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탁발이 사라진 한국불교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1. 25. 12:42

 

 

탁발이 사라진 한국불교에서

 

 

금강경을 보면 초기경전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대승경전이라도 그렇듯이 금강경 역시 여시아문으로 시작 된다. 금강경 법회인유분에서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이시라는 도입문구가 있다. 부처님이 설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아난다의 입을 빌어 여시아문이라 함으로써 부처님의 들었다는 것을 말한다. 대승경전 편찬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대승경전 편집자가가 자신의 저작물을 역사적으로 실재 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초기경전을 패러디하여

 

대승경전의 정당성을 알려 주는 여시아문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빠알리어가 있다. 빠알리니까야에서 정형구로 등장하는 에왕메수땅이다. 숫따니빠따 셀라의 경(Sn3.7)’ 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말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천 이백 오십명의 수행승들과 함께라는 말이다. 금강경 도입부에 실려 있는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라는 말과 똑 같다. 금강경에 후대에 성립되었으므로 초기경전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如是我聞 一時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사 
큰 비구들 천이백오십 인과 더불어 함께 하셨다.

 

(금강경 법회인유분, 무비스님역)

 

 

Eva me suta eka samaya bhagavā aguttarāpesu cārika caramāno mahatā bhikkhusaghena saddhi aḍḍhateasehi bhikkhusatehi  yena āpaa nāma aguttarāpāna nigamo tadavasari,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천 이백 오십 명의 수행승들과 함께 앙굿따라빠 지방에서 유행하시다가 아빠나라고 하는 앙굿따라빠 지방의 한 마을에 도착하셨다.

 

(셀라의 경, 숫따니빠따 Sn3.6, 전재성님역)

 

 

대승경전과 초기경전에서 공통점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라는 말이다. 이런 문구는 정형화 되어 있어서 경전의 초입에 실려 있다. 이를 한역에서는 여시아문일시불(如是我聞 一時 )”이라 하고, 빠알리어로는 에왕 메 수땅 에깡 사마양 바가와(Eva me suta eka samaya bhagavā)”라 한다.

 

에왕 메 수땅(eva me suta)

 

여시아문에 해당되는 밀이 에왕 메 수땅(eva me suta)’이다. 여기서 eva‘thus; in this way’의 뜻으로 그렇게또는 이와 같이라는 뜻이다. 빠알리어 me‘to me; my; mine’의 뜻이다. 빠알리어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기 때문에 영어 me는 영어의 ‘I’와 같은 뜻이다. 그래서 me에 대하여 나는또는 내가라 번역한다.

 

빠알리어 sutasuta의 형태로서 ‘heard. (nt.), the sacred lore; learning; that which is hear.’의 뜻이다. ‘듣다또는 배우다의 뜻이다. 그래서 빠알리어 에왕 메 수땅(eva me suta)’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의 뜻이 된다. 이를 한역으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 한다.

 

에깡 사마양 바가와(eka samaya bhagavā)

 

한역에서 일시불(一時 )’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때 부처님께서는 이라는 뜻이다. 빠알리어로는 ‘eka samaya bhagavā라 한다. 빠알리어 에깡(eka)‘same; certain; unknown. (used for the indefinite article). one’의 뜻이다.

 

에까()가 하나를 뜻한다. 사마양(samaya)‘time; congregation; season; occasion; religion.’의 뜻이다. 따라서 에깡 사마양(eka samaya)한 때또는 어느 때라는 뜻이 된다. 이는 한역 일시(一時)’라는 말과 대응된다.

 

빠알리어 바가와 (bhagavā)‘Worshipful, venerable, blessed, holy’의 뜻으로 부처님을 호칭한다. 이는 여래십호에서 세존에 해당된다. 한역에서는 ()’ 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래서 빠알리어 에깡 사마양 바가와(eka samaya bhagavā)’한 때 세존께서는이라 번역되고, 한역으로는 일시불(一時 )’이 된다.

 

한역 여시아문일시불은 빠알리어 에왕 메 수땅 에깡 사마양 바가와(Eva me suta eka samaya bhagavā)’에 대응된다. 이렇게 본다면 대승경전은 초기경전의 도입문구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차제걸이에 대하여

 

금강경에 걸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차제걸이라는 말은 차례차례 걸식한다는 뜻이다.  초기경전에서 차제걸이와 관련된  문구는 정형화 되어 있다. 이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그때 세존께서 공양하실 때라 옷을 입으시고 발우 가지시어 사위대성에 들어가시사 걸식하실 때 그 성중에서 차례로 걸식하여

 

(금강경 법회인유분, 무비스님역)

 

 

Atha kho bhagavā sāvatthiya sapadāna piṇḍāyacaramāno yena aggikabhāradvājassa brāhmaassa nivesana tenupasakami.

 

그 때 세존께서는 싸밧티 시에서 차례로 탁발하면서

바라문 악기까 바라드와자의 집이 있는 곳을 찾았다.

 

(Vasala sutta-천한 사람의 경, 숫따니빠따 Sn1.7, 전재성님역)

 

 

탁발을 나갈 때 반드시 가사와 발우를 갖추었다. 금강경에서는 착의지발(着衣持鉢)’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시세존식시착의지발(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이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무비스님은 그때 세존께서 공양하실 때라 옷을 입으시고 발우 가지시어라 번역하였다. 이 말은 정형구이다. 그런데 빠알리니까야에도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 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가사와 발우를 들고  싸밧티 시에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atha kho bhagavā pubbanha samaya nivāsetvā pattacīvara ādāya sāvatthiya piṇḍāya pāvisi.)” (Sn1.7) 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다.

 

상가띠(saghāi)에 대하여

 

금강경에서 착의지발(着衣持鉢)’이라 하였을 때 이는 빠일리어 ‘nivāsetvā pattacīvara ādāya’를 뜻한다. 빠알리어 nivāsetvā‘having dressed oneself’의 뜻이다. pattacīvara‘Bowl and robe’의 뜻으로 발우와 가사라는 말이다. 이는 pattacīvara‘patta+cīvara’의 형태이다. 그래서 patta‘an alms bowl’의 뜻으로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말하고, cīvara‘the yellow robe’라 하여 가사를 말한다.

 

탁발을 갈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이 발우와 가사이다. 발우가 있어야 주는 음식을 담을 수 있다. 또 탁발을 떠날 때는 가사를 갖추었다. 여기서 가사는 세 벌의 옷을 말한다. 하의와 상의와 겉옷을 말한다. 이렇게 수행자는 세 벌의 옷으로 살아 간다.

 

그런데 겉옷의 경우 때로 이불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추울 때 입기도 하는 것이 겉옷이다. 이 겉옷에 대하여 상가띠(saghāi)’라 하여 대가사또는 중복가사라 한다. 한국에서는 예불드릴 때라든가 법회가 있을 때만 입는 괴색가사를 말한다.

 

부처님 당시 겉옷 겸 이불의 역할을 했던 것이 상가띠이다. 그래서 발우와 함께 항상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초기경에서는 탁발가는 것에 대하여 가사와 발우를 들고라는 말이 정형화 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이 들고라는 말이다. 이는 빠알리어 ādāya를 번역한 것이다.

 

Ādāya‘having taken’의 뜻이다. 이는 취하고또는 가지고라는 뜻이다. 따라서 ‘nivāsetvā pattacīvara ādāya’라는 문구는 옷을 입고 가사와 발우를 들고라는 뜻이 된다. 이 말 뜻은 무엇일까? 상의와 하의는 입은 상태에서 대가사와 발우를 들고라는 뜻이 된다.

 

추울 때나 잠을 잘 때 이불대용으로 사용되는 대가사는 평소 어깨에 걸치고 다닌다. 남방테라와다 불교 빅쿠들이 걸어 다닐 때 많이 볼 수 있다.  따라서가사와 발우를 들고라는 말은 가사를 어깨에 매거나 또는 입은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초불연 번역을 보면 ‘pattacīvaram ādāya’에 대하여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라 하였다. 그러나 성전협 번역을 보면 “발우와 가사를 들고”라 하였다. 

 

 

 

 

 

 

우리말 수한다는 말이 입는다는 의미로 받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길게 늘어 뜨리다라는 의미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수한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입는다는 말과 같다. 스님들이 가사를 수한다고 하였을 때 가사를 입는다라는 말로 받아 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불연 번역방식대로 수한다는 말은 입는 것이 되어 버린다. 상가띠를 입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발우를 입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초불연 번역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하여 발우와 가사, 수하는 것인가 드는 것인가(2014-03-17)’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탁발을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금강경에서 차제걸이(次第乞已)라는 말은 초기경전에서 ‘sapadāna piṇḍāyacaramāno’에 해당된다. 여기서 차례차례를 뜻하는 차제라는 말이 sapadāna이다. 빠알리어 sapadāna의 뜻은 without interruption’이다.

 

piṇḍāyacaramānopiṇḍāya+caramāna 형태이다. piṇḍāyapiṇḍa의 형태로서 ‘a lump; a lump of food’의 뜻이다. 음식의 덩어리라는 뜻이다. Caramāna‘walking or roaming about’의 뜻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sapadāna piṇḍāyacaramāno’은 음식을 구하기 위해 순서대로 걸식하는 행위를 말한다.

 

탁발할 때 집을 골라서 걸식하는 것이 아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의 집을 따지지 않고 차례대로 순서대로 음식을 빌어 먹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다 보면 출가이전 자신의 부모집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초기경전에서는 “싸밧티 시에서 집집마다 탁발을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이르렀다.( Sāvatthiya sapadāna piṇḍāya caramāno yena sakamātu nivesana tenupasakami)” (S6.3)”라고 묘사 되어 있다.

 

집집마다 차례로 탁발하는 이유는

 

집집마다 차례로 탁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숫따니빠따 무소의 뿔경(Sn1.3)’에서는 모든 맛에 탐착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부양해야 하는 동료 없이, 집마다 차례로 밥을 빌되 이 집안이나 저 집안에 마음이 묶이지 않고,”(stn65)라 하였다. 양육해야 동반자와 함께 살지 않는 수행자에게 집을 골라 탁발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가난한 자의 집이 걸리면 가난한 형편대로 음식을 얻으면 된다. 얻을 음식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면 음식을 못 구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한번 탁발 나갔을 때 일곱 집을 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일곱 집에서 음식을 얻지 못하였다면 굶어야 할 것이다.

 

집집마다 차례로 어느 한집을 빼지 않고 밥을 비는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무소유의 이상과 겸허한 자아완성을 위한 수도행각의 일단이다.” (Prj.II.118)이라 하였다. 또 탁발은 단순이 밥을 빌기 위한 구걸행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주석에 따르면 시주에게 복을 짓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Prj.II.118) 라 하였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일곱 집까지만 탁발하였을 때 가능함을 말한다.

 

오온의 종식을 위하여

 

한국불자들의 교과서와 같은 금강경 첫 부분에 탁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탁발은 불교를 불교답게 하는 가장 거룩한 행위이다. 청정한 삶(brahmacariya)를 실현하기 위하여 무소유 정신이 요구 되는데 탁발만한 것이 없음을 말한다. 자신을 내려 놓고 가장 낮은 자세에서 살아 갈 때 가르침은 실현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탁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이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세상에는 ‘손에 발우나 들고다녀라!’라고 하는 저주가 있다.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아들들은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그러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결코 왕이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강도가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빚을 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떨어졌다. 괴로움에 떨어져 괴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적어도 괴로움의 다발들이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S22.80)

 

 

상윳따니까야 ‘탁발의 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탁발, 즉 빌어 먹는 것은 삶의 끝이라 하였다. 그리고 저주라 하였다. 왜 삶의 끝이고 저주일까? 주석에 따르면 삶의 끝은 가장 낮은 위치를 말한다. 하찮고 형편 없고 나쁜 것이다. 더구나 저주라 하였다. 이는 세상사람이 분노하면 “중옷이나 입고, 그릇을 들고 밥이나 빌러 다녀라!”라고 그들의 적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 한다.

 

탁발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이다. 그것은 청정한 삶의 실현을 위해서이다. 이는 ‘괴로움의 다발들(오온)이 종식되어야 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탁발이라는 것은 자아완성을 위한 수도행각이고 동시에 구가난한 자에게도 선업공덕을 지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탁발이 사라진 한국불교에서

 

탁발이 사라진 한국불교에서 비법이 활개를 치고 있다. 스님들은 소유에서 자유롭지 않아 사실상 재가자와 같은 반승반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환경이 달라 탁발을 하지 못한다면 율장정신대로라도 살아야 할 것이다. 세 끼 밥을 다 찾아 먹을 것이 아니라 하루 한끼 먹는 것만 실천해도 한국불교는 몰라 보게 달라질 것이다.

 

 

2015-11-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