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신상을 공개하라고 다그치는데, 미디어붓다에 글을 올리고 나서(2)

담마다사 이병욱 2015. 3. 10. 12:38

 

 

신상을 공개하라고 다그치는데, 미디어붓다에 글을 올리고 나서(2)

 

 

 

 

 

 

 

 

미디어붓다에 올린 글에 대한 비판글 두 번째이다. 그런데 제목을 보니 비난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연꽃님의 글 “불행·가난한 사람을 보면 우리도 한때 ..." 비난함(2015-03-08)”이라 되어 있다. 건전한 비판을 넘어 비난이라 한 것에 대하여 적의(敵意)’가 엿보인다.

 

경안(經眼)이 없다고

 

S님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전에 올린 글 불행·가난한 사람을 보면 우리도 한때 ...”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주장한다.

 

 

연꽃의 글을 비난하는 이유가 여럿 있지만 바로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들고 와서 자신의 글의 정당성을 주장할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전을 보는 안목도 없고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 불교의 자비와 연각승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불행·가난한 사람을 보면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고 관찰하라'가 아니다. 자비의 본 뜻은 “불행·가난한 사람을 보면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고 관찰하고 그들의 괴로움을 제거하고 함께 기쁘하라"이다. 그것이 불교가 오늘날 우리 중생들의 세간에 던져주는 메세지이다.

(S)

 

 

비판이 비난으로 바뀐 이유를 알 수 있다.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경전을 보는 안목, 경안(經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혜도 없다고 한다. 올린 글에서 나도 한때 저런 사람이었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근거한 글에 대하여 소극적이라 비판하면서 적극적으로 도와 주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것이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보살행이라 한다.

 

누구나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경전적 근거가 아닌 자신의 말이라면 개인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견해는 받아 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경전을 근거로 이야기 하면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전승되어 온 경전의 권위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왔을 것이다.

 

불선심에 가득찬 악의적 댓글

 

이번 비난 글에서는 유독 눈에 띄는 댓글이 보인다. 그것은 불선심에 가득찬 악의적 댓글이다. 여인으로 추정되는 댓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네 동감입니다.
미디어 붓다라는곳은 도대체 연꽃이라는 사람의 사진한장 올리지 않고, 달랑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저런자에게 왜 칼럼을 맞겼는지 이해가 가지않아요 .
아마도 저렴한 가격으로 글값을 지불하니 그맛으로 이지 싶어요,
그래도 지겹도록 같은 이야기를 자꾸 질리도록   올리고 또올리고..제가 불교초보자라도 이건 너무 하다 싶네요. 처음엔 그냥 정력이 남아도니 저런갑다 했는데.. 무얼보고
저런사람을 믿고...멍석을 깔아 줄까요?
가뜩이나 자만과 아상, 그리고 스님보다도 불교학자보다도 더더욱 자신의 불교교리수준이 눂다고 자처하는 사람인데..제가 주변의 젊은 지인들에게 연꽃의 글이 어떠하냐고 물어 보았지요.   그사람들이 하는말이 ( 글은 청정하게 쓰는데..그정도의 경전이야기는 나라도 경전보고 베끼면서..쓸수 있겠다, 그리고 사실 한번 읽어 보고나니 두번 읽어보고 싶지 않을 정도인데,비슷한 케이스를 가지고 제목만 그럴듯하게 바꾸며
쓸데 없이 글만 어렵게 쓰고, 불교적인 지혜랄까 그런 혜안을 뜨게하는 동기부여의
글정도는 되야하는데...전혀 지리하고, 진부한 청정함만을 강조하는 ...실상은 자신은
진흙탕속에서 푹 썩어가면서 왜   자꾸 남한테 청정함을 강조할까요?
이런 쓸데없는 쓰레기같은 글을 자꾸 양산하느니...차라리 그시간에 자신의 마음을
(
이기심과 탐욕심 감각적퀘락을 즐기고 싶어하는 방탕한마음)이나 잘 다스려
제발 한국불교 욕은 이젠 그만 좀 그만했으면 합니다.   연꽃만큼 적나라하게 한국불교를   까발긴 사람도 드물어요. 그만큼 자신도 수행이 덜 되었다는 증거지 뭡니까.
그리고 미디어 붓다에 칼럼을 올리면서 왜 버젖이 사진하나 않올릴까요?
그만큼 자신의 과거업장이 녹녹치 못하기에 칼럼까지 쓰면서도 사진을 못올리는 것이그요, ~주 이사람은 글만 청정하지 여자관계가 아시다시피 .....별별희아~한 여자와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댓글 보셨지요 우리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성개방
주의자이고요, 한마디로 우리일반인과는 그런면에 있어서는 차원이 다른사람이고...
헌데도 이런 연꽃의 사상관이나, 윤리관이 투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물론 완벽한사람은 없어요) ..저는 사실 께름칙합니다.   그리고 맨날 도를 닦자 닦자 하는데..
연꽃자신은 정말   얼마나 도를 잘 닦고 있는지 ... 행여 글로서만 영혼없고,
연민없는 소리를 ....(실론섬님 ..연꽃의 얼굴을 한번 보셨나요?   얼굴을 보면 그사람이
온몸에서 풀기는 냉기와 , 독소, 시니크함, 빈정거림 이런 말이 연상되지 ..전혀 자비와
부드러움 ,여유 이런것과는 거리먼 사람입니다. 글에서도 그것이 배어나오고 있어요)
그런사실을 연꽃하고 그의 추종자들만 몰라요.
연꽃이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사람은 이제 제대로 된 인격체일겁니다.
제대로 자신의 말마따나 제대로 수행을 한 사람이겠지요.

(D)

 

 

댓글을 빠짐 없이 다 옮겼다. 글을 보면 마치 전생에 철천지 원수라도 진 것 같다. 또 현생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댓글 쓴 이와는 일면식도 없다. 다만 이런 류의 악성 댓글을 몇 차례 받아 본 적이 있다. 아마 동일인물이라 추정된다. 이에 대하여 전차녀(cinca,여인 찐짜) 모함과 부처님의 승리, 자야망갈라가타에서(2011-03-2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놀랍고 충격적인 글을 접하고

 

그 때 당시 올린 글에서 자야망갈라가타의 다섯 번째 게송 찐짜(Cinca: 전차녀) 이야기를 소재로 하였다. 외도들이 부처님을 모함하기 위하여 가짜임신녀를 등장시켜 공개망신을 주고자 한 것에 대한 게송이다. 이 거짓임신녀에 대한 이야기는 법구경 176번 게송에서 인연담으로도 등장한다.

 

2011년 당시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인 글을 접하였다. 어느 법우님이 댓글로 진흙속의연꽃을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글이 인터넷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블로그에 댓글을 단 법우님에게도 성과 관련된 입에 담을 수 없는 댓글을 달아서 주의를 요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추적해 보니 어느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악의적인 비방글을 볼 수 있었다.

 

 

어이 ,혜성이........진흙속의연꽃....너 왜그렇게사니? 나한테는 그렇게 모질게 독하게 해놓고....너 차라리 자살이라도 해라. 그렇게 살바에야..........내가 너 살며 생각하며.....그것 읽을 때마다 살인충동이 일어난다. 너를 잡아 죽이고 싶어......모두다 사기야 사기.....나한테 진실은 하나도 이야기 하지 않았어.........내가 이복수는 다음생애에 꼭 해주겠어. ....내가 너를 잡아쳐 죽이고 싶지만 .......이를 악물고 참는다. 내 청춘 너 때문에 망가지고 파괴된것 생각하면 ........총이라도 있으면 너같은 인간 기생충을 쏴 죽일텐데 ..........너 이제서야 나타 나가지고 파계승으로 .........나한테 지은죄 어떻게 다 갚을래다 늙어 빠진게 아직도 색은 밝혀요.......그사람 물들이면 죽여버릴거다.사악한 새끼.....지옥에 떨어져라 이 개새끼야.

 

(사라져줬으면........., http://blog.daum.net/vhrvnddmldjsejr/31

 

 

이글을 보면 파계승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매우 격함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일로 인하여 과거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파계승과 연관시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이는 누구일까? 아마 이곳 저곳에 있지도 않은 악의적인 비방글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동일인물이라 보여진다. 그런 버릇이 잘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불자이면서도 있지도 않은 사실을 퍼뜨리고, 근거도 없는 글을 올리는 행위를 하는 자의 글을 보면 섬찟한 광기를 느낀다.

 

더구나 최근 올린 댓글을 보면 ~주 이사람은 글만 청정하지 여자관계가 아시다시피 .....별별희아~한 여자와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댓글 보셨지요 우리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성개방 주의자이고요라 하였다. 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글을 올렸는지 알 수 없다. 있지도 않은 사실, 근거 없는 이야기를 올리는 이의 심리상태는 어떤 것일까?

 

신상을 공개하라고 다그치는데

 

글을 올린 이는 또 하나 비방하였다. 그것은 미디어붓다에 칼럼을 쓰면서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칼럼을 올리면서 왜 버젖이 사진하나 않올릴까요? 그만큼 자신의 과거업장이 녹녹치 못하기에 칼럼까지 쓰면서도 사진을 못올리는 것이그요라 하였다. 여기에 S님도 가세하여 달빛 소나타님의 말씀처럼 ... 미디어 붓다라는 공개된 언론에 글을 올리려면 적어도 자신의 개인 이력이나 사진정도는 올려야지요.”라 한다. 실명과 사진, 그리고 이력을 올려 놓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이 보장된 곳이다. 그래서 굳이 실명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필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누구나 필명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실명을 사용하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대부분 유명인이 해당된다. 실명을 공개하였다면 사진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알리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인터넷에 글을 쓸 때 실명도 사용하지 않고 사진도 올리지 않는다. 사는 곳의 주소나 전화번호도 올리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가족과의 약속 때문이고 또하나는 보통불자로서 그다지 내 세울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교계언론에 칼럼을 올릴 때 필명을 사용한다. 이렇게 필명을 사용한 것은 지난 9년 동안 글을 쓰면서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데 대다수가 매우 오래 전부터 찾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2006년부터 블로그를 보아 왔다고 한다. 블로그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 하면서부터 지켜 보아 온 것이다. 이렇게 수 년간 글을 지켜 본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종종 격려도 하고 칭찬도 해 준다.

 

어떤 비난이나 비방에도

 

악의적인 비방을 일삼고 폄하하는 자들도 없지 않아 있다. 마치 스토커처럼 물고 늘어지는 자들은 요구를 들어 주어도 만족할 줄 모른다. 마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듯이 또 다른 시빗거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답이다.

 

초기경에 따르면 사람들은 태어날 때 입에 도끼가 생겨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근거 없이 비난하고 중상모략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람이 태어날 입에 도끼, 성자를 비난한 과보(2013-03020)”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남을 헐뜯고 중상모략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에 대하여 부처님은 사람이 태어날 때 참으로 입에 도끼가 생겨난다. 어리석은 이는 나쁜 말을 하여 그것으로 자신을 찍는다네.(S6:10)”라 하였다.

 

입에 도끼를 문 자들은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게 되는 과보를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왜 그런가? 가르침에 따르면 비난받아야 할 것을 찬양하고 찬양해야 할 것을 비난하니 입으로써 불운을 쌓고 그 불운으로 안락을 얻지 못하네. (S6:10)”라 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비난이나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깨진 종소리를 듣는 것처럼, 비난과 비방에 대하여(2013-12-02)”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비난과 비방에 대하여 깨진 종소리를 듣는 것처럼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깨어진 놋쇠그릇처럼

그대 자신이 동요하지 않으면,

그것이 열반에 이른 것이니

격정은 그대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Dhp134)

 

 

광기어린 중상모략에 대하여 또 “나는 근거 없는 비난을 참아 내리라” 부처님의 아힘사(ahimsa)(2014-02-20)’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글에서 근거 없는 비난을 참겠다고 하였다. 어떻게 참는가?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참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코끼리가 전쟁터에 나아가면

활에서 화살이 쏟아져도 참아내듯,

나는 근거 없는 비난을 참아내리라.

사람들은 대부분 계행을 지지키 않으니. (Dhp320,

 

 

시기와 질투와 분노에 가득찬 이를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비난과 비방을 하여도 분노의 밥상을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깨진 종소리처럼 떠들어 대도 동요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거짓임신녀가 부처님을 모욕하였을 때 성자의 제왕 고요함과 부드러움으로 섭수하셨네라는 자야망갈라가타의 게송에서와 같이 고요함과 부드러움을 유지 하는 것이다.

 

저 바위산처럼 어떤 바람에도

 

실명을 공개하라든가 사진이나 이력을 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글이 길면 길다고 말할 것이고 글이 짧다면 짧다고 불평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법구경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아뚤라여, 이것은 오래된 것이니

지금 단지 오늘의 일이 아니다.

침묵한다고 비난하고

말을 많이 한다고 비난하고

알맞게 말한다고 비난하니

세상에서 비난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Dhp227)

 

오로지 비난만 받는 사람이나

오로지 칭찬만 받는 사람은

과거에 없었고

미래에 없을 것이고 현재에도 없다.(Dhp228)

 

아주 단단한 바위덩이가

비람에 움직이지 않듯,

이와 같이 현명한 님은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 (Dhp81)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여덟 가지 바람, 이득과 불익 , 명예와 불명예 , 칭찬과 비난 , 행복과 불행이라는 바람이 다반사로 분다. 그러나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저 바위산처럼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취중인터넷

 

인터넷공간은 좋은 정보도 많지만 쓰레기정보도 넘쳐 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왕래하다 보니 이제 인터넷공간은 현실공간의 연장선상이 되었다. 더구나 스마트폰으로 보급으로 인하여 이동중에도 소통할 수 있어서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이런 때 가상공간에서 취중인터넷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현실과 가상의 벽이 허물어졌다면 얼마든지 취중인터넷도 가능하다. 더구나 광기어린 글을 보면 이 세상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라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터넷에 글을 남기는 행위는 필업(筆業)’을 짓는 것이 된다. 일반적으로 필업은 구업(口業)’으로 간주 된다.

 

전생에 가족이었을지도

 

부처님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은 행위는 반드시 과보를 낳게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인터넷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역시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비난과 비방, 중상모략, 권모술수, 마타도어가 끊이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아마 마음속의 분노때문이라 본다. 그런데 분노는 자애의 마음이 없을 때 발생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J님은 다음과 같이 댓글을 올렸다.

 

 

관념불교이야기 실론섬님한테 해볼께요........
님과 연꽃님은 아주 오래전에 서로 부부였을지 모릅니다.
어쩜 형제일지도 모릅니다.
어쩜 오빠와 누이일지도 모릅니다.
어쩜   부모와 자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조금은 연민이 생긱겠지요?
조금은 자애의 마음이 생기겠지요?.

달빛소나타님도 아마 전생에 연꽃님과 부부였을지도 모릅니다...

연꽃님의 글에 추종자라는 표현은 많이 우습지요.
과거의 그런 내용의 글들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오래전 전생에 부부의 연까지 맺으신 분들인데, 서로 싸우기만 했길래, 그러한 인과가 현생에서 블로그의 글을 통해서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는가?......하는 관념의 불교를 생각해봤습니다.

붓다의 말대로, 철전치 원수한테까지 전생에 부부의 연이 있었다라고 생각해낼수 있다면, 덜 미워하거나 그러지 않을까요?.......

(J)

 

 

불화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전생에 부부이었을지 모른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모두가 한번쯤 자신과 인연이 있었던 사람임을 뜻하는 것이라 본다. 이는 초기경에서 무명에 덮히고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는 뭇삶에 대하여 오랜 세월을 거쳐서 일찍이 한 번도 어머니가 아니었던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다.(S15.14)”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경에서는 어머니 뿐만 아니라. 아버지, 형제, 자매, 아들, 딸이었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전생에 한번쯤은 가족이었다면 미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모든 존재가 진실로 행복하기를!”라고 자애의 마음을 낼 것이다.

 

? 외도라고?

 

비판글에서 S님은 또 하나 지적하였다. 댓글을 보면 외도라 하였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에 근거하여 글쓰는 행위에 대하여 외도라 한 것이다. 이에 대한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곳에서 수년간 공부하신 수행승들이나 학자분들의 글을 한번 보십시오. 그분들의 글과 남방권에 단 한번도 와보질 않은 연꽃님의 글이 어떻게 다른지 아시는 분들도 아실 것입니다. 외도란 별개 아닙니다. 붓다의 뜻을 왜곡하거나 잘못 전달하면 그게 외도입니다. 또한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연꽃님은 초기경전 귀절 옮겨와서 함부로 불교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내가 체득하고 배우고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했습니다. 꼬작 한국에서 번역된 경전보고 불교 알면 얼마나 알겠는지요?

(S)

 

 

이곳이라 하면 스리랑카를 말한다. S님이 살고 있는 남방테라와다불교의 종주국 스리랑카이다.  

 

S님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남방권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자가 테라와다불교에 대하여 또는 초기불교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한다. 더구나 외도의 글이라 한다. 번역된 경전보고 불교 알면 얼마나 알겠는지요?”라고 비아냥거리듯이 말한다.

 

J님 답하기를

 

이에 대하여 J님은 다음과 같이 장문의 댓글을 달았다.

 

 

실론섬님..........연꽃님이 외도라고 칩시다...
님이 연꽃님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자세입니까?...

또 님은 아라한에 대해서 지금 윗글에서도 매우 위험한 발언을 했습니다.

(
실론선님의 글)-----
과연 대승불교의 사상이 100% 엉터리인가? 절대로 아니지요. 절대로 아닙니다.
나홀로 깨닫는 아라한이 나은가요 아니면 지옥에 중생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성불을 미루겠다는 지장보살이 나은가요? 또는 관세음보살의 사상이 나은가요?-----


아라한이 나홀로 깨달아서 열반할때만, 시쳇말로 죽을때만 기다리나요?..
님의 위같은 견해는   전형적인 대승불교논사들의 주장입니다.

님의 글에서, 전에 아잔문이 금세기 최고의 아라한이라는 글들이 있습니다.
붓다사후의 이견이 있지만, 스리랑카에서도 최고의 아라한이라고 인정해주는 듯하다고 했습니다.

아잔문이 나홀로 깨달아서 열반할 날만 기다렸나요?........
보살이 사상이나 운동이 되면 문제가 없었겟지만, 대승의 보살은 붓다,아라한이 되자가 아닌 세세생생 보살이 되자라는 보살 수행입니다.

대승불교도 부파불교에서 생겨난 것을 님이 모르시지 않을텐데,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아라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대승논사처럼 하시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님의 이러한 주장이 과연 기본적인 경안이라도 있는 겁니까?.
님은 불법의 최고꼭지점을 머리로만 이해하는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비록 불순물이 섞여 있는 3차 결집후의 경전이더라도 거기에 핵심과 맥조차도 놓치는 겁니다....

님말대도 보살운동한다고 칩시다.
아라한 같은 성자들이 나올수 있습니까?.
다 보살들만 세세생생 윤회하면서 보살수행하는 결과지요.

초기불교는 왜 공부합니까?.....
가서 보니 생활불교하는 중들만 보니, 수행에 전념하는 수행승들은 안 보입니까?

님들이 주장하는 생활불교는 기독교에서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
보시 지계 생천의 한계입니다.
그러니 윤회가 어때서...............라는 글이 나오는 겁니다.....

머리로 불교를 이론으로만 공부한 자들이지요.

님의 그러한 견해는 대승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사유와 고찰이 부족하고, 대승의 나올수 밖에 없는 타당성을 부여해주는 불교에 섞여 들어온 전형적인 대승의 힌두논사들의 주장입니다.

정법이 사라지게 하는 요소들 숱하게 니까야에 있습니다.
아무리 연꽃님이 싫다고 해도 그렇치, 어설픈 보살행을 꺼내서,대승의 논사와 비슷한 주장으로 , 심지어 아라한을 이기적인 소승으로 만들어 버리네요

(J)

 

 

J님은 S님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마 최근에 S님의 글을 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들은 S님에 대하여 다 안다. 그러나 최근에 S님의 글을 접한 J님은 S님에 대하여 경전을 보는 안목, 경안이 있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일부만 본 것이다.

 

S님의 글이 드러남에 따라 견해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글이 올려질수록 J님의 S님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세진다. 아마 처음에는 긴가만가 하였겠지만 글을 보면 모든 것이 드러난다. 이렇게 보면 올린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고 인격이고 현재를 나타내 주는 거울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보관할 만한 글

 

이어지는 J님의 글은 법문형식을 띄었다. 보관해두고 여러 차례 읽으면 바른 불교관이 잡힐 것이라 여겨진다.

 

 

경전을 적고, 경전에 대한 해설을 하는 평범한 재가 불자의 내용이 잘못됐으면 온당한 방법으로 지적하면 됩니다.
윗글의 저 글에서 연꽃님의 글이 어디 외도와 같습니까?.
오히려 아라한을 참칭하고 모독하는 위험한 발언을 하는 실론섬님이 외도와 비슷한것 아닙니까?..
혼자서 가라 란 말에서 뜬금없이 벽지불이 나오고..

경전 백년 공부해보면 뭐합니까? 결국 그 이론으로 대승논사의 아라한의 권위 인정하지 않는 발언 하는 대승의 힌두논사와 비슷한 주장 하는데......

아라한들을 만나본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의 느낌들이 있는 글들도 찾아보면 있습니다.
님은 아라한을 만나본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대승논사의 주장처럼 아라한이 이기적인 수행만 하고 개인의 깨달음만을 얻으면 열반할날만 기다린다.............
라는 것은 님의 머리로만 생각한 관념불교 아닙니까?.....
연꽃님을 머리로 하는 관념불교라고 했는데, 님또한 이러한 면에서 마찬가지 아닙니까?..........
생활속에서 활동하는 비쿠들만 봤지, 엄격하게 수행하는 수행들은 못 보지 않았습니까?........그러면서 남방의 출가자는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것 또한 님의 관념식 불교아닙니까?.......

현재 70이 넘었는데,   남방에서 출가한지 몇년안되서 수행에 전념하는 한국인도 있다고 합니다....

일반 평범한 재가자의 글이 남방에 직접 갔다오지 않았다고 해서,   초기불교에 관한글을 적으면 안됩니까?.잘못적은것이 있다면 올바른 방법으로 지적하면 되는 것이지요.
도대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란.............말을 태연히 하면서 업이 의도적   행위이다..........의도이다. 인과는 도덕률이다.........
업을 잘 아시는 분이 이런 이야기는 할수 있습니까?...

거기가서 백년 경전공부 한다고 칩시다..........
그 이론 공부가 님것이 됩니까?...
죽을때 문자 가지고 갑니까?....
죽을때 이론 가지고 갑니까?.
죽을때 경안 가지고 갑니까?...

아무것도 몰라도, 죽을때 정신바짝 차려서 자신을 사띠하는것이 더 낫습니다.
이제는 하루에 한시간이라도 앉아서 수행을 하는게 더 나을 것 같네요.
가끔 시간 되면 집중수행도 가보도록 하시구요.
님의 경안은 지혜가 아닙니다....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악업을 짓는 것도 모르고 연꽃님의 글들을 비방하고 위험함 발언들을 합니다......

경안있다고 하시는 분이, 아라한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무슨 경안입니까?...

아라한의 권위를 부정하는 전형적인 힌두논사의 발언들로 위험한 수위들입니다..

난 님을 냉철하신분으로 합리적인 분으로 봤습니다.
서로 성향이 다른것은 각자의 업이 다르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연꽃님의 글에 비판을 넘어 비난조의 글들을 쏟아내는 님의 식격과 추론이 아까웠고, 보기에도 너무 안좋아서, 님이 그러지 않았으면 하고, 연꽃님을 본의 아니게 두둔하게 된겁니다....

내가 보기에는 연꽃님은 외도가 아닙니다.
물론 글에도 문제점들이 있지요. 그런 자유로운 글쓰기는 누구나 다 할수 있는 겁니다...그러나 연꽃님처럼 일반인들은 안합니다...시간이 아까워서, 시간이 낭비되서...

. 비에 대한 글에서   읽어봐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남을 비난하는 것이 결코 법담이 될수 없습니다..
난 님이 깨달아서 스스로 멈출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는군요.
택법하는 것이 나와 많이 다른가 봅니다.
선업을 쌓기 위해서 남을 비난 하는 것인가?.......
외도의 비난도 선업이 될수 없습니다...
감각적 행복이 고통으로 돌아오는 이유와 마찬가지일겁니다.

아라한들에 대한 위험한 발언들을 쏟아 냅니다...이것은 갑작이 나온소리가 아닐겁니다....

수행을 떠난 어설픈   생활불교는 극히 부정적이다라고 이야기 해두고 싶습니다.

차라리 남 비난할 시간에 , 가끔식 좌선이나 행선이라도 좀 하는게 나을 듯합니다.
쓴소리 해봤습니다.

 

(J)

 

 

사람들은, 아니 불자들은 가르침에 목마르다. 주변에 갈만한 절도 없고 그렇다고 멀리 다니자니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쉽지 않다. 집중수행이라도 하고 싶으나 현실의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는 불자들은 여의치 않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사실상 현실공간과 다름 없는 사이버상에서 지식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이 사이트 저 사이트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은 지뢰밭과 같다. 이곳 저곳에 정법과 거리가 먼 단멸론과 같은 삿된 견해에 기반한 불교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경전을 기반한 읽을 만한 글을 만난다는 것은 기쁨이고 행운이다.

 

읽을 만한 불교 사이트는 많지 않다. 한 두 차례 올리고 마는 글이 부지기 수이고, 부정기적으로 올리는 글이 대부분이다. 많이 배우고 많이 익힌 선지식들이 이끌어 주어야 하나 아쉽게도 한국불교에서는 보기 힘들다.

 

이런 때 초기경전을 기반으로 글을 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하여 수행을 하였다거나 수학을 한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여러 모로 부족함에도 찾아 주는 것은 그 만큼 초기경전에 기반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이런 때 J님과 같은 글을 접하였을 때 보고 또 보게 된다. 바로 이런 글이 실수행에 바탕을 둔 경을 보는 안목의 글이라 여겨진다.

 

 

 

2015-03-1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