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이 좋은 날에

담마다사 이병욱 2015. 9. 7. 09:58

 

 

이 좋은 날에

 

 

 

 

 

청명한 아침 입니다. 하늘은 높고 맑습니다. 공기는 시원하고 쾌적 합니다. 좋은 시절이 왔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축복받은 날씨 입니다.

 

늘 그렇듯이 일터로 가는 길에 학의천 쉼터에 잠시 앉아 있습니다. 부리나케 가서 특별히 할 일이 없을때 유유자적 스마트폰 메모를 두드립니다.

 

이 좋은 날에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갔습니다. 다시 돌아 오지 않은 길로 간 것입니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이라 하였습니다. 태어남이 있으면 성장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하나의 과정 입니다. 그래서 모친상을 당했을 때 그리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슬픈 것은 젊은 사람이 죽었을 때 입니다. 세월호사건이 터졌을 때 전국민이 애도 한 것은 피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한 애처로움 때문이었을 것 입니다. 특히 자식의 죽음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상을 당했을 때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형제가 많을수록 친척이 많을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슬픔은 덜 합니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에 어느 장례식장은 썰렁하기도 합니다. 이런 때 도움이 필요합니다.

 

모친상에 많은 조문을 받았습니다. 주로 동생쪽 사람들 입니다. 일인사업자로 있다 보니 현역 프리미엄도 없고 사회적 지위도 없어서 찾아 온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준 님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조문객 중에 인상적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친구는 저 멀리 땅끝에서 일부로 찾아 와 주었습니다. 그것도 케이티엑스 특실을 타고 왔습니다. 일반석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기억에 남는 또 한사람이 있습니다. 여동생 친구의 남편 입니다. 재작년 여동생의 친구가 죽었을 때 조문 했다 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조문객들의 명단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마지막날 자정이 넘어 찾아 왔습니다. 죽은 아내의 조문에 참석한 것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사촌중에 형편이 어려운 형님이 있습니다. 일찌기 홀로 되어 남매를 키우며 어렵게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 형님은 방명록에 기록된 금액중에 최고액의 부의금을 내었습니다. 늘 가난하고 어렵게 산 형님의 과도한 금액에 놀랐습니다.

 

또 한사람의 인상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저하고 전혀 인연이 없는 법우님입니다. 한번도 뵌 적이 없고 오로지 필명으로만 알 뿐 입니다. 아마 글을 많이 보았기 때문 일 것 입니다. 공지를 보고 찾아 왔다고 합니다늦은 시간에 조용히 찾아와 조문만 하고 갔습니다.

 

일이 닥쳤을 때는 벗이 행복이라 하였습니다. 어려울 때,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재난을 당했을 때 능력껏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전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조사등 경사든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이기적 발상이었다고 봅니다특히 친구의 처가쪽 조사에는 더 먼 것이라 하여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가부장적 봉건적 발상이었다고 봅니다.

 

직접 겪고 보니 친가나 처가나 똑같은 부모이고 똑같은 비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반성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조문하였을 때 감명 받습니다. 반면 가깝다고 생각 하였는데 보이지 않았을 때 서운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조사의 경우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 가는 것이 기본도리라 봅니다.

 

사람의 목숨은 알 수 없습니다. 기대수명이 팔십대 중반이라 하지만 어느 누구도 기대수명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특히 노인들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건강해 보이지만 내일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항상 죽음을 의식하며 삽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죽음에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을 일생처럼 후회 없이 잘 산다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겁니다.

 

 

2015-09-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