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온통 초록의 세상에 고향 앞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15. 7. 5. 22:15

 

 

온통 초록의 세상에 고향 앞으로

 

 

고향 앞으로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지금도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광고 문구입니다. 검색해 보니 81년 금성하이테크 TV 광고라 합니다.

 

매순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커피를 마실 것인지 차를 마실 것인지 망설임도 일종의 선택입니다. 어떤 선택은 10년이 아니라 일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일년 만에 고향에 내려 갑니다. 광명에서 케이티엑스를 타기 위하여 이른 아침에 출발했습니다. 버스와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선택이 잘못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뒤늦게 택시 타고 광명역에 도착하였지만 떠나는 기차의 모습을 지켜 보아야만 했습니다.

 

한번 지나간 버스는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떠난 열차 역시 마찬 가지 이었습니다. 다음 열차를 탈 수 밖에 없습니다. 표를 다시 끊어야 했습니다. 막연하고 안이한 대처로 인하여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였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손실로 나타난 것 입니다.

 

고향에 갑니다. 여덟살 때 까지 유년시절을 보낸 곳 입니다. 일년에 한번 사촌들이 모여서 제사 지내는 날 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서 각지에서 오는 형님들을 만나는 날 입니다. 전남함평 불갑산 아래에 있는 평화로운 마을 입니다.

 

온통 초록의 세상에

 

고향가는 길 시외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온통 초록의 세상 입니다. 초록의 색깔이 이 세상을 점령한 듯 합니다. 세상은 초록색에 저항하는 듯 하지만 한군데 예외가 있습니다. 초록이 동색이라는 말이 있듯이 군부대만큼은 초록과 함께 합니다.

 

초록은 생명과 평화의 싱징입니다. 녹색당이 이를 증명합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초록도 달리 받아 들입니다. 한강 이북 접경지역에서의 초록은 긴장감의 상징 입니다. 또 군대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한 자에게는 초록이 공포로 느껴 질 수도 있을 겁니다. 병원에서 간호사의 흰 가운이 주사바늘을 연상케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 쯤 찾는 고향입니다. 베이비붐 세대 대부분이 그렇듯이 농촌이 고향입니다. 그것도 개발이 안 된 곳입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 생각 합니다. 옛날 그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산천의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천은 옛모습 그대로 의젓하게 있다라는 뜻 입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사람 일 것 입니다. 또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 들입니다

 

생명이 모든 것들은 세월과 함께 변해 갑니다사람은 가고 없지만 저 멀리 보이는 불갑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보아 왔을 산 입니다.

 

 

 

 

 

 

산천도 언젠가는 변할 것 입니다. 지금 저 보이는 높은 산도 한량 없는 세월이 지나면 남아 나지 못할 것 입니다.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기 때문에 저 견고해 보이는 산도 언젠가 허물어지고 말 것 입니다.

 

겁화가 일어나면 우주가 한점으로 수축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경에서는 버터나 참기름이 불이 타서 연소되면, 결코 재나 검댕이를 남기지 않듯, 수행승들이여, 이 산의 제왕인 수미산이 불타서 연소되면, 결코 재나 검댕이를 남기지 않는다.(a7.66)”라 하였습니다.

 

고향에 올 때 언제나 느끼는 것은 시간이 멈추어진 것 같습니다. 산천도 의구하지만 주변환경이 변함 없기 때문 입니다. 유년시절 놀던 뒷잔등도 여전하고 시골마을도 그대로 입니다. 초가지붕이 기와로 바뀐것 외 큰 변화는 없습니다.

 

 

 

 

 

 

 

 

 

 

 

성주상과 조항상

 

고향에 가면 가는 곳이 있습니다. 큰집입니다. 조부와 조모가 살았던 집 이기도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빈집에 일년에 한번 이맘 때쯤 사촌들이 올 때 비로서 사람사는 집 같습니다. 그러나 유년시절에는 사람들로 바글 거렸습니다.

 

흔히 탯줄을 묻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고향을 의미 합니다. 같은 땅에서 난 것을 먹고 자라 태어난 사촌들은 가까운 사이 입니다. 일정부분 DNA를 공유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 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다라는 동질감을 느낍니다.

 

같은 조상을 둔 자손들은 준비한 음식물로 제사상을 마련 하였습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성주상입니다. 큰 제사상 옆에 작은 상차림을 별도로 마련해 놓은 것 입니다.

 

 

 

 

 

 

성주상에 대하여 주인상이라 합니다. 땅의 주인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기도 전에 이 땅이 있었는데 그 땅의 주인에게 바치는 상이라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땅에 살다 간 망자들은 객이 될 것 입니다. 그런데 상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조항상입니다.

 

조항상은 일종의 부엌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엌에 아궁이가 있는데 불이 꺼지지 않아야 했습니다. 일종의 부엌의 신 아궁이 신에게 올리는 상이 조항상이라 합니다. 예전에는 부엌 한켠에 조항상이라는 작은상이 차려졌다고 합니다.

 

호랑가시나무

 

고향집에 오면 꼭 확인 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집의 뒤켠에 있는 호랑가시나무입니다. 호랑가시나무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용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잎파리가 뾰족뾰족 하고 끝에 가시가 있는데 호랑이 발처럼 생겼습니다. 옛날에는 자생하여 군락을 이루기도 하였으나 요즘에는 찾아 보기 힘듭니다.

 

 

 

 

 

호랑가시나무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백부가 살 때 심어 놓은 것이라 합니다. 천연기념물로서 한약재로 알려진 호랑가시나무는 수집의 대상입니다.

 

군락을 이루던 호랑가시나무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시골집 뒤켠에서 비밀리에 자라고 있습니다. 빈집이기에 누군가 캐 갈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도착하면 가장 먼저 확인 하는 것이 호랑가시나무 입니다.

 

 

 

 

 

 

폐교된 초등학교

 

시골에서 초등학교 1학년 까지 다녔습니다. 지금은 폐교가 된 분교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생들이 참 많았습니다. 등교시간에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온 학생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어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이농현상과 함께 학생이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65, 66, 67  3년에 걸친 대기근에 따라 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났습니다. 나이 든 사촌형님의 회고에 따르면 역전에서 피난 행렬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한국전쟁당시 피난민을 연상케 했다고 합니다. 농사 지어서는 살수 없기에 남부여대하듯이 야간열차를 타고 무작정 상경한 것 입니다.

 

농사를 지어서 살 수 없기에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났습니다. 그에 따라 학생수도 줄어 들어 학교는 오래 전에 폐교 되었습니다. 폐교된 운동장에는 와이즈산업이라는 공장 건물이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나 단층 흰 교사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너머에는 한국전쟁당시 빨치산의 주둔지 이었다는 불갑산이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외국인들 때문에 소외감 느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누님은 시골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한번도 고향을 떠나 본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고향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도 목격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외국사람들입니다.

 

누님에 따르면 이곳 농촌에도 외국인 신부들이 많다고 합니다. 주로 베트남 신부들이라 합니다. 그런데 품앗이 일을 하러 가면 베트남출신 신부들이 다수라고 합니다. 그들끼리 모여서 그들끼리 언어로 소통하고 그들끼리 식사를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소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마을로 들어 가기 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는 우리와 다른 모습을 한 외국인 여성이 마트에서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농촌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수 온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나이 드신 분들은 우려 하고 있습니다.

 

졸깃졸깃한 모시잎떡

 

이곳에는 특산품 아닌 특산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시잎떡입니다. 모시잎으로 만든 가래떡, 송편, 절편 등을 말합니다. 쑥떡 처럼 초록이지만 쑥떡과 맛은 다릅니다. 터미널이나 관광지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것이 모시잎떡입니다.

 

 

 

 

 

예로부터 모시는 여름철에 입는 옷의 소재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음식재료로도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지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역특산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시잎떡은 맛이 졸깃졸깃합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유한 맛을 냅니다. 누님은 모시잎떡을 많이 준비 하였습니다. 그래서 외지에서 온 사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내년에 또 만날 것을 기대하며

 

일년만에 고향을 다시 찾았습니다. 매년 이맘 때 쯤 DNA를 공유하는 사촌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습니다. 모두 나이 많은 사촌들 입니다. 가장 연장자는 부모뻘 됩니다. 그래서 대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같은 또래도 있습니다. 여자 사촌입니다. 목회활동을 하고 있은 여자목사 입니다.

 

 

 

 

 

여목사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가정주부에  불과 하였으나 자신의 노력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것 입니다. 여목사는 유년기에 늘 함께 다니던 파트너 이었습니다. 서로 종교는 다르지만 만나면 반갑습니다. 이럴 때는 이념이나 종교는 무용지물 입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내년에 또 만날 것을 기대하며 작별하였습니다. 지난 4월에 개통된 케이티엑스로 마치 시간이동 하듯이 다른세계로 갑니다.

 

 

2015-07-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