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또 다시 행운목꽃이 피었네! 바람을 거슬러 가는 계(戒)의 향기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1. 25. 13:05

 

또 다시 행운목꽃이 피었네! 바람을 거슬러 가는 계()의 향기

 

 

 

또 다시 행운목에 꽃이 피었다. 일년만이다. 작년 12 10일 경에 피었으니 정확하게는 만일년에서 불과 10여일 부족하다. 그래서 작년에 꽃이 피었을 때 행운목에서 꽃이 피면 행운이 온다는데, 올해 행운목꽃(2013-12-10)’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작년의 경우 글의 제목에서 표현 되어 있듯이 한나무에서 꽃이 두 번 피었다. 2013 4월에 한번 피었고, 같은 나무에서 같은 해 12월에 또 한번 피어 일년에 두 번 꽃이 핀 것이다.

 

칠년 동안 다섯 번 핀 꽃

 

이제까지 모두 다섯 번 꽃이 피었다. 2007년 사무실을 오픈함에 따라 꽃집에서 행운목을 사 왔는데 칠년 동안 다섯 번 꽃이 핀 것이다. 처음 사왔을 때 3년 동안 꽃이 피지 않았다. 그러나 3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매년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11월이나 12월에 피었다. 그래서 11월이 되면 꽃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올해도 행운목에 꽃이 활짝 피었다.

 

 

 

 

 

 

 

 

 

 

 

그대 행운목꽃 향기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행운목에 꽃이 피자 이 기쁨을 시로 표현하였다. 동기동창카톡방과 알고 지내는 지인들의 카톡에 다음과 같은 자작시를 올렸다.

 

 

커다란 행운을

가져 준다는

행운목꽃이 피었네.

 

행운은 어디 있을까?

지금 여기서

이 몸과 마음이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네.

 

행운을 가져오는

행운목에 꽃이 피었네.

눈으로 함께 할 수 있지만

코로는 함께 할 수는 없네.

 

꽃보다 향기네.

그대 행운목꽃 향기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이와 같은 내용으로 카톡방에 올렸더니 동창카톡방에는 그다지 반응이 없다. 다만 한친구만이 나도 그 향기를 아네. 실내를 환기시켜야 할 것이네. 향기가 너무 강해서라고 시적으로 응답하였다. 현재 친구는 고향으로 낙향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천리나 떨어진 곳에서 이렇게 실시간으로 지켜 보며 관심을 보여 주는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고맙다.

 

지인들에게도 카톡을 날렸는데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들에게도 카톡을 날렸다. 십년 가까이 인연을 맺고 있는 법우님들이 대부분이고 한분은 지난 실크로드 여행에서 친분을 맺은 분이다. 그래서 모두 다섯 명의 지인에게 위에 언급된 자작시를 보냈다.

 

다섯 분의 지인 들은 모두 답장을 보내 주었다. 그것도 매우 정성스럽게 여러 줄의 글을 남겼다. 칭찬과 격려의 글이다. 비록 문자로만 통하는 것이긴 하지만 직접 대면 하는 것 못지 않게 따뜻한 정을 느낀다. 이렇게 본다면 반드시 만나거나 전화를 하는 것이 소통이 아닐 것이다. 문자로 소통하여도 얼마든지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자로 소통하는 것에는 한계가 없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문자로 자신의 감정을 실어 보낸다고 하여도 잘못 전달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매우 어색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실례를 범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이모티콘 등을 활용하여 최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 하려 한다. 또 ㅋㅋ, ㅎㅎ, ^^ 등의 특수문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상태를 표현 하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딱딱하고 무미건조해지기 쉽다. 때로는 오해 받기 쉽다.

 

문자로 소통하였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오해이다. 문자를 날렸을 때 아무 반응이 없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가장 먼저 자신이 잘못 하였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미 한번 날아간 문자는 수정이 불가능하다. 오타가 되었다면 오타가 된채로 전달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ㅋㅋ, ㅎㅎ. ^^ 등의 특수문자나 각종 이모티콘을 활용하여 쿨하게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자 한다.

 

행운목은 꽃보다 향기

 

카톡 등으로 사람들에게 행운목꽃을 보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거의 대부분 보지 못한 것 같다. 어쩌다 한사람 정도가 꽃을 보았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자작시에서 언급된 것처럼 행운목은 꽃보다 향기이다. 그래서 그대 행운목꽃 향기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 본 것이다. 그것은 향기가 매우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한 것이다. 귀농한 친구가 나도 그 향기를 아네. 실내를 환기시켜야 할 것이네라 하였다. 이는 실제로 행운목꽃 향기를 맡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에 문을 닫아 놓으면 향기가 빠져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 가면 강렬한 향기에 약간 과장되게 표현 하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 향기를 말로서 글로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무리 맛있게 보이는 음식이 있어도 먹어 보아야 맛을 알 수 있듯이, 행운목꽃 향기도 냄새를 맡아 보아야 그 향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만 열심히 주었을 뿐인데

 

행운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이나 사무실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행운목이다. 그럼에도 꽃을 보았다는 말을 듣기 힘들다. 그것은 행운목에 꽃이 피는 것이 희유(稀有)’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화초에서 꽃이 피는 것과 달리 행운목에서는 언제 꽃이 필지 알 수 없고 더구나 일정기간이 지나야 꽃이 피기 때문이다.

 

2007년 말 처음 행운목을 사왔을 때 승용차 앞좌석에 들어 갔다. 그래서 꽃집에서 차로 실어 이동한 것이다. 그러나 칠년이 지난 지금 천장과 가까워 질 정도로 자랐다. 승용차 앞좌석에 들어 갔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행운목이 천장과 가까워 질 정도로 자랐다. 그렇게 자랄 동안 특별히 해 준 것이 없다. 다만 물만 열심히 주었을 뿐이다. 일주일에 한번 빠짐 없이 주었다. 그것도 지하수이다.

 

입주하고 있는 건물에는 수도꼭지가 두 개 있다. 상수도이고, 또 하나는 지하수를 퍼올려 사용하는 것이다. 지하수물은 주로 변기나 청소하는 물로 활용된다. 패트병에 물을 담아 한번 줄 때 마다 듬뿍 주었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물을 주자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자랐다.

 

행운목꽃은 야행성인가?

 

사온지 만 3년 째 되었을 때 꽃이 피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행운목 꽃이다. 그 때의 감격에 대하여 밤에만 피는 행운목꽃은 어떻게 생겼을까(2010-12-19)’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긴 바 있다.

 

2010년 행운목에 꽃이 피었을 때 흥분하였다. 마치 커다란 행운이라도 찾아 올 것 같았다. 그러나 꽃을 보면서 놀란 것은 그 진한 향내이었다. 꽃을 보는 것도 희유한 일이지만 그 강렬한 향내 역시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행운목꽃은 다발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아이 주먹만한 다발이 대에 열개 가량달려 있다. 그런데 작은 공모먕의 다발에는 마치 밤송이의 가시처럼 오무린 고슴도치의 삐죽한 털처럼 수 많은 작고 긴 꽃대가 달려 있다.

 

행운목꽃은 낮에는 오무리고 있다. 그러다 해가 너머 가며 어둑해짐에 따라 꽃잎을 열어 보인다. 꽃잎은 모두 다섯 개이다. 오옆의 꽃잎과 함께 가느다란 다섯 개의 가느다란 꽃술도 보인다. 이렇게 밤에 피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야행성으로 본다.

 

 

 

 

상큼한 향기

 

행운목에 꽃이 피는 모습도 처음 보았지만 행운목꽃의 향내 역시 처음이었다. 너무 강렬하여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야 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향기가 이제는 익숙하다. 밀폐된 공간에서 향기를 즐기는 것이다.

 

향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럴 때 표현의 한계를 느낀다. 굳이 설명하자면 상큼하다라고 간단하게 표현 할 수밖에 없다. 마치 엘리베이터를 타면 냄새를 잡기 위하여 상큼한 방향제를 뿌려 놓은 것 같다. 또 화장을 진하게 한 여인이 나타났을 때 강한 향수냄새가 나는 것처럼 매우 독특한 향내를 발산한다. 그런 향내가 이미 네 번씩이나 꽃이 피었기 때문에 이제는 익숙한 향내가 되었다. 그래서 꽃이 피려고 대가 나왔을 때 마음은 벌써 진한 행운목꽃향기에 있다. 사실상 꽃보다 향기인 것이다.

 

향기도둑이라는 시가 있는데

 

사람들은 멋진 사람이 지나가면 쳐다 보게 된다. 그것도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쳐다 본다. 그 사람이 매력적이라면 따라 가게 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예뿐 꽃이 피었을 때 사람들은 눈길을 보낸다.

 

꽃이 크고 화려하고 하면 할수록 시선을 끈다. 더구나 향기가 있다면 더욱더 가까이 할 것이다. 그래서 코를 가까이 대고 향기를 맡으려 할 것이다. 꽃을 보고 향내를 맡으며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나가는 길에 그런 꽃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자주 쳐다 보고 자주 코를 가까이 댈 것이다. 그것도 꽃이 질 때 까지 매일 그렇게 할지 모른다.

 

향기도둑이라는 시가 있다. 어느 수행자가 지나가는 길목에 아름다운 연꽃이 있어서 코를 가까이 대며 향기를 즐겼다. 그러자 하늘사람이 다음과 같이 시를 읊는다.

 

 

[하늘사람]

“그대가 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때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네.

이것은 도둑질의 한 가지이니,

벗이여,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S9.14)

 

 

여기서 하늘사람은 수행승을 충고하기 위한 역할로 등장한다. 그런데 하늘사람은 수행자에게 대뜸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라 하였다.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

 

왜 향기도둑이라 하였을까? 시에서 표현 되어 있는 것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연꽃이 스스로 피어 향내를 발산할 때 지나가는 수행자가 그 향기에 이끌려 코를 대었을 때 이는 꽃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허가 받지 않은 것이다. 마치 주지 않는 것을 가지려는 것과 같다. 이는 도둑질에 해당된다. 그래서 하늘사람은 수행자에게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라 한 것이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은 도둑질이다. 아무리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이라도 아름답다고 하여 꺽어 가면 도둑질에 해당된다. 그런데 향기가 난다고 하여 허락도 받지 않고 코를 대었다면 역시 허가 받지 않은 행위이다. 더구나 한번에 그치지 않고 지나가는 길에 매번 코를 대었다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둑질 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향기도둑이라 하였다.

 

자신은 향기도둑이 아니라고

 

이와 같이 하늘사람이 지적하자 수행승은 약간은 억울하였던 것 같다. 다음과 같이 시로서 응답하였기 때문이다.

 

 

[수행자]

“나는 연꽃을 취하지도 않았고

꺽지도 않았고 떨어져서 향기만 맡았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대는 나를 향기 도둑이라고 하는가?

 

연 줄기를 잡아 뽑고,

연꽃을 꺽고,

그와 같이 거친 행위를 하는 자에게는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S9:14)

 

 

수행자는 자신이 향기도둑이 아니라 한다. 그렇게 말한 것은 연꽃을 꺽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단지 향내만 맡았을 뿐인데

 

일반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이 있으면 꺽는다. 꺽어서 자신만 보려 한다. 아름다운 꽃을 꺽어서 화병에 담아 자신의 방에 놓으면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도둑질에 해당된다. 주지 않은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도둑질은 남의 것을 몰래 훔쳐 가는 것을 말한다. 이를 돌려 말하면 주지 않는 것을 가져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누군가 준 것을 가져 가는 것은 더 이상 도둑질이 아니다. 그런데 수행자는 꽃을 꺽지도 않았다. 이렇게 본다면 수행자는 도둑질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냄새만 맡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하늘사람은 향기도둑이라 하여 도둑질로 몰아 붙이고 있다. 이에 수행자는 억울한 감정을 시로서 표출한 것이다.

 

수행자의 계행에 대하여

 

하늘사람은 일반인들의 꽃을 꺽는 행위에 대해서는 도둑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꽃을 꺽었다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꽃을 꺽지 않고 다만 향기를 즐기는 수행자에게는 향기도둑이라 하여 도둑질 한 것과 같다고 충고한 것이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매우 가혹한 처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사람은 다음과 같은 시로 말한다.

 

 

[하늘사람]

“어떤 사람이 거칠고 흉폭하고,

하녀의 옷처럼 심하게 더럽혀졌다면,

나는 그에게 말할 것이 없지만,

지금은 그대에게 말하는 것이네.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 (S9:14)

 

 

수행자는 향기도둑으로 내몰렸다. 꽃을 꺽지도 않고 단지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 도둑질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하늘사람은 청정한 사람의 계행에 대하여 말한다. 청정한 사람이 계행을 어겼을 때는 작은 것이라도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유로서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일반사람들과 수행자는 다르다는 것이다.

 

수행자의 허물이 크게 보이는 이유

 

수행자는 청정한 삶을 살기로 다짐을 하였기 때문에 갈애를 일으켜서는 안된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은 다르다. 일반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점철 되어 있기 때문에 오염되어 있다. 그런 일반사람들이 아름다운 꽃을 보고서 혼자 꽃과 향기를 즐기고 싶은 욕망으로 인하여 꽃을 꺽는다. 물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도둑질에 해당된다.

 

아무리 길거리 꽃이라 하더라도 꺽어서 가져 가면 도둑질이다. 그런 행위는 마땅이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늘사람은 일반사람들의 꽃꺽기 행태에 대하여 도둑질한다고 충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행자가 향내 맡는 행위에 대해서는 향기도둑이라 하였다. 이는 불공평한 처사이다. 이에 수행자가 항의 하듯이 말한다. 그럼에도 향기도둑으로 몰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시에서 가장 큰 가르침이라 볼 수 있는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라는 구절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람들을 보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장관 등 요직의 후보에 올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탈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허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다운계약서작성, 논문표절 등 불법과 탈법, 그리고 불로소득에 대한 것이다. 그 때 당시에는 관행이라 하여 누구나 아무 생각 없이 하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공직의 후보에 올랐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장관 등 중책을 맡은 공직자가 과거에 불법과 탈법을 일삼았다면 이는 정부에 부담을 줄 것이다. 부정한 행위로 재산을 모았거나 학위를 받은 자가 나라를 이끌어 갈 위치에 있었을 때 영이 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로 인하여 사회는 혼탁해지고 말 것이다.

 

우리말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사회지도층의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청렴이 요구된다. 그래서 과거에 관행적으로 있었던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다운계약서작성, 논문표절 등은 커다란 허물이다.

 

오염된 일반사람들이 꽃을 꺽는 행위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청정한 삶을 살기로 스스로 약속한 수행자에게 있어서 꽃을 꺽는 행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는 이유

 

고위 공직을 목표로 하는 자라면 청렴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남들이 부동산 투기등 불법과 탈법을 일삼아도 나라를 이끌어 갈 꿈을 꾸는 자에게는 강한 도덕성이 요구된다. 사실상 모든 지도층에게 요구 되는 덕목이다. 왜 그럴까? 지도층에게는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허물이라도 일반사람과 지도자가 되기 위한 사람의 허물은 다르다. 일반사람들의 허물이 탁구공만 한다면 지도자가 되기 위한 사람의 허물은 마치 농구공처럼 크게 보인다.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는 것은 작은 허물이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반사람과 수행자의 허물이 다르다. 일반시람들이 꽃을 꺽는 행위 보다 청정한 삶의 수행자가 향기를 맡는 것이 더 허물이 크다고 하였다. 그래서 시에서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라 한 것이다.

 

계속 충고해 줄 것을 요청하며

 

하늘사람의 지적은 타당한 것일까? 아무리 청정한 삶을 살아 가는 수행자라 하더라도 지나가는 길에 냄새 맡은 것에 대하여 향기도둑이라고 몰아 붙인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닐까?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억울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수행자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하늘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시로서 요청한다.

 

 

[수행승]

“참으로 야차여, 그대는 나를 알고

나를 가엾게 여기네.

아차여, 그대가 그러한 행위를

볼 때 마다 다시 말해주시오. (S9:14)

 

 

여기서 야차는 하늘사람을 말한다. 쉽게 부르기 위한 명칭이다. 수행자는 하늘사람의 충고를 받아 들인다.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이 도둑질이듯이, 아름다운 꽃향기에 이끌려 매일 코를 댄 것에 대하여 사실상 자신이 향기도둑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하늘사람에게 아차여, 그대가 그러한 행위를 볼 때 마다 다시 말해주시오라며 계속 충고해 줄 것을 요청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청정한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디.

 

수행승이여, 그대가 스스로 알아야 하네

 

수행자의 요청에 하늘사람은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하늘사람은 수행자가 자신도 모르게 악하고 불건한 행위를 할 때 마다 나타나서 충고해 줄까? 그런 기대는 무너진다. 이어지는 시에서 하늘사람은 다음과 같이 시로서 역시 충고한다.

 

 

[하늘사람]

“우리는 그대에게 의지해 살지 않고

또한 당신에게 고용된 하인도 아니네.

행복한 세계로 가는 길을,

수행승이여, 그대가 스스로 알아야 하네. (S9:14)

 

 

하늘사람은 수행자의 요청을 거절한다. 수행자가 자신도 모르게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를 할 때 마다 보아 달라고 하였으나 거절한다. 이유는 하늘사람 자신이 고용된 하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자에게 의지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가여운 마음이 들어서

 

하늘사람이 수행자를 충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불쌍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청정한 삶을 목표로 하는 자가 꽃향기에 취하여 코를 대는 행위를 보고서 가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가여운 마음이 들었을까?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수행자가 향기가 마음에 든다면, 다음 날도 다시 꽃냄새를 맡게 되고, 그러한 마음이 자라 탐욕이 되고 갈애(tanha)가 된다. 향기에 대한 갈애에 사로 잡히게 되는데, 갈애는 해탈에 장애가 된다.(Srp.I.297-298)”라고 설명되어 있다.

 

한마디로 갈애이다. 꽃냄새를 맡는 것 까지는 좋았으나 이후 매일 지나가는 길에 맡는 다면 이는 갈애에 해당된다. 갈애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인 갈증을 말한다. 이런 갈애가 강화되면 집착으로 발전된다. 이는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라는 정형구로 알 수 있다.

 

대상을 보았을 때 세 가지 느낌이 일어난다. 즐거운느낌과 괴로운 느낌과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덤덤한 느낌이다. 꽃을 보았을 때 예쁘다라고 느꼈다면 즐거운 느낌이 생겨난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즐거은 느낌을 즐기려 한다. 그리고 오래 계속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갈애이다. 수행자가 향기에 취해서 오늘도 내일도 꽃에 코를 대려 한다면 이는 즐거운 느낌을 넘어서 갈애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며라는 정형구로서도 알 수 있다.

 

갈애가 더욱 강화 된 것이 집착이다. 한번 집착하게 되면 떨어지지 않는다. 갈애는 결국 새로운 태어남을 야기하고 만다. 이는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라는 정형구로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하늘사람은 가여운 마음이 들어 수행자에게 향기도둑이라 말하면서 충고한 것이다.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하는 꽃의 향기

 

지금 사무실에는 행운목꽃향기가 진동한다. 창문을 열어 환기시켜야 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런 향내는 말이나 문자로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직접 맡아 보지 않는 한 그 향내가 어떻다고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행운목은 꽃보다 향기이다.

 

 

 

 

 

꽃을 보는 것도 희유한 일이지만 향기를 맡아 보는 것 역시 희유한 일이다. 그런 향내는 밀폐된 공간에 가득 퍼져 있다. 그러나 노지에서 향내는 모든 공간에 퍼져 나가지 않는다. 바람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지에서 향내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한다.

 

들이나 산, 공원 등에서 핀 꽃에는 향기가 있다. 특히 봄에 피는 라일락향기는 매우 강렬하다. 그렇다고 하여 사방에서 향기가 골고루 퍼지는 것이 아니다. 바람을 타기 때문이다. 아무리 라일락향기가 좋아도 바람 반대편에 있으면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모든 꽃의 향기는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바람을 거슬러 가는 계()의 향기

 

그러나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은 향기가 있다. 그것도 바람을 거슬러 간다. 그런 향기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의 향기이다.

 

청정한 삶을 살아 가는 자에게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그것은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듯 하기 때문이다. 반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찌들어 사는 자에게는 향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냄새는 나긴 날 것이다. 다만 악취를 풍길 뿐이다. 그래서일까 한사람의 사기꾼이 출현하면 이 세상이 혼탁해지지만, 한사람의 도인이 출현하면 이 세상에 향내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탐욕과 성냄이 소멸된 도인에게는 독특한 향내가 남을 말한다. 이를 계의 향기라 한다.

 

사방으로 퍼져 가는 계향(戒香)

 

청정한 삶을 사는 자에는 계의 향기가 있다. 그런 계향(戒香)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래서 세상을 청정하고 맑게 만든다. 그런데 계향의 특징은 바람도 거슬러 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라일락향내가 좋아도 바람을 거스를 수 없지만 청정한 수행자의 계향은 바람을 거슬러 사방에 퍼져 나간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한다.

전단향도 따가리향도
말리까향도,

그러나 참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니

참사람의 향기는
모든 방향으로 퍼져 간다.
(dhp54)

 

 

 

 

 

2014-11-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