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마음의 해탈을 이루기 위한 조건이 있다. 우다나와 앙굿따라니까야의 ‘메기야의 경’에 따르면 해탈의 성숙을 이루기 위하여 다섯 가지 가르침이 제시 되어 있다. 그것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 계행을 갖추는 것, 소욕지족, 정진, 생성과 소멸에 대한 지혜이다. 이런 가르침을 보면 단계적임을 알 수 있다.
빠띠목카(pātimokkha)에 대하여
부처님은 쉬운 가르침에서부터 시작하여 심오한 가르침을 설하였. 그런데 경에 따르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라 하였다. 그 다음으로 계행을 갖추는 것이다. 부처님은 계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Puna ca paraṃ Meghiya bhikkhu sīlavā hoti pātimokkhasaṃvarasaṃvuto viharati ācāragocarasampanno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Aparipakkāya Meghiya cetovimuttiyā ayaṃ dutiyo dhammo paripākāya saṃvattati.
[세존]
“메기야여, 더욱이 수행승이 계행을 지니고 계율의 항목을 수호하고 알맞은 행동과 행경을 갖추고 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율을 받아 배운다. 메기야여, 마음에 의한 해탈이 성숙하지 않았다면, 이 두 번째 원리가 성숙에 도움이 된다.”
(Meghiyasuttaṃ-메기야의 경, 우다나 Ud34, 앙굿따라니까야 A9.3, 전재성님역)
경에서 학습계율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에 대하여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계율의 항목(pātimokkha)이라 한 것은 의무계율로 계본 또는 별해탈이라고 한역하는 것인데, 수행승이 될 때에 받아 지켜야만 하는 250계의 계율의 항목들을 말한다. 이 계율들은 학습계율안에 포함된다. 학습계율은 한역에서 학계라고 하는 것인데, 계율의 항목인 의무계율을 포함하며, 그 외에 의무계율에 소속되지 않는 사소한 계율을 추가하여 배워야 할 계율 또는 실천하여야 할 계율이라고 하는데,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학습계율이 적당하다. 이를테면, 재가신자의 계행[오계, 팔계, 십계]은 의무계율이 아니라 학습계율로서 권장계율이라고 볼 수 있다.
(541번 각주, 우다나 Ud34, 전재성님)
‘바라제목차’라는 말이 있다. 이는 빠알리어 빠띠목카(pātimokkha)를 음역한 것이다. 그런데 빠띠목카는 비구계를 기본으로 하여 사소한 계율을 포함한 것이라 하였다. 비구계는 의무계율이고 사소한 계율은 권장계율이라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된 것이 빠띠목카이다.
계목의 요지는?
빠띠목카는 포살일에 모두 모여 합송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수 백개나 되는 계목의 요지는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율장대품 해제 글에 따르면 위나야에서 이렇게 정의하였다고 하였다.
“빠띠목카라는 것,
그것은 건전한 것들의 시초이자,
얼굴이자, 선두이다.
그래서 빠띠목카라 한다.” (Vin.I.103)
빠띠목카는 건전한 삶을 위한 것이다. 이는 법구경에서도 알 수 있다. 법구경에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라는 구절이 있다. 내용은 “모든 악을 짓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한다 (dhp183)” 라는 뜻이다. 일체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 과거에 출현한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임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빠띠목카는 착하고 건전한 삶을 살기 위한 기본 항목임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포살일이 생겨났나?
포살일에 빠띠목카를 합송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포살을 하게 되었을까? 율장에 따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부처님은 보름기간 중에 제14일, 제15일 그리고 제 8일에 함께 모이는 것을 허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인 수행승들이 말 없이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가르침을 듣기 위하여 온 사람들이 “어찌 싸끼야의 아들들은 보름기간 중에 제14일, 제15일 그리고 제 8일에 모여 앉아 벙어리 돼지처럼 말없이 있기만 한단 말인가? 앉아만 있지 말고 설법을 해야 하지 않는가?”(Vin.I.102) 라고 사람들이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계가 권장사항이라 하지만
각주에 따르면 빠띠목카는 비구계와 사소한 계율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비구계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계율이고 사소한 계율은 권장계율이라 하였다. 그런데 재가자가 지켜야 할 오계의 경우 의무계율이 아니라 권장계율이라 하였다. 재가자가 오계, 팔계, 십계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제재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도덕적으로 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률이라 볼 수 있다.
오계가 의무계율이 아니라서 오계를 어긴다면 어리석은 자라 볼 수 있다. 오계 중에 불음주계가 있는데 권장사항이라 하여 술을 허용한다면 착하고 건전한 삶에 어긋난다. 술을 마시는 행위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술로 인하여 오계를 어겼을 때 사회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음주로 인하여 오계가 파괴 될 수 있다면 불음주계가 의무사항이 아니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다.
“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
초기경전을 보면 종종 감동적인 문구를 접한다. 항상 기억하고 되새겨서 사유하고 싶은 문구를 말한다. 경에서 언급된 “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가 대표적이다.
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이에 대한 주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추론으로 알 수 있다. 그것은 수 백 가지나 되는 학습계율(pātimokkha)에서 사소한 계율이 해당된다고 본다. 그래서‘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본다’라 하였을 것이다.
‘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본다’라는 문구와 관련하여 초불연에서는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라 하였다. 잘못과 허물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빠알리어 문구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는 어떤 뜻일까?
aṇumattesu는 aṇumatta의 형태로서 ‘of very small size; tiny’의 뜻이다. Vajjesu는 vajjesi의 형태로서 ‘avoided; abstained from; renounced’의 뜻이다. Bhayadassāvī는 bhayadassāvī의 형태로서 ‘realising the danger’의 뜻이다. 그래서 ‘aṇumattesu vajjesu’의 뜻은 ‘아주 작은 것을 포기한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는 작은 계율을 어긴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성전협에서는 ‘아주 작은 잘못’이라 하였고, 초불연에서는 ‘작은 허물’이라 번역하였다.
의도적 정액방출에 대하여
아주 작은 잘못에 대하여 율장에서는 세세하게 규정하여 놓았다. 율장을 보면 음계에 대한 것이 많은데 아주 작은 잘못도 음계에 대한 것이 많다. 율장소품에 누적의 다발이 있다. 그 중에‘감추지 않은 것에 대한 참회처벌’이라는 항목이 있다. 존자 우다인이 ‘의도적인 정액방출’이라는 죄를 지은 것을 감추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다인은 의도적으로 정액을 방출하였다. 율장에 따르면 죄에 해당된다. 우다인은 이를 숨기지 않고 알렸다. 이에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그렇다면 참모임은 수행승 우다인에게 의도적인 정액방출이라는 한 죄를 짓고 감추지 않은 것에 대하여 엿새 동안의 참회처벌을 주어라.”(Vin.II.39) 라 하였다.
우다인은 몽정이 아닌 의도적으로 정액을 방출하여 죄를 지었다. 그러나 죄를 인정하고 곧바로 알렸다. 이에 엿새 동안 참회기간을 가졌다.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 율장에 따르면 상가에서는 이를 받아 들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그렇다면 참모임은 수행승 우다인에게 출죄복귀를 주어라.”(Vin.II.39) 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우다인은 사소한 잘못에서 두려움을 본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본다’라는 문구에서 윤동주의 시를 떠 올린다. 시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라는 문구가 ‘아주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본다’라는 문구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과연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사는 자는 얼마나 될까?
2015-10-0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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