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뭐? 빠알리어가 방언이라고? 빠알리경전은 부처님의 원음이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5. 2. 8. 16:10

 

? 빠알리어가 방언이라고? 빠알리경전은 부처님의 원음이다

 

 

 

댓글을 하나 받았는데

 

댓글을 하나 받았다. 글이라는 것이 원래 부정문아니문 긍정문인데 댓글을 보니 부정문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악의가 가득찬 부정문이다. 충고나 권고가 아닌 비난이나 비방글이다. 전문을 공개 하면 다음과 같다.

 

 

배우지 못해 어리석은 진흙속의 연꽃과 그의 아첨꾼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한다.
소위 가똑똑이, 헛똑똑이란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민중어'로 설법하셨다고 하면서 마치 계급간의 역차별을 선도하신 듯이 지껄이고 있기 때문이다.


쭐라박가-율장소품 / 전재성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p.739-742 에 보면.....


야멜리와 떼꿀라는 비구가 와서 부처님의 말씀을 운율적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바꾸겠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그 자신의 언어>로 배우는 것을 허용한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그 자신의 언어>가 무엇을 가르키는가? 에 대한 번역자 전재성 박사님의 견해를 보면

p.740
아래 주석 508)


1. R.Davids
Oldenberg는 그 자신의 언어를 <각 비구 혹은 불자들의 출신지방의 방언>으로 해석한 반면에
2. Buddhaghosa
Horner, 그리고 Geiger <마가다어(Magadha)>를 가르킨다고 다르게 해석하였다.


"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스승 스스로가 선언한 것 이외에는 다른 형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도 지성들의 가르침의 전승에서는 모두 공통되는 일이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당시에 벌써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가능한 한 내용이나 형식에 관해서 정통적으로
전승시키려고 생각했다.
열반한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외적인 형태는 마가다(Magadha), 즉 빠알리(Pali)어였다."


결국 전재성 박사님의 견해로는 1번 학자들의 해석이 틀렸고, 2번 스님과 학자들의 해석이 맞다고 생각한다...
는 이야기이다.


부처님도 외국인이시다. 오늘날로 치면 한국에 불법체류하고 있는 인도.동남아 노동자들과 혈연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으시다는 이야기이다. 외국인이 싫고, 외국어가 싫으면서 왜 불교를 믿나?

그냥 너희들의 슨상님에게나 귀의하면 될 것을.... 이 배우지 못해 어리석은 축생들아!

 

(율원)

 

 

초기불교와 관련하여 니까야가 뭐꼬?(2015-02-06)”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부처님의 원음이 소개 된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까지 니까야라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식으로 작성된 글이다. 그러면서 부처님이 어느 언어로 설법하였는지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런데 댓글을 받고 보니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이 배우지 못해 어리석은 축생들아!”라며 불선심을 자극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길레

 

글은 그 사람의 인격과 같다. 또 얼굴과도 같다.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글 등으로 남겨진 흔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욕설을 밥먹듯이 한다면 그 사람의 얼굴이고 그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댓글을 보면 배우지 못해 어리석은 진흙속의 연꽃이라 든가, “가똑똑이,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다. 또 올린 글에서 민중어라는 말을 꼬투리삼아 계급간의 역차별을 선도하신 듯이 지껄이고라 하였다. 대체 이런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거의 대부분 익명으로 소통하는 공간이 인터넷이다. 그러다 보니 비난과 비방, 심지어 욕설이 난무하기도 한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감추고 마음껏 배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명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도 한다. 이름을 지을 때 의미 없는 이름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에서는 의미 없는 필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점하나(.) 라든가 점 둘(..) 등과 같은 코믹하고 무성의하게 보이는 필명이 매우 많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흔적이 남는다. 익명으로 올렸다고 하여도 필명은 남는다. 댓글을 올린 이의 필명을 보니 율원이라 되어 있다. 율원하면 사찰이 연상된다.

 

우리나라 큰 사찰에는 강원 이나 율원이 있다. 특히 율원의 경우 계율을 공부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율장을 전문으로 공부한 스님에 대하여 율사라 한다. 그런데 댓글의 필명이 율원이다. 이로 보아 율원에서 공부하는 분이 올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구나 율장소품의 해당 페이지 까지 언급하며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것을 보면 율장에 대하여 많이 아는 이처럼 느껴진다.

 

부처님은 민중어로 설법하셨다

 

글을 쓸 때 경전에 근거하여 글을 쓴다. 또 인용된 것도 논문이나 기사 등 알려진 사실에 근거한다. 올린 글에서 부처님이 민중어를 사용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댓글을 쓴 이는 이 민중이라는 말을 꼬투리 삼아 부처님이 '민중어'로 설법하셨다고 하면서 마치 계급간의 역차별을 선도하신 듯이 지껄이고 있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마치 계급투쟁을 선동 하고 있다는 투이다.

 

부처님은 부처님 당시 민중어로 말씀 하시고 교화하였다. 그 때 당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가 마가다어이었다. 이에 대하여 빠알리어와 테라와다의 서부인도기원설, 인도의 웃자인(Ujjain, Ujjeni, 웃제니) 찾아서(2010-08-2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올린 글에서 민중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는 미즈노 고오겐(水野弘元)’의 ‘빠일리어 문법’에 실려 있는 글을 참고 하였기 때문이다.

 

미즈노 고오겐에 따르면 책에서 빠알리어 성립단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책에 설명되어 있는 것중의 일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빠알리라는 말은 테라와다 불교의 성전 그 자체를 의미한다. 3차 결집후에 테라와다가 불교의 정통으로 공인된 후 경장과 율장과 논장으로 구성된 삼장이 완성 되었는데, 이 삼장이 빠알리어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빠알리라는 말 자체가 삼장을 의미 하는 것이다.

 

둘째, 빠알리어는 기원전 6세기에서 부터 기원후 11세기 경까지 인도에서 사용된 인도 아리안의 ‘민중어’인 쁘라끄릿뜨(Prakrit)어의 일종이다. 부처님 당시에 이 민중어로 설법한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원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언어라 볼 수 있다.

 

(미즈노 고오겐(水野弘元)의 ‘빠일리어 문법’에서)

 

 

미즈노 고오겐은 부처님이 부처님 당시에 사용하던 언어가 마가다어라 하였다. 이를 다른 말로 쁘라끄릿뜨(Prakrit)라 하는데 빠알리어도 이에 속한다고 하였다. 다만 인도대륙이 넓어서 지방마다 약간씩 발음이 다르긴 하지만 중심언어는 마가다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당시 일반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라 하여 민중어라 한 것이다.

 

일아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고대인도에서는 크게 두 부류의 언어가 있었다. 민중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지배계층인 사용하는 언어이다. 그렇다고 하여 완전히 다른 언어는 아니다. 같은 계통의 언어이지만 서로 다른 계급에서 사용하다 보니 차별화 된 것이다.

 

브라만들은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였다. 미즈노 고겐은 산스크리트어의 특징에 대하여 인위적으로 규정된 완성어이자 인공어이고, 잘 다듬어진 아어(雅語)이고 또한 표준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공문서를 보는 것 같은 것이고 또한 잘 꾸며지고 가꾸어진 세련된 것이다.

 

부처님은 지배계층의 언어로 말씀 하시지 않으셨다.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는 일반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언어로 말씀 하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아스님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빠알리어는 구전으로 전해진 부처님의 가르침인 방언이 섞인 것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한 언어를 가리키지 않는다. 인도는 방대하기 때문에 부처님 시대에도 각 지역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다. 부처님의 활동지역에서 사용된 언어는 마가다국을 중심으로 사용된 마가디(Magadhi)인데 빠알리어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빠알리어는 초기 방언에 기초하여 세월과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표준화 되어 온 언어라 할 수 있다.

 

(일아스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부록, 743p)

 

 

일아스님의 책에 따르면 부처님은 마가다어로 설법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마가다어와 빠알리어는 어떤 관계일까? 그것은 형제관계라 볼 수 있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빠알리어의 원류는 어디인가?

 

마가다어는 부처님 당시 십육대국 중에 가장 강성한 마가다국을 중심으로 통용된언어이다. 마가다국은 오늘날 갠지스강 남쪽의 비하르주에 있었다. 그런데 빠알리어가 발생된 지역은 서부인도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명을 말한다면 오늘날 웃자인(Ujjain)’지역에 해당된다. 부처님 당시에는 십육대국 중의 하나인 아완띠(Avanti)국의 수도 웃제니(Ujjeni)를 말한다. 이를 지도르 보면 다음과 같다.

 

 

 

고대인도 십육대국(Ancient_india, 위키백과)

 

 

지도를 보면 부처님 당시 십육대국의 위치가 표시 되어 있다. 동남쪽에 가장 강성하였던 마가다(Magadha)가 있고, 가장 서쪽에 아완띠(Avanti)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완띠국의 수도인 웃제니를 중심으로 사용되던 언어가 빠알리어 원류라 한다.

 

빠알리어와 3차 결집

 

부처님당시 십육대국에서 사용되던 언어는 달랐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상도말, 전라도말, 제주도말, 함경도 말이 약간씩 다르듯이 각자 지방어를 사용한 것이다. 빠알리어가 주로 사용되던 지역도 일종의 지방어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빠알리어가 지방어로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없다. 빠알리어가 어떤 한 언어를 가리킨다거나 어느 한 지역의 언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학자들 간의 이견이 있지만 표준화된 언어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서쪽 변방에 사용되던 빠알리어가 경전에서 표준어가 되다시피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마우리와 왕조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

 

고대인도에서 전륜성왕이라 불리우는 아소까대왕은 마우리와 왕조의 세 번째 황제이다. 그런데 마우리라왕조의 발상지가 바로 빠알리어가 사용되던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빠알리어 경전이 주류가 되었는데, 이는 아소까대왕 당시 3차 결집에 따른 영향도 크다.

 

아소까대왕은 3차 결집을 주도 하였다. 주로 서북인도 장로 출신들이 주도로 결집이 이루어졌다. 3차 결집으로 율장, 경장, 논장으로 이루진 삼장이 갖추어지짐에 따라 전세계에 담마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스리랑카이다. 특히 스리랑카의 경우 아소까대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가 삼장을 전달하였다.

 

스리랑카에 전승된 삼장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전승되어 왔다. 그래서 오늘날 스리랑카에 대하여 테라와다의 종주국이라 부른다. 그런데 스리랑카로 전승된 삼장은 공인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소까대왕 당시 3차 결집의 내용이 그대로 전승되어 내려 왔기 때문에 빠알리 삼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전해져 온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민중어를 사용한 이유는?

 

오늘날 보는 빠알리 니까야는 빠알리어로 된 것이다. 원래 발생지가 인도 서부 웃자인 지역에서 발생된 언어로 보고 있지만 3차 결집에 따라 표준화 되고 공인 되었으므로 부처님의 원음으로 보고 있다. 그런 빠알리어는 민중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지배계층의 언어이자 표준어라 볼 수 있는 산스크리트를 사용하지 않고 민중들이 사용하는 민중어를 사용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일아스님은 산스크리트어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부처님 당시의 사제 계급의 언어, 상류층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비구가 부처님께 여러 지방에서 온 비구들이 자신의 방언을 사용하여 고귀한 부처님 말씀을 추락시킨다고 하면서, 고급스런 싼스끄리뜨어를 사용하시면 좋을 것이라 말씀드리자 부처님은 그를 나무라시며 자신의 언어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가르침에 상류층의 언어를 사용치 않으셨다.

 

(일아스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부록, 743p)

 

 

부처님의 지배계층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지배계층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대다수 민중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말씀 하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부처님이 방언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아스님은 부처님은 그를 나무라시며 자신의 언어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라 하였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경이 있다.

 

지역이 다르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같이 땅덩어리가 작은 나라에서도 지방마다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리고 뜻이 다르다. 함경도 사람과 제주도 사람이 대화한다면 말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2006년도에 중국에 비즈니스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2주간 동관(東莞)’에 머물렀다. 홍콩 바로 위에 경제특구 심천이 있고, 심천 바로 위에 동관이 있는데, 동관시는 공업도시이다. 마치 세계의 공장처럼 미국이나 대만, 한국 등의 현지공장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곳에서 머물면서 중국인 중간관리자와 짧은 영어로 소통하였다.

 

중국인 중간관리자와 TV를 보았다. 중국의 TV에서는 공통적으로 한문으로 된 자막이 나온다. 물어 보니 각 지방마다 말이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표준어로 된 자막이 반드시 서비스 된다고 한다.

 

동관은 광동성에 속해 있다. 중국의 남쪽에 해당된다. 거리의 가로수에 야자수가 많아 아열대지역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중간관리자는 중국중부의 호북성의 우한출신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중간관리자는 광동어를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TV방송에서 제공되는 한문자막으로 내용을 파악할 뿐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표준어라 볼 수 있는 북경어로 하면 소통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의 교양인들이 사용하는 표준어를 사용하면 모두 소통된다. 고대 인도 역시 마찬가지 이었을 것이다.

 

지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통하기 힘들어 진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보편어는 있기 마련이다. 부처님 당시 고대인도에서 보편어는 마가다어 이었다. 부처님은 마가다어로 말씀 하시고 이 마가다어를 표준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지방어로 바꾸지 말고 보편어를 사용하라고 하였다.  

 

지방어를 고집해서는 안된다

 

보편어와 지방어에 관련된 이야기가 맛지마니까야 평화에 대한 분석의 경(M139)’에 실려 있다. 이에 대하여 ‘수를 사랑하라? “자신을 위해 남을 해쳐서는 안되리”(2014-10-27)’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빠알리니까야 한글번역서에서 비속어가 주자 나온 것을 보고 글을 쓴 것이다. 경에서 부처님은 지방어를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지방어를 고집하지 말아야 하고 보편어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라고 가르친 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하면 지방어를 고집하고 보편어를 침해하는 것인가? 여러 지방에서 같은 것을 두고 접시라고 여기고, 그릇이라고 여기고, 사발이라고 여기고, 받침이라고 여기고, 팬이라고 여기고, 옹기라고 여기고, 컵이라고 여기고, 대야라고 여긴다. 여러 지방에서 각각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지 각각 그것에 대하여 집착하여 고집하여 ‘이것만이 옳고 다른 것은 틀리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한다면 지방어를 고집하고 보편어를 침해하는 것이다.

 

(평화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39,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분명하게 지방어, 즉 사투리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대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 보편어, 즉 표준어를 사용하라고 권장한 것이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가르침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처님 당시 지방에서 온 수행승들도 많았는데 이들이 그들의 지방어만을 고집한다면 가르침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경에서는 보편어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지방어, 즉 사투리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표준어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 때 당시 표준어는 마가다어임을 알 수 있다.

 

운율적 언어로 바꾸겠다고

 

그런데 맛지마니까야에 실려 있는 이야기가 율장에도 실려 있음을 알았다. 이는 댓글을 준 이가 율장소품의 페이지 까지 언급해 가며 설명해 놓은 것을 보고 알았다. 지방어와 관련하여 율장소품을 찾아 보았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Tena kho pana samayena yameakekuā nāma [yameutekulā nāma (sī.), meṭṭhakokuṭṭhā nāma (syā.)] bhikkhū dve bhātikā honti brāhmaajātikā kalyāavācā kalyāavākkaraā. Te yena bhagavā tenupasakamisu, upasakamitvā bhagavanta abhivādetvā ekamanta nisīdisu. Ekamanta nisinnā kho te bhikkhū bhagavanta etadavocu – “etarahi, bhante, bhikkhū nānānāmā nānāgottā nānājaccā nānākulā pabbajitā. Te sakāya niruttiyā buddhavacana dūsenti. Handa maya, bhante, buddhavacana chandaso āropemā” ti.

 

 

한때 야멜루와 떼꿀라라는 수행승들은 형제로서 바라문 가문의 태생인데, 음성이 아름답고, 대화가 아름다웠다. 그들은 세존께서 계신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은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야멜루와 떼꿀라]

세존이시여, 여기 수행승들이 이름을 달리하고 성을 달리하고 태생을 달리하고 가문을 달리하여 출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깨달은 님들의 말씀을 자신의 언어로 오염시킵니다. 원컨데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깨달은 님들의 말씀을 운율적 언어로 바꾸겠습니다.

 

(Daya-삼림, 5장 사소한일의 다발, 율장소품 739p, 전재성님역)

 

 

부처님 당시 출가자들의 분포는 다양하였다. 계층별로 다르고 지역별로 달랐다. 특히 지역이 다른 경우 해당지역의 말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해당지역의 언어로 바꾸어 교화 하였을 것이다. 그런 출가자 중에는 사성계급의 정점에 있었던 바라문 출신도 있었다는 것이다.

 

바라문 출신들은 어렸을 때부터 베다를 배웠다. 베다와 관련하여 맛지마니까에서 세 가지 베다와 함께 그 어휘론, 의궤론, 음운론, 어원론 그리고 다섯 번째로 고전설에 통달했으며, 관용구에 능하고, 문법에 밝고, 세간의 철학과 위대한 사람의 특징에 숙달했다.(M91)”라는 문구가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바라문들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수학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 당시 출가자중에 바라문출신들은 배운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사용하는 말과 언어 역시 품위있고 격조 높았을 것이다. 그런데 출가자중에는 노예 출신도 있고 먼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먼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들끼리 말하였을 때 다른 사람이 알아 듣기 힘든 지방어로 말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학식있는 바라문들은 언어의 오염으로 본 것이다.

 

출가자들이 태생도 다르고 출신지역도 달랐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때 당시 가장 많이 통용되었던 마가다어로 하였다. 그러나 많이 배운 바라문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운율(chandaso)’로 되어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언어, 즉 산스크리트어로 바꾸고자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 저희들은 깨달은 님들의 말씀을 운율적 언어로 바꾸겠습니다. (Handa maya, bhante, buddhavacana chandaso āropemā)라 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뭐라고 말씀 하셨을까?

 

바라문의 요청을 허용하지 않은 부처님

 

부처님은 바라문의 요청을 허용하지 않았다. 율장소품에 따르면 존귀하신 부처님께서는 견책했다. (Vigarahi buddho bhagavā)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kathañhi nāma tumhe, moghapurisā, eva vakkhatha – ‘ handa maya, bhante, buddhavacana chandaso āropemā ’ ti. Neta, moghapurisā, appasannāna vā pasādāya…pe… vigarahitvāpe… dhammi katha katvā bhikkhū āmantesi”

 

[세존]

어리석은 자들이여, 어찌 그대들은 원컨데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깨달은 님들의 말씀을 운율적 언어로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것은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청정한 믿음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를 더욱더 청정한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것은 오히려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불신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 가운데 어떤 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Daya-삼림, 5장 사소한일의 다발, 율장소품 740p,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산스크리트어로 바꾸는 것을 분명하게 반대하였다. 그것도 최대의 욕이라 볼 수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여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산스크리트어로 바꾸었을 때 뜻이 왜곡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민중어로 설하신 가르침을 바라문의 요청대로 운율로 된 산스크리트어로 바꾸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운율로 된 문장은 시적 형식으로 된 문장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맛지마니까야 모든 번뇌의 경(M2)에서 번뇌를 소멸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였는데, 이를 게송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아마 문장을 시어에 맞게 대폭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왜곡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불신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 가운데 어떤 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다라 하신 것이다.

 

부처님이 새로 만든 계율

 

부처님은 산스크리트어로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계율을 만들었다.

 

 

“na, bhikkhave, buddhavacana chandaso āropetabba. Yo āropeyya, āpatti dukkaassa. Anujānāmi, bhikkhave, sakāya niruttiyā buddhavacana pariyāpuitu” nti.

 

[세존]

수행승들이여, 깨달은 님들의 말씀을 운율적 언어로 바꾸지 말라. 바꾸면 악작죄가 된다. 수행승들이여, 깨달은 님들의 말씀을 그 자신의 언어로 배우는 것을 허용한다.”

 

(Daya-삼림, 5장 사소한일의 다발, 율장소품 740p,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바라문 출신들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계율을 만들었다. 출가한 수행자들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계율로서 운율적 언어로 바꾸지 말라라 하였고, 어기면 악작죄(dukkaassa)’가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깨달은 님들의 말씀을 그 자신의 언어로 배우는 것을 허용한다. (Anujānāmi, sakāya niruttiyā buddhavacana pariyāpuitu)라 하였다.

 

방언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

 

부처님이 새로 만든 계율에서 깨달은 님들의 말씀을 그 자신의 언어로 배우는 것을 허용한다.”라 하였다. 이는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다음과 같이 각주하였다.

 

 

Anujānāmi, bhikkhave, sakāya niruttiyā buddhavacana pariyāpuitu : 여기서 두 수행승은 부처님에게 수행승들이 다양한 지방의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방언으로(sakāya niruttiyā) 부처님 말씀을 왜곡시킨다고 불평을 털어 놓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부처님 말씀을 범어나 범어의 운율로(chandaso)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이 말을 한 것이다.

 

리스 데이비드와 올덴베르크는 이 문장을 형제들이여, 나는 깨달은 이들의 말을 각각 그 자신의 방언으로 표현하도록 허용한다.’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붓다고싸와 호너는 이와 다르게 해석했다. 그리고 가이거는 이 문장을 거듭 숙고한 뒤 붓다고싸의 해석에 따라 나는 깨달은 님의 말을 자신의 언어(부처님이 사용한 마가다어)로 배우도록 허용한다.’라고 번역했다.

 

가이거에 따르면, 이 율장의 소품에서 처음에는 그때그때의 방언에 따른 설교의 문제는 두 수행승에게나 부처님에게서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 단지 범어로 설법을 해야 하는가만이 문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결정적으로 부정적인 형태로 이를 거절하고 다시 부정사를 사용하지 않고 그러한 처방을 내렸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 스승 스스로 선언한 것 이외에는 다른 형태가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도 지성들의 가르침의 전승에서는 모두 공통되는 일이다.

 

부처님이 살아 있을 당시에 벌써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가능한 내용이나 형식에 관해서 정통적으로 전승시키려고 생각했다. 열반한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외적인 형태는 마가다어, 즉 빠알리어이었다.

 

(율장소품 508번 각주, 전재성님)

 

 

부처님은 그 자신의 언어로 배우는 것을 허용한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 대하여 많은 해석이 있다. 먼저 그 자신의 언어라는 말은 sakāya niruttiyā’를 번역한 것이다.

 

sakāya에서 sakā‘one's own, 自分の, 自己の의 뜻으로 우리말로 자신으로 번역할 수 있다. Niruttiyā‘nirutti + iyā’의 형태이다. Nirutti‘language; philology, , 辭詞, 言語의 뜻으로 우리말로 하면 또는 언어가 된다. 그래서 sakāya niruttiyā’의 뜻은 자신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언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자신의 방언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출가자의 출신지역 언어도 자신의 언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지방어를 사용하여 가르침을 전달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맛지마니까야에서 어떻게 하면 지방어를 고집하고 보편어를 침해하는 것인가?”라고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부처님이 각 지방의 방언으로 가르침을 전달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본다면 가이거가 해석한대로 나는 깨달은 님의 말을 자신의 언어(부처님이 사용한 마가다어)로 배우도록 허용한다.”라는 말이 맞다.

 

부처님은 민중들이 사용하는 마가다어로 설법하였다. 그리고 산스크리트어로 변형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는 율장에서 부처님이 운율적 언어로 바꾸지 말라라고 단호하게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지방어로도 변형해서도 안된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전재성님의 각주에서 표현 되어 있듯이 부처님 말씀이 스승 스스로 선언한 것 이외에는 다른 형태가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번 결정된 사항은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고대인도에서 전승되어 온 가르침의 특징이라 한다.

 

아가마(아함) 경전은 왜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졌을까?

 

부처님은 산스크리트어로 변형하지 말라고 율장에서 분명히 말씀 하셨다. 그럼에도 후대 사람들은 산스크리트어로 변형하였다. 그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아함경이다. 그렇다면 아함경은 어떻게 하여 생겨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일아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싼스끄리뜨어는 상류계층의 언어이며, 브라흐민(제관)의 언어였다. 부처님은 평민들의 언어인 마가다어로 가르쳤다. 불교의 가장 큰 지원자였던 아소까왕과 그 후대의 마우리야 왕조가 무너지고 뿌샤미뜨라(Pusyamitra: 기원적 187-151)가 슝가왕조를 세웠다. 그는 브라흐민 출신으로 그 동안 기를 펴지 못하던 브라흐민(사제계급)들이 득세하게 되었고, 왕은 베다의 옛날 의식인 말을 희생시키는 살생의 제사를 지내고, 수 많은 사원을 파괴하고 비구들을 학살하였다. 그리고 싼스끄리뜨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였다. 이때부터 부처님의 경전은 싼스끄리뜨어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구전된 부처님 가르침의 전승의 의미를 갖는 아가마(아함경으로 한역)경으로 제목하여 전해짐.

 

(일아스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부록, 744p)

 

 

일아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아함경의 원류는 빠알리경전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처음부터 민중어로 설법하였고 민중어로 전승되어 왔다. 이는 부처님이 산스크리트어로 옮기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우리야 왕조의 몰락과 함께 새로 브라만교를 기반으로 하는 왕조가 성립되자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아가마이다.

 

아가마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승되었고, 중국에서는 아함경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되었다. 그리고 한글로 번역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아함경은 부처님의 원음이라 볼 수 없다. 몇 번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왜곡된 것으로 본다. 이는 부처님이 산스크리트어로 바꾸는 것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불신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 가운데 어떤 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다라고 율장에서 분명하게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함경은 부처님의 원음이 아니다. 진정한 부처님의 원음은, 부처님이 민중어인 마가다어로 설법한 것이 기록 되어 있는 빠알리어경전이다.

 

빠알리어는 방언이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보수와 진보가 있다. 그런데 가장 보수적인 곳이 종교계이다. 종교계에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특히 교주가 한 말에 대하여 금과 옥조로 여기고 지키려 노력한다. 불교도 마찬가지 이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진리를 구전으로 전승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은 부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진리라고 생각하고 지켜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율장에 따르면 부처님은 산스크리트어로 바꾸지 말라고 하였다. 또 지방어로 바꾸지도 말라고 하였다. 이를 어기면 악작죄를 짓는다고 하였다.

 

마치 헌법조문 같은 율장에 쓰여 있는 것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였다면, 부처님이 마가다어로 말씀 하신 내용은 변형이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장로들의 모임을 뜻하는 가장 보수적인 테라와다에서 전승되어 왔다면 마가다어 그대로 전승되어 온 것이 오늘날 빠알리어에 실려 있는 부처님 말씀일 것이다. 그래서 전재성님도 각주에서 부처님이 살아 있을 당시에 벌써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가능한 내용이나 형식에 관해서 정통적으로 전승시키려고 생각했다라 하였고, 그런 결과물이 오늘날 보는 빠알리어라 하였다.

 

? 빠알리어가 방언이라고?

 

빠알리어와 관련하여 초기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불자들이 오해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빠알리어가 방언이라는 말이다.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1)

빠알리어는 산스크리트어의 방언으로 초기 불경 언어다.

(초기 불경 ‘디가니까야’ 한글 완역, 경향신문 2006-03-17)

 

2)

빠알리어(부처님 당시의 인도 지역 방언)로 된 초기불교의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연구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각묵스님 '초기불교 이해' 출간, 연합뉴스 2010-09-17)

 

3)

인도어족에서 산스크리트어가 표준어라면 빠알리어는 그야말로 사투리에 해당된다.

(부처님 가르침 원음(原音) 대로-각묵스님 《디가 니까야》 한글 완역, 주간불교, 2006-03-25)

 

 

첫 번째 글은 초불연 각묵스님이 가니까야를 완역하였을 때 나온 기사이다. 기사에서는 빠알리가 산스크리트어의 방언이라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전달된 것이다. 빠알리어는 한지역의 한언어를 말하기 보다 전승과정에서 마가다어로 말씀 하신 가르침을 표준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번째 글을 보면 각묵스님이 저술한 초기불교 이해에 대한 기사이다. 기사를 보면 빠알리어에 대하여 부처님 당시의 인도 지역 방언이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빠알리어는 인도의 어느 특정지역에서 사투리로 기록된 경전이라는 뜻이 된다.

 

빠알리어가 방언이라고 알려진 것은 각묵스님이 각종 강연과 기고문에서 그렇게 말하고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알리어 경전이 마치 고대 인도의 여러 방언 중의 하나가 용케 살아난 것처럼 알려졌다.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전재성님의 논문에 따르면

 

학자들에 따르면 빠알리어의 기원이 인도 서부 웃자인 지방이라 한다. 이로 보았을 때 인도 변방에 속하기 때문에 지방어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빠알리어 경전자체가 사투리로 전승되어 왔다는 것은 매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율장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재성님은 빠알리니까야를 처음 출간한 직후에 작성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빠알리 어의 기원에 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지만 마가다 어에 기초한 사교어로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서 오늘날의 영어처럼 널리 쓰인 보편어(lingua franca)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보편어에 기초해서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사용되고 있는 불교성전인 빠알리 대장경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기는 부처님께서 범어를 사용하지 않고 당시의 민중 언어인 지방어나 방언을 사용했다고 알고 있고 그러기 때문에 각 나라의 방언으로 번역되어 이해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으나 여기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이론이 존재한다. 율장의 소품1)에 보면, 두 수행승이 수행자들이 다양한 지방의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자의 방언으로(saka-ya niruttiya-) 부처님의 말씀을 왜곡시킨다고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범문시로(chandaso) 표현할 것을 제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그 표현을 두고 역사적으로 각 학자마다 달리 해석하면서 민중의 언어와 빠알리 어의 권위에 대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 문제가 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anuja-na-mi bhikkhave saka-ya niruttiya- buddhavacanam. pariya-pun.itum.

 

이 문장을 리스 데이비드(Rhys David)와 올덴베르크(Odenberg)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깨달은 이들의 말을 각각 그 자신의 방언으로 배우도록 허락한다(I allow you, O brethren, to learn the word of buddhas each in his own dialect).2)

 

그러나 붓다고사의 주석을 참고하여 가이거(W. Geiger)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깨달은 이의 말을 그 자신의 언어로 ―즉 부처님이 사용한 언어인 마가디 어로― 배우도록 허락한다(Ihr Bhikkhus, Ich verordne, das Buddhawort in seiner eigenen Sprache d.i. in der vom Buddha gesprochenen s.prache, der Magadhi).3)

 

두 학자의 번역은 완전히 상반된다. 우선 buddhavacana란 단어를 리스 데이비드는 ‘깨달은 이들의 말’이라고 복수로 해석했고 가이거는 ‘깨달은 이의 말’이라고 단수로 해석했다. 그리고 saka-ya niruttiya-란 말을 리스 데이비드는 ‘그 자신의 방언으로’라고 해석해서 ‘배우는 형제들의 방언으로’라고 해석하는 데 비해 가이거는 ‘그 자신의 언어로’라고 해석하여 ‘깨달은 이가 말한 언어로’라고 해석하고 있다.

 

필자가 거듭 숙고해 보아도 질문이 귀족적인 언어인 범어를 사용해서 설법해 주시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것이지 그때 그때의 속어을 사용해서 다양한 언어로 설법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식자층이나 귀족층의 언어인 범어로 설법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결정적으로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위와 같이 당시의 민중적이긴 하지만 보편어였던 빠알리 어를 사용한다고 답변을 한 것이다.

 

이것은 가이거의 말에 따르면 스승이 선언한 것 이외의 다른 형태의 진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가다 어에 기초한 빠알리 어 설법의 보존 이외에 다른 언어에 기초한 가르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빠알리 어는 당시에 인도에서 오늘날의 영어처럼 사용되던 사교어였고 보편어였고 경전은 당연히 빠알리 어로 전승된 것이다. 가이거는 부처님께서 사용한 빠알리는 순수한 속어가 아니고 부처님 이전부터 활발한 교역이 만들어 놓은 높은 지성적 언어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빠알리 어로 전승된 대장경이야말로 스승의 가르침을 올바로 보존하고 있어 전승의 권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재성님, 왜 빠알리 니까야를 읽어야 하는가, 불교평론 2000년 가을 4)

 

 

2000년 불교평론에 실린 전재성님의 논문을 보면 율장소품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가장 핵심적인 말은 필자가 거듭 숙고해 보아도 질문이 귀족적인 언어인 범어를 사용해서 설법해 주시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것이지 그때 그때의 속어을 사용해서 다양한 언어로 설법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가다어로 설법한 것을 산스크리어로 바꾸는 것은 당연히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각 지방의 방언으로 바꾸어도 안되는 것이다. 이는 맛지마니까야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빠알리어는 부처님의 원음이다

 

부처님은 부처님이 마가다어로 설법한 가르침을 마음대로 바꾸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이런 조항은 율장에 명시되어 있다. 더구나 이를 어기면 악작죄가 성립된다고 하였다. 계율을 중시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제자들은 이를 지켜 내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왔다.

 

이렇게 본다면 빠알리어에 대하여 방언이라거나 사투리로 전승된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빠알리(Pali)라는 말은 테라와다 불교의 성전(聖典) 그 자체를 의미한다. 빠알리어 경전은 부처님이 부처님 당시 민중어인 마가다어로 말씀 하신 가르침이 표준화 되어 전승되어 온 것이다. 부처님의 원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언어가 빠알리어이고, 그런 빠알리 경전은 부처님의 원음이다.

 

 

 

2015-02-0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