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호주에서 온 수행자

담마다사 이병욱 2015. 8. 9. 08:21

 

호주에서 온 수행자

 

 

호주에서 온 사람이 있다. 대단히 수련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수행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무엇이든지 대화를 해보면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확실히 높은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아직 체험해 보지 못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전을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필요할 때만 경전을 열어 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경전에 쓰여 있는 문구는 부처님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수행을 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진정한 자신의 것이라 한다.

 

그는 8년전에 호주로 이민 갔다고 했다. 이민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이야기 하지 않는다. 궁금해서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답을 않는다. 유도심문 비슷하게 묻자 전에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었다고 한다. 아마 그런 계통의 일에 종사 하는 것 같다.

 

그는 나이가 50이다. 리스트를 보고 알았다. 깡마른 체구에 눈이 형형하여 한눈에 보아도 한수행한 것 같다. 이민 가기 전 한국명상원에 다니면서 묘원법사로부터 지도 받았다고 했다.  

 

고엔카 10일 코스를 두 번 다녔다고

 

그가 살고 있는 곳은 호주 퍼스(Perth)’이다. 호주 대륙의 서쪽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국 같은 곳이라 한다. 첫째 기후 조건이다. 건조한 기후지대로서 온도는 높지만 쾌적하다고 한다.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만 들어가면 시원하다고 한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청명하고 밤이 되면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별이 총총하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다. 잘 사는 나라이어서 그런지 모두 풍요로워 보인다고 하였다. 천상의 삶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도 하였다. 심지어 개도 대우 받는 사회라고 하였다. 그들은 늘 행복한 모습이어서 어떤 때는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 하였다인종차별은 거의 없다고 하였다. 백인 뿐만 아니라 혼혈, 아시아인 등 각종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호주에서 고엔카수행센터에 다녔다고 했다. 10일코스로서 느낌 보는 수행처로 잘 알려져 있다. 남녀를 철저히 구분하고 묵언이 특징이라 한다. 경행은 없고 오로지 좌선만 하는데 요새말로 빡세게돌린다고 하였다. 마지막 코스에 멧따(자애)수행이 있는데 10일 수행을 마치고 나면 모두 행복한 얼굴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 하였다.

 

그는 퍼스 근교에 있는 고엔카센터를 두 번 다녔다고 하였다. 처음 다녔을 때는 적응이 되지 않아 실패 했다고한다. 두 번째 다녔을 때 느낌에 대하여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혜를 개발하는데는 한계가 있음을 말한다. 이후 자신의 집에서 개인수행을 했다고 한다. 틈만 나면 했는데 하루에 4시간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8시간 동안 앉아 있었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저건 뭐지?”

 

그의 말에 따르면 혼자 수행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체험한 것에 대하여 점검해 줄 스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해당카페에 들어가 법사의 이야기를 보면서 감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칠 팔 년간 꾸준히 한 결과 나름대로 성과를 얻었다고 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으로서 체험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임을 늘 강조 한다. 그리고 경전보다 수행이라 한다. 빠른 길을 내버려 두고 돌아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순간적으로 깨달음의 느낌이 왔을 때 이를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다.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 시원하다라는 말을 예로 들었다. 진리를 언어로 표현 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말한다. 오로지 맛을 보아야 알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가 말한 것 중에 인상적인 말이 있다. 집중에 들어가서 알아차림이 명료 해졌을 때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였다고 한다. 갑자기 한 생각이 나타났다고 하였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피용하며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고 하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타난 한생각을 보면서 저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내 저건 내것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집중이 되어 알아차림이 유지된 상태에서는 한생각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알아차림이 유지된 상태에서 보면 명료 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보면서 저건 뭐지?” 라든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저건 내것이 아니야라고 나름대로 판단을 내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업이 스스로 굴러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다.

 

오계를 지켜야 하는 이유

 

지도법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알아차림이 없이 일어나는 생각은 모두 망상이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집중이 되어서 마음이 고요해져야 일어난 현상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음을 말한다. 현상을 알아차리려면 집중이 되어야 한다. 대게 코에서 호흡을 주시함에 따라 집중에 들어 갈 수 있다.

 

집중된상태에서 고요함은 정화된 물과 같다. 흙탕물이 시간이 지나면 정화 되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집중된 상태에서 알아차림이 있어야 법(dhamma)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법(현상)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사라진다. 그런 현상을 단지 객관적으로 바라 보면 된다는 것이다.

 

알아차림을 유지한 상태에서 한생각 일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의식속에 저장 되어 있는 것이 불쑥 튀어 나오는 것과 같다. 때로 당혹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다. 오계를 지키지 않아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은 행위에 대한 과보가 발현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동요될 수 있다. 알아차림이 없다면 아마 끄달려 갈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저지른 행위로 인하여 한생각 떠 올라 동요 되었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계를 어겨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오계를 지키지 않아 몸으로 입으로 행위를 하였을 때 반드시 과보로 나타난다. 도둑질이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손이 가는 것은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받지 않았거나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보를 받았을 때는 손해라는 것을 안다. 도둑질 하는 것이 결국 손해 나는 것임을 안다면 도둑질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은 행위는 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있다. 언제 어떻게 발현 될지 모른다. 알아차림이 없을 때 발현되면 동요되기 쉽다. 동요되면 들뜨게 되고 망상으로 이어져 또다른 불선업을 짓게 된다.

 

업보(業報)는 있으나 작자(作者)는 없다

 

집중이 되어서 고요한 물과 같이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보게 되었을 때 불현듯 튀어 나오는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그때 저건 내것이 아니야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작자는 없지만 업은 남아 있다라는 말 일 것이다. 이와 같은 말은 청정도론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표현 되어 있다.

 

 

업으로부터 과보가 생기며

과보는 업이 그것의 근원이다.

업으로부터 다시 태어남이 있고

이렇게 해서 세상은 계속된다.(Vism.19)

 

 

업을 짓는 자도 없고

과보를 경험하는 자도 없고

순수한 법들만이 일어날 뿐이니

이것이 바르게 봄이다. (Vism.19)

 

 

내가 업의 상속자라 보았을 때 행위가 윤회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일공경에 따르면 “업보(業報)는 있으나 작자(作者)는 없다”라 하였다. 업과 업의 과보 이외에는 달리 행위자가 없음을 말한다.

 

업과 과련하여 초기경전에서 “뭇 삶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라 하였다. 이어지는 문구를 보면 “업이 뭇 삶들을 차별하여 천하고 귀한 상태가 생겨납니다. (M135)”라 하였는데 이는 업의 윤회를 의미한다. 이는 자신의 행위 대하여 업의 주인, 행위의 상속자로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명료할 때 작자는 없지만 모든 것이 행위의 소산물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미래의 윤회에서도 [업과 과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지 않는다.

 

외도들은 이 뜻을 알지 못하여

그들의 견해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중생이라는 인식을 가져

영원하거나 허무하다고 보아

서로서로 모순되는 62가지 견해를 가진다.

 

견해의 올가미에 묶인 그들은

갈애의 흐름에 떠밀려가고

갈애의 흐름에 떠밀려간 그들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는 초월지로 이 심심하고

미묘하고 공한 조건을 통찰한다.

 

과보에 업이 없고, 업에 과보가 없어

그 둘은 각각 공하지만

업이 없이는 과보가 없다.

 

마치 태양과 보석과 소똥 속에

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밖에 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요

연료들로부터 생기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업 속에 과보가 없고

업을 떠나서도 없고

업이 과보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업은 과보가 공하고

업에 과보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업을 의지하여 업으로부터 과보가 생길 뿐

신도 없고 범천도 없고 윤회를 만드는 자도 없다.

 

원인과 조건 따라 순수한 법들이 일어날 뿐이다." (Vism.19)

 

 

 

 

오후불식

 

호주에서 온 사람은 수행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시간표대로 경행하고 좌선을 반복하며 게으름피지 않는다. 더구나 오후불식도 지키고 있다. 오후불식한지는 일년 되었다고 했다.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오히려 정신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다. 이런 수행자와 햄께 하여 이야기를 나는 것도 복이라 본다.

 

 

2015-08-0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