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고요함을 얻게 되었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15. 8. 9. 08:16

 

고요함을 얻게 되었을 때

 

 

수행처의 일상은 단조롭다. 경행과 좌선의 반복이다. 오전에 세 번 오후에 두 번 반복 되므로 총 다섯 번 반복된다. 특히 좌선 할 때는 긴장 된다. 잘 하고픈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좌선을 하면 가장 고통스런 것이 있다. 다리저림이다. 다리저림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험자의 말에 따르면 숙달 되어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리저림이 일어 났을 때 가급적 자리를 바꾸지 말고 알아차리라고 말한다. (dhamma)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한다.

 

다리저림을 잊어 버릴 때가 있다. 집중이 잘 되었을 때이다. 그럴 경우 다리저림이 일어나도 금새 사라진다. 이때 자세는 올곧게 되는 특징이 있다. 등과 고개가 곧게 펴진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오래 앉아 있게 된다. 이런 집중상태가 되었을 때 계속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 바란다. 그러나 아쉽게 좌선을 알리는 종소리로 인하여 끝나고 만다.

 

 

 

 

 

 

집중이 된 상태이면 마음이 고요해 져 있다. 흙탕물이 정화 되어 가라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상태에서 감각적 욕망이나 분노, 흥분과 회환, 해태와 혼침, 의심의 마음이 일어 날 수 없다. 착 가라 앉은 상태에서 경행을 하면 저절로 되는 것 같다. 한시간 내내 날아 다니듯이 사뿐사뿐 경행 하였다.

 

지도법사 황영채선생에 따르면 어느 수행처에서든지 집중수행 3일차가 되면 고요함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입소 초기에 들떠 있는 마음과는 180도 다른 마음이다. 그래서 눈을 아래로 내려 깔며 고요함을 유지 하는 것이 보통이라 한다. 여기서 키워드는 고요함이다.

 

집중상태가 되었을 때 경전문구가 떠 올랐다. 그 중에 고요함과 관련하여 자양분을 버리고 고요함을 얻는다라는 문구이다.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세월은 스쳐가고 밤낮은 지나가니

청춘은 차츰 우리를 버리네.

죽음의 두려움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세속의 자양을 버리고 고요함을 원하리. (S1.4)

 

 

 

 

 

 

 

좌선을 하면 고요함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동요 되지 않는 마음이다. 마음이 들 떠 있거나 흥분되거나 동요 되면 대상에 쉽게 끄달려 버린다. 흙탕물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마음을 집중하여 고요함을 얻었을 때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설령 동요의 대상이 생겨나도 흔들리지 않고 보내 버린다.

 

다시 한번 고요함에 도전 했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 사이에 조건이 바뀐 것이다. 이럴 때 정진의 힘이 필요 할 것이다. 부처님을 떠 올려 본다. 숫따니빠따 정진의 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무치여, 이것들은 그대의 군대,

검은 악마의 공격군인 것이다.

비겁한 자는 그를 이겨낼 수가 없으나

영웅은 그를 이겨내어 즐거움을 얻는다.

 

차라리 나는 문자 풀을 걸치겠다.

이 세상의 삶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내게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 (Sn3.2)

 

 

정진의 경에 따르면 비장한 각오가 엿보인다.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는 다름 아닌 정면돌파 의지이다. 그래서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라고 하였다. 집중에 이르려면 정면돌파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불퇴전의 정진을 한다면 고요함은 쟁취 되지 않을까?

 

 

20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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