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행복을 열망하면서
누구나 행복을 바란다. 어느 누구도 불행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 행복한 자는 더 행복하기를 바라고, 지금 불행한자는 행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것은 세상의 원리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여덟 가지 원리가 있다고 하였다. 이득과 불익 , 명예와 불명예 , 칭찬과 비난 , 행복과 불행을 말한다 . 이러한 여덟 가지 원리로 세상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
세 가지 행복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행복이 찾아 오는 것일까? 부처님은 이띠붓따까 ‘행복의 열망에 대한경(It.76)’에서 “수행승들이여, 현자라면 이러한 세 가지 행복을 바라면서 계행을 지켜야 한다.”라 하였다. 여기서 세 가지 행복이란 무엇일까?
세 가지 행복은 명예와 재산과 천상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행복의 조건이 있다. 그것은 ‘계행’이다. 계행이 뒷 받침 되지 않는다면 세 가지 행복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그 의미를 분명히 하였다.
1.
“Sīlaṃ rakkheyya medhāvī ~
patthayāno tayo sukhe,
Pasaṃsaṃ vittalābhañ-ca ~
pecca sagge pamodanaṃ.
[세존]
“세 가지 행복을 바라면서
슬기로운 자는 계행을 지켜야 한다.
명예를 얻고 재산을 얻는 것과
죽어서 천상에서 기뻐하는 것이다.
2.
Akaronto pi ce pāpaṃ ~
karontam-upasevati,
saṅkiyo hoti pāpasmiṃ ~
avaṇṇo cassa rūhati.
악을 짓지 않더라도
악을 짓는 사람을 섬기면,
악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받고
그에게 비난이 자라난다.
3.
Yādisaṃ kurute mittaṃ ~
yādisaṃ cupasevati,
Sa ve tādisako hoti ~
이와 같은 자를 친구로 삼아
이와 같은 자를 사귀면,
그는 실로 그와 같이 된다.
함께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4.
Sevamāno sevamānaṃ ~
samphuṭṭho samphusaṃ paraṃ,
Saro diddho kalāpaṃ va ~
alittam-upalimpati,
Upalepabhayā dhīro ~
악한 친구가 다른 사귀는 자와 사귀고
접촉하는 자와 접촉하는 것은
독 묻은 화살이
깨끗한 화살묶음을 오염시키는 것과 같다.
현명한 자라면 오염을 두려워하여
악한 친구와 함께 하지 않으리.
5.
Pūtimacchaṃ kusaggena ~
yo naro upanayhati,
Kusā pi pūti vāyanti ~
악취가 나는 물고기를
길상초의 잎사귀로 엮으면,
길상초 또한 악취가 풍긴다.
어리석은 자를 섬김은 이와 같다.
6.
Tagarañ-ca palāsena ~
yo naro upanayhati,
Pattā pi surabhi vāyanti ~
어떤 사람이
잎사귀로 목향수를 묶으면,
잎사귀들이 향기를 풍긴다.
슬기로운 자를 섬김은 이와 같다.
7.
Tasmā pattapuṭasseva ~
ñatvā sampākam-attano,
Asante nopaseveyya ~
sante seveyya paṇḍito,
Asanto nirayaṃ nenti ~
santo pāpenti suggatin”
그러므로 같은 잎사귀들의 바구니에서
자신의 성숙을 알아서
참사람이 아닌 자들을 섬기지 말고
현자라면 참사람들을 섬겨야 하리.
참사람이 아닌 자들은 지옥으로 이끌고
참사람들은 천상세계로 이끈다.”
(Sukhapatthanāsuttaṃ -행복의 열망에 대한경, 이띠붓따까 It.76, 전재성님역)
세 가지 행복, 즉 재산과 명예와 천상의 바탕은 계행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계행과 관련하여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하여 화살, 물고기, 목향수 등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여기 착하고 건전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가 접촉하는 사람이 악하고 불건전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먹고 살기 위하여 일을 하는데 불법과 탈법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에게 급료를 받는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비록 그가 바르게 산다고 하여도 더럽게 번 돈을 받는다면 결국 더러운 사람들과 한통속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더러운 사람을 위해 일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게송을 보면 “악을 짓지 않더라도 악을 짓는 사람을 섬기면, 악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받고 그에게 비난이 자라난다.”라고 하였다.
자신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하더라도 악취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악취가 풍기기 마련이다. 이에 대하여 두가지 비유를 들었다. 하나는 네 번째 게송에서 “독 묻은 화살이 깨끗한 화살묶음을 오염시키는 것과 같다.(Saro diddho kalāpaṃ va alittam-upalimpati)”라 하였다. 또 하나는 다섯 번째 게송에서 “악취가 나는 물고기를 길상초의 잎사귀로 엮으면 길상초 또한 악취가 풍긴다.
(Pūtimacchaṃ kusaggena yo naro upanayhati Kusā pi pūti vāyanti)”라 하였다.
꾸사풀(kusa)에 대하여
게송에서 길상초라는 말이 나온다. 길상초는 어떤 식물일까? 길상초는 빠알리어 kusa를 번역한 것이다. 꾸사는 ‘a kind of fragrant grass’라 설명된다. 일종의 향기로운 풀이라는 뜻이다. 한자어로는 ‘草, 茅草, 吉祥草’로 번역되어 있다.
길상초에 대하여 영어로 citronella라 소개 되어 있다. Citronella에 대하여 검색하여 보니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citronella
풀이름 꾸사와 관련하여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은 우리나라 억새풀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풀이 아주 억세고 날카로워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잘못 꺾게 되면 손이 베이게 된다.”라고 하였다. 잘못 만지면 손을 베일 정도로 날카롭다는 말이다.
꾸사라는 말은 선법을 의미하는 꾸살라(kusal)의 어원이 된다. 불선법에 대해서는 아꾸살라(akusala)라고 한다. 그런데 게송에서 꾸사풀로 생선을 싸면 악취가 베인다고 하였다. 이는 꾸사라는 말이 꾸살라(善法)의 어원이 되기 때문에 착한자가 악한자를 가까이 하면 물든다는 의미로서 꾸사라는 말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초기경전에서 단어 하나 사용에도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잎사귀라도
여섯 번째 게송을 보면 “잎사귀로 목향수를 묶으면,잎사귀들이 향기를 풍긴다. (Tagarañ-ca palāsena yo naro upanayhati, Pattā pi surabhi vāyanti)”라 하였다. 여기서 잎사귀는 palāsa를 말한다. 생선을 싸는 길고 날카로운 잎과 다르다. 일반적인 잎사귀를 말한다.
잎으로 목향수(Tagara)를 쌓을 때 잎에는 향이 배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잎사귀들이 향기를 풍긴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어떤 형태의 잎이든지 향내가 나는 전단향이나 목향수 등 침향수를 싸면 잎에서 향내가 남을 말한다.
꾸사풀로 생선을 싸면 생선향기가 나듯,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악한자와 함께 있으면 악취가 풍기기 마련이다. 반면 어떤 잎사귀라도 향내 나는 전단향이나 목향수를 싸면 아름다운 향기가 나듯, 어떤 사람들이라 현자와 함께 있으면 향기나 난다고 하였다.
잎사귀들의 바구니에서
일곱 번째 게송에서 “같은 잎사귀들의 바구니에서 자신의 성숙을 알아서(Tasmā pattapuṭasseva ñatvā sampākam-attano)”라 하였다. 이는 무슨 말일까? 주석에서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먼저 ‘같은 잎사귀들의 바구니’라는 말에 대하여 “악한 친구를 섬김에는 위험이 있고 선한 친구를 섬김에는 공덕이 있으므로, 잎들의 바구니, 잎사귀들의 바구니에서처럼 악취와 향기의 대상이 섞이고, 악하고 선한 사람이 섞였으므로” (ItA.II.63) 이라 하였다. 다음으로 ‘자신의 성숙을 알아서’라 하였는데, 이 말은 “자신의 고통을 가져오고 행복을 가져 오는 결과의 완성을 알고 참사람이 아닌 악한 친구를 사귀지 말고 참사람으로 고요하고 잘못을 토해내고 칭찬받는 현명한 자를 사귀어야 한다.” (ItA.II.63) 라고 설명 되어 있다.
여기 잎사귀가 있다. 또 풀이 있다. 어느 풀이나 잎사귀가 생선을 싸게 될지 전단향을 싸게 될지 알 수 없다. 여기 사람이 있다. 그 중에 착한 사람이 현자들과 사귀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하여 악한자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악취가 날 것이다.
악취가 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악한 자들의 무리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현자들을 가까이 하여야 한다. 그래야 향내가 날 것이다. 그럼에도 악한 자와 계속 사귀게 되었을 때 결과는 어떠할까? 이에 대하여 ‘지옥으로 이끈다(nirayaṃ nenti)’고 하였다. 반면 현자들을 가까이 하였을 때 ‘천상세계로 이끈다(pāpenti suggatin)’고 하였다.
숭산스님의 감자바구니론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악한 사람들도 있다. 착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이 섞여 산다. 그래서 마치 바구니에 잎사귀에 섞여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렇게 섞여 있는 바구니에서 향상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행이 있는 자와 함께 하면 된다. 계행이 있는 현자들과 한 바구니에 있는 것처럼 살면 되는 것이다.
숭산스님이 미국에 있을 때 아비리그의 대학생들에게 공동체 생활을 하게 했다고 한다. 일종의 수행공동체를 말한다. 집을 하나 얻어서 함께 사는 것이다. 낮에는 학교나 직장에 나가고 밤에는 함께 모여 밥도 먹고 수행도 하는 수행공동체를 말한다. 이렇게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감자바구니론’이다.
감자를 씻을 때 개별적으로 씻는 것 보다 바구니에 넣고 씻는 것이 효율적이다. 서로가 서로를 씻겨 주는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행공동체 생활을 하면 서로에게 배울 것이다. 그 중에 계행이 바른 사람이 있다면 모두 따라 하게 될 것이다. 또 가장 근면한 자가 있다면 역시 따라 하게 될 것이다. 수행의 경지가 높은 자가 있다면 “나도 저와 같이 되어야 겠다”라는 분발요인이 될 수 있다.
가장 계행이 높고 가장 수승한 경지의 수행자를 따라 가게 되어 있다. 이것이 한 바구니에서 감자를 씻을 때 서로가 서로를 씻어 주듯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 서로 향상의 길로 가게 되는 이치와 같다. 이렇게 본다면 “같은 잎사귀들의 바구니에서 자신의 성숙을 알아서(Tasmā pattapuṭasseva ñatvā sampākam-attano)”라는 구절은 숭산스님의 감자바구니론을 연상케 한다.
바람을 거슬러 가는 계의 향기
꽃이 피면 향기가 난다. 그러나 멀리 가지 못한다. 더구나 바람을 거슬로 가지 못한다. 계의 향기가 있다. 계향의 특징은 무엇일까? 거리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방향제한도 없다. 무엇 보다 바람을 거슬러 갈 수 있다. 그래서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한다.
전단향도 따가리향도 말리까향도,
그러나 참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니
참사람의 향기는 모든 방향으로 퍼져 간다.(Dhp54)
전단향, 따가리향, 웁빠라향
또는 밧씨키향이 있지만,
이러한 향기의 종류 가운데
계행의 향기야말로 최상이다.( Dhp 55)
전단향과 따가라향과 같은
그 향기는 보잘 것 없지만,
계행을 지닌 님의 높은 향기는
실로 천상계에 이른다.( Dhp 56)
2015-10-0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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