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열반은 죽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 10. 23:16

 

열반은 죽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 있다면 저 세상이 있다. 이 언덕이 있다면 저 언덕이 있다. 이 세상에 사는 자는 때가 되면 저 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열반이라 불리는 저 언덕에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Appakā te manussesu ~

ye janā pāragāmino,
Ath
āya itarā pajā ~

tīram-evānudhāvati.

 

인간 가운데

저 언덕에 가는 자는 드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언덕을 해매고 있다. (Dhp85)

 

 

Ye ca kho sammad-akkhāte ~

dhamme dhammānuvattino
Te jan
ā pāram-essanti, ~

Maccudheyya suduttara.

 

올바른 가르침이 설해질 때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건너기 어려운 죽음의 왕국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하리라. (Dhp86)

 

 

The Arahants who attained the Nibbana

 

 

첫 번째 게송에서 인간 가운데 저 언덕에 가는 자는 드물다고 하였다. ‘저 언덕(pāra)’이란 열반을 뜻한다. , 열반에 도달하는 자는 적다는 말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이 언덕 (tīram)에서 해매이듯이 살아 갈 뿐 이라 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존재의 다발(오온)에 집착하여 이 언덕을 달린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게송에서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사람들(dhammānuvattino)’이 있다. 잘 설해진 가르침을 듣고 그에 일치하는 계행을 지키고 길()과 경지()를 실현함으로써 여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죽음의 왕국(Maccudheyya)’은 윤회하는 세 가지 세계, 즉 감각적 쾌락의 욕망계(욕계), 미세한 물질계(색계), 비물질계(무색계)를 말한다. 여법하게 사는 사람들은 건너기 어려운 죽음의 왕국, 즉 악마의 영토를 건너 피안에 이른다는 말이다.

 

법구경 게송을 보면 첫 번째 게송 Dhp85번은 살아 있는 현생을 말하고, 두 번째 게송 Dhp86번은 죽음 이후를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살아 있을 때 저 언덕, 즉 열반에 이르러야 죽음 이후에 저 언덕, 즉 열반에 들 수 있다는 말이다. 현생에서 열반을 성취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열반에 이를 수 없음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사람의 목숨은 짧다. 저 피안은 도달되어야 하고 착함은 행해져야 하며 깨끗한 삶은 닦아져야 한다.” (S4.9) 라 하였다. 짧은 목숨이 붙어 있을 때 저 피안은 도달되어야함을 말한다. 열반은 죽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성취해야 함을 말한다.

 

팔정도라는 뗏목으로

 

부처님은 이미 저 언덕으로 건너 간 자이었다. 그리고 피안으로 인도한 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 언덕으로 건너 갔을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뗏목의 비유를 들었다. 뗏목으로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 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러면 그 사람은 이와 같이 여기 커다란 물이 있는데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고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지만 이 언덕으로부터 저 언덕으로 가는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다. 내가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해서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면 어떨까?’ 라고 생각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그 사람은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해서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갔다면, 그는 건너서 저 언덕으로 가서 거룩한 이로서 땅 위에 섰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의미를 설명하려고 비유를 들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은 이와 같다.

 

수행승들이여, 광채가 치열하고 맹독을 내뿜는 네 마리의 뱀은 네 가지의 광대한 존재, 즉 땅의 세계, 물의 세계, 불의 세계, 바람의 세계를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다섯 명의 살인자인 원수는 존재의 집착다발, 즉 물질의 집착다발, 느낌의 집착다발, 지각의 집착다발, 형성의 집착다발, 정신의 집착다발을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여섯 번째의 칼을 빼든 살인강도는 환락과 탐욕을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텅 빈 마을이라는 것은 여섯 가지의 내적인 감역을 말한다.

 

1) 수행승들이여, 현명하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자가 시각에 관하여 검토하면 오로지 텅 비고 황량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난다.

2) 수행승들이여, 현명하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자가 청각에 관하여 검토하면 오로지 텅 비고 황량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난다.

 

3) 수행승들이여, 현명하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자가 후각에 관하여 검토하면 오로지 텅 비고 황량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난다.

 

4) 수행승들이여, 현명하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자가 미각에 관하여 검토하면 오로지 텅 비고 황량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난다.

 

5) 수행승들이여, 현명하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자가 촉각에 관하여 검토하면 오로지 텅 비고 황량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난다.

 

6) 수행승들이여, 현명하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자가 정신에 관하여 검토하면 오로지 텅 비고 황량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난다.

 

수행승들이여, 마을을 약탈하는 도둑이라는 것은 여섯 가지의 외적인 감역을 말한다.

 

1) 수행승들이여, 시각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형상들 때문에 파괴된다.

 

2) 수행승들이여, 청각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들 때문에 파괴된다.

 

3) 수행승들이여, 후각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냄새들 때문에 파괴된다.

 

4) 수행승들이여, 미각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맛들 때문에 파괴된다.

 

5) 수행승들이여, 촉각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감촉들 때문에 파괴된다.

 

6) 수행승들이여, 정신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물들 때문에 파괴된다.

 

수행승들이여, 커다란 넓은 물이라는 것은 네 가지의 거센 물결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거센 흐름, 존재의 거센 흐름, 견해의 거센 흐름, 무명의 거센 흐름을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두렵고 위험한 이 언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개체를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안온하고 평온한 저 언덕이라고 바로 열반을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뗏목이라는 것은 이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그것은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마음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수행승들이여, 손과 발로 노를 젓는다는 것은 정진과 노력을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건너서 피안으로 가서 땅위에 서 있는 거룩한 님은 아라한을 말한다.

 

(Āsivisopamasutta-독사뱀의 비유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38, 전재성님역)

 

 

경에서 두렵고 위험한 이 언덕에 대하여 개체라 하였다. 이는 오온을 말한다. 그리고 안온하고 평온한 저 언덕에 대하여 열반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언덕에서 거센 흐름을 건너기 위하여 뗏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 뗏목은 다름 아닌 팔정도라는 뗏목이다. 붓다의 뗏목으로 저 언덕, 열반에 도달 할 수 있음을 말한다.

 

상윳따니까야에도 있었네

 

붓다의 뗏목으로 저 언덕에 도달할 수 있다. 팔정도라는 뗏목이다. 그래서 상윳따니까야 피안으로 가는 길의 경에 따르면 이러한 여덟 가지 원리를 닦고 익히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이끌어 진다.”(S45.34) 라 하였다. 그런데 이 경을 보면 법구경 85번과 86번 게송이 그대로 실려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법구경이 니까야를 근거로 하여 구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게송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세존]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들,

사람들 가운데 매우 적으니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 언덕에서 매우 분주하네.

 

진실로 바르게 설해진 가르침을

원리에 맞게 따른다면,

저 언덕에 도달하리.

뛰어 넘기 힘든 죽음의 왕국을 건너.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가서

환락을 여의고 홀로 명상하면서

현자는 어두운 것을 버리고

밝은 것을 닦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의어

거기에 기쁨을 구해야 하리.

현자는 아무 것도 갖지 않고

마음의 번뇌에서 자신을 청정하게 해야 하리.

 

올바로 깨달음 고리에 따라

마음을 바르게 잘 닦아,

집착을 버려 버리고,

집착 없이 기뻐하는

번뇌가 소멸한 님들은

세상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네.”

 

(피안으로 가는 길의 경, 상윳따니까야 S45.34, 전재성님역)

 

 

게송을 보면 첫 번째와 두 번째 게송이 법구경 85번과 86번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세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 가 있어야 죽어서도 저 언덕에 가 있을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번뇌가 소멸한 님들은 세상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네라 한 것이다.

 

 

2016-01-1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