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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과 돌인의 침묵, 유시민님의 글쓰기 강연을 듣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 29. 12:27

 

 

도인과 돌인의 침묵, 유시민님의 글쓰기 강연을 듣고

 

 

 

매일 글쓰기를 하다 보니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매일 하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 이제 글쓰기는 일상이 되었다. 우리 속담에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개운치가 않다. 그래서 요즘에는 블로그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일반화 되어 있는 카톡으로도 범위를 확대 하였다.

 

몇 개의 카톡방이 있어서 알고 지내는 이 또는 생각을 함께 하는 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러나 글쓰기의 토대는 여전히 블로그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처음에 어떻게 글을 시작하느냐는 것이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듯이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원활하게 진행된다. 그렇다고 하여 글쓰기가 자신의 생각을 모두 담아 내는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 인용하기 때문이다. 주로 경전을 근거로 하여 글을 쓰기 때문에 글쓰기가 매우 수월하다.

 

매일 글쓰기를 하다 보니 유리한 점이 많다. 업무적으로 보았을 때 이메일 문구를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된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이메일 문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받아 들이는 사람의 마음도 달라질 것이다. 또 하나는 카톡방에서 소통할 때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한계를 갖고 있어서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속된 말로 눈팅만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매일 글쓰기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 쉬운 것이다.

 

말하는 것처럼 쓴 글이 잘 쓴 글입니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재미 있는 강연을 들었다. 유튜브에 실려 있는 유시민님의 글쓰기 강연이다. 팟캐스트방송 형식으로 방송되었는데, 정치인에서 작가로 변신한 유시민님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일부 녹취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말을 잘 하건 못하건 말은 다 합니다. 그래서 너 말할 줄 알아?”이런 말은 성립하지 않지만, “너 글 쓸 줄 알아?”이런 말은 성립하거든요. 사실 말과 글은 같은 거에요. 글을 쓸 때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글은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시나 소설 등 예술적 글쓰기는 지어내야 하나, 생활적 글쓰기는 짓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 거든요.

 

그러면 뭘 써야 합니까? 자기 생각을 쓰는 거에요. 나의 내면인 생각, 감정, 느낌을 표현하는 겁니다. 내면을 표현해야 인생이 즐겁습니다. 속에 뭐가 있는데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을 못하면 삶이 답답해지고 우울해져요. 우리인생은 어찌 보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과정이라 보면 되요. 그 때 음성으로 표현하면 말이 되고, 그것을 문자로 표현하면 글이 되는 거에요.

 

말과 글은 같은 거에요. 순서를 보면 먼저 말을 배우고, 그 다음에 문자를 깨우치고 글을 쓰기 시작해요. 말과 글의 관계에서 보면 같은 것인데, 말이 글보다 먼저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글을 쓰냐 하면 말하는 것처럼 글을 쓰는 거에요.

 

말 하듯이 글을 쓰면 그것이 제일 잘 쓰는 글이에요. 진짜 잘 쓴 글은 나도 쓰겠네이런 정도입니다.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쓰겠다라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글이 정말 잘 쓴 글입니다. 그러니까 말하듯이 쓰면 된다그렇게 생각하면 되요.

 

그렇지 않고 자꾸 지어내야 된다고 생각하거나 특별히 방법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할 수록 글쓰기가 어려워집니다. 모니터를 켜면 첫문장 쓰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런데 말하라고 하면 첫문장을 다 말한다고요. 그런 것처럼 말이 글보다 우선이다’ ‘말하는 것처럼 글을 쓴다이렇게 생각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말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 되요. 

 

한국사람들이 왜 글쓰기를 힘들게 느낄까요? 그렇게 살지 않아서 그래요. 글은 나의 내면을 문자로 표현 하는 것인데, 내면이 없으면 쓸 말이 없어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해야 하는데 잘 안되요. 내면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 글이기 때문에 내면이 정돈 되어 있어야 정돈된 글이 나오는 거에요.

 

엉터리로 사는 사람은 아무리 글쓰기 훈련을 해도 논리적은 글을 쓰기가 어려운 거에요. 평소에 자기 이익중심으로 사는 사람에게 갑자기 논리적인 글을 쓰라고 하면 되게 어려운 것이죠.

 

자기가 쓴 글 중에 자기가 쓴 글은 거의 없어요. 직업적 글쟁이라도 내가 생각한 것은 일퍼센트도 안되요. 내가 쓴 모든 글의 내용은 어디에서인가 받은 거에요. 다 사회적으로 습득한 겁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아는 게 많아야 되요. 그 다음에 좋은 글로 써진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그거 하지 않고 글 잘 쓰겠다?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에요.

 

우리 속담 중에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침묵이 금일 때가 있어요. 침묵을 지키는 쪽이 오히려 나을 때, 알지만 알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때, 그럴 때 침묵이 금이 될 수 있죠. 그런데 몰라서 이야기하지 못할 때 침묵은 이죠.

 

사람들이 다 침묵하고 있을 때 대게 저 사람이 무엇을 알고 할 이야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적절한지를 따져 본 다음에 침묵을 지키는 것, 이것은 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뭔 말을 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서 말할 것이 없을 때, 그래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그것도 금으로 인정해 주면 그 사회는 똥통으로 가는 거에요.

 

침묵은 금이다이런 말은 들어 맞는 경우가 백에 하나도 안됩니다. 백에 아흔 아홉은 몰라서 침묵하고 있다고 보면 되요.

 

(정치카페테라스 13편 - "눈을 뜨자!" (유시민 작가) , 유튜브 2014-01-14)

 

 

 

Pen

 

 

유시민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하는 것처럼 글을 쓴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글을 잘 쓰고 싶거든 말하듯이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고로 잘 쓴 글은 저 정도면 나도 쓰겠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하듯이 글을 쓰는 것이라 한다.

 

알면서 침묵을 지키는 도인

 

그런데 말하듯이 글을 쓰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논리적으로 사고 해야 하고 좋은 글을 많이 접해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처럼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알면서도 안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몰라서 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후자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몰라서 표현을 못하는 것이다.

 

알면서도 표현을 하지 않는 경우 침묵이 금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초기경전에서도 알 수 있다.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쓸데없는 천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들어서 안온해지는

한 마디의 말이 낫다.”(Dhp100)

 

 

사람들은 말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는 25천단어를 이야기해야 하고, 남자는 만5천단어를 말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방송에서 어느 신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잡담이기 쉽다.

 

잡담은 아무 의미가 없는 쓸데 없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느니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천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들어서 안온해지는 한 마디의 말이 낫다.(Dhp100)”라 한 것이다. 물론 수행의 측면에서 한 말이다.

 

게송에서 안온해지는 한 마디가 있다. 주석에 따르면 열반과 관계되고, 오온, 십이처, 십팔계, 오근, 오력, 사념처 등이라 하였다. 한마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쓸데 없이 깔깔깔거리며 재잘재잘하는 것 보다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만 들려 주어도 안온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고귀한 침묵이라 볼 수 있다.

 

몰라서 침묵을 지키는 돌인

 

슬기롭고 현명한 자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함부로 표현을 하지 않는다. 특히 쓸데 없는 잡담을 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이야기 등 세상사람들에게서 회자 되는 가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알면서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은 꼭 할말만 하고 침묵을 지킨다.

 

그런데 침묵을 지키는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인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글쓰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유시민님의 글에 따르면 속된 말로 과 같다고 하였다. 알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몰라서 침묵을 지키면 도인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도인이 아니라 돌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도인과 돌인의 차이는 자 밭침 차이에 불과 하지만, 둘 다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돌인은 어떤 경우를 말할까? 이에 대하여 법구경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혼미하고 무지한 자가 침묵한다고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울로 다는 것처럼,

현명한 님이라면 최선을 다한다.”(Dhp268)

 

 

침묵을 지키는 것은 대게 몰라서 그렇다. 아는 것이 없으니 말을 할 수도 없고 글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마치 무언가 아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성자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성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구경에서는 혼미하고 무지한 자가 침묵한다고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 하였다. 이 구절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길의 지혜를 갖춘 자를 성자라 하는데, 여기서 성자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로 침묵의 의미로 해석된다. 혼미한 자는 공허한 자, 가치 없는 자이다. 무지한 자는 어리석은 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는 침묵을 한다고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침묵한다고 성자라 한다면, 가치가 없는 자, 지혜없는 자가 성자가 될 것이다.(DhpA.III.395)

 

 

혼미한 자나 무지한 자는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를 하기 쉽다. 반면에 현명한 자는 착하고 건전한 행위를 할 것이다. 같은 침묵이라도 무지한 자의 침묵은 공허하고 가치가 없는 것이다. 반면 현명한 자의 침묵은 고귀한 침묵이다. 이렇게 침묵도 침묵 나름이다.

 

게송에 따르면 저울로 다는 것처럼 현명한 님이라면 최선을 다한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무슨 뜻일까? 주석에 따르면 한 쌍의 저울 팬을 갖고 있는 자가 적절한 무게 이상이 되면 빼내고 그 이하가 되면 채워 넣듯 최선을 다한다.”라고 되어 있다. 저울질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악하고 불건전한 것은 빼내고, 착하고 건전한 것은 채워 넣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악하고 불건전한 것은 무게가 넘치기 때문에 빼내는 것이고, 착하고 건전한 것은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채워 넣는 것이다. 이렇게 저울질을 하다 보면 결국 착하고 건전한 것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혼미하고 무지한 자가 침묵한다고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 하시고, 이어서 저울로 다는 것처럼, 현명한 님이라면 최선을 다한다.”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말을 할 때는 해야 하고 글을 쓸 때는 글을 써야

 

침묵을 지켜야 할 때는 침묵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마디도 하지 않거나 단 한줄의 글도 쓰지 않는다면 도인 아니면 돌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도인의 경우 1프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99프로는 몰라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몰라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냥 침묵만 지키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돌인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을 할 때는 해야 하고 글을 쓸 때는 글을 써야 한다.

 

 

 

20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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