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로 살 것인가 초인으로 살 것인가
이진우교수의 인문학 강좌를 들었습니다. EBS에서 본 니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강좌에서 ‘마지막 인간이 될 것인가 초인의 될 것인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이 의미 있게 다가 왔습니다.
니체를 잘 알지 못합니다. 니체의 대표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끝까지 읽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니체에 대하여 TV강좌 등을 통해서 여러 번 접해 보았습니다. 이번에 방영 되고 있는 EBS 인문학강좌에서 새롭게 그 의미를 발견 하였습니다. 강좌에 따르면 두 가지 인간 유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메뚜기인생, 또 하나는 초인의 삶 입니다.
메뚜기의 삶
메뚜기인생은 무엇을 말할까요? 한마디로 이기적 인간 입니다. 오로지 현세적 이익과 행복만을 추구 하는 천박한 인간형이라 합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인간형으로 살아 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살아 갑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 일류회사에 취직을 하여 예쁜 배우자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말 합니다. 또 미래를 위하여 노후를 위하여 오로지 돈만 모으려는 타입도 해당 됩니다. 그래서 허리띠 졸라매며 “내일은 잘 될 거야” 라 합니다.
사람들은 내일이 되면 또 내일을 말합니다. 그래서 5년후, 10년후, 20년후의 미래를 상상 합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만 나아 가는 삶 입니다. 이에 대하여 메뚜기같은 삶이라 하였습니다. 메뚜기 같은 인간 입니다. 니체는 ‘최후의 인간’이라 하였습니다. 마치 가다 가다 갈 데 없어 종착지에 이른 인간형 같습니다.
초인(위버멘쉬)의 삶
미래는 가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버리는 삶을 살았을 때, 설령 바라던 그날이 왔을 때 만족할까요? 마셔도 마셔도 갈증 나는 것처럼 또 다른 갈애가 생겨날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인문학강좌에 따르면 초인(위버멘쉬)의 삶이라 하였습니다.
초인의 삶은 경원시 되기 쉽습니다. 짜라투스트라가 10년간 동굴생활을 마치고 시장거리에 나섰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먹고 살기에 바쁜 저자거리의 사람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세의 이익과 행복론으로 비웃듯이 대응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노자의 이야기가 생각 납니다. 도를 이야기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크게 웃어버린다는 말 입니다.
초인이 되려면 위험을 감수 해야 된다고 합니다.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 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이익과 행복을 추구할 때 이를 버리는 삶의 방식을 말 합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취직하여 배우자 만나 잘 사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삶의 방식으로 봅니다. 대다수가 따르는 가치를 부정합니다. 기존의 형이상학적 가치도 부정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냅니다. 형이상학적 가치와 결별한 사람, 창조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을 초인이라 합니다.
메뚜기로 살 것인가 초인으로 살 것인가
초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성자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디. 성자가된다는 것은 세속의 삶과 반대 되는 것 입니다. 세속을 떠났기 때문이라기 보다 세속의 흐름과는 반대의 삶을 사는 방식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욕락을 추구 합니다.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눈, 귀, 코, 혀, 몸의 감각기관으로 즐기는 오욕락입니다. 또 하나는 식욕, 성욕, 안락욕, 재물욕, 명예욕으로 누구나 추구하는 오욕락 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자가 최후의 인간형이고 메뚜기와 같은 삶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사람 대부분은 본능대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살아 갑니다. 이것이 세상의 흐름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행자집단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위험한 삶을 사는 자들 입니다. 세상사람들이 탐진치의 흐름으로 살아 갈 때 이를 거스르는 삶을 살아 갑니다. 이를 ‘역류도’라 합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보았을 때는 이상한 사람들 입니다. 도를 이야기 하면 크게 웃어 버리는 이유 입니다.
메뚜기의 삶과 초인의 삶,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메뚜기가 될 것인가 초인이 될 것인가의 문제 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메뚜기로 살기는 쉽지만 초인으로 살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것 입니다. 비웃음과 비난과 비방을 감수해야 합니다. 메뚜기로 살 것인가 초인으로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2015-07-2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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