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친구
나중에 출간된 번역서가 더 좋은 것일까? 전재성님의 번역서 우다나가 있다. 부처님이 감흥어로 읊은 것이다. 그런데 공통되는 내용이 이곳 저곳 상윳따에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로서 ‘메기야의 경(Ud34)’이 있다.
메기야의 경을 보면 각주에 AN.IV.354 라 되어 있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4권 354페이지에 동일한 내용의 경이 실려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찾아 보니 앙굿따라 ‘메기야의 경(A9.3)’이다.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각주와 주석이다. 전재성님의 번역서 우다나에는 매우 풍부한 각주와 주석이 실려 있다. 그래서 읽을 맛이 난다. 이는 빈약하게 설명되어 있는 앙굿따라 ‘메기야의 경’과 비교 된다.
부처님의 시자이었던 메기야
경에 따르면 메기야는 부처님의 ‘시자’이었다. 보통 부처님의 시자라하면 아난다로 알고 있으나 그 이전에 시자로 있었던 듯 하다. 이는 각주에서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이후에 13번째, 18번째, 19번째 우기를 짤리까 산에서 보냈다.” (535번 각주) 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아난다 이전의 일이다. 그래서 “그때 존자 메기야가 세존의 시자이었는데..”라고 시작된다.
부처님의 시자이었다면 부처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부처님을 잘 알았을 것이다. 또한 부처님도 시자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경에서 보여지는 메기야는 부처님의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것으로 비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메기야는 이른 아침 탁발을 나갔다. 탁발을 나갔다가 매우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하였다. 그곳이 좋아 보여서 그곳에서 정진하기로 마음 먹었다. 경에 따르면 망고나무 숲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망고나무 숲은 아름답고 즐길만하다. 이 망고나무 숲은 정진하길 원하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 정진하기에 알맞다. 세존께서 나에게 허락하신다면, 나는 이 망고나무 숲에서 정진하러 오겠다.”(Ud34) 라 하였다.
망고나무는?
메기야는 망고나무숲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망고나무는 어떤 것일까? 망고나무는 빠알리어로 amba이다. 영어로 ‘mango tree’라 한다. 한역으로 ‘蓭羅, 蓭婆, 芒果(樹), 檬果’라 되어 있다. 위키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The mango is a juicy stone fruit belonging to the genus Mangifera, consisting of numerous tropical fruiting trees, cultivated mostly for edible fruit. The majority of these species are found in nature as wild mangoes. They all belong to the flowering plant family Anacardiaceae. The mango is native to South Asia[1][2] from where it has been distributed worldwide to become one of the most cultivated fruits in the tropics. The center of diversity of the Mangifera genus is in India.[1]
(Mango)
망고는 당도가 높은 열대성 과일로서 Mangifera종에 속한다고 한다. 남아시아가 원산지로서 전세계에 퍼져 있다고 한다.
망고에 대한 한국어백과사전을 보면 “인도에서는 민속행사와 종교의식에 망고를 쓰고 있으며, 부처는 망고로 작은 숲을 만들고 그 그늘에 앉아 평안을 찾기도 했다.”라고 되어 있다. 또 “망고라는 이름은 타밀어인 만카이(man-kay) 또는 만가이(man-gay)에서 나온 말로 포르투갈인들이 인도에 정착하면서 만가(manga)라고 불렀다. 영어권과 스페인어권 나라에서는 그 열매를 망고라고 부른다.”라고 되어 있다.
A mango tree in full bloom in Kerala(Mango)
A closeup shot of a mango inflorescence(Mango)
Green mangoes(Mango)
망고숲으로 들어 갔으나
망고에 대한 빠알리어는 암바(amba)이다. 망고숲은 암바와나(ambavana)이다. 메기야는 짤리까 산에 있는 망고숲에서 머물기를 원했다. 이에 메기야는 부처님에게 그곳에 머물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때 마다 부처님은 “메기야여, 우리는 둘 뿐이므로 다른 수행승이 올 때 까지 기다려라.”라고 하였다. 사실상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표현 기법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그의 지혜가 완전히 익지 않을 것을 아시고 저지한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 “그가 떠나서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걱정없이 호의 때문에 돌아오도록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부처님의 마음 씀씀이 대해서 알 수 있다.
메기야는 세 번 간청 하였다. 세 번 간청에 부처님은 그렇게 하라며 허락하였다. 이렇게 초기경전에서는 세 번 청하는 장면이 도처에 등장한다.
메기야는 마치 아이가 떼를 쓰는 것처럼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였다. 그리고 망고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정진하였다. 그러나 정진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경에 따르면 “세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가 일어났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팔정도 정사유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쾌락에 매인 사유, 분노에 매인 사유, 폭력에 매인 사유이다.
메기야는 이렇게 생각했다. 집을 떠나 출가 하여 정진을 하고 있음에도 욕망, 분노, 폭력에 매인 사유가 끊임 없이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오! 놀라운 일이다. 오! 예전에 없던 일이다.”라 하였다. 탐욕과 분노는 마음의 장애에 속한다. 이런 마음이 일어나면 집중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에 의한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
메기야는 정진을 중단하고 부처님에게 갔다. 가서는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는지에 대하여 묻는다. 부처님은 지혜가 아직 성숙되지 않은 메기야에게 “마음에 의한 해탈이 성숙하지 않았다면 다섯가지 원리가 도움이 된다. (Aparipakkāya Meghiya cetovimuttiyā pañca dhammā paripākāya saṃvattanti.)”라고 하였다.
초기경에 따르면 해탈에는 ‘마음에 의한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해탈을 성취해야만 수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 나는 번뇌를 부수었으므로 번뇌 없이 마음의 해탈 ,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현세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하였다.” (S16.9) 라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빠알리사전 PCED194에 따르면 “마음에 의한 해탈은 아라한도(Arahatta-magga)에 이르기 위하여 마음이 집중된 상태”라 하였고 “지혜에 의한 해탈은 아라한과(Arahatta-phala)에 이르기 위한 앎으로서 통찰을 통한 해방(deliverance through wisdom)”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메기야의 경에서는 마음에 의한 해탈 즉, 심해탈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다. 이는 메기야가가 아직 지헤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그래서 먼저 집중에 따른 마음의 해탈의 성숙을 위하여 부처님은 다섯 가지 사항을 알려 준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다섯 가지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은 다섯 가지이다. 즉, 1)선한 벗과 사귀는 것, 2)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아는 것 등의 학습계율, 3)소욕지족 등 열반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 4)정진, 5)생성과 소멸에 대한 지혜를 말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는 마음의 해탈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볼 수 있다. 일종의 이해차원의 지혜라고도 볼 수 있다. 마치 본 게임에 앞서 예비게임 하는 것과 같고 시합에 앞서서 훈련하는 것과 같다.
선한 벗과 사귀는 것에 대한 이야기
첫 번째로 선한 벗과 사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Idha Meghiya bhikkhu kalyāṇamitto hoti kalyāṇasahāyo kalyāṇasampavaṅko. Aparipakkāya Meghiya cetovimuttiyā ayaṃ paṭhamo dhammo paripākāya saṃvattati.
[세존]
“메기야여, 여기 수행승이 선한 벗, 선한 친구, 선한 동료와 사귄다. 메기야여, 마음에 의한 해탈이 성숙하지 않았다면, 이 첫번째 원리가 성숙에 도움이 된다.”
(Meghiyasuttaṃ-메기야의 경, 우다나 Ud34, 앙굿따라니까야 A9.3, 전재성님역)
심혜탈의 성숙을 위한 첫번째 조건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이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부처님이 강조하신 사항이다. 그렇다면 좋은 친구는 삶에서 어느 정도 차지할까?
좋은 도반은 청정한 삶의 전부
어느 날 아난다는 부처님에게 “ 세존이시여 , 이러한 좋은 친구 , 좋은 동료 ,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S3.18) 라 하였다 . 친구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래서 삶의 절반을 차치 한다고 하였다. 이에 부처님이 동의하였을까? 놀랍게도 부처님은 “아난다여, 이와 같이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S3.18) 라 하였다. 좋은 친구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하여 삶의 절반이 아니라 삶의 전부라 하였다.
선우를 갖는 것에 대하여 삶의 전부로 본 것은 매우 놀랍다. 그러나 수행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도반은 삶의 전부나 다름 없다. 이는 숭산스님의 바구니속감자의 비유로 알 수 있다.
무상사에서 수행한 바 있는 법우님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외국인 수행자들의 메카나 다름 없는 무상사에서 숭산스님의 일화를 자주 들려 준다고 한다. 그 때마다 하는 말이 바구니속의 감자이야기라 한다.
감자를 씻을 때 바구니에 넣고 씻으면 더 잘 씻겨진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씻겨 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중생활을 통해서 더욱더 향상되고 청정해 질 수 있음을 말한다. 대중 중에 계행이나 수행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본 받아서 함께 성장함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이 말씀 하신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 하신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아마 숭산스님이 이 구절을 보고서 바구니속감자의 비유를 들었는지 모른다.
거절하더라도
선한 벗을 사귐과 관련하여 주석에서는 AN.IV.32를 근거로 하여 설명되어 있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수행승 도반의 경(A7.37)’이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Sattahi bhikkhave, dhammehi samannāgato bhikkhūmitto sevitabbo bhajitabbo payirupāsitabbo api panujjamānenapi. Katamehi sattahi:
Piyo ca hoti manāpo ca, garu ca, bhāvanīyo ca, vattā ca, vacanakkhamo ca, gambhīrañca kathaṃ kattā hoti, no ca aṭṭhāne niyojeti.
Imehi kho bhikkhave, satt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mitto sevitabbo bhajitabbo payirupāsitabbo api panujjamānenapī'ti.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일곱가지 원리를 갖춘 수행승이라면, 거절하더라도, 도반으로 삼고, 사귀고, 섬겨야 한다. 일곱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성실하고, 공경받을 만하고, 가르침을 주고, 충고를 받아 들이고, 심오한 대화를 이끌고,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몰아가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원리를 갖춘 수행승이라면, 거절하더라도, 도반으로 삼고, 사귀고, 섬겨야 한다.
(Bhikkhumitta suttaṃ -수행승도반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7.37, 전재성님역)
경에서 “심오한 대화를 이끌고(gambhīrañca kathaṃ kattā hoti)”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주석에 따르면 “선정과 통찰과 길과 경지와 열반에 의지한 오묘하고 심오한 대화를 말한다.”(Mrp.IV.24) 라고 하였다. 수행자들끼리 대화할 때는 오로지 법에 대해서만 말하라고 하였다. 그 외는 침묵이다.
고귀한 침묵이라 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명상주제를 갖고 명상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고귀한 침묵을 지키는 것, 그 둘 중의 하나를 실천해야 한다.” (Ud10) 라고 말씀 하셨다. 잡담을 하는 대신 법담을 하고, 법담을 하지 않으면 명상을 하라는 것이다.
법담을 할 때는 부처님이 말씀 하신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해야 한다. 그런 부처님은 심오한 가르침이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선정과 통찰과 길과 경지와 열반이라 하였다.
좋은 친구 일곱 가지 조건
경에 따르면 좋은 친구가 있다면 거절하더라도 함께 하라고 하였다. 그 좋은 친구의 조건이 일곱 가지라 하였다. 그것은
1)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Piyo ca hoti manāpo ca),
2) 성실하고(garu ca),
3) 공경받을 만하고(bhāvanīyo ca),
4) 가르침을 주고(vattā ca),
5) 충고를 받아 들이고(vacanakkhamo ca),
6) 심오한 대화를 이끌고(gambhīrañca kathaṃ kattā hoti),
7)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몰아가지 않는 것(no ca aṭṭhāne niyojeti)
이라 하였다. 과연 이런 친구가 있을까? 이런 친구가 있다면 쫓아가야 할 것이다. 설령 그가 뿌리치더라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좋은 수행처가 있다면
거절하더라도 쫓아 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수행처도 해당된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이와 같이 ‘나는 이 숲속에 의지해서 지낸다. 이 숲속에 의지해서 지낼 때에 나는 아직 이루지 못한 새김을 새기고, 아직 집중하지 못한 마음을 집중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했고, 또한 출가생활에서 조달해야 할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조달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 숲속에서 머무는 것이 좋으며, 그 곳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 (M17) 라 하였다.
마찬가지로 좋은 친구가 있다면 거절 하더라도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향상이 이루어진다. 특히 수행의 길에 있어서 도반은 결정적이다. 제 아무리 잘 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독불장군처럼, 독각승처럼 홀로 간다는 것은 향상의 길로 가기 어렵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으면 모를까 배우고 익히는 단계에서는 도반이 필수적이다. 그런 도반이 있으면 거절하더라도 사귀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런 친구
부처님은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다. 그 중에는 우정에 대한 가르침도 많다. 특히 어떤 친구를 사귈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 많다. 앙굿따라니까야에 ‘벗의 경(A7.36)’이 있다.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역시 일곱 가지로 설명하였다. 이를 게송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Duddadaṃ dadāti vittaṃ
dukkaraṃ cāpi kubbati,
Athopissa duruttāni
khamati dukkhamānipi.
[세존]
“벗은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하기 어려운 것을 하고,
그리고 또한 그에게
참기 어려운 폭언을 참아내네.
2.
Guyhaṃ cassa akkhāti
guyhassa parigūhati,
Āpadāsu na jahāti
khīṇena nātimaññati,
그에게 비밀을 고백하면,
그는 비밀을 지켜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가난할 때 경멸하지 않네.
3.
Yasmiṃ etāni ṭhānāni
saṃvijjantīdha puggale,
So mitto mittakāmena
bhajitabbo tathāvidhoti.
세상에 이와 같은 것들이
발견되는 사람이 있다면,
벗을 바라는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을
벗으로 사귀어야 하리.”
(Mitta suttaṃ-벗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7.36, 전재성님역)
일곱 가지 친구의 조건을 보면 1)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2) 하기 어려운 것을 하고, 3)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4) 비밀을 고백하고, 5) 비밀을 지켜 주고, 6)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7) 가난할 때 경멸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과연 이런 친구가 있을까? 이런 친구가 있다면 거절하더라도 쫓아 가야 할 것이다.
2015-10-0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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