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좋은 인사말 “성불하세요”

담마다사 이병욱 2015. 6. 1. 11:38

 

좋은 인사말 성불하세요

 

 

 

 

 

흔히 불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성불하세요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법회가 끝나면 사방을 향하여 법우들에게 성불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법우들을 만나면 역시 성불하자고 인사한다. 이때 성불은 어떤 의미일까?

 

한세계에서는 하나의 부처님만이

 

성불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가장먼저 석가모니부처님을 떠 올린다. 찬불가 중에 우리도 부처님 같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부처님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매우 불경스런 일이다. 왜 그런가? 한세계에서는 두 명의 부처님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신화적 관점에서이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가장먼저 이전 부처로부터 수기를 받는 것이다. 이는 선혜동자가 연등불로 부터 수기를 받은 것을 떠 올릴 수 있다. 다음으로 보살행이다. 십바라밀행을 하면서 4아승지 겁 이상 한량없는 보살행을 해야 한다. 이러한 보살행에 대한 이야기는 자따까에 실려 있다.

 

신화적으로 부처가 출현하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정법시대가 시작 되었음을 의미한다. 초기경전에서 과거칠불이야기를 보면 부처가 출현할 때 현상은 동일하다. 그 중에 연기법을 들 수 있다.

 

과거불이 발견한 것은 연기법이다. 이미 원리로서 확정 되어 있는 법칙을 발견하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정법의 공백기간이 있었음을 말한다. 그런 정법시대는 부처의 가르침의 살아 있는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가르침이 사라지면 정법시대도 사라진다. 암흑의 시대가 한량없이 지속되다 마침내 또 한명의 부처가 출현하면 다시 정법시대가 시작된다.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가르침이 경전으로 전승 되어 오고 있고, 팔정도의 실천으로 성자가 출현하면 일반적으로 정법시대라 한다. 하지만 정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정법이 변형되기 때문이다. 원래의 가르침이 변질 되어 전혀 다른 형태로 변모 되었을 경우  정법시대가 끝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신화적으로 무수히 많은 부처가 출현하였다. 그럼에도  불자들이 성불하세요라고 말한다면 이는 매우 불경스런 말이다. 한세계에서는 한부처님 밖에 없다. 정법이 두 개 , 세 개가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물론 신화적 관점이다.

 

견성성불하자는데

 

또 하나의 성불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견성성불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이라 여겨진다. 간화선수행에 따른 성불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선종에서 주창하는 말이다.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표방하는 선종에서 부처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종에서 말하는 성불과 불자들의 인사말 성불하세요라는 말은 동의어 일 수 있다. 그러나 문자를 세우지 않고 마음을 보아서 성불한다고 말하는 선종은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본다.

 

초기불교에서 성불의 의미

 

초기불교에서 성불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처님 가르침 내에서의 일이다.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 내에서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런 부처에 대하여 붓다(buddha)라 하는데 이는 보통명사로서 부처를 말한다. 고유명사로서의 부처는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석가모니부처님 한분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정등각자라 한다. 그리고 여래십호라 하여 존칭을 사용한다.

 

가르침을 실천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이는 숫따니빠따 셀라의 경에서 “나는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은 곧바로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을 이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깨달은 자입니다.(stn558)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깨달은 자로서의 붓다는 보통명사를 말한다. 누구나 팔정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연기적 삶의 종착지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연기적 삶을 살지 않는 것이다. 연기적 삶을 살면 중생이지만 반대로 연기의 삶과 반대로 살면 부처가 된다. 이는 십이연기의 순관과 역관으로 설명되고, 사성제에서 고성제와 멸성제로 설명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되는대로 산다. 그래서 막행막식한다. 이는 끌리는 대로, 연기대로 사는 것과 같다. 물론 연기의 순관을 말한다. 그 끝은 어디일까? 절망이다. 접촉이 발생하여 느낌대로 살 때 필연적으로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가 더욱 더 강화 되어 집착하게 된다. 집착하면 업으로서의 태어남을 유발하고 만다. 십이연기 정형구에 따르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S12.2)”라 하였다. 결국 연기순관의 종착지는 절망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연기적 삶이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연기의 흐름과 반대 되는 삶이다.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피며 사는 것이다. 끌리는 대로 막행막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늘 알아차리며 사는 것이다.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사는 것이다. 그 끝은 어디일까?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는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자가 부처이다.

 

참 좋은 인사말 성불하세요

 

불자들이 인사할 때 성불하세요라 한다. 그 그러나 그 의미를 아는 불자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신화적 관점에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부처가 된다는 것은 실현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불경죄를 짓는 것으로 본다.

 

선종의 입장에서 본다면 성불하세요라는 인사말이 일견 타당해 보인다.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알아 자신이 부처인 것을 증명하는 수행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스님은 당신이 부처님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쉬운 방법이 아니다. 선방에서 10, 20, 30, 평생을 앉아 있어도 성불했다는 이야기가 들려 오지 않은 현실에서 불자들의 인사말로 사용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성불의 의미로서 가장 좋은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의지하여 깨달은 자, 즉 부처(buddha)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는 보통명사로서의 부처이다. 가르침을 실천하면, 팔정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살아 있다면 정법시대이다. 빠알리 경전이 전승되어 왔고 팔정도의 가르침으로 성자가 출현하였다면 정법시대이다. 삼보를 의지처로, 귀의처로, 피난처로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자들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불자들의 인사말 성불하세요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참 좋은 말이다.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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