라고 하자 난다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곧바로 길을 되돌려 돌아갔다. 그러나 그 순간에 사냥꾼이 화살을 쏘아 난다를 죽였다.

난다가 죽는 것을 본 수행승들이 슬퍼하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여기 오셨기 때문에 난다가 공양을 올리고 배웅하러 나왔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이곳으로 오지 않았으면 그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불평하자 부처님께서는 수행승들이여, 내가 여기를 오거나 오지 않거나, 난다가 동서남북의 어디에 있든, 그 사이 방향의 어디에 있든,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적이나 도둑이 행하는 것보다 안으로 타락하고 잘못 지향된 마음이 행하는 것이 더욱 나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시로써 말씀하셨다. ‘적이 적을 대하고 원적이 원적에게 대하는 것보다 잘못 지향된 마음이 자신을 대하는 것이 더욱 나쁘다.’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흐름에 든 경지 등을 성취했다.

 

(법구경 Dhp42번 인연담, 소치기 난다와 관련된 이야기(Nandagopalavatthu), 전재성님역)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던 난다는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에 대하여 거해스님의 인연담을 보면 난다와 원한 관계를 맺고 태어난 사냥꾼이 난다에게 화살을 쏘아 난다를 죽였다.”라고 표현 하였다. 하지만 전재성님의 번역문에는 그 순간에 사냥꾼이 화살을 쏘아 난다를 죽였다.”라고 표현 되어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빠알리원문을 보면 “Atha na eko luddako vijjhitvā māresi.”라 되어 있다. 직역하면 그때 한 사냥꾼이 보고서 활을 쏘아 죽였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거해스님의 인연담은 과도하게 의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으로 타락하고 잘못 지향된 마음을 가졌을 때

 

난다의 죽음에 대하여 부처님은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설령 그것이 원한관계이든 우연한 사고에 따른 것이든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모든 존재의 삶이기 때문이다.

 

난다의 죽음을 가져온 사냥꾼의 행위는 나쁜 것이고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과보도 받을 것이다. 그런 도둑이나 강도, 또는 원한 맺힌 자들의 행위 는 나와 무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행위를 보면서 나에게도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더 나쁘다고 하였다. 그것은 안으로 타락하고 잘못 지향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현세에서 불행은 물론 내세도 보장 받지 못함을 말한다. 그래서 적이 적을 대하고 원적이 원적에게 대하는 것보다 잘못 지향된 마음이 자신을 대하는 것이 더욱 나쁘다.(Dhp42)”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2014-10-2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