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당신은 경안(輕安)하십니까?

담마다사 이병욱 2015. 7. 3. 10:14

 

당신은 경안(輕安)하십니까?

 

 

술 권하는 세상에서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십여년전 기체조 할 때 듣던 말이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갖가지 체조로 땀을 흠뻑 흘린 다음 호흡을 가다듬을 때 몸과 마음은 날아 갈듯 사뿐하다. 이럴 때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음주 다음날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음주를 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과도한 음주이다. 그럴 경우 몸과 마음은 엉망진창이 된다. 그때 반드시 후회가 밀려 온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불편하고 그에 따라 후회를 한다면 불선업(不善業)’을 짓는 것이다.

 

세상은 술 권하는 사회이다. 어디를 가나 술좌석이다. 식사 할 때도 반주라 하여 맥주한잔 곁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구면일 경우 대화를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음주를 즐긴다. 모임을 가질 때 역시 술은 빠지지 않는다.

 

술을 마실 때 기분이 좋다. 그러나 깨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취하면 기분이 나빠진다고 한다. 대부분 취하면 기분이 좋아 지는 것과 정 반대의 결과이다. 그래서일까 그 사람은 술을 입 근처에도 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어떻게 해야 술을 잘 마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술을 잘 마실 수 있을까? 언젠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 보았다. 스님이 말하기를 술을 마실 때 음식으로 생각하면 되요.”라 하였다. 식사할 때 술을 음식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서양에서 식사할 때 포도주 한 두잔 곁들이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식사할 때 반주로 한 두 잔 곁들이는 것은 문제 없을 듯 하다. 식욕을 자극하고 소화를 돕는다면 음주는 도움이 된다스님의 말대로 음식개념으로 생각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탐욕으로 분노로 마셨을 때는 문제가 된다.

 

식사하는 것만 보아도 그 사람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대부분 탐욕으로 먹는다. 때로 분노로 먹기도 먹는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먹는 것에서도 그대로 표출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먹고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 특히 어떻게 마셔야 할까?

 

어떤 이는 말한다. 술을 가급적 마시지 않는 것이 좋지만 피치 못하게 마신다면 알아차리면서 마셔라.”라고 하였다. 음주도 수행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마시면 취할 리 없다. 취하지 않게 마신다면 술은 음식이라 볼 수 있다.

 

음식을 알아차리면서 먹으면 후회가 없을 듯하다. 과식을 할 염려도 없고 과음을 할 염려도 없다. 이는 탐욕과 분노로 음식을 대하지 않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수행자는 음식을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음식을 대할 때

 

타종교인들은 음식을 대할 때 기도를 한다. 천주교인이라면 성호를 긋고 개신교인이라면 눈을 감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한다.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그렇다면 불교에 식사의식이 없는 것일까?

 

불교에 공양게라 하여 식사하기 전에 낭송하는 의식이 있다. 내용을 보면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 되어 있다. 불교적 가치관이 반영된 훌륭한 가르침이다. 특히 도업성취를 위해 약으로 알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눈에 띈다. 이렇게 음식을 대하면 탐욕으로 분노로 음식을 대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대부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살아가는 수행자는 음식을 대할 때도 다르다. 초기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음식을 대하라고 한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치료가 될 때까지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또한 예를 들어 짐을 옮길 수 있도록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이것은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 몸을 유지하고 해를 있지 않도록 하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불편했던 경험을 제거하고 새로운 고통을 초래하지 않겠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살리라.’라고 이치에 맞게 성찰해서 음식을 섭취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이 음식을 먹을 때에 알맞은 분량을 안다.(S35.239)

 

 

이것이 부처님의 공양게라 볼 수 있다. 대승공양게에서는 음식에 대하여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라 하였지만 초기경전에서는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이라 하였다. 음식을 즐기며 먹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대승공양게에서 처럼 음식을 약으로 먹는다면 모든 음식은 약이 되어 버릴수 있다. 심지어 술도 약이 될 수 있다. 결국 음식을 즐기면서 먹게 되는 면죄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대승공양게에서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라고 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공양게를 새로 만든다면

 

초기경전에서 눈에 띄는 말은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이라는 말과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음식을 대하는 수행자의 태도이다. 그래서 현대판 공양게를 보급한다면 아래 내용이 될 것이다.

 

 

이것은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 몸을 유지하고 해를 있지 않도록 하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불편했던 경험을 제거하고 새로운 고통을 초래하지 않겠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살리라.” (S35.239)

 

 

 

 

수행자에게 음식을 대하는 것은 청정한 삶(brahmacariya)’을 살기 위한 것이다.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사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음식절제는 수행의 범주에 속한다. 그래서 초기경전 도처에서 음식절제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음식을 대할 때 적당히 먹으면 편안하다. 술도 음식으로 보아 마시면 무리가 없다. 몸을 지탱해 주는 기름칠을 해 주는 음식으로 알아 먹을 것을 대한다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상태가 경안(輕安)’이다.

 

경안(輕安)에 대하여

 

경안에 대하여 사전을 찾아 보면 몸을 쾌적, 편안하게 하고 마음이 선업을 짓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 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선업(善業)’이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 하는 것 만 해도 선한 행위임을 말한다.

 

경안을 빠알리어로 빳삿디(passaddhi)라 한다. 영어로는 ‘calmness; tranquillity; serenity’의 뜻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몸의 경안(kāya-passaddhi)’마음의 경안(citta-passaddhi)’이 있다. 모두 안정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경안과 유사한 선법으로서 몸의 가벼움과 마음의 가벼움, 몸의 부드러움과 마음의 부드러움, 몸의 적합함과 마음의 적합함, 몸의 능숙함과 마음의 능숙함, 몸의 올곧음과 마음의 올곧음이 있다. 모두 몸과 마음이 건강함을 말한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이와 같은 여덟 가지는 선법에 속한다.

 

경안과 관련하여 초기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수행승이여, 여섯 가지 고요함은 이와 같다. 첫 번째 선정에 도달한 자에게는 언어가 고요해지고, 두 번째 선정에 도달한 자에게는 사유와 숙고가 고요해지고, 세 번째 선정에 도달한 자에게는 희열이 고요해지고, 네 번째 선정에 도달한 자에게는 호흡이 고요해지고, 지각과 느낌의 소멸에 도달한 자에게는 지각과 느낌이 고요해진다. 번뇌가 부수어진 수행승에게는 탐욕도 고요해지고 성냄도 고요해지고 어리석음도 고요해진다.” (S36.11)

 

 

여섯 가지 선정을 성취하였을 때 고유해진다고 하였다. 여기서 고요함은 빳삿디 (passaddhi)를 말한다. 빳사디에 대하여 한자어로는 輕安, 安息, 로 번역된다.

 

빳삿디는 일곱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 한다. 이를 안온의 깨달음의 고리(passaddhisambojjhaga, 輕安覺支)’라 한다. 칠각지에서 경안에 대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에게 희열이 생겨나면, 그의 몸과 마음이 고요해진다. 수행승들이여, 희열에 들어서, 그의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때 그 수행승에게 안온의 깨달음 고리가 시작되고, 그때 그 수행승에게 안온의 깨달음의 고리가 닦여지고, 그 때 수행승에게 안온의 깨달음 고리의 수행이 원만하게 된다.” (M118)

 

 

경에서 보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항상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선정상태에서 희열이 일어나면 몸과 마음이 함께 고요해진다고 하였다. 이를 안온또는 경안이라 한다.

 

당신은경안하십니까?

 

흔히 하는 인사말이 안녕하세요?”이다. 불자라면 여여하십니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더 좋은 말이 있다. 그것은 경안(輕安)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경안하십니까?” 라고 말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편안 하느냐고 묻는 말과 같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 선업을 짓는다. 이는 52가지 마음의 작용에서 경안이 선법에 포함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볍게, 부드럽게, 적합하게, 능숙하게, 올곧게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선한행위가 된다. 만일 음식절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고통받는다면 이는 불선법이 된다. 여기서 음식의 범주에 술도 포함된다.  따라서 선업을 지으려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그 첫 번째 실천사항이 음식절제라 본다.

 

부처님은 음식절제를 강조하였다. 청정한 삶을 조건 중의 하나로 본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대할 때 아들고기를 대하듯 하라고 하였다. 사막에서 아들고기를 먹고 살아 남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또 음식을 대할 때는 몸에 기름칠 하는 정도로 그치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음식을 즐기며 먹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도 탐욕으로 분노로 음식을 대하지는 않는지 살필 일이다.

 

 

2015-07-0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