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 26. 18:19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무언가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TV를 보면 일생에 걸쳐서 수집한 것을 공개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우표에 취미가 있는 사람은 시대별로 수집된 희귀한 우표를 가지고 있다. 좀더 여유 있는 사람들이라면 골동품이나 고서적 등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자동차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까지 특별 난 것을 모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삶의 흔적은 모으려고 노력한다. 덧없이 지나가는 세월을 꽁꽁 붙들어 매고 싶은 심정도 작용해서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를 통해서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

 

일기형식으로 매일 일상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글로서 남겨 놓는다. 여기에 투자하는 시간은 하루 일과 중에 거의 절반에 해당된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거의 매일 글을 쓴다. 그래서 남겨진 글에는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글은 돈처럼 달아나지 않는다. 또 닳아 없어지지도 않는다. 노력한 결과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한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2006년 부터이이다. 그 이전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 조직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쓸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셋톱박스 개발 이십년

 

월급생활자로 거의 이십년 살았다. 1985년에 첫 회사에 입사하여 2005년 마지막 직장을 끝으로 이십년간의 조직에서 생활 하였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월급생활자의 말로는 비참하다. 비록 그가 잘 나가는 사람중의 하나일지라도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결국 퇴출로서 끝이 난다. 그렇게 사오정이 되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라 볼 수 있다.

 

사오정이 되기 이전까지 이십년간 조직에서 몸담았다.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케이블관련 제품개발 업무를 시작한 것이 이후 죽 이어졌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 둘 때 까지 오로지 상품개발만 하였다. 그것은 케이블과 위성관련 셋톱박스(Settop Box)’이다. 셋톱박스 개발로 이십년을 보낸 것이다. 큰 회사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견기업, 벤처기업, 소기업 등 수 없이 거쳐 왔다. 두 손가락으로 세어야 할 정도로 많이 거쳐 왔다. 이렇게 많은 조직을 거쳐 오면서 모아 놓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삶의 흔적인 다이어리와 개발제품이다.

  

하야시()고문한테 배운 것 하나

 

무엇이든지 처음 경험한 것은 오래 남는다. 첫 직장에 공채로 들어 갔을 때 연구소로 배정받았다. 그 때 당시 사업부에는 일본인 고문들이 있었다. 해당 사업부에도 역시 일본인 고문이 하나 있었다. ‘하야시고문이라 불렀다.

 

하야시고문의 명찰에는 林敏雄(임민웅)’이라 쓰여 있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씨가 되는 것이다. 하야시고문은 매우 친절하였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친절히 가르쳐 주고 매우 예의가 발랐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한쪽으로 비켜 서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상냥하게 인사하는 스타일이었다. 일본사람들이 친절하다고 하는데 그런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하야시고문으로부터 배운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노트하는 습관이다. 자신의 연구노트가 있어서 실험한 것을 꼼꼼히 그것도 정자로 또박또박 써서 기록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기록문화가 발달 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하야시고문의 노트하는 습관을 본 후 그렇게 해 보기로 하였다. 업무노트가 한권씩 주어 졌는데 날자를 쓰고 그날 그날 한 일을 기록해 나갔다.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제품개발을 위한 아이디어, 그리고 실험결과 등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권에 노트에 기록 하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서너 달에 한번 씩 노트를 장만 해야 했다.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권의 노트에

 

노트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자 무엇이든지 기록 하였다. 심지어 낙서도 노트에 하게 되었다. 이렇게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권의 노트에 기록하자 일종의 일기장처럼 되었다. 일기를 별도로 쓰지는 않았지만 하루 하루 일한 것에 대하여 기록해 놓으니 마치 세월의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뿌듯하였다.

 

세월은 한번 지나가면 그만이다. 붙들어 맬 수 없는 것이 세월이다. 그렇게 흘러 가는 세월 속에서 흔적이나마 남기고 싶어 노트를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일기를 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였다. 하루 일과를 거의 회사에서 보내기 때문에 일 이외에는 별로 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모아 놓은 업무노트를 보니

 

업무노트이자 개발노트이고 일종의 낙서장이기도 한 노트를 모두 모아 두었다. 남들은 그다지 가치 있게 여기지 않고 버렸지만 한권도 빠짐 없이 모두 모아 두었다. 먼 훗날 노트를 열어 보면서 그때는 이랬지하며 기억을 떠 올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의 흔적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아 놓은 노트가 수십권이 된다. 1986년부터 모아 놓은 노트를 보면 다음 사진과 같다.  

 

 

 

 

 

이것이 지나간 시절의 삶의 흔적이다.  1985년 입사한 이래 지금까지 모아 놓은 노트를 보니 거의 70권 가량된다. 이 중 월급생활자로서 생활한 이십년 간 모아 놓은 것은 약 50권 가량이다.

 

노트에 집착한 것은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세월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서 일일업무 형식의 다이어리에 어떻게 살았는지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트에 실려 있는 것은 단지 업무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일과 중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조직에서 일어난 것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일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회의내용이나 실험결과나 업체상담 등을 기록한 것이 그 때 당시 삶의 흔적이 될수 있다. 그러나 남에게 자랑할 만하거나 보여 줄 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 다만 지나간 삶의 흔적이 노트에 실려 있다는 것 이외에 큰 의미는 없다.

 

선배연구원의 말에 자극 받아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개발제품이다. 업무노트를 남긴 것이 하야시고문의 영향을 받았다면, 이번에는 개발제품을 남기는 것에 대해서는 선배연구원의 영향을 받았다.

 

언젠가 선배연구원이 신입연구원을 모아 놓고 회사에서 개발한 제품에 대하여 하나도 남김 없이 모아 두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 때 당시 그 선배연구원은 대리급으로서 수 많은 제품을 개발한 우수한 연구원이었다. TV에 들어 가는 고주파부품인 튜너(Tuner)’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초창기 때부터 개발한 제품이 수십가지에 이른다고 하였다. 개발할 때 마다 하나씩 자신의 집에 가져 놓아 모아 놓고 있다고 하였다. 일종의 삶의 흔적을 모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연구원의 말에 자극받았다. 나도 개발을 하면 개발품을 집에 하나 가져 가서 보관하기로 마음 먹었다. 개발품도 일종의 삶의 흔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회로설계담당으로서

 

1985년 조직에 몸담은 이래 2005년도에 그만 두기 까지 수 많은 제품을 개발하였다. 주로 케이블과 위성관련 셋톱박스이다. 셋톱박스 회로설계를 담당하여 그 동안 개발한 제품만 해도 수십종이 된다. 그러나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수 많은 제품을 개발하면서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제품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아날로그형 위성방송수신기이었다. 수출품으로서 그때 당시에는 ‘Satellite Receiver’라 불렀다.

 

1980년대 말 유럽에서 상업방송위성이 발사 되었다. 최초의 상업방송위성의 명칭은  아스트라(Astra)이다. 아스트라가 발사 되자 유럽에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에 개발팀이 구성되었다. 회로설계담당으로 개발팀에 참여 하였다.

 

아직까지 한번도 개발해 보지 않은 신상품을 개발할 때는 타사제품부터 분석한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분석하여 어플리케이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싸게 만드는 것이다. 저가형 리시버를 만들기 위하여 회로고안을 하였다. 관건은 음성회로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때 당시 업무노트에 회로 어플리케이션을 그려 놓았다.

 

 

 

 

 

 

1990 1 11일자 업무 노트에 실려 있는 것이다. 원가절감하기 위해서는 음성회로를 싸게 구성해야 하는데 마침내 해당되는 IC를 찾아 낸 것이다. 다음으로 음성조절회로과 영상회로를 어플리케이션 하였다.

 

마침내 하나의 회로도가

 

이렇게 하여 마침내 하나의 회로도가 완성되었다. 이를 구현한 것이 다음과 같은 회로도이다.

 

 

 

 

 

 

이 회로도를 만들기 위하여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밤낮없이 주말없이 일을 했다. 그 때가 1990년으로서 입사 5년차 대리시절이다.

 

크게 히트친 상품

 

그렇다면 이 회로는 어떻게 상품으로 구현되었을까? 현재 가지고 있는 제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제품은 크게 히트쳤다. 유럽에 수출되어 수십만대가 팔린 것이다. 개발되고 나서 사업 2차년도인 1991년에 매출이 129억원에 달했다. 그래서일까 사업부가 하나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입사해서 오년 동안 월급받아 먹기가 미안하였는데 이 상품 하나로 깨끗하게 만회 한 것이다.

 

업무다이어리를 뒤적이다 보니

 

업무다이어리를 뒤적이다 보니 1991년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를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회사조직도이다. 관련 부서와 연락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사내전화번호부와 다름 없다. 인터넷이 생기기 이전이기 때문에 오로지 전화로만 소통하던 시절이다.

 

 

 

 

 

보관중인 업무용 다이어리도 세월이 지나니 자료가 되는 것 같다. 조직도를 보니 회사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 때 당시 회사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1985년 그룹공채로 입사하여 한달간 연수를 받고 지정된 회사에 배정받았다배정 받아서 가니 인사담당간부는 우리회사는 종업원 2,500명에 매출이 1,500억원 하는 회사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 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91년 당시 회사의 종업원은 1만명에 달했고 매출이 1조가 넘어 가고 있었다.

 

회사는 불과 6년만에 엄청난 성장을 하였다. 그래서일까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공장건물이 매년 신축되었다. 또 부족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인사담당부서에서는 지방학교를 돌며 졸업도 하기 전에 여학생을 들을 버스에 가득 싣고 오는 것이 주된 업무가 되었다.

 

회사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 중에 ‘3저 호황’을 들 수 있. 흔히 엔다까(円高)’라 하여 수출증대 등의 요인이 있어서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매년 거의 100% 성장하다시피 하였다. 그런 여파로 거의 6개월에 한번씩 조직개편이 이루어졌고 승진자가 속출하였다. 다이어리에 붙은 조직도는 그 때 폭발적 성장을 반영하는 분위기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화면이 터졌을 때 환호성이

 

이후로도 많은 제품을 개발하였다.  그 중에 케이블셋톱박스가 있다. 지금은 디지털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초창기 케이블셋톱박스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1997년 처음 케이블방송이 시작 되었을 때 종합유선방송용 셋톱박스를 개발하였다. 허가 받은 가입자에게만 유료시청이 가능하도록 디스크램블(Descrable)’방식이 내장된 쌍방향 통신 리시버로서 매우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그 때 당시 T사에 있을 때 개발하였는데 국내 해당지역에 설치 되었다. 개발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리시버를 개발할 때 여름휴가를 반납하였다. 그리고 밤낮없이 주말없이 오로지 개발에만 몰두 하였다. 가장 난관은 스크렘블과 디스크램블 하는 것이었다. 수 없이 테스트 하여 마침내 화면이 터졌을 때 환호성이 울렸다. 개발팀장으로 개발팀원들과 새벽에 환호 한 것이다. 이렇게 한번 화면이 터지자 이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아끼는 모델 중의 하나가 되었다.

 

디지털시대가 시작되자

 

2000년이 되자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었다. 디지털 위성이 발사됨에 따라 너도 나도 디지털 리시버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수 많은 모델을 개발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다음과 같은 디지털셋톱박스이다.

 

 

 

 

 

 

 

 

 

 

 

 

 

 

 

 

 

 

2005년 까지 조직에 몸담았다. 이후로는 일인사업자로서 전자회로설계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개발한 제품을 모아 보니

 

셋톱박스 개발 20년에 수 많은 모델을 개발하였다. 신입사원 시절 선배연구원의 말대로 개발한 제품을 모아 놓았다. 그러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지난 이십년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사람들은 저 마다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그리고 의미 있게 살고자 한다. 그러나 뒤돌아 보면 남는 것이 없다. 그 동안 벌어 놓은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월급생활자로 살아 오면서 일생동안 받은 월급이 상당히 될 텐데 통장의 잔고를 보면 언제나 텅텅 비어 있다시피 하다. 그 동안 사업을 하면서 많은 돈을 만졌을 텐데 역시 통장에는 돈이 없다.

 

세월이 지난 후 남는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무상함을 느낀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게 되었을 때 더욱 더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모두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 왔다. 그런 세월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남겨 놓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TV에서는 일기를 쓰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2006년부터 글을 쓰고 있다. 이제 9년이 되었다. 그 동안 쓴 글이 모두 2,845개이다. 이전에는 업무노트에 일에 대한 삶의 흔적을 남겼으나 지금은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일본인고문에 자극 받아 업무노트를 보관하였고, 선배연구원에 자극 받아 제품을 남겼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흔적은 글쓰기라 볼 수 있다.

 

 

 

2015-01-2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