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즉착 윤홍식님의 불교관련 동영상
‘입만 벙긋하면 어긋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한자어로 ‘개구즉착(開口卽錯 )’이라 한다. 유튜브에서 ‘윤홍식’님이 그런 케이스이다.
윤홍식님 동영상을 많이 본 것은 아니다. 불교관련 키워드를 넣으면 걸리는 것이 윤홍식님 동영상이라서 호기심에 몇 번 보았다. 동영상은 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등 종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과 서양사상 등 매우 다양하다. 이는 자신이 만든 홍익학당에서 강연을 하고 강연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놓은 것이다. 일주일에 몇 개씩 꾸준히 올리다 보니 천 개 가량된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밟히는 것이 윤홍식님 동영상이다.
윤홍식님 동영상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는 불교도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불교에 관심이 있어서 자신의 강연 중에 약 70% 가량은 불교관련 내용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불교중에서도 ‘대승불교’를 강조한다. 보살행과 육바라밀에 대하여 주로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기불교를 비판한다.
소승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윤흥식님의 강연을 한번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것 중에 제목이 눈길을 끄는 ‘윤홍식의 철학힐링 - 소승, 중승, 대승불교의 체계적 비교(2014-12-16)’를 보았다. 그런데 보자마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소승’이라는 말 때문이다.
요즘은 소승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스님들이 소승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대승의 보살사상을 강조하기 위하여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소승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교양이 없는 사람’ 취급 당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서구에서 뿐만 아니라 유엔에서도 공식적으로 소승을 뜻하는 ‘히나야나(Hīnayāna)’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승이라는 말 대신 ‘초기불교’ 또는 ‘테라와다’라 한다. 그럼에도 윤흥식님은 소승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불교사를 크게 소승, 중승, 대승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불선심(不善心)을 자극하였는데
입을 떼자 마자 어긋나니 그 다음부터는 줄줄이 어긋난다. 소승에 대하여 아라한이라 하고, 중승에 대하여 벽지불이라 하고, 대승에 대해서는 보살이라 한다. 특히 벽지불에 대하여 중승이라 하였는데 이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윤홍식님은 부처님에게 법을 펴달라고 청원한 자에 대하여 ‘브라만’이라 하였다. 브라만이 아니라 ‘브라흐마(brahma)’이다. ‘사함빠띠 브라흐마’를 말한다. 이어지는 윤홍식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불자들로 하여금 ‘불선심(不善心)’을 자극하게 만든다. 다음과 같은 말이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돌아 보니까 그래도 가르치면 될만한 사람이 있구나 해가지고 가르침을 펴기 시작하는데 펴자마자 아라한이 속출하죠. 이 경전에 오류가 있는 거에요. 이 경전을 그대로 믿으시면 안되는 이유에요. 경전 그대로라면 석가모니 지혜가 좀 부족한 분이에요. 오판하신거에요. 어떻게 가르칠수 없다 이건 나밖에 못 배운다 한 법을 어떻게 가르치자 마자 바로 아라한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죠? 좀 이상하죠? 뭔가 좀 경전이 설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윤홍식의 철학힐링 - 소승, 중승, 대승불교의 체계적 비교(2014-12-16))
윤홍식님은 ‘석가모니가’라 하였다. 부처님이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고 친구이름 부르듯이 ‘석가모니’라 한 것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폄하하기 시작하더니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경전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윤홍식님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법을 펼쳤을 때 아라한이 속출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을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더구나 “석가모니 지혜가 좀 부족한 분이에요.”라 하였다. 한마디로 어리석은 자라는 뜻이다. 또 “오판하신 거에요”라 하였다.
윤홍식님이 말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마디로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대승불교가 출현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과연 초기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까? 아니 대승불교를 신봉하는 불자들이라도 부처님과 가르침을 ‘능멸’하는 이 말에 동의할까?
윤홍식님의 동영상을 더 이상 보지 않았다. 본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수 많은 ‘오류’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입만 벙긋하면 어긋난다’는 말이 이럴 때 써 먹는 것임을 알았다.
“힌두이즘 형성에 대응하여, 혹은 자극을 받아”
대승불교는 어떻게 성립되었을까? ‘경서원’의 ‘인도불교사’에 따르면 “힌두이즘 형성에 대응하여, 혹은 자극을 받아 불교 내에서도 B.C 2세기 무렵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라고 시작되어 있다. 이는 불자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승불교의 흥기에 대하여 부파불교에 식상해서 출가주의 불교에 반발해서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불교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힌두교에 자극받아 대승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대승불교가 출가자중심의 부파불교가 점차 전문화 되어 가는 것에 반발하여 재가자 중심의 새로운 불교운동이 불교내에서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왜 그런가? 재가자가 불교운동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알지 못하고 또한 전문화 되어 있지 않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불교에 대하여 잘 아는 출가자집단이나 또 다른 전문집단서 대승운동을 주도 하였을 수도 있다.
일본불교학자는 대승불교의 흥기에 대하여 “힌두이즘 형성에 대응하여, 혹은 자극을 받아”라는 의미심장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대승운동이 힌두이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힌두교로부터 불교를 보호하기 위하여 불교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운동이라 볼 수 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는 대승운동을 주도한 집단이 출가주의불교, 부파불교를 비판하였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브라만들이 불교를 변형시켜서 이름을 대승이라 붙였어요”
왜 대승운동이 일어난 것일까? 정말 재가자집단에서 일어난 것일까? 재가자집단이라면 불교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알까? 출가자집단도 여러해 공부를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법을 생업에 종사하는 재가자가 부처님의 바른 법을 이해 했다고 볼 수 있을까? 재가자집단이 부처님법을 논할 정도로 전문화 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누가 대승운동을 주도 하였을까?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종교인들이다. 불교내의 출가자 논사가 있을 수 있고 또하나는 불교와 대척점에 있었던 힌두교 논사들이다. 이에 대하여 범일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원전 2세기쯤 되서 대승불교가 시작이 된다고 기록이 나와 있을 거에요. 대승불교는 누가 주체가 됐다? 책에 어떻게 나와 있습니까? 비구들이 했습니까? 비구니들이 했습니까? 책들이 대승불교는 다 주장하는 것이 재가자들이 불교운동을 일으켰다고 되 있어요. 그죠? 기억나세요?
스님들이 대승운동을 일으킨 것 아닙니다. 그러면 재가들 중에서 그런 종교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B.C 2세기 쯤에 누구에요? 누가 그런 운동을 일으킬 수 있어요? 그 사회에서. 왕족? 왕족은 힘 없어. 누구에요? 브라만이에요.
브라만들이 불교운동을 일으킨게 대승불교에요. 그리고 그 이전에 있는 스님들을 소승이라고 폄하한 거에요. 그리고 우리는 대승불교가 잘낫다고 좋다고 자랑삼아서 우리가 대승불교라고 이야기해요. 브라만의 후손입니다. 안그래요?
그 시대에 그 왕조에 그 문화에 그 역사에 새로운 종교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은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 네 계급중에서 브라만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비구들, 비구니들이 한 것 아니에요. 무엇을 중심으로? 불탑을 중심으로. 불탑이 몇 개에요? 열 개. 그리고 종교시설물은 브라만계급들이 소유하게 되어 있어요.
브라만들이 불교를 탄압하고 왜곡시키고 수용하고 변질시켜 가는 과정에 대해서 힌두교화 하는 것이 대승불교에요. 브라만들이 불교를 변형시켜서 이름을 대승이라 붙였어요. 대승불교권에서 그렇게 나와서 대승불교의 중관학파, 유식학파 나오고, 밀교나오고 끝나요.”
(범일스님, 니까야 제10강 육사외도 2)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불교상식을 깨뜨리는 말이다. 대승불교운동이 재가자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출가주의와 부파불교에 염증을 느껴 일어 났고, 불탑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대승불교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이 ‘바라문들’이라 한다.
바라문들 밖에 대승불교운동할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출가한 비구나 비구니가 대승불교운동을 일으켰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식자층이자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들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도전대륙을 승가에 보시한 아소까대왕
브라만들은 마우리아 왕조(B.C 327년~ B.C 180년) 당시에 숨죽이며 지냈다. 인도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에서는 불교가 ‘국교화’ 되다시피 하였다. 특히 아소까대왕이 적극적으로 불교를 장려 하였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 비문을 세우고 인도 밖 세계 열 나라에 ‘담마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아소까대왕은 인도전대륙을 승가에 보시하기도 하였다. 이런 이야기는 청정도론에서 “전 대지를 정복하여 10억을 보시했던 행복한 왕도 마지막에는 그 왕국이 아말라까 열매의 반 정도에도 미치지 못했다. 비록 슬픔 없는 아소까였지만 공덕이 다 하여 죽음을 향했을 때 바로 그 몸으로 슬픔을 느꼈다.” (Vism.8) 라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다.
인도대륙에 대한 보시이야기는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도 나온다. 일아스님의 ‘아소까’에 따르면 “온 세상을 승가에 보시하였다”라는 말이 있다. 고대인도에서 국토와 백성은 왕의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인도대륙을 승가에 보시한 것이다. 아마 이것이 역사상 가장 큰 보시었다고 보여진다. 이렇게 보시한 인도대륙을 대신과 관리들은 그 보시한 돈을 내고 다시 찾아 오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브라만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전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야왕조에서 불교는 크게 융성하였다. 반면 기득권 세력이었던 브라만교는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불교왕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마우리야왕조가 망하고 브라만교 왕조가 들어선 것이다. 그것이 B.C 180년에 성립된 ‘슝가왕조’이다. 슝가왕조가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동안 불교의 기세에 눌려 지냈던 브라만들의 반격이 시작 되었기 때문이다.
브라만에 의한 통일왕조에서 브라만들이 한 것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그것이 ‘힌두이즘(Hinduism)’이다. 힌두이즘은 브라만교가 환골탈태한 것이다. 어떻게 변화되고 발전되었을까?
경서원의 인도불교사에 따르면 힌두이즘이 성립된 것은 브라만왕조 슝가왕조 성립시기인 ‘B.C 2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까지 수구적 입장이었던 브라만교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는 ‘율법’을 통하여 바라문의 권위를 유지하였고, 문화적으로는 바라문언어인 ‘산스크리트 문법’을 확립하여 전인도적인 문화어가 되게 하였다. 부처님은 민중어인 마가다어로 설법하였다. 또 종교적으로는 각 지방의 부족신앙이나 민속신앙을 흡수하여 하나의 새로운 종교이념을 만들었다. 그것이 ‘힌두이즘’이다.
힌두교의 삼신사상과 대승의 삼신사상
힌두이즘이란 무엇일까? 힌두이즘은 부처님 당시에는 없었다. B.C 2세기 브라만왕조 슝가왕조가 성립되면서부터 형성된 새로운 종교이념이다. 브라만들이 자신의 종교인 브라만교에다 지방 토속신앙을 흡수하여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힌두이즘의 중핵이 되는 요소는 ‘비쉬누’와 ‘시바’로 대표된다.
비쉬누는 유일신을 대표하고 시바는 모든 원시적인 신앙을 대표한다. 그래서 아리아족의 전통사상과 지방의 토속신앙을 아우르는 것이 힌두이즘이다. 그런데 힌두이즘은 기원후에는 세 개의 신을 모시게 된다. 이를 ‘힌두이즘 판테온’이라 한다. 즉, 비쉬누, 시바, 브라흐마를 말한다. 이를 ‘삼위일체’라 한다.
힌두이즘은 비쉬누, 시바, 브라흐마 이렇게 세 개의 신이 대표적이다. 이를 ‘삼신사상’이라 한다. 그런데 불교에서도 삼신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법신, 보신, 화신을 말한다. 그런데 대승의 삼신사상이 힌두교의 삼신사상에서 나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대승불교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을 브라만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힌두이즘이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이 B.C 2세기이고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도 B.C 2세기이다. 공교롭게도 B.C 2 세기는 브라만의 통일왕조 슝가왕조가 성립된 시기이기도 하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오로지 한분의 부처님만 모신다. 대승불교에서와 같이 법신, 보신, 화신불을 모시지 않는다. 오로지 석가모니 부처님 한분으로 족한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을 포함하여 바이로차나, 아미타바 등을 모신다. 더구나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하여 청정법신 바이로차나의 화신이라 한다. 그래서 대승에서의 삼신사상에 대하여 힌두교의 삼신사상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힌두교에 편입된 불교
힌두교에서 화신사상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인도불교사에 따르면 화신신앙에 대하여 “유일신의 신앙을 설하면서 그 안으로는 각종 신앙을 흡수하기 위한 방법으로 힌두교 발전에 유력한 무기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힌두교에는 갖가지 유일신 비쉬누의 화신이 있다. 열가지가 대표적이다.
열가지란 화신이란 무엇인가? 열거하면 ①물고기(Matsya), ②거북이(Kurma), ③멧돼지(Varāha), ④인사자(人獅子:Narasiṁha) ⑤난쟁이(Vamana), ⑥영웅 빠라슈라마(Parashurama), ⑦라마(Ramā;Ramāchandra), ⑧ 목동의 신 끄리슈나(Kṛṣṇa), ⑨붓다(Buddha), ⑩ 예언자적인 구제자 깔낀(Kalkin) 이다. 이 중에 아홉 번째 항목을 보면 ‘붓다(Buddha)’라 하여 놀랍게도 석가모니부처님이 들어가 있다. 불교를 힌두교에 편입한 것이다.
힌두교는 불교와 대척점에 있었다. 그래서 불교를 탄압하고 억압하였다. 부처님을 비쉬누의 하나의 화신으로 편입시키는가 하면 불교에 힌두교의 교리와 사상을 주입하고자 하였다. 그런 모습이 대승불교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 중에 하나가 삼신사상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그것은 ‘신묘장구대다라니’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불자들이 법회의식할 때 마다 독송하는 경이 있다. 천수경이다. 그런데 천수경에 실려있는 신묘장구대라니가 힌두교사상이 스며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불자들이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시바신(神)과 성관자재(聖觀自在), 인도신화로 본 신묘장구대다라니(천수다라니)(201-09-0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의 正覺(문상련)님의 논문 ‘천수다라니의 인도신화학적 고찰’에 따르면 신묘장구대라니는 힌두교의 최고신 비쉬누와 시바신에 대한 찬탄임에 틀림 없다. 이에 대하여 논문의 저자는 “시바신앙이 불교에 전이 되어 천수다라니가 만들어 졌다고 보는데, 이는 닐라깐타가 하리-하라로 신격화 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시바신앙 뿐만 아니라 비쉬누적 신앙도 남아 있어서 바이슈나비즘(Vaiṣṇavism)으로 보는 것이다.”라 하였다. 이런 시바-비쉬누 사상은 대승불교의 법신, 화신, 보신의 삼신사상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불자들은 아무 뜻도 모르고 “나모라 다나다라…”한다. 그런 주문 중에 ‘니라간타’가 있다. 대체 어떤 뜻일까? 이에 대하여 논문저자는 ‘닐라깐타 (nīlakaṇṭha)는 푸른 (Nīla) 목(kaṇṭha)으로 번역 되어 청경(靑頸)이라 한다.’라 하였다.
왜 관자재보살은 푸른 목을 갖게 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검푸른 목을 갖게 된 시바만이 구원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 것은 시바만이 해로운 독을 먹을 수 있는 용기와 자비의 마음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시바가 독을 ‘기꺼이’ 마심으로서 푸른 목을 가지게 되었고 한다.
시바만이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자비의 위신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천수경 서문의 귀의문을 보면 “나모라 다나다라”라 하는데 이는 산스크리어 “Namo ratna-trayāya”이다. 뜻은 “삼보(三寶)께 귀의합니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삼보는 법신, 화신, 보신을 말한다. 그러나 내용상 시바를 포함하여 비쉬누, 브라만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푸른 목을 가진 닐라깐타를 기억하면서 닐라깐타의 명호인 성관자재에게 귀의 하고 피난처로 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신묘장구대다라니에서 성관자재(āryāvalokiteśvara)에 대하여 불자들은 ‘관세음보살’로 알고 있다. 그러나 원전을 분석하면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시바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 학자 로케쉬 챤드라가 말한 천수다라니는 시바신앙의 형태가 불교적으로 ‘전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천수다라니의 사상적 모태는 힌두교에 있다는 것이다.
뗏목의 비유에서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면서 보살사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새로운 경전편찬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등과 같은 대승경전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대승논사에 의하여 편집되고 만들어진 대승경전을 보면 ‘여시아문’으로 시작된다. 마치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한 것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름만 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대승경전을 설한적이 없다. 이는 빠알리니까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대승논사들은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한 것처럼 ‘여시아문’하였다. 부처님 제자들이라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대승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시켜 놓았다. 부처님이 말씀 하지 않은 것을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했는가 하면 본뜻을 정반대로 해석해 놓기도 하였다. 그런 사례는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 ‘뗏목의 비유’를 들 수 있다.
금강경에 뗏목의 비유가 있다. 초기경전을 접하지 않은 불자들은 뗏목의 비유가 금강경에만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뗏목의 비유는 맛지마니까에도 있다. 시기적으로 맛지마니까야가 먼저 성립되었기 때문에 ‘오리지널버전’은 맛지마니까에 있다.
뗏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금강경에서는 뗏목의 비유에 대하여 “가르침마저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가르침이 아닌 것임에랴(法相應捨 何況非法)”라 하였다. 여기서 가르침(法)이란 부처님 가르침을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마저 놓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점을 대승의 법사들은 매우 강조한다. 과연 이 말은 맞는 것일까?
맛지마니까에서 뗏목의 비유는 어떤 것일까? 금강경 ‘법상응사하황비법 (法相應捨 何況非法)’에 대응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그 뗏목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그 사람은 저 언덕에 도달했을 때 ‘이제 나는 이 뗏목을 육지로 예인해 놓거나, 물속에 침수시키고 갈 곳으로 가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같이 해야 그 사람은 그 뗏목을 제대로 처리한 것이다. 이와같이, 수행승들이여, 건너가기 위하여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뗏목의 비유를 설했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뗏목에의 비유를 아는 그대들은 가르침마저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가르침이 아닌 것임에랴.”
(Alagaddūpamasutta- 뱀에 대한 비유의 경, 맛지마니까야 M22, 전재성님역)
뗏목으로 무사히 강을 건넜다하여 이를 지고 갈 수 없다. 여기까지 대승경전이나 초기경전에서 공통되는 사항이다. 그러나 ‘뗏목의 처리’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금강경에서는 ‘여벌유자’ 다음에 곧바로 ‘법상응사 하황비법’이라 하여 뗏목에 대한 처리설명이 없다. 그래서 뒤도 돌아 보지 않는 것으로 무비스님은 설명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뗏목을 ‘불살라’ 버리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육지에 예인해 놓거나 물속에 잠겨 놓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다음 사람을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강을 건널 사람이 분명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뗏목의 비유를 제대로 아는 것일까?
무엇이 외도의 견해인가?
경에서 부처님은 “가르침마저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가르침이 아닌 것임에랴(dhammāpi vo pahātabbā, pageva adhammā)”라 하였다. 이것이 뗏목의 비유에서 핵심가르침이다. 이를 한자어로 ‘법상응사하황비법 (法相應捨 何況非法)’ 이라 한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주석에서는 “그러나 버려야 할 것은 뗏목의 비유처럼 포기되어야 할 선한 진리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라는 말이지, 선한 진리자체를 버리라는 말이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라 하였다.
뗏목의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가르침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강경에서와 같이 앞뒤 아무런 설명없이 ‘법상응사(法相應捨)’라고 한 것이 아니다. 니까야에서는 “뗏목에의 비유를 아는 그대들은 가르침마저 버려야 하거늘”이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법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는 뜻이다. 법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지 법 그 자체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만일 법마저 버리라고 한다면 ‘외도’의 견해나 다름 없다. 그리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귀의’에도 맞지 않는다.
부처님은 가르침자체를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가르침은 뗏목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뗏목을 불살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이제 나는 이 뗏목을 육지로 예인해 놓거나, 물속에 침수시키고 갈 곳으로 가면 어떨까?” (M22)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불살르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분명히 “이와 같이 해야 그 사람은 그 뗏목을 제대로 처리한 것이다.” (M22)라 하였다.
부처님 가르침에 대하여 뗏목에 비유하고 있다. 이 뗏목에 대하여 상윳따니까야 ‘독사뱀의 비유에 대한 경(S35.238)’에서는 “수행승들이여, 뗏목이라는 것은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그것은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올바른, 집중이다.” (S35.238) 라 하였다. 뗏목을 ‘팔정도’에 비유한 것이다. 그럼에도 ‘법상응사하황비법(法相應捨何況非法)’이라 하여, 건너고 난 다음 불살라 버린다면 부처님 가르침이라 볼 수 있을까? 만일 가르침마저 버리라고 한다면 이는 외도의 견해이고 외도의 사상이 스며든 것이라 볼 수 있다.
외도가 강연하는 불교
윤홍식님의 동영상 강좌를 보았다. 유튜브에 천 개 가량 널려져 있는 불교관련 동영상을 보면 ‘어긋나’ 있다. 특히 초기불교와 관련된 것을 보면 ‘초장부터’ 어긋난다. 이후 말하는 족족 줄줄이 어긋난다. 그래서 ‘입만 벙긋하면’ 어긋난다고 하였다.
이렇게 어긋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초기경전에 근거하여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이다. 이것이 ‘사견’이다. 개인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과녁을 벗어난 화살’과도 같다.
윤홍식님은 불자도 아니면서 불교관련 강좌를 한다. 심지어 어느 절에서는 법사로 초청하여 법회시간을 갖게 만든다. 불교와 관련해서 주로 육바라밀과 대승보살사상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또 참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불자도 아닌 자가 불교를 강의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마치 외도가 불교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 특히 부처님의 원음이라 불리우는 초기경전과 어긋난다. 그러다 보니 초기불교를 폄하하여 ‘소승’이라 한다. 더구나 석가모니 부처님을 ‘조롱’하기도 한다. 그래서 “경전 그대로라면 석가모니 지혜가 좀 부족한 분이에요. 오판하신거에요.”라 한다. 부처님과 부처님이 설한 니까야를 싸잡아 폄하하는 것이다.
윤홍식님은 부처님에 대하여 친구이름 부르듯이 말끝마다 “석가모니가”라 한다. 이는 기독교 관련 동영상에서 “예수님”이라고 깍듯이 존칭어를 붙여 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종종 “부처님이”라고 하기도 한다. 자세히 들어 보면 대승에서의 부처님이다. 대승경전에서 부처님을 ‘부처님’이라 한 것이다.
선종의 스님들이나 외도들은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그리고 초기경전에서의 부처님을 친구 이름 부르듯이 ‘석가모니’라 한다. 대승부처님은 ‘부처님’이고, 니까야에서 부처님은 ‘석가모니’라 하여 구분한다. 이는 선사의 법문을 잘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호칭에서도 차별을 두는 것이 선종의 법사들과 외도들이다.
글쓰기를 즐긴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이에 대하여 “글을 생산하고 있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하루 일과 중에 절반을 할애하여 거의 매일 열 페이지 가량의 글을 쓴다. 글을 쓸 때 가장 주의하는 것은 ‘근거’이다. 그래서 경전을 근거로 하여 글을 쓴다. 만일 내 이야기를 쓰라고 하면 A4한장 채우기도 벅차다. 또 매일 글을 쓸만한 소재도 없다. 그러나 경전을 근거로 하여 글을 쓰면 무궁무진하다. 평생 걸려도 다 쓰지 못한다. 그런 글쓰기를 즐기고 있다.
어떤 스님은 공부하는 것에 대하여 ‘수행’으로 안다고 하였다. 앉아서 참선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님을 말한다. 또 어떤 스님은 불사 등 ‘일’하는 것에 대하여 수행으로 알고 임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하루 너댓시간을 글쓰기로 보내는 것도 일종의 ‘수행’이라 본다. 비록 글쓰기를 즐기지만 게으르지 않고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것도 ‘정진’이고 수행으로 본다.
글을 쓸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쓰는 것이다.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였던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쓴다고는 하지만 인터넷에 공개 된 이상 ‘공적’이라 볼 수 있다. 더구나 교계신문에 ‘칼럼’까지 쓰는 입장에서 함부로 글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가급적 자료에 근거한 글을 쓴다. 그 주된 자료는 ‘경전’이다.
글을 쓰고 난 다음 곧바로 올리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소제목’을 붙인다. 그 과정에서 오자나 탈자, 맞춤법을 점검하기도 하고, 내용을 보완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지도 따져 보게 된다. 치우친 견해나 명예훼손에 해당되는지 살펴 본다. 이렇게 리뷰하는 과정도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글이 만족되면 인터넷에 올린다. 만족되지 않으면 올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올렸다고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읽어 본다. 오자, 탈자 등 잘못된 부분을 찾아 내고 앞뒤가 맞는 문장인지 살펴 본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글을 내 놓는다.
공개된 글에 대하여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잘못된 부분은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는다. 그래서 잘못을 지적해 주는 이가 가장 고맙다. 그런데 교정 작업은 글을 올렸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참 후에 잘못된 부분이 떠 올랐을 때 즉시 수정에 들어 간다. 이렇게 한번 올린 글을 다듬고 고친다. 그렇다면 유튜브 동영상은 어떠할까?
수정이 불가능한 유튜브 동영상
지금은 유튜브시대라 볼 수 있다. 누구나 클릭 몇 번만 하면 동영상을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불교음악동영상을 여러편 만들어 올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한번 올려진 동영상은 인터넷바다를 떠다니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올려진 음악동영상중에 ‘Ratana sutta(보배경 또는 보석경)’가 있다. 디카로 찍은 사진을 유사동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이미우이(Imee Ooi)’의 음악 ‘라따나경’을 배경음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2012년에 올렸는데 현재 이 동영상은 ’13,015’회 조회를 기록하고 있다. 어느 댓글을 보니 “I love this chant very much. It's always make me peace and calm down.”라고 표현하기도 도 하였다. 이외에도 연등축제 등 다수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유튜브를 보면 수 많은 불교관련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오류투성이다. 한번 뱉은 말은 삭제하기 전에는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류가 있는 채로 인터넷바다를 떠 다닌다. 윤홍식님이 대표적이다.
윤홍식님의 동영상은 천 개가 넘는다고 하였다. 매주 수 개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영상강좌를 보면 오류 투성이다. 더구나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폄하하기 일쑤이다. 그리고 교리에 대해서도 오류투성이다. 선종에서 말하는 것처럼 ‘개구즉착’이다. 입맛 벙긋하면 어긋나는 것이다.
2015-12-15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닷컴은 언터처블(Untouchable)? 자발적유료화에 동참하며 (0) | 2015.12.17 |
---|---|
“아, 그 노래가 바로 이 노래 이었구나!”금지곡 스텐카라친(Stenka Razin) (0) | 2015.12.16 |
황진이는 지족선사에게 관세음보살이었을까? (0) | 2015.12.14 |
부처님 가르침에 진검승부하려는 자들, 부처님 지혜의 검으로 베어 버려야 (0) | 2015.12.13 |
“승가는 부자여도 스님은 가난해야 한다” 대보살을 요청하는 한국불교 (0) | 2015.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