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의 가르침

반복적 원한의 악순환고리를 끊고자, 꼬삼비승단분열과 디가부이야기

담마다사 이병욱 2015. 7. 7. 18:47

 

반복적 원한의 악순환고리를 끊고자, 꼬삼비승단분열과 디가부이야기

 

 

 

꼬삼비에서 승단의 분열

 

부처님 당시 꼬삼비에서 승단의 분열이 있었다. 한 수행승이 작은 죄를 지었는데 권리정지를 당하면서 발단이 되었다. 율장대품에 따르면 다투고 싸우고 쟁론하였는데 급기야 부적절한 신체적 행위와 언어적 행위를 하고, 손찌검을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특히 손찌검(hatthaparāmāsa)이라 하였다. 이정도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하였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수행승들을 견책하고 꾸짓고 법문으로 경책하였다. 그럼에도 수행승들의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대품에서는 참모임 안에서 다투고 싸우고 쟁론 하면서 입에 칼을 물고 찔렀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칼만 들지 않았을 뿐 입으로는 여러 번 상대방을 난자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입에 칼을 물고 찔렀다.(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라 하였다.

 

초기경전에서 입에 칼을 물고 찌른다는 말은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주로 논쟁할 때 나오는 말이다. 맛지마니까야 여러 가지 느낌에 대한 경(M59)’에서 그들은 말다툼하고 언쟁을 하고 논쟁하고 서로 입에 칼을 물고 찌를지도 모른다.”라 하였다. 이와 유사한 말로서 사람이 태어날 때 참으로 입에 도끼가 생겨난다. 어리석은 이는 나쁜 말을 하여 그것으로 자신을 찍는다네.(S6:10)”라는 게송도 있다.

 

디가부이야기(Dīghāvuvatthu)

 

부처님은 수행승들에게 싸우지 말고 화합할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은 디가부이야기(Dīghāvuvatthu)를 들려 준다. 율장대품 코삼비의 다발 디가부이야기(Dīghāvuvatthu)’에서 하나의 게송이 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mā kho tva, tāta dīghāvu, dīgha passa, mā rassa.  

Na hi, tāta dīghāvu, verena verā sammanti;

averena hi, tāta dīghāvu, verā sammantī

 

 

사랑하는 디가부야, 너는 길게도 짧게도 보지 말라.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으로 쉬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

 

(율장대품, 10장 꼬삼비의 다발, 디가부이야기, 전재성님역)

 

 

 

 

 

 

 

 

Kosambi Asokan Pillar

 

 

 

게송을 보면 법구경 5번 게송과 유사하다. 법구경 5번 게송은 결코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원한의 여읨의 그치나니 이것은 오래된 진리이다.(Dhp5)”라 되어 있다.

 

법구경 5번 게송에 대한 인연담은 야차녀 깔리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하지만 율장대품에서 디가부 관련 게송은 다르다. 꼬살라국의 디가부왕자와 까시국의 브라흐마닷따왕과의 원한에 관한 디가부이야기(Dīghāvuvatthu)이기 때문이다.

 

오왕과 월왕의 복수혈전

 

율장대품에서는 디가부이야기가 10페이지에 걸쳐서 소설적 구성으로 설명되어 있다. 부처님 당시 16대국 중의 하나이었던 꼬살라국과 까시국과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치 중국춘추전국시대 와신상담(臥薪嘗膽)’이야기를 떠 올리게 한다. 그러나 디가부이야기를 보면 복수전을 펼치는 와신상담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춘추말기 오나라와 월나라는 이웃하고 있었는데 앙숙이었다. 오왕 합려는 월나라를 쳤다가 월왕 구천에게 패하고 죽고 만다. 합려는 죽기전에 태자 부차에게 월나라를 절대로 잊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오왕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 월왕 구천을 쳐부수어 포로로 잡는다. 부차는 구천을 노예로 삼아 부차의 마구간 담당을 시켰다. 노예가 된 구천은 부차의 변까지 맛 보며 간호를 하게 된다. 이런 노력이어서인지 부차는 구천을 풀어 주게 된다.

 

월나라로 돌아간 구천은 와신상담의 시간을 갖는다. 자리 옆에 쓸개를 놓아두고 앉거나 누우면 쓸개를 바라보았으며 먹거나 마실 때 또한 쓸개를 맛보며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설욕의 강한 의지를 불태운다.  마침내 월왕 구천에게 복수의 시간은 왔다. 구천은 부차를 공격하여 복수전을 성공으로 이끈다. 이것이 유명한 와신상담 이야기 이다.

  

이야기를 비교해 보면

 

율장대품에서 보는 디가부이야기는 와신상담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와신상담의 이야기는 원한에서 원한으로 복수혈전을 벌이지만 디가부이야기를 보면 원한을 여의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이를 서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와신상담이야기

디가부이야기

주인공

월왕 구천

꼬살라국왕자 디가부

상대역

오왕 부차

까시국왕 브라흐마닷따

결말

원한에 따른 복수

원한을 여의고 화해

내용

1) 부차는 복수에 뜻을 품고 아침저녁으로 “부차야, 너는 월나라 사람들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

 

2)  구천은 자기 나라로 돌아와 자리에다 쓸개를 매달아 놓고 누우면 쓸개를 쳐다보고 맛을 보며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는가?"

사랑하는 디가부야, 너는 길게도 짧게도 보지 말라.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으로 쉬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

 

 

 

 

중국춘추시대 말기는 기원전 5세기이다. 부처님당시 16대국 시대 역시 기원전 5세기이다. 이렇게 본다면 거의 동시대에 중국과 인도에서 전국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와신상담의 고사를 보면 서로 원한 관계에 따른 복수혈전이고, 율장대품에 실려 있는 디가부이야기를 보면 원한을 여의는 화해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원한을 여읨으로써 서로 윈윈(win-win)

 

디가부이야기를 보면 꼬살라국 왕자 디가부는 아버지의 원수 까시국왕 브라흐마닷따의 시종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브라흐마닷따의 신임을 얻게 되어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

 

어느 날 브리흐마닷따와 디가부는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사냥터에서 둘이만 남게 되었을 때 디가부는 복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잠이든 브라흐마닷따를 죽이면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이다.

 

디가부가 원수를 살해하려는 순간 아버지의 유언이 떠 올랐다. 그것은 사랑하는 디가부야, 너는 길게도 짧게도 보지 말라.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으로 쉬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와신상담에서 “부차야, 너는 월나라 사람들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라고 한 것과 대조적이다.

 

디가부는 원수를 죽일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이 생각나서 그만 두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에 대하여 온당하지 않게 본 것이다. 그래서 칼집에 칼을 집어 넣었다.

 

잠에서 깬 브라흐마닷따는 꿈속에서 디가부가 자신을 살해하려는 꿈을 꾸었다. 이에 자초지종을 물으니 디가부가 실제로 죽이려 하려던 것이 드러났다. 디가부는 솔직하게 이야기 하였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브라흐마닷따]

사랑하는 디가부야, 나의 목숨을 살려다오. 사랑하는 디가부야, 나의 목숨을 살려다오.”

 

[디가부]

제가 어떻게 폐하의 목숨을 살려줄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저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브라흐마닷따]

사랑하는 디가부야, 그대가 나의 목숨을 살려다오. 내가 그대의 목숨을 살려 주마.”

 

(율장대품, 10장 꼬삼비의 다발, 디가부이야기, 전재성님역)

 

 

브라흐마닷따왕은 형식적으로 목숨을 살려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디가부왕자 역시 형식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그대가 나의 목숨을 살려다오. 내가 그대의 목숨을 살려 주마.”라 함으로써 서로 살려 준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율장대품에서는 까씨 국의 왕 브라흐마닷따와 왕자 디가부는 서로의 목숨을 살려주고, 손을 붙잡고, 해치지 않기로 맹세했다.”라고 되어 있다. 이 부분을 보면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원한을 여읨으로써 서로 윈윈(win-win)’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수의 악순환 고리

 

디가부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실행하였다. 그래서 서로서로 살게 되었다. 이에 디가부는 브라흐마닷따 왕에게 다음과 같이 아버지가 남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디가부]

폐하,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에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으로 쉬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라고 한 것은 폐하께서 나의 부모를 죽였다.’라고 제가 폐하의 목숨을 빼앗는다면, 폐하를 위하는 사람들이 저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고, 저를 위하는 사람들이 다시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원한은 원한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폐하는 저의 목숨을 살려 주었고, 저는 폐하의 목숨을 살려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원한은 원한의 여읨에 의해 쉬어졌습니다. 폐하, 이것을 두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에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으로 쉬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라고 한 것입니다.”

 

(율장대품, 10장 꼬삼비의 다발, 디가부이야기, 전재성님역)

 

 

디가부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원한의 복수를 하면 또 다른 복수를 유발하고야 만다고 하였다.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다 보면 철천지 원수가 되어 끊임 없이 복수의 악순환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한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원한은 원한으로 쉬어지지 않는다.(Na hi, tāta dīghāvu, verena verā sammanti)”라 하였다. 원한을 쉬려면 더 이상 원한을 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averena verā sammantī)”라 하였다.

 

개장군 토쿠가와 츠나요시의 복수금지법

 

복수의 악순환고리는 끊어야 한다. 일본 에도막부 시절에 츄신구라(忠臣藏) 이야기가 있다. 이에 대하여 승리는 부르고, 아덴만의 여명작전과 충신장(忠臣藏)(2011-01-2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츄신구라(忠臣藏)는 일본 도쿠가와 막부시절 5대 쇼군인 ‘토쿠가와 츠나요시(德川綱吉, 1646~1709)시절에 발생된 사건이다. 그런 츠나요시는 어떤 인물일까.

 

츠나요시가 집권하고 있던 시절은 평화의 시대이었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100년 후의 일본의 경우 평화의 시대이었다. 그런 시대에 쇼군이 된 츠나요시는 유학에 정통하고 유교의 덕목을 정치에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여 그의 치세기간동안 동물살상금지령을 내렸다.

 

개장군(이누쿠보, 犬公方)라고도 불린 츠나요시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후세 사가들은 색욕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은 무능한 쇼군으로 보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이와 정 반대로 도쿠가와 시대의 중흥의 기초를 이룬 매우 유능한 쇼군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츠나요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생명존중사상이다그의 치세기간중에 동물살상금지령이라는 전무후무한 포고령이 나온 것이다. 지나가는 개 한마리만 죽여도 처벌 받던 시대에 추신구라 사건이 일어 난다.

 

츄신구라사건은 1701 1703년에 일어났는데, 47명의 사무라이들이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주군을 위하여 ‘복수’극을 펼친 사건이다. 원수를 갚기 위하여 무려 2년간이나 치밀하게 준비하여 마침내 상대방을 완벽하게 제거함으로서 복수를 한 것이다이 사실을 알게 된 츠나요시는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거사한 47명의 사무라이들에 대한 처벌이 문제가 되었다. 길가의 버려진 개도 살육하면 처벌 받는다는 ‘동물살상금지령’을 만들어 놓은 5대 쇼군 츠나요시는 고민에 빠진다.

 

츠나요시가 고민한 것은 복수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주군을 위하여 보복이나 복수 하는 것은 주군에 대한 아름다운 충절로서 무사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중의 하나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다른 보복을 불러 일으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한 측에서는 또 다른 복수를 하려 할 것이다. 이는 보복과 복수의 악순환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 츠나요시는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 개와 같은 동물을 포함하여 사람까지 생명이 있는 것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던 츠나요시는 원수는 없다고 선언하면서 아코번 무사 47명 전원에게 할복을 명하였다.

 

 

 

 

 

 

생명을 중시한 츠나요시가 할복을 명한 것은 한마디로 또 다른 보복을 막기 위한 조치이었다. 보복의 악순환에 대한 고리를 끊기 위한 극단의 조치이었던 것이다.

 

주군에 대한 복수 금지가 법으로 만들어 불법화 된 것은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이와 같은 추신구라는 일본 가부키극의 고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법을 설하는 자(adhammavadin)

 

부처님은 꼬삼비에서 승단의 분열이 일어 났을 때 디가부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폭력을 휘두르고 무기를 사용하는 이러한 왕들에게도 이와 같은 인내와 자애가 있을 수 있다면, 수행승들이여, 여기 그대들도 이렇게 잘 설해진 가르침과 계율로 출가 하였으므로 인내와 자애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선양해야 한다.”

 

(율장대품, 10장 꼬삼비의 다발, 디가부이야기,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여려 차례 이와 같이 말씀 하였다. 그럼에도 어떤 비법을 설하는 수행승은 여전히 진리의 주인인 세존께서는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하며 관여 하지 말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세존께서는 지금 여기에서의 안락한 삶을 누리며 안온하게 지내십시오. 이러한 다툼과 논쟁과 분쟁은 저희들의 일입니다.”라 하였다. 이렇게 말하는 자에 대하여 경에서는 비법을 설하는 자(adhammavadin)’라 하였다.

 

주석에 따르면 아담마와딘에 대하여 권리정지처분에 해당하는 자들이다.(Smp.1150)”이라 하였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열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를 하는 자들을 말한다.

 

꼬삼비를 떠나신 부처님

 

승단이 아담마와딘(비법을 설하는자)에 의해 점령 되었을 때 부처님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어리석은 자들은 몽매하다. 이 자들은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pariyādinnarūpā kho ime moghapurisā, nayime sukarā saññāpetunti)”라고 말씀 하시면서 꼬삼비를 떠났다. 그리고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1.

Puthusaddo samajano, n

a bālo koci maññatha;

Saghasmi bhijjamānasmi,

nāñña bhiyyo amaññaru.

 

한꺼번에 시끌벅적 떠들어대며

아무도 스스로 어리석은 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참모임이 파괴되어 가지만

자신의 잘못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2.

Parimuṭṭhā paṇḍitābhāsā,

vācāgocarabhāino;

Yāvicchanti mukhāyāma,

yena nītā na ta vidū.

 

새김을 잊어버리고 현자인 것처럼

언어의 활동경계라면 말하는 자들,

원하는 한, 입을 크게 벌리더라도,

그들은 자신을 이끄는 것을 알지 못한다.

 

 

3.

Akkocchi ma avadhi ma,

ajini ma ahāsi me;

Ye ca ta upanayhanti,

vera tesa na sammati.

 

그는 나를 욕하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키고, 나의 것을 약탈했다.’라고

사람들이 그러한 적의를 품는다면,

그들에게 원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4.

Akkocchi ma avadhi ma,

ajini ma ahāsi me;

Ye ca ta nupanayhanti,

vera tesūpasammati.

 

그는 나를 욕하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키고, 나의 것을 약탈했다.’라고

사람들이 그러한 적의를 품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원한은 사라진다.

 

 

5.

Na hi verena verāni,

sammantīdha kudācana;

Averena ca sammanti,

esadhammo sanantano.

 

결코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원한의 여읨으로 그치나니

이것은 오래된 진리이다.

 

 

6.

Pare ca na vijānanti,

mayamettha yamāmase;

Ye ca tattha vijānanti,

tato sammanti medhagā.

 

우리가 여기서 자제해야 한다.’라고

다른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니

이러한 것을 자각하면

그 때문에 다툼이 그친다.

 

 

7.

Aṭṭhicchinnā pāaharā,

gavāssadhanahārino;

Raṭṭha vilumpamānāna,

tesampi hoti sagati.

Kasmā tumhāka no siyā;

 

뼈를 자르고 목숨을 앗아가고

소와 말과 재산을 앗아가는 자들이 있는데,

나라를 약탈하더라도 그들에게 화합은 있다.

어찌 그대들을 위해 그럴 수 없는가?

 

 

8.

Sace labhetha nipaka sahāya;

Saddhicara sādhuvihāri dhīra;

Abhibhuyya sabbāni parissayāni;

Careyya tenattamano satīmā.

 

선량한 삶을 사는 현명한 님,

함께 할 수 있는 사려 깊은 벗을 얻는다면,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새김을 확립하여 기꺼이 그와 함께 유행하라.

 

 

9.

No ce labhetha nipaka sahāya;

Saddhi cara sādhuvihāri dhīra;

Rājāva raṭṭha vijita pahāya;

Eko care mātagaraññeva nāgo.

 

선량한 삶을 사는 현명한 님,

함께 할 수 있는 사려 깊은 벗을 얻지 못한다면,

정복한 나라를 버리는 왕처럼,

숲속의 코끼리처럼 홀로 가라.

 

 

10.

Ekassa carita seyyo;

Natthi bāle sahāyatā;

Eko care na ca pāpāni kayirā;

Appossukko mātagaraññeva nāgo

 

어리석은 자와 벗하기보다는

홀로 유행하는 것이 낫다.

숲속의 코끼리가 힘들이지 않고 가듯,

홀로 유행하며 악을 짓지 말지니.

 

(율장대품, 10장 꼬삼비의 다발, 디가부이야기,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어리석은 자와 벗하기보다는 홀로 유행하는 것이 낫다.”라 하였다. 이는 꼬삼비에서 아담마와딘의 행위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를 일삼는 자와는 결코 함께 해서는 안됨을 말한다.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

 

부처님은 현자와 함께 하라고 하였다. 현자를 만나지 못하였을 때 홀로 가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복한 나라를 버리는 왕처럼(Rājāva raṭṭha vijita pahāya)”이라 하였다.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왕국을 버리고 출가한 왕족의 현자처럼이라는 뜻이라 한다.

 

영토의 정복을 이룩한 왕이 있다. 그러나 왕은 왕국이라고 불리는 이것이 방일의 원천이다. 왕국을 통치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며 생각한다. 그래서 왕은 정복한 영토를 떠나서 숲속으로 들어가서 고행을 하는 출가 수행자가 되어 모든 행동거지를 혼자서 처리하며 유행한다.(Dhp.IV.29)”라고 주석에 설명되어 있다. 마치 청나라 순치황제를 연상케 한다. 또 석가족의 왕이었던 밧디야를 연상케 한다.

 

게송 4번에서 7번까지는 법구경 3번에서 6번까지 일치한다. 특히 5번 게송에서  결코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원한의 여읨으로 그치나니 (Na hi verena verāni, sammantīdha kudācana; Averena ca sammanti)”가 있는데, 이는  디가부 아버지가 디가부에게 당부한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으로 쉬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 (Na hi, tāta dīghāvu, verena verā sammanti; averena hi, tāta dīghāvu, verā sammantī)”라는 게송과 일치한다. 여기서 핵심어는 원한의 여읨(averena)’이다.

 

원한은 원한을 부른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전쟁의 경에서 승리는 원망을 낳고

패한 자는 잠을 못 이루네.(S3.14)”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원한을 가지면 복수하게 된다. 복수는 또 다른 원한을 낳는 요인이 된다. 이는 보복의 악순환을 의미한다. 이렇게 반복적인 원한을 품으면 수레의 가죽끈으로 감싸거나 썩은 새끼줄로 묶은 것과 같이, 적의가 그 사람들에게 일어날 때 진정되지 않는다.(DhpA.I.44)”라 하였다.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하였다. 원한을 내려 놓았을 때 그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오래된 진리이다. (esadhammo sanantano)”라 하였다. 여기서 진리라 한 것은 모든 부처님, 연기법을 깨달은 님, 거룩한 님이 걸었던 길(DhpA.I.51)”이라 하였다.

 

부처님은 승가의 화합을 강조 하였다. 꼬삼비에서 승단의 분열을 보고서 디가부이야기와 함께 전쟁을 하는 왕들에게 조차도 인내와 자애로 화해함을 강조하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수행승들에 대하여 몽매한 어리석은 자들이라 하였다. 그리고서 그런 자들과 함께 하지 말 것을 말씀 하셨다. 부처님은 어리석은 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씀 하시면서 승단이 분열된 꼬삼비를 떠나셨다.

 

 

2015-07-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