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정말 삶을 보장할까?
일년간 납입하였던 보험을 끊었다. 원래부터 안 되는 것이었다. 친구가 자꾸 찾아 오며 해달라 하기에 친구 얼굴 보고서 들어 주었다. 그러나 막상 가지고 온 설계금액을 보니 예상외로 많았다. 만원대를 기대하였으나 두 자리 대의 금액을 가져왔다. 사전에 파악을 한 모양이다. 소득금액 등을 파악하여 산정한 것이라 한다. 이렇게 밀어 넣는 금액에 대하여 흔쾌히 수락하였다.
일년이 지난 현재 친구의 권유로 들게 된 보험금은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납부할 처지가 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상황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친구와 상의 없이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자동이체 중지를 요청하였다. 마침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정을 이야기 하자 한번만 더 내 달라고 하였다. 자신도 손실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다른 경로로 파악해 본 바에 따르면 큰 손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번 더 내달라는 이야기에 고민 하였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더 이상 보험금을 낼 수 없음을 알려 주었다. 직장을 나와 보험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을 때 도와 주는 차원에서 했음을 알렸다. 일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배려는 충분히 했음도 밝혔다. 그리고 한달 것만 더 내달라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하지 못함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며 나중에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이것 저것 보험을 많이 들고 있다. 그 중에는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것도 있다. 국민연금도 일종의 보험이다. 국민연금은 손해 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려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의무보험이라도 건강보험은 손해나는 것 같다. 어쩌다 가는 치과 이외에 거의 병원 갈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건강보험은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래서 안 내는 방법을 찾아 보았으나 의무가입이라서 어쩔 수 없이 내야 한다. 자동차보험 역시 의무가입이다.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 있는가 하면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것도 있다. 상해보험 같은 것이다. 그러나 작은 액수이다. 부담없기 때문에 가입했는지도 모른 채 살아 간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나 친지 등 아는 사람이 나타나서 보험가입을 권유하였을 때 당황스럽다. 이제까지 인간관계 등을 고려하였을 때 들어 주어야 한다. 더구나 어려운 처지임을 호소할 때 들어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과도한 설계금액을 들고 나왔을 때 이는 파국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처음 친구의 권유로 보험을 들게 되었을 때 내는 돈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친구가 보험 일을 시작 하였지만 곧 그만 둘 줄 알았다. 그때쯤 해약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는 잘 버텨 냈다. 인맥이 있어서인지 학교친구를 비롯하여, 서클 친구, 그리고 종교모임의 사람 들 등 지인들이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점심 무렵에 찾아와 점심 한끼 하는 것을 영업전략으로 삼은 듯 하다.
친구가 처음 보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하였다. 자신이 보험한다고 소개 하니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피하더라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과 매우 친하다고 여기는 친구가 피하였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보험하는 사람은 그다지 반가운 사람이 아니다. 설령 그가 아무리 절친이라 하더라도 결국 내 돈이 나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피하고 싶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주 찾아 오는 친구의 딱한 사정을 듣고 일년 전 보험에 가입하였다. 두 자리 숫자대의 높은 금액이었지만 잘 나아가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10년간 들어야 한다는 생명보험으로서 본인이 사망하면 가족에게 혜택이 돌아 갈 것이라 하였다. 10년 후에는 원금에 훨씬 못 미치기는 하지만 일정금액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매달 납부하는 돈에 대하여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보험을 들었을 때 허탈 하였다. 기쁜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손해 보는 듯한 마음이 든 것이다. 그런 허탈한 마음을 글로 표현 하였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미래를 의하여, 보험과 노잣돈 (2014-07-13)’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경전문구를 이용하여 보험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보험금을 납입 할 때 한켠에는 내키지 않는 마음이 있어서 매달 납부 하는 돈에 대하여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러나 보험회사로 돈이 빠져 나갔을 때 '털렸다'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아까운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지갑에서 단돈 만원이라도 새어 나가도 마치 자신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깝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수입에서 10%는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업하는 사람이 계산서를 발행하지만 100% 회수를 기대하지 않고 90%만 기대하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 한 바 있다.
일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더 이상 보험금을 납부 하지 않는다. 일년 동안 부은 보험금은 찾을 수 없다. 손실로 처리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친구는 자신을 생각해서 한달 것만 더 내 달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드는 느낌이 있다. 그것은 첫 달 보험금을 납부하였을 때 허탈감이다. 그리고 첫 달 보험금이 자동으로 빠져 나갔을 때 한마디로 “털렸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일년 내내 지속됐다. 마침내 더 이상 납부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진짜 털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하여 누구나 보험을 든다. 의무가입이 있는가 하면 선택가입도 있다. 누구나 한 두 가지 보장성 보험을 들고 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의 요청에 의하여 보험가입을 요청하였을 때 대략난감하다. 이럴 경우 대부분 뿌리친다. 아무리 절친이라도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정에 약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들어 주게 된다. 이럴 때 기분은 손해 보는 듯 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보험요청을 받았을 때 차라리 매몰차게 뿌리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막상 어려움이 닥쳤을 때 찾지도 못하는 보험은 보험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보험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인생보험이다.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일이 일어났을 때는 벗이 행복이고
어떠한 것에든 만족하는 것이 행복이고
목숨이 다할 때는 공덕이 행복이고
일체의 괴로움을 버리는 것이 행복이다.” (Dhp331)
게송에서 목숨이 다할 때 공덕이 행복이라 하였다. 이는 다음 생을 위한 노잣돈과 같은 것이다. 일종의 보험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축개념에 더 가깝다. 왜 그런가? 저축을 하면 이자가 붙는다. 정기적금을 하면 복리로 붙는다. 쌓이고 쌓이면 엄청난 금액이 된다. 마찬가지로 지금 만원짜리 한장을 기부 하였을 때 쌓이고 쌓인다면 엄청난 공덕을 짓게 된다. 그래서 “친구가 일이 생겼을 때 언제라도 자신의 벗이지만, 스스로 지은 공덕이야말로 다가올 앞날의 벗이네.” (S1.53)라 하였다.
누구나 몇 개의 보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보험은 정말 보험일까? 대기업 좋은 일만 시켜 주는 것은 아닐까? 찾을 수 없는 금액이라면 적금 드는 것이 더 낫다. 더 좋은 것은 좋은 일을 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다. 만원, 이만원 이렇게 작은 단위로 쪼개서 여러 군데 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보험이고 공덕 쌓는 행위라 본다
2015-09-2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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