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오늘 밤까지만 살아도 여한이 없는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2. 31. 15:11

 

오늘 밤까지만 살아도 여한이 없는

 

 

삼일낮 삼일밤에 걸쳐서

 

삼일낮 삼일밤에 걸쳐서 작업을 하였다. 마침내 사일째 되던 날 작업을 완료하였다. 베리파이(Verify)하여 코넥티비티(Connectivity)체크와 클리어런스(Clearance)체크를 하여 노 에러 파운드(NO ERROR FOUND)’라는 메시지가 떴을 때 작업이 다 끝난 줄 알았다. 패턴의 연결상태가 이상 없어서 오픈(Open)’되지 않았고, 간격이 이상 없어서 쇼트(Short)’되지 않았음을 확인 한 것이다.

 

작업을 할 때 마다 늘 조마조마 하다. 매번 하는 일임에도 시작 할 때는 긴장이 된다. 이번 작업의 경우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Ball)간 간격이 0.8mm로서 22열의 BGA가 있었기 때문이다.

 

 

 

 

 

열의 깊이에 따라 층수가 결정되는데 8층으로 작업하였다. 마치 도시설계를 하듯이 건물과 도로가 나 있는 듯 하다. 더구나 8층 건물과 같아서 마치 배관작업하는 것처럼 설계를 하였다. 이렇게 완성하여 놓고 보니 컬러풀하다. 하나의 예술품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아트워크(Artwork)’라 하였을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삼일밤낮으로 작업한 모델은 중작이라 볼 수 있다. 대작이 걸리면 한달 먹고 살수 있지만 중작의 경우 삼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소작이다. 이렇게 작업을 밤낮으로 하는 와 중에서도 글을 썼다.

 

아무리 바빠도 글을 쓴다. 바쁘다고 글을 쓰지 않고, 피곤하다고 글을 쓰지 않고, 기분이 나쁘다고 글을 쓰지 않는다면 결국 글을 못쓰게 된다. 그런데 일이 바쁠 때 글을 쓰면 스릴이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번갈아 하였을 때 삶의 활력을 느낀다. 마치 대양을 항해 하는 배가 폭풍우를 만났을 때 분주 해지는 것과 같다. 일을 함으로 인하여 수익이 생겨서 좋고 글을 씀으로 인하여 자기만족을 해서 좋다. 모두 다 이익이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중작을 완성하고 나니 홀가분하였다. 매우 긴장해서 작업 하였으므로 피로를 풀어야 했다. 또한 몹시 허기진 상태이었으므로 단단히 먹어야 했다. 그래서 특별할 때 가는 곰탕집으로 향하였다. 중앙시장 못 미쳐 남부시장 맞은 편에 있는 나주곰탕집이다.

 

곰탕집에서 국물을 마셔야 했다. 그래야 체력이 보충된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노동을 한다는 것 자체는 체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잘 먹어야 한다. 더구나 수익을 올리는 일이 끝났을 때는 좀더 고급을 먹게 된다. 이는 택시기사들이 수입이 좋을 때 평소 보다 메뉴를 상향해서 먹는 것과 같다.

 

연말 끝자락을 맞이 하여 곰탕집에는 줄이 서 있다. 맛 좋기로 소문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나이 든 노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날 역시 반은 노인이고 거의 단골들로 보인다. 한쪽 테이블을 보니 팔십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모습을 보니 거나하게 취한 듯 하다.

 

거나하게 취한 노인들이

 

노인들은 곰탕 한그릇을 시켜 놓고 약주를 하고 있었다. 대낮 점심시간에 취기가 올라서일까 목소리가 크다. 바로 옆에 앉아 있으니 말하는 소리가 다 들린다. 주로 정치 이야기를 한다. 이것 저것 이야기 하면서 SK그룹 최태원과 노소영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방송 등에서 들은 이야기를 한마디씩 하는 식이다. 대부분 남의 이야기들이다. 누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이다.

 

노인들은 앞으로 살날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연말 끝자락에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잡담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일이면 새로운 해가 시작됨에도 한잔술로 마지막날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새해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세상돌아 가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인생을 즐기십시오

 

사람의 목숨은 짧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특히 나이 먹은 노인들은 내일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즐기는 삶을 살고자 한다. 대화방에서 돌고 있는 명언 중에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인생을 즐기십시오.”라는 문구를 보았다. TV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년퇴임을 앞둔 어떤 이는 이제부터는 즐기면서 살겠습니다.”라 하였다. 그래서일까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즐기는 분위기이다.

 

대낮부터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노인들도 지금 이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술이 깰 때쯤 되면 즐거움은 온데 간데 없고 괴로움만 남는다. 머리는 띵하고 속은 편치 않고 기분은 찌뿌둥할 것이다. 직장인이 이런 상태라면 그날 생산성은 형편 없을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컨디션이 회복되고 나면 또 술을 마신다. 기회만 되면 감각적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인생을 즐기십시오.”일 것이다.

 

개뼈다귀 같은 감각적 욕망

 

감각적 쾌락은 결국 고통을 가져 온다. 짧은 쾌락뒤에 긴고통이 오는 것이다. 그런 감각적 쾌락은 개뼈다귀같은 것이다. 왜 개뼈다귀인가? 먹음직 스러워 보이지만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살점 없는 뼈다귀와 같아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고 재난이 거기에 넘친다.”(A5.76) 라 하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죽어도 좋아라며 개뼈다귀와 같은 감각적 욕망에 목숨을 거는 듯 하다.

 

모두 다 즐기며 살자고 한다. 하지만 즐거움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단지 즐거운 느낌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느낌이라는 것은 조건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각적 쾌락이 고통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노인들이 건강도 생각지 않고 대낮에 잡담을 하며 거나하게 소주를 마셨을 때 그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다. ‘짧은 쾌락 긴 고통이다. 현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기에 감각적 욕망을 개뼈다귀 같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현자들은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인생을 즐기십시오.”라는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그대신 다른 사람들이 즐겁다고 말하는 것, 고귀한 님은 괴롭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이 괴롭다는 말하는 것, 고귀한 님은 즐겁다고 말하네.” (S35.236) 라며 세상사람들과 거꾸로 말한다.

 

올해 477개의 글을 작성하였는데

 

올해도 끝자락에 와 있다. 일과 글쓰기 두 가지를 병행하다 보니 한해가 다 갔다. 일한 것을 보니 백개가 넘는 작업을 하였다. 삼일에 하나 꼴로 작업을 한 것이다. 이렇게 작업을 하면 수익으로 연결된다. 그렇다고 부자가 될 정도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간신히 유지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일을 하여 부자 되는 것은 오래 전에 포기 하였다. 그대신 살아 가는 방편으로 본다. 먹고 살 정도만 되면 된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에 올인 하였다.  하루 일과 중에 일하는 시간 보다 글쓰는 시간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롭게 글을 쓰는지 모른다. 만일 돈을 벌 목적으로 글쓰기를 한다면 글쓰기는 노동이 될 것이다.

 

올 한해 거의 빠짐 없이 글을 썼다.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이런 글쓰는 행위에 대하여 어느 법우님은 죽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 같다라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놓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쓴 글이 올해 ‘477이다.

 

올 한해를 보내며 남는 것은 글 밖에 없다. 아트워크를 백개 이상 한 것은 모두 고객들의 것이다. 그러나 돈도 안 되는 글은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의 것이다. 이렇게 글쓰는데 하루 반 이상을 투자 하였다. 글에 투자된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도망 가지 않고 글에 남아 있다.

 

양심대로 살고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년에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바램이 있다. 그것은 양심대로사는 것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욕망과 분노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띠(sati)를 해야 할 것이다.

 

오욕에 끄달려 나중에 알아차리는 것이 아닌 즉각 알아차리는 것이다. 생각에 끄달려 나중에 알아차린다면 늦은 것이다. 생각에 놀아난 것이다. 생각에 놀아나기 전에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래서 때묻지 않고 살고자 한다. 이럴 때 생각나는 좋은 말이 있다. 그것은 나의 삶도 축복이고 나의 죽음도 축복이다.” (Ud45) 라는 말이다.

 

오늘 밤까지만 살아도 여한이 없는

 

일생을 잘 산자는 삶도 축복이고 죽음도 축복이다. 현생에서도 축복이고 내생도 축복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삶도 축복이고 나의 죽음도 축복이라는 말은 계행 등의 덕성을 갖춘 이 몸이 지속하는 한, 공덕의 밭에서 이익과 행복이 증가함으로 살아 있는 것도 나에게 축복이고, 다른 한편 이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오온)이 이 순간에 연료가 꺼진 불처럼 꺼진다면, 다시는 죽지 않는 완전한 열반도 나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UdA.269) 라고 설명 된다.

 

올해 끝자락이다. 내일이면 새로운 한해가 시작 된다. 늘 그렀듯이 오늘이 어제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것을 것이고, 문법적으로 맞지 않지만 내일이 어제 같은 날이 될 것이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 왔으나 이제는 옆도 보고 뒤도 돌아 보려 한다. 그래서 오늘 밤까지만 살아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

 

 

2015-12-3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