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

기쁜 마음으로 주기, 기쁜 마음으로 받기

담마다사 이병욱 2015. 3. 8. 09:52

 

 

기쁜 마음으로 주기, 기쁜 마음으로 받기

 

 

 

친구가 화분을 보내 왔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화분이다. 그러고 보니 나무 보다 화분이 매우 고급인 것 같다. 커다란 항아리처럼 생긴 화분으로서 마치 도자기처럼 고품격의 외관이다. 그러다 보니 식물에 눈이 가기 보다 커다란 도자기 처럼 생긴 화분이 눈길이 더 미친다. ‘나무 보다 화분인 것이다.

 

 

 

 

 

 

 

동기 산행에서

 

한달에 한 번 동기모임 산행이 있다. 매월 네 째 주 토요일이 산행하는 날이다. 이십여명 되는 카톡방에 산행공지가 뜨면 모두 모이는 것은 아니다. 다들 바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고작 너댓명이 모이는 것이 고작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근교의 산이 대상이다. 특히 수도권 전철이 연결 되어 있는 모든 산이 대상이다. 이번 산행은 안양에 위치한 수리산이었다.

 

산행이 끝나면 뒤풀이가 있다. 어느 단체에서도 이런 뒤풀이를 볼 수 있다. 이번 산행에서도 역시 뒤풀이가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로 산행에 참여 하지 못한 사람들이 합류하여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 과정에서 사무실 방문도 이루어졌다.

 

작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삶의 터전이자 글쓰는 공간이다. 그래서 수시로 드나든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낸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도 사무실에 나온다. 그것도 아침 일찍 나온다. 이렇게 나와서 무엇을 하는가? 주로 글을 쓴다. 그리고 밀린 일도 한다. 일인사업자에게 있어서 일이 있으면 밤낮이 따로 없고 주말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 날 화분을 보내 준 친구가 사무실에 왔었다. 종교는 다르지만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인연으로 일종의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보았을 때 비록 짧은 학창시절이었지만 이해와 손익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관계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금방 익숙해 질 수 있다.

 

내가 살아 가는 이유

 

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교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불교는 미신행위나 하고 우상숭배나 하는 저급한 종교라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불교인들의 책임이 크다. 원래의 가르침에서 크게 변질되어 왔기 때문이다. 친구 역시 불교가 모순으로 가득 찬 전근대적인 종교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였다.

 

불교를 종교로 가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04년에 불교와 인연을 맺었으니 이제 11년이 된다. 이전에는 정서적으로 불자이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하여 잘 몰랐다. 그래서 한국불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스스로 공부하다 보니 본래의 가르침에서 많이 어긋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본래 가르침은 어떤 것이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초기경전을 접하게 되었다.

 

초기경전을 접하면서 고민하던 모든 것이 초기경전에 담겨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음이 담겨 있는 상윳따니까야 등 사부니까야와 함께, 법구경, 숫따니빠따 등 한글번역서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경전을 근거로 하여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원음은 삶의 지침서이자 이정표이고 삶 그 자체와 같은 것이다. 이런 자부심으로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살아 가는 이유이다.

 

선물 주고 받기

 

사무실을 방문한 친구는 선물을 하겠다고 하였다. 무엇이든지 준다고 하였을 때는 준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그래서 흔쾌히 수락했다. 이왕이면 화초를 좋아 하기 때문에 보내 주려면 화분을 사서 보내라고 하였다.

 

받기만 해서는 미안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관계에서 선물은 자연스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은 주어서 기쁘고 또 받아서 기쁜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열려면 선물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발렌타이데이또는 화이트데이라는 국적 불명의 명절이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백번 천번 말로 하는 것 보다 선물하는 것이 마음을 전달하는데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청춘남녀들이 초코렛을 주고 받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친구에게는 법구경을 선물하였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 갔다. 전혀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리 물어 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낸 형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종교가 다른 친구에게 사전에 물어 보고 선물했어야 하나 임의적으로 보낸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불교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한국불교와 불교인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이런 불교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법구경을 생각하게 되었다. 법구경은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세계인이 애독하는 교양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오해를 일으키는 결과가 되었다. 결국 책은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 일로 친구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어떤 마음으로 선물해야 하는가?

 

주는 행위를 베품 또는 나눔, 보시라 한다. 그런데 무언가 주는 행위는 매우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것이다. 봉사도 마찬가지이다. 구호단체에 가서 하루 종일 봉사하고 집에 돌아 갈 때 그 잔잔한 행복감은 꽤 오래 간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 베푼는 것 잔잔한 행복감 또는 만족감은 꽤 오래 간다. 

 

이기적인 욕망의 달성에 따른 행복감은 짧다. 그러나 베풀고 나누고 보시하는데 따른 이타적인 행복감은 꽤 오랫동안 지속된다. 그래서인지 이타적 행복감을 아는 자들은 나누고 베풀고 보시하기를 즐겨한다. 빌 게이츠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빌 게이츠와 같은 거부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나누고 베풀고 보시할 수 있다.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받는 것이다. 그것이 이해관계에 따른 뇌물이 아니라면 장려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보시하기 전에는 기뻐하고,

줄 때는 마음이 청정하며,

주고 나서는 만족해야 한다”

 

 

십복업사에 나오는 말이다. 열 가지 공덕을 짓는 행위 중에 보시에 대한 것이다. 보시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하여 잘 요약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전에는 기쁨으로 주어야 한다. 그런데 줄 때는 청정한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가를 바라고 한다면 뇌물이 된다. ‘정치헌금등도 일종의 뇌물이라 볼 수 있다. 학부모가 선생에게 촌지를 주는 것도 대가성에 따른 일종의 뇌물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직자나 친구 또는 연인, 가족에게 주는 행위는 대가성과는 다르다. 청정한 마음으로 기쁨으로 헌금하거나 보시하거나 선물하기 때문이다.

 

기쁨으로 선물하였을 때 역시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그래야 선물의 의미가 더욱 더 빛난다. 그래서 “보시하기 전에는 기뻐하고, 줄 때는 마음이 청정하며,  주고 나서는 만족해야 한다”라고 하였을 것이다.

 

식물을 키워보니

 

친구가 고급 화분을 보내 주었다. 마치 커다란 도자기와도 같은 화분을 보니 사무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래서 자주 처다 보게 된다. 그러면서 선물을 준 이를 떠올리게 된다.

 

화분을 선물 받았으니 이제 잘 키우는 일만 남았다. 어떻게 해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것은 꾸준히 보살펴 주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물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행히도 입주하고 있는 건물에는 지하수가 나온다. 화장실이나 청소하는 용도로 땅속에서 퍼 올린 물이라 한다. 그런 지하수를 식물에게 주고 있다. 그 결과 식물이 잘 자란다.

 

2007년에 사온 행운목은 이제 천장에 닿을 듯 하며 그 동안 다섯 번 꽃이 피었다. 육칠년전 지인이 선물한 ()’의 경우 여러 차례 꽃이 피었고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칠년전 동대문에서 오천원주고 사온 대나무의 일종인 작은 식물은 이제 1미터 이상 자라서 보기에도 대견하다. 수 년 전 서울대공원 식물원에서 천원 주고 사온 식물은 엄청나게 자라서, 그것도 아래로 자라서 책장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식물이라도 한번 인연 맺은 것은 잘 돌 보아 주니 잘 자라는 것 같다. 친구가 보내 준 화분 역시 잘 키울 것이다.

 

살아 가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

 

친구가 보내 준 화분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비록 선물은 잘 받았지만 내가 보낸 선물이 결국 실패로 돌아 가게 되어 마음이 편치 않다. 모두 본인의 성급한 마음이라 생각하며 다시 한번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크게 반성하였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나 또한 얼마나 배타적으로 굴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길거리에서 예천불지를 부르짓는 전도사에 대하여 경멸의 눈으로 바라 보았다. 또 길거리에서 예수 믿고 복받으세요라며 기습적으로 말을 들었을 때 황당함으로 인한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길거리에서 사탕이나 과일, 커피, 심지어 농산물을 주며 호의를 베풀던 종교인들에 대하여 백안시 하며 피해 다녔다.

 

그러나 이제 마음이 바뀌었다. 사탕을 주며 전단지를 줄 때 웃음으로 받자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방이 마음의 상처를 덜 받을 것이다. 이런 것도 살아 가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중의 하나 일 것이다.

 

 

“보시는 조어되지 않은 사람을 조어하고

보시는 모든 이로움을 성취시킨다.

보시와 상냥한 말씨를 통해 시주자는

편한해지고 시물을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인다.(Vism)

 

 

 

2015-03-0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