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견디게 가을을 탈 때
일찍이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을 보지 못하였다. 약수터 가는 길, 만안여성회관 앞에 있는 단풍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평소에는 눈 여겨 보지 않았으나 늦가을 단풍철에 시선을 끌어 당긴다.
온통 빨강색 일색의 단풍을 보면 잘 차려 입은 귀부인을 연상케 한다. 나이가 들어 예쁘다기 보다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말한다. 가까이 다가 서니 다섯 방향의 입파리가 마치 하늘의 별처럼 빼곡하다.
비 갠 후 학의천 길에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이다. 노랑잎을 특색으로 하는 은행나무는 극적인 변화를 보여 주었다. 불과 몇 주전 까지만 해도 푸르름을 자랑하였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노랑옷으로 갈아 입었다.
은행나무는 계절을 알리는 지표와 같다. 일제히 피었다 일제히 지는 듯 하다. 대게 11월 20일 전후하여 일제히 진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은행나무가 앙상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가을이 갔음을 알 수 있다.
11월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죽음의 계절이다. 낙엽과 함께 하는 11월은 그저 앙상하고 춥고 외로운 이미지이다. 더구나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쯤이면 그나마 간신히 매달려 있던 잎새 마저 떨어 버린다. 여기에 찬바람까지 불면 그야말로 최악의 정신상태가 된다.
11월 말 은행나무가 완전히 발가벗었을 때 생명의 계절은 끝이 난다. 다시 생명이 있기 까지 무려 5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5개월 동안 앙상한 가지를 보며 살아 가야 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이다.
가로에 은행나무가 대부분이다. 4월 중순 일제히 푸른 옷을 갈아 입고 7개월간 풍성함을 준다. 그러나 나머지 5개월간은 마음의 황무지나 다름 없다. 이렇게 본다면 거리의 가로수를 바꿀 필요가 있다. 언제나 푸르름을 볼 수 있는 나무, 소나무 같은 종이다.
낙엽이 져서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을 때 못 견디게 가을을 탄다. 대부분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계절의 변화에 대하여 상심해야 할까? 숫따니빠따에 이런 게송이 있다.
Phassena yadā phuṭṭhassa
Paridevaṃ bhikkhu na
kareyya kuhiñca
Bhavaṃ ca
nibhijappeyya
Bheravesu ca na sampavedheyya.
“괴로움을 만나 고통을 겪을 지라도,
어떠한 경우이든 비탄에 빠져서는 안 되고,
존재에 탐착해서도 안되고,
두려운 것을 만났을 때도 전율해서는 안 됩니다.” (stn923)
수행자는 어떤 경우에서라도 비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비탄은 접촉에 따른다. 대상을 보거나 들었을 때 느낌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설령 그 대상이 고통스럽거나 슬픈 것이어도 비탄의 감정이 되어 슬픈 표정을 지어서는 안됨을 말한다.
깊어 가는 가을이다. 낙엽을 보면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조금만 지나면 완전히 벌거벗은 나무만 보게 될 것이다. 이럴 때 마음의 황무지를 느낀다. 그렇다고 하여 언제까지나 ‘무상(無常)’타령할 수만 없다. 이럴 때 마음을 내부로 돌려야 할 것이다. 숫따니빠따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Ajjhattameva upasame
Na aññato bhikkhu santimeseyya,
Ajjhattaṃ upasannassa
Natthi attā1- kuto nirattā vā.
“수행승은 안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밖에서 평안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안으로 평안하게 된 사람에게는 취하는 것이 없는데,
어찌 버리는 것이 있겠습니까?” (stn919)
마음 밖에서 평안을 찾지 말라고 하였다. 눈이나 귀 등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하지만 일시적 위안을 줄 뿐이다. 그래서 마음 밖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평안을 찾으라고 하였다. 어떻게 평안을 찾는가? 마음의 파도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 한 가운데서 파도가 일지 않고 멈추듯, 멈추어서 결코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stn920) 라 하였다. 명상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다. 또 항상 ‘사띠’를 확립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에라도 “평정하고 사띠를 확립하라”(stn515)라 하였다.
수행자는 늘 기쁨과 함께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수행자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좋지 않다. 어떻게 해야 기쁨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선정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앉아 명상을 닦고 수행자로서 수행을 배우십시오. 홀로 있는데서 기쁨을 찾으십시오. 홀로 있는 것이 해탈의 길이라 불립니다.”(stn718) 라 하였다.
깊어 가는 가을에 해는 점차 짧아 지고 있다. 아침이다 싶으면 저녁이고, 월요일이다 싶으면 금요일이다. 봄인가 싶었는데 가을의 끝자락이다. 소년인가 싶었는데 노년으로 접어 든다. 짧은 해만큼이나 나이 든 자가 체감하는 시간은 빨리 흘러 간다. 늘 그렇듯이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누워 있기 위하여 지난 하루 일과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누워 있다 보면 마침내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나는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15-11-1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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