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일곱권이 한권으로, 진화를 거듭한 ‘단행본 쌍윳따니까야’

담마다사 이병욱 2015. 3. 11. 15:41

 

 

일곱권이 한권으로, 진화를 거듭한 단행본 쌍윳따니까야

 

 

 

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메일을 하나를 받았다 메일을 보니 익숙한 필명이다. 지난 수 년 동안 지켜 보아 온 법우님이다. 법우님은 종종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문구일 것이라 여겼다. 예측은 적중하였다. 그런데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간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는 연꽃님께 책을 보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만

쌍윳따 개정판에 대한 글을 보니까 생각이나서 글 드립니다.

 

댓글다는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알기 어려움이 있어서 선뜻 받기 어려움이 있을걸로 압니다만 책을 보내드리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 혹은 개인적인 이유나 다른 어떠한 것도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가능하시다면 주소를 알려주시면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쌍윳따 개정판과 아신빤띳짜 스님의 11간의 특별한 법문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원하시는것만 받으셔도 좋습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N법우님)

 

 

N법우님이 또 한번 보내준 메일에 따르면 블로그의 글을 2006년부터 보아왔다고 하였다. 블로그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죽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법우님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블로그를 방문한 법우님들이 남겨 놓은 글에 따르면 일이년이 아니다. 거의 육칠년이 대부분이다.

 

N법우님이 이전에 남겨 놓은 인상적인 댓글이 있었다. 공무원연금개혁과 관련하여 글을 하나 썼는데 그때 당시 연금을 버려라라는 취지로 댓글을 올려 주신 바 있다. 너무 연금에 집착하는 삶을 경계한 것이다. 그 댓글을 소재로 하여 글을 작성한 바 있다.

 

또 하나 N법우님이 밝힌 것 가운데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법우님의 아들에게 이 블로그를 소개 하였다는 사실이다. 성년이 된 아들에게 소개한 이유는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런 식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알고 지내는 법우님들 중에서도 자녀나 며느리에게도 블로그를 소개하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법우님에 따르면 오래 전부터 책보시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책보시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아마 몇 일전에 올린 글이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생각한다. 그 때 올린 글에서 단권 상윳따니까야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상윳따니까야 통합본 기사를 접하고

 

몇 일 전 올린 글에서 전재성박사의 ‘상윳따니까야’ 통합본이야기를 하였다. 아마 이 이야기를 접하고 책을 보내기로 결심하였던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본의 아니게 보시를 유도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단권 상윳따니까야에 대한 글을 썼을 때 누군가 보시해 달라는 뜻으로 쓰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꿈에도 꾸어 보지 않았다. 다만 초기경전을 근거로 글을 쓰기 때문에 개정판이 나온다는데 개정판을 하나 구입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쓴 것이다. 그렇잖아도 거금 25(인터넷 서점 할인가격)에 달하는 책을 구입하려던 참이었다.

 

이렇게 책을 구입하려고 마음 먹은 것은 최근 BTN(불교TV)사이트에서 전재성박사의 대담이야기 ‘21세기 부루나 붓다의 제자들(제18 전재성 박사)’를 들었기 때문이다.

 

프로에서 전재성박사는 번역에 대한 오류이야기를 하였다. 새로 개정판을 내었는데 쉬운 번역이라 생각하였던 것에서 오류가 발견되었다고 하였다. 어려운 번역의 경우 많은 자료를 참고 하여 힘써 번역하기 때문에 오류가 없지만, 오히려 쉬워 보이는 번역에서 오류가 났다는 것이다. 너무 쉬운 번역이어서 자신의 자신의 견해가 들어 갔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번 개정판에서 그런 오류를 바로 잡았다고 하였다. 이때 까지만 해도 단권에 대한 정보는 몰랐다.

 

어느 카페에서 단권 소식을 보았다. 제목이 쌍윳따니까야 6646개 단권경전이 28만원, 경전 하나 30원꼴이네?’라 되어 있다. 들어가 보니 불교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이었다. 불교닷컴 기사는 다음과 같다.

 

 

빠알리 경전의 우리말 번역에 일생을 매진해 온 전재성 박사가 <쌍윳따니까야>를 한권에 모은 통합개정판전집을 출간했다.

<
쌍윳따니까야>는 빠알리 경전 가운데 명상수행의 차제를 안내한 경전이다. 연기와 중도의 이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37가지 원리들이 명쾌하게 정리돼 있다.

전 박사는 지난 1991 <쌍윳따니까야> 일부를 초역한 후 화마에 일부 소실된 것을 다시 보완해 1999년 처음 3권을 출간했다. 지난 2002년에는 모두 11권으로 완간했다.

전 박사는 완역출간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2007년 개정본 7권을 내놨다.

그리고 올해 다시 초간본 11권과 개정본 7권을 모았다. 전 박사는 34000여 매 원고를 작은 활자로 이단 편집해 쪽수를 줄이고 박엽지를 써서 두께를 줄인 2800여 페이지 통합본을 출간했다.

통합본 출간에는 팔공산 지장암 벽안 스님이 출간비용을 희사했다.

벽안 스님은 "부처님이 육성으로 설한 빠알리성전의 우리말 번역이 아쉬운 차제에 퇴현 전재성 박사가 불교계가 해야 할 대작불사인 빠알리성전의 역경을 혼자 힘으로 완성했다"고 했다.

스님은 "이는 현세대를 위한 한국불교의 제2전래이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는 한국불교의 금자탑이 될 것"이라고 했다. (02)2631-1381

 

쌍윳따니까야,퇴현 전재성 역주,한국빠알리성전협회,28만원

 

(6646 경전이 28만원, 경전 하나 30원꼴이네? 전재성 박사, 2816페이지 분량 '통합쌍윳따니까야전집' 펴내, 불교닷컴 2015-02-27)

 

 

기사의 날자를 보니 2 27일자이다. 이렇게 본다면 통합본이 나온지 몇 주 되지 않는다. 그러나 통합본에 대한 기사를 찾아 보기 힘들다. 대문에 실릴 정도의 기사로 취급하지 않아서라 본다.

 

획기적인 뉴스임에도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상윳따니까야가 단권으로 출간 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뉴스이다. 마치 바이블처럼 한권으로 되어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가지고 다니게 만들었다는 것은 커다란 뉴스감임에 틀림 없다. 그렇다면 교계언론에서는 이를 어떻게 보도 하였을까? 구글에서 키워드로 전재성, 통합본, 쌍윳따니까야로 하여  검색해 보았다.

 

검색하여 보니 불교신문에서는 방대한쌍윳따니까야한 권으로 읽는다(2015-02-26)’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11권으로 나눠있던 기존 책(초간본)들을 한권으로 합치고, 무려 34000매에 이르는 원고분량을 이단 편집해 쪽수를 줄이고 두께를 줄여 단행본으로 세상에 내놨다. 가방에 들어가는 사이즈여서 휴대하기 쉽도록 만든 것도 특징이다.”라 하였다. 특히 가방에 들어 가는 사이즈로서 휴대가 가능하다는 글이 눈길을 끈다. 통합본 뉴스는 현대불교신문과 금강신문, BBS불교방송에서도 발견되었다.

 

보시에 대한 암시

 

N법우님이 책을 보내 주겠다는 메일을 받고 망설였다. 마치 글을 쓴 것이 보시를암시 하는 것으로 비추어지는 것 같아 고민하였다청정도론에 따르면 보시를 유도하거나 암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청정도론에 암시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생계의 청정에 대한 계에 대한 항목을 보면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집착하고, 삿된 소원을 지니고, 그런 소원의 희생이 된 자가 남들에게 신호함, 신호를 보냄, 암시, 암시를 줌, 우회적인 말, 넌지시 말함을 일러 암시라 한다.(청정도론 1 161p)”라 되어 있다. 이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필수품을 보시해야겠다는 인식이 생기도록 하는 몸과 말의 어떤 동작을 말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암시를 줌이란 목동을 보고 ‘이들은 젓소의 송아지인가 아니면 물소의 송아지인가’ 라고 묻고서 ‘존자시여, 이들은 젓소의 송아지입니다.’라고 대답할 때 ‘이들은 젓소의 송아지가 아닐거야. 만약 젓소의 송아지라면 스님들도 우유를 먹었을 테니까.’라는 식으로 그 소년의 부모들로 하여금 알게 한 뒤 우유를 공양하게 하는 것 등이 암시를 주는 것이다.

(청정도론 제1 78, 대림스님역)

 

 

청정도론에 따르면 갖가지 암시와 우회적인 방법에 대한 표현이 소개 되어 있다. 비구가 암시를 주며 보시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생계의 청정에 대한 계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기에 N법우님의 보시에 대하여 망설였다. 비록 재가자이지만 함부로 보시를 받아서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제까지 책보시 등 많은 보시를 한 적이 있지만 받은 적은 드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서점가 기준으로 25만에 달하는 책을 보시하겠다고 하였을 때 주저 하였던 것이다.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보시를 유도한 것도 아니고 암시한 것도 아니고 넌지시 말한 것도 아니다. 다만 한권으로 된 경전이 나온 것에 대하여 기뻐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다. 왜냐하면 단권 경전을 이전에서부터 고대하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 단권에 대한 이야기가 이슈화 된 적이 있다. 불교계에서도 타종교처럼 한권으로 된 경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부니까야 또는 오부니까야를 모두 한권의 경전으로 만들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다.

 

책장 하나에 가득한 사부니까야 또는 오부니까야를 단권으로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단권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동의 하기 힘들다. 그것은 뺄셈논법이기 때문이다.

 

단권경전을 주장하는 이들에 따르면 쓸데 없는 부분은 빼자고 한다. 예를 들어 초월적 존재가 나오는 이야기, 신비한 이야기 등 현대과학으로 검증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대념처경 등과 같이 이치에 맞고 합리적인 경만 간추려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 반복 문구를 빼면 우리도 바이블 처럼 한권으로 된 통합니까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니까야에 초월적이고 신비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다 빼버리면 어떻게 될까? 마치 앙꼬없는 찐빵과 같이 밋밋할 것이다. 또 반복구문이 지루하다고 하여 모두 빼 버리면 독송하는 맛이 떨어질 것이다. 마치 차떼고 포떼듯이 이렇게 저렇게 빼고 남았을 때 어떤 형태가 될까? 아마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과도 같은 책이 될 것이다.

 

일아스님이 편집한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을 보면 초월적 이야기, 신비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사성제나 십이연기, 그리고 사념처와 같은 근본교리 위주이다. 그리고 평등에 대한 가르침, 우정에 대한 가르침 등 우리 들의 생활과 관련된 생활경 위주이다. 그래서 범천이나 악마, 제석천 등 초월적 존재도 나오지 않고 니까야의 특징인 반복구문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사부니까야 또는 오부니까야를 한권으로 만든다면 아마 또 하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이 탄생될 것이다.

 

보시는 기쁨으로 하고

 

N법우님의 메일을 받고 망설이다 결단을 내렸다. 기쁨으로 받겠다고 하였다. 보시는 기쁨으로 하고 또한 기쁨으로 받는 것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복업사에 따르면 “보시하기 전에는 기뻐하고, 줄 때는 마음이 청정하며, 주고 나서는 만족해야 한다”라 하였다.

 

하나 덧 붙인다면 보시 하고 나서 후회가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주는 자나 받는 자나 청정해야 한다. 그래서 맛지마니까야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M142)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탐욕을 떠난 자가 탐욕을 떠난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보시는 세간적 보시 가운데 최상이라고 나는 말한다.”(M142)

 

 

기쁜 마음으로 포장을 열어 보니

 

N법우님이 보내준 한권으로 된 개정판 쌍윳따니까야가 도착 하였다. 이전 날에는 역시 N법우님이 보내준 아신 빤딧짜스님이 지은’11일간의 특별한 수업이라는 책이 도착하였다. 이렇게 두 권의 책을 보내 주신 법우님에게 감사 드린다.

 

단권 상윳따니까야를 받아 보니 주소지가 서울 서대문구로 되어 있다. 빠알리성전협회 사무실에서 발송한 것이다. 서점에서 구매한 것이 아니라 성접협회에서 구매하여 발송한 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주소를 보니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로 430 #102-102(성원)@한국빠알리성전협회 Tel.02-2631-1381’로 되어 있다.

 

택배가 도착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포장을 열어 보았다. 예상 했던 대로 마음에 쏙 드는 책이 나왔다. 책이라기 보다 귀중품같아 보인다. 인조가죽케이스로 온통 둘러 쌓여 있기 때문이다. 케이스에는 지퍼가 있어서 열도록 되어 있다.

 

 

 

 

 

 

 

 

지퍼가 달린 책의 지퍼를 열어 보았다. 꽤 두툼하게 보이지만 그렇다고 무겁지 않은 책의 테두리에는 금칠이 되어 있다. 책의 삼면에 금칠이 되어 있어서 매우 고급스러워 보인다.

 

금칠을 보니 기독교인들의 바이블이 연상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바이블을 신성하게 여겨서 책의 3면에 금칠을 하고 가죽케이스로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권 상윳따니까야의 외관은 마치 바이블을 벤치마킹한듯 보인다.

 

 

 

 

 

 

아직까지 불교경전 중에 이런 형태의 책을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우리 불교에도 바이블처럼 한권으로 된 경전이 있어서 가죽케이스로 하고 더구나 책에다 금니까지 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대가 현실로 되었다.

 

어떻게 작게 만들었을까?

 

지퍼가 달린 인조가죽케이스로 된 상윳따니까야는 사실상 꿈의 경전과 다름 없다. 두툼한 경전을 한 손에 들고 옆구리에 밀착시키니 자세가 나오는 것 같다. 이런 경전을 얼마나 꿈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드디어 이런 경전을 갖게 되었다.

 

단권으로 된 상윳따니까야는 2,800여 페이지에 달한다. 이전에 발간된 개정판의 경우 7권으로 되어 있어서 그 부피에 압도된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단권 개정판을 보니 내 손에 쏙 들어오게 되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한 페이지에 두 칼럼 배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책의 사이즈는 이전과 똑 같다. 가로가 140mm이고, 세로가 220mm이다. 그런데 이전에는 한단으로 되어 있어서 여백이 많았지만 두 단으로 되어 있다 보니 빼곡한 느낌이다. 그리고 알차 보인다. 이렇게 두 단 배열되어 있다 보니 책의 부피가 대폭으로 줄어 든 것이다.

 

두 번째는 작은 글자체를 들 수 있다. 이전의 경우 글자가 명조체로서 폰트사이즈 12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판의 경우 명조체로서 폰트사이즈 9’로 되어 있다. 다만 단점이라면 글자사이즈가 작아 노안의 경우 안경을 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이 밝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는 종이두께가 매우 얇다는 것이다. 가지고 있는 노기스(버니어캘리퍼스)’가 있어서 측정해 보니 종이두께가 ‘0.04mm’이다. 이는 이전 개정판의 종이 두께와 비교하여 매우 얇은 것이다. 이전의 경우 종이 두께는 0.09mm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전 보다 종이 두께가 반이하로 얇아진 것이다.

 

상윳따니까야 단권화가 가능한 것은 2단 배열에 작은 폰트, 그리고 초박엽지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 개정판 7권을 한권에 모두 빠짐 없이 수록하였다. 더구나 주석까지 빠짐 없이 수록 되어 있다.

 

 

 

 

 

 

통합본 상윳따니까야는 2800여 페이지에 달한다. 그렇다면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측정해 보니 정확하게 ‘1.5Kg’이다. 한 손으로 들기에 적당하고 옆구리에 끼면 이 난다.

  

이제 우리도 단권으로 된 상윳따니까야를 갖게 되었다. 이전에는 7권으로 되어 있어서 이동중에 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인조가죽케이스로 보호된 경전을 가방에 넣고 다니거나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어디서나 열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걸작품을 만들어낸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 감사 드린다.

 

스마트폰 시대라 하지만

 

한권으로 된 상윳따니까야를 갖게 됨에 따라 한국불교도 이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경전을 펼쳐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철에서도 열어 볼 수 있고, 여행지에서도 열어 볼 수 있다.

 

아무리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라 하지만 모니터로 보는 것과 책을 열어 보는 것은 차이가 있다. 설령 인터넷에 경전의 내용이 모두 올려져 있어서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여도 책으로 읽는 것만 못하다.

 

책으로 보았을 때는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주석을 참고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게송이라도 그 의미를 알고 암송하는 것과 뜻도 모르고 외는 것과는 다르듯이 주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벌어진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단권으로 된 상윳따니까야는 늘 사용하는 용품과도 같다. 동시에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귀중품과도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처님의 귀중한 가르침이 담겨 있는 성보와 같다. 

 

진화를 거듭하는 개정판

 

단권으로 된 상윳따니까야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그리고 발간한 목적은 무엇일까? 이를 알려면 서문을 읽어 보아야 한다. 머리말에서 전재성박사는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초간본은 오랜 기간에 걸쳐 번역한 까닭에 문장의 통일성이 결여되고 간혹 오역이나 착간이 발견되어 개정본에서 고쳤는데도 불구하고 몇몇 선입관에 의한 실수가 고쳐지지 않고 남아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지속적 개정의 필요성이 높아져서, 역자는 다시 한권으로 묶어 개정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출간에서는 비용의 절감도 긴요해졌으므로, 무려 3 4천매에 이르는 원고분량을 작은 활자로 이단 편집하여 쪽수를 줄이고 박엽지를 써서 두께를 줄여 28백여쪽의 단행본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단행본 상윳따니까야 머리말, 전재성박사)

 

 

 

 

 

머리말에 따르면 이번 단행본의 경우 세 번째가 된다. 초판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번역 되었기 때문에 오류가 발견되었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하여 7권으로 된 개정판이 발행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세한 오류를 바로 잡고 문맥의 흐름을 고려하여 또 한번 개정판을 만든 것이 이번에 발간된 단행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재성박사의 상윳따니까야는 계속 진화해 온 것이다.

 

상품을 개발할 때

 

상품을 개발하면 개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개발당시에는 발견되지 않은 오류들이 필드(현장)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수정 보완이 이루어진다. 그래야 시장에서 팔릴 수 있다.

 

히트상품이 되기 까지에는 끊임 없는 개량이 이루어진다. 책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특히 번역서가 그렇다. 그것도 방대한 분량의 번역서의 경우 끊임 없이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초판본으로 내버려 둔다면 오류를 안은 체 유통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럴 경우 도태 되고 말 것이다.

 

소비자들은 불량품을 사지 않는다.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요구 하는 것을 반영하여 보완해야 한다. 그래야 명품이 탄생한다. 마찬가지로 번역서적 역시 끊임 없이 보완하여야 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전재성박사의 상윳따니까야는 초판본이 나온 이래 끊임 없이 보완되고 개선되어 왔다. 마침내 한손에 들어 오는 단행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른 것이다.

 

 

 

 

 

 

 

 

 

 

머리맡용으로 사용할 것

 

단행본 상윳따니까야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이 머리맡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머리맡에 두고 항상 보는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특히 아침에 보면 매우 효과적이라 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정신이 매우 맑다. 이럴 때 초기경전을 대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이럴 때 아무 곳이나 열어서 보는 것이다. 초기경전은 어느 곳을 열어 보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상윳따니까야의 특징은 풍부한 게송에 있다. 특히 이전 개정판에서 1권을 보면 대부분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문으로 되어 있더라도 그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게송의 형식으로 마무리 된다. 이렇게 산문과 운문이 함께 있는 형태에 대하여 응송(應頌 : Geyya)’이라 한다.

 

아침에 경전을 열어 본다면 게송을 외울 것이다. 다행히도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간된 번역서를 보면 모든 게송에 대하여 각주에  빠알리 원문이  실려 있다. 이런 점은 타 번역서와 비교하여 매우 강점이다.

 

주로 사구게로 되어 있는 게송을 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침시간에 암송하면 짤막한 네 개의 구절을 외우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것도 빠알리어로 외우면 더 좋다. 부처님 당시 부처님이 말씀 하시던 언어로 외운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이렇게 새벽 또는 아침을 활용하여 게송을 외우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어서 좋고, 가르침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서 좋고, 기억력이 향상되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상윳따니까야가 가장 기본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빠알리니까야라는 것이 있는 줄 조차 몰랐으나 이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우리말로 번역된 니까야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것과 같다.

 

사부니까야 또는 오부니까야가 있지만 상윳따니까야가 가장 기본이다. 56개의 주제별로 되어 있어서 상윳따니까야 하나만 있어도 다른 니까야가 커버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사부니까야에는 중복된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단행본으로 된 상윳따니까야를 기본으로 하고 다른 니까야를 참고로 하면 좋을 것 같다.

 

 

 

2015-03-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