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불타는 단풍을 보면서 찬란한 슬픔을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1. 7. 09:58

 

 

불타는 단풍을 보면서 찬란한 슬픔을

 

 

하루 밤 자고 나니 세상이 변한 것 같다. 창밖을 내다 보니 단풍이 더 짙어 졌다. 어제 저녁 비로 하루 밤사이에 모든 것이 변한 것 같다. 마치 밤새도록 고민하던 자가 아침에 되어 보니 머리가 하얕게 샌 것처럼 하루 밤 내린 비에 천지가 컬러풀하게 변하였다.

 

 

 

 

 

늘 다니는 학의천 길에 섰다. 이른 아침 단풍이 절정이다. 구슬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에 노랑은행과 빨강벚나무로 불타는 듯 하다. 내장산 단풍이 볼만하다고 하지만 도시의 단풍도 볼만 하다.

 

 

 

 

 

 

 

불과 하루 만에 세상이 변하였다. 늘 다니는 학의천 길에 갈대를 촬영하였다. 갈대가 군락을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였다. 그러나 불과 하루 만에 폭격을 맞은 듯 하다. 갈대꽃은 온데 간데 없고 갈대는 처참하게 쓰러져 있다.

 

 

 

 

 

 

 

 

 

 

가을철 갈대는 낭만이다. 마치 먼지를 터는 총채처럼 생긴 갈대꽃 숲을 거닐면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갈대꽃이 피면 파멸의 징조이다. 갈대꽃이 피어 열매가 익을 때 갈대는 스러지게 되어 있다. 대나무도 그렇고 파초도 그렇다. 그래서 이런 시가 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오로지 스스로에게 생기나니

악한 마음을 지닌 자는 스스로를 죽이네.

대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죽듯이.(S3.2)

 

“파초와 대나무와 갈대는

자신의 열매가 자신을 죽이네.

수태가 노새를 죽이듯.

명예가 악인을 죽이네.(S6.12)

 

 

갈대와 대나무와 파초는 다년생 풀이다.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 되면 시들어 죽게 되어 있다. 그 자리에 다시 새싹이 나서 또 다시 일년을 살아 간다. 이와 같은 갈대와 대나무와 파초의 속성을 악행에 대한 과보로 비유하였다.

 

가을이 절정이다. 불타는 단풍을 보면서 이제 추락할 일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갈대가 꽃이 피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지만 한번 내린 비로 쑥대밭 된 것처럼, 울긋불긋 절정의 단풍에서 찬바람 떠는 앙상한 가지를 연상한다.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 주식도 절정에 이르러 시세분출하고 나면 고꾸라진다. 절정의 단풍에서 파국을 본다. 어제 밤 내린 비로 세상이 컬러풀하게 극적으로 변하였듯이 어느 날 비바람에 또 한번 세상은 변할 것이다.

 

찬란한 단풍을 보면서 찬란한 슬픔을 본다. 서쪽 하늘 해질 무렵 벌겋게 노을이 질 때 세상이 한번 훤하듯이, 불꽃이 마지막에 한번 크게 솟구치듯이, 석양에 반짝이는 단풍은 인생의 황혼과도 같다. 과연 삶의 목적은 달성되었는가?

 

 

2015-11-0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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