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자비에 바탕을 두지 않은 충고는

담마다사 이병욱 2015. 7. 24. 15:15

 

자비에 바탕을 두지 않은 충고는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일까?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끊고 자신의 말만 늘어 놓는 사람은 더욱 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일까? 상대방을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이 가장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대화란 무엇일까? 상대방과 말하는 것만 대화일까? 대화는 소통이라 본다. 그리고 공감하는 것이라 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말하면 맞장구도 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군요라든가 그렇네요라든가 그랬구나라고 하면 큰 무리가 없다.

 

법구경 76번 게송에서

 

현명한 자라면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할 것이다. 또한 잘못을 지적하였을 때 겸허하게 받아 들일 것이다. 이런 가르침이 있다. 법구경 76번 게송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구 분

법구경 76번 게송

빠알리어

Nidhīnava pavattāra,

ya passe vajjadassina;

Niggayhavādi medhāvi,

tādisa paṇḍita bhaje;

Tādisa bhajamānassa,

seyyo hoti na pāpiyo.

전재성님역

잘못을 지적하는 님,

꾸짖어 충고하는 님, 현명한 님,

숨겨진 보물을 일러주는 님을 보라.

이러한 자와 교류하라.

그러한 사람과 교류하면,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은 없으리.

中村元

(おのが)罪過(つみとが)をちをげてくれる

ったならば、

そのにつきえ____してある

のありかをげてくれるにつきうように。

そのようなにつきうならば、

いことがあり、いことはい。

법정스님역

내 허물을 지적하고 꾸짖어주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났거든 그를 따르라.

그는 감추어진 보물을 찾아준

고마운 분이니 그를 따르라.

그런 사람을 따르면 좋은 일이 있을뿐

나쁜 일은 결코 없으리라.

한역

深觀善惡 심관선악

心知畏忌 심지외기

畏而不犯 외이불범

終吉無憂 종길무우

故世有福 고세유복

念思紹行 염사소행

善致其願 선치기원

福祿轉勝 복록전승

거해스님역

자기의 잘못을 경책하는

지혜로운 사람을 따르라.

마치 땅속에 묻힌 보물을

캐러갈 때 안내를 받듯이.

지혜로운 사람의 지도를 받으면

그는 향상 발전할 뿐

결코 타락하지 않으리라.

Thanissaro Bhikkhu

Regard him as one who

points out

treasure,

the wise one who

seeing your faults

rebukes you.

Stay with this sort of sage.

For the one who stays

with a sage of this sort,

things get better,

not worse.


 

 

 

Metta

 

 

 

잘못을 지적당하였을 때

 

첫 번째 구절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님(vajjadassina)’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부정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긍정적인 것이다.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vajjadassina : DhpA.II.107에 따르면, 잘못을 지적하는 두 부류가 있다. ‘나는 이러한 그의 부당함과 실책에 대하여 승가 안에서 그에게 모욕을 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남의 잘못만을 찾는 자와 모든 잘못을 관찰하여 이해 되지 않은 것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사람의 덕성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사람을 잘못을 그만두게 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는 자가 있다. 여기서는 두 번째 사람이 해당된다.

 

욕하고 때리더라도, ‘이것을 가져라.’라고 보물을 보여주면, 가난한 자가 화를 내지 않고 기뻐하듯, 사람은 자기의 부당함과 실책을 보고, 누군가가 지적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사람은 이와 같이 그대가 아사리나 친교사의 입장에서 내게 행하고 훈계한 것은 고마운 일이다. 거듭 그렇게 하길 부탁한다.’라고 그를 초대해야 한다.

 

(755번 각주, 전재성님)

 

 

주석에 따르면 ‘남의 잘못 만을 찾는 자’와 ‘잘못을 그만 두게 하려는 자’ 이렇게 두 가지 부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비난과 비방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후자의 경우 충고 내지 비판이라 볼 수 있다.

 

비난과 비판은 다른 것이다. 비판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기 때문에 장려 되어야 할 사항이지만, 비방이나 비판은 모욕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제되어야 한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잘못을 지적하는 님’은 후자 즉, 건전한 비판에 해당된다.

 

잘못을 하여 잘못을 지적당하였다면 대부분 모욕으로 생각하며 심지어 화를 낼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가 아사리나 친교사의 입장에서 내게 행하고 훈계한 것은 고마운 일이다. 거듭 그렇게 하길 부탁한다.”라 하였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대하여 내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함을 말한다. 더 나아가 고맙고 감사해야 될 것이다.

 

꾸짖어 충고하는 사람

 

두 번째 구절에 ‘꾸짖어 충고하는 님(niggayhavādi)’이 있다. 이말은 잘못을 지적하는 님과 어떻게 다를까?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niggayhavādi : DhpA.II.108에 따르면, 도반의 부당함과 실책을 보면서 어떤 수행승은 당사자에게 말을 붙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와 같이 이 사람은 나에게 양칫물 등을 마련하여 나에게 시중을 든다. 내가 그의 잘못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는 나를 돕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나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꾸짖어 충고하는 님이 아니다. 그는 승단에 쓰레기를 뿌리는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잘못을 보고 잘못한 자를 깨우치게 하고, 잘못에 걸맞는 벌을 주고, 별거하게 하고, 승단에서 추방하는 사람은 꾸짖어 충고하는 님이다. 예를 들어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MN.III.118에서 부처님께서는 나는 꾸짖어야 할 것은 꾸짖어 말하고, 충고해야 할 것은 충고하여 말한다.  견실한 자는 견디어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756번 각주, 전재성님)

 

 

꾸지람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할까? 대부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더구나 꾸짖는다면 기분 좋아할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내 버려 둔다면 어떻게 될까? 꾸짖어서 내가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면 그대로 내버려 둘지 모른다. 고작 양칫물 마련해 줄 사람 하나 때문에 적당히 넘어 가고 만다면 쓰레기와 같은 사람이라 하였다.

 

부처님은 잘못 된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고 꾸짖어 충고하라고 하였다. 이는 용기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꾸짖어야 할 것은 꾸짖어 말하고, 충고해야 할 것은 충고하여 말한다.  견실한 자는 견디어 낼 것이다.”라 하였다. 맛지마니까야 ‘MN.III.118’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그대들에게 충고하고 또 충고하며

 

맛지마니까야 ‘MN.III.118’를 찾아 보았다. ‘공에 대한 큰 경(M122)’에 실려 있는 글이다. 수행승들이 승가를 만들고 승가에 부적절한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어 즐거움에 빠지고 즐거움에 탐닉하는 것을 삼가 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 규범을 만들었다.

 

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그대들은 우정으로 나를 대하고 적의로 나를 대하지말라. 오랜 세월 그대들을 이익과 행복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M122)”라고 말씀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름 아닌 향상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는 것에 대하여 비방이 아닌 충고로 받아 들여 함을 말한다. 이는 우정으로 스승을 대하는 것이다.

 

반면 스승의 지적을 받아 들이지 않고 충고로써 꾸짖는 것에 대하 잘 귀담아 듣지 않으면 적의로서 스승을 대하는 것이다. 그런 자에게 향상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Na kho aha ānanda, tathā parakkamissāmi. Yathā kumbhakāro āmake āmakamatte. Niggayha niggayhāha ānanda vakkhāmi. Pavayha ānanda pavayha vakkhāmi. Yo sāro so hassatīti.

 

아난다여, 나는 옹기장이가 생 진흙을 다루는 식으로 그대들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아난다여, 나는 그대들을 다스리고 또 다스리며 말할 것이다. 아난다여, 나는 그대들에게 충고하고 또 충고하며 말할 것이다. 견실한 자는 그것을 견디어낼 것이다.

 

(Mahāsuññata sutta-공에 대한 큰 경, 맛지마니까야 M122, 전재성님역)

 

 

여기서 충고하고 또 충고하며라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이에 대하여 남전대장경에서는 꾸짖어야 할 것은 꾸짖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며 말하겠다.”의 뜻이라 하였다. 이 말은 법구경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님, 꾸짖어 충고하는 님은 현명한 님이라는 말과 일치 한다. 맛지마니까야 주석서 Pps.IV.166에 따르면 위 문장을 다음과 같이 의역해 놓았다.

 

 

나는 한번 충고한 뒤에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반복적으로 충고해서 가르칠 것이다. 마치 옹기장이가 구워진 옹기를 시험하여, 금이 가고 균열되고 잘못 만들어진 것은 버리고 시험에 통과한 것만을 보관하듯, 나는 그대를 시험하면서 반복적으로 충고해서 가르칠 것이다. 그대들 가운데 착하고 건전한 자가 길()과 경지()를 성취하고 시험을 통과할 것이다.” ( Pps.IV.166)

 

 

부처님은 생진흙으로 만든 도기를 다루듯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불에 구워 마른 도기를 다루듯 하겠다는 말이다. 도공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금이 가거나 잘못 되어진 것은 깨서 버리듯 충고 하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였을 때 향상으로 이끌 것이고 결국 도와 과를 성취할 것이다. 충고하고 꾸지람하는 것은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 자비의 분노

 

자비의 분노라는 말이 있다. 어느 유명선사는 성격이 매우 급했다. 너무 급한 나머지 말을 할 때 주어와 동사가 바뀌기도 하고 형용사가 앞에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또 심한 사투리로 인하여 통역을 하지 않으면 알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큰스님은 걸핏하면 야단치고 심지어 분노 하였다. 이런 스님에 대하여 어떤 이는 자비의 분노라 하였다.

 

자비와 분노,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자애가 넘치면 분노는 사라진다. 반면 분노하면 자애는 발을 붙이지 못한다. 마치 시소 타는 것과 같다. 그런데 큰스님이 화를 낸 것에 대하여 자비의 분노라 하였다. 한 마음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그래서 거머쥐려는 탐욕과 밀쳐 내려는 성냄은 양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비와 분노가 양립 할 수 있을까?

 

부처님은 화를 내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았다. 깨달은 자에게 있어서 성냄은 이미 소멸 되어 화를 낼 수 없다. 남아 있다면 자애의 마음 뿐이다. 그래서 깨달은 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 자비의 분노라 하였다. 스님이 분노하면 자비의 분노가 되고, 일반사람이 분노하면 분노 그 자체가 되는 것일까?

 

자비에 바탕을 두지 않은 충고는

 

법구경 게송에 따르면 잘못을 지적하는 님, 꾸짖어 충고 하는 님은 현명한 님이라 하였다. 마치 가난한 자에게 숨겨진 보물을 알려 주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자신이 보지 못하였던 것을 알려 주었으니 보물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다.

 

자비에 바탕을 두지 않은 지적이나 충고는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자비의 분노는 분노 일 뿐이다. 깨달은 자는 절대 분노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자비로서 충고하고 또 충고하였다. 마치 옹기장이가 마른 옹기를 다루듯이 다스리고 또 다스린 것이다. 그러나 바탕에는 자비가 깔려 있다.

 

힘있는 자는 분노로서 힘을 과시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힘 센 사람은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다. 분노로서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으면 적의를 품게 되지만, 자비를 바탕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하고 꾸짖으면 우정으로 받아 들인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권력자이다. 그러나 그 힘은 분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힘은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처님 보다 더 센 권력자가 없다. 가장 센 권력과 권위는 자비에서 나온다.

 

 

2015-07-2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