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비갠 후 세상은 아름답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5. 7. 27. 09:24

 

비갠 후 세상은 아름답다

 

 

 

 

 

 

 

비갠 후 세상은 아름답다. 거기에다 햇살까지 비치면 살 맛 난다. 어느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초등학교시절 빌려온 책을 밤새워 읽었다고 한다. 다 읽고 났더니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고 했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다. 이제까지 늘 보아 왔던 달도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이고, 심지어 발뿌리에 채인 돌도 다정하게 느껴 진다고 했다. 산천은 변한 것이 없는데 달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변했을까? 그건 아니다. 여전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 일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높은 곳을 바라 보고 살아 간다. 저 너머에 무언가 이상적인 것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절대적인 무엇인가를 말한다. 절대진(絶對眞), 절대선(絶對善), 절대미(絶對美) 같은 것이다. 다름아닌 이상이다. 그리고 이데아(Idea)이다. 사실상 실현할 수 없는 초월적 가치에 해당된다.

 

, , 미와 같은 이데아를 추구하면 할수록 버려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 (), ()이다. 절대진을 추구한다면 절대위는 쳐내야 한다. 절대선을 추구하면 절대악은 멸절의 대상일 뿐이다. 절대미를 바란다면 절대추는 감추어야 한다.

 

절대라는 말이 있다.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는 극단이다. 그런데 절대진, 절대선, 절대미는 절대로(absolutely) 성립하지 않는다는사실이다. 하나의 형이상학적 이상론이고 이데아에 불과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절대위, 절대악, 절대추도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이상적 가치를 추구해 왔다. 실현불가능한 이데아를 향하여 현실을 도외시하며 살아 왔다. 저 빛나는 태양이 있음에도 죽어서나 실현 가능하다고 하는 형이상학적 가치로 살아왔다. 마치 무지개를 찾아 나선 소년처럼, 파랑새를 쫓는 사람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살아 온 것이다.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구 하지만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내 마음이 변했다. 비갠 후 하늘처럼 살맛을 느끼는 것은 나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바라 본 것이 아니라 내면을 향했을 때 세상이 바뀌었다. 자신을 넘어(beyond oneself)’ 섰을 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였다.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지금 담배와 전쟁을 하는 자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지금 게으름과 전쟁을 하고 있는 자에게 필요한 말은 목숨을 걸었는가?”라는 말이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넘어 섰을 때 진정한 승리자이다.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 가치추구를 그만두고 자기극복을 하였을 때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린다.

 

이 세상이 있다. 세상이 있어서 내가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이 존재한다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세상이 본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아름답게 본 것이다. 여전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다. 비갠  후 학의천길에  ‘망초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2015-07-2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