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니까야에도 있었네!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 8. 12:16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니까야에도 있었네!

 

 

 

늘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의문이 풀렸다. 그것은 윤회의 법칙에 대한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으면 살아 생전 행위()에 따라 행위에 적합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겁화(劫火)가 일어나면

 

태어나는 존재가 사생이라 하여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일 수 있다. 또 거주하는 곳에 따라 삼계라 하여 아래로는 아비지옥에서부터 위로는 비상비비상처천에 이르기까지 31가지 세상이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사생과 삼계로 살아 가는 것이 중생이다.

 

그런데 세상은 주기적으로 파괴된다는 것이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겁화(劫火)’가 일어났을 때 (화륜)’에 의하여 색계초선천까지 파괴되고, ‘(수륜)’에 의하여 색계2선천까지 파괴되고, ‘바람(풍륜)’에 의하여 색계3선천까지 파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불환자들이 태어난다는 정거천, 즉 색계 4선천은 파괴되지 않는다. 그래서 색계4선천 이상 무색계천은 겁화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정수행을 하여 색계천상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색계천상까지 파괴 되었을 때 우주가 괴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는 경전적 근거를 갖는다. 이에 대하여 겁화(劫火) 일어나는가? 버섯구름형 인구피라미드를 보고(2014-08-2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일곱개의 태양의 출현 하였을 때

 

앙굿따라니까야 일곱개의 태양의 출현에 대한 경(A7.66)’에 따르면 수행승들이여, 그런데 오랜 기간이 경과되면 언젠가 한번은 일곱 번째의 태양이 나타나는 때가 닥친다. 수행승들이여, 일곱 번째의 태양이 나타나면, 이 대지는 산의 제왕 수미산과 더불어 불이 붙고, 불타오르고, 온통 불꽃에 휩싸인다.” (A7.66) 라 하였다.

 

하늘에 일곱 개의 태양이 출현하였을 때 모든 것이 불에 타 버린다는 것이다.  아래로 아비지옥에서부터 위로 범천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남아 나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를 검댕이 하나 남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버터나 참기름이 불이 타서 연소되면, 결코 재나 검댕이를 남기지 않듯” (A7.66) 라 하였다.

 

이렇게 아무런 흔적을 없이 철저하게 파괴되었을 때 아무것도 남아 나는 것이 없다. 지옥도 문을 닫고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욕계천상, 범천(색계초선천)의 중생들도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이때 의문이 있다. 중생들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다. 겁화에 의하여 검댕이 하나 남기지 않고 우주가 철저하게 괴멸 되었을 때 중생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회의론자들은 업과 윤회를 부정한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 따르면 모두 범천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지옥중생들도 범천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범천에 태어나려면 선정을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옥중생의 경우 미래에 겪어야 할 업으로 인해 천상에 태어난다.”(Vism.13.35) 고 하였다. 미래에 겪어야 할 없이 없이 윤회에 유전하는 중생은 없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악업이 모두 소멸하면 이전에 지었던 선업으로 인하여 악처의 중생들들도 욕계천상에 태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욕계천상에서 선을 증득하면 범천, 즉 색계에 태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겁화가 일어나 불에 의해 범천(색계초선)까지 파괴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 따르면 세상의 파괴를 알리는 자들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를 로까뷰하(Lokabyuha: 世莊嚴)’라 한다. 이들이 나타나 세상의 종말을 알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 지금부터 백 천이 지난 뒤에 겁의 [종말이] 시작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대해도 마를 것입니다…”라며 비참한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세상의 종말을 알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자애를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애를 닦으면 범천에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천도 안전한 세상은 못된다. 범천까지 겁화가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종도론에 따르면 이와 같이 [욕계의] 천상세계에서 선을 증득함으로써 모두 범천의 세계에 태어난다.”(Vism.13.35) 라고 하였다. 하지만 범천이 색계와 무색계 전체를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만일 범천에 대하여 색계초선천으로 한정된다면 불에 의한 겁화를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범천에 태어나기 위하여 욕계천상을 거쳐야 한다고 하였다. 지옥중생이 막바로 범천에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욕계천상을 거쳐서 태어남을 말한다. 인간의 경우 자애명상을 하여 범천에 태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불과, 물과, 바람에 의하여 색계3선천 까지 파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안전지대는 색계4선천이다. 그런데 청정도론에서는 단지 선을 증득함으로써 모두 범천지대에 태어난다고 하였는데 색계초선인지 무색계까지 인지 불분명하다. 만일 색계초선천이라면 우주가 겁화에 의하여 파괴되었을 때 중생들은 어디에 태어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탄생의 국토, 권위의 국토, 경계의 국토”(Vism.13.31) 로 설명한다. 경계의 국토의 경우 앙굿따라니까야 아비부의 경(A3.80)’를 들어 원하는 곳까지라 하였다. 여기서 원하는 곳까지는 부초님 목소리가 전달되는 곳에 대하여 여래는 헤아려질 수가 없다.”(A3.80) 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목소리를 내어 삼천대천세계에 원하는데까지 전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청정도론에서는 이런 경전적 근거를 들어 겁화가 일어나면 권위의 국토가 파괴되고 탄생의 국토가 파괴된다고 하였다.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파괴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정도론에서 이런 설명은 한 가지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삼천대천세계가 파괴 된다면 범천에 머문 중생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에 대한 것이다. 이에 나름대로 이야기를 전개 해 보았다.

 

 

회의론자들은

 

불교평론에서 박경준교수의 글을 보았다. 동국대불교학과 박경준교수는 기고문에서 유전자 과학이 첨단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윤회는 어떻게 합리화되는가? 선악의 개념은 자연이 아닌 사회적 개념인 바, 인과응보는 필연적 자연법칙이 아니라 확률적 사회법칙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윤회하는 중생의 개체수는 언제나 동일한가, 아니면 감소하거나 증가하는가? 축생의 선업과 악업의 기준은 무엇인가? 업보윤회설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더욱 진지하고 명쾌한 응답을 준비해 가야 할 것이다.” ( [열린논단] 업보윤회설, 오해와 진실 / 박경준, 불교평론 2012-2-16) 라 하였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불교를 재해석하려는 강병균교수와 같은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문은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들 뿐만 아니라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스님들도 종종 주장한다. 성법스님에 따르면 윤회가 있다고 믿는 것과 윤회는 없다는 것이 대립할 때, 어느 쪽이 당위성을 확보하는데 더 보편적이냐가 고려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같은 유일신에 대한 믿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가 불행하게도 불교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지적통찰과, 시대에 확정된 부정할 수 없는 현상과 사실을 모조리 동원해서 당위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중 가장 강력하고 객관적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과학 뿐입니다.” (성법스님, 힌두교적 윤회는 없다. http://www.sejon.or.kr/ ) 라 하였다.  성법스님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강조한다. 이렇게 물질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사실만을 강조하다 보면 단멸론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업과 윤회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자신의 감각적 인지와 과학적 잣대만으로 이 세상을 보았을 때 업이나 내생, 윤회 같은 말은 납득하기 어려운 황당한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스님 역시 윤회를 부정한다. 신도들의 질문에 대하여 “이 윤회 사상은 인도로부터 온 힌두교 사상입니다. 아시겠어요?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82) 불교의 환생 법륜스님_즉문즉설(2010))”라고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생이 있다 없다를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면 이것도 불교를 전혀 모르는 소리다.”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회의론자들이 흔히 말하는 “부처님은 현세적인 가르침만 펼치셨지 내세에 대하여 말씀 하지 않으셨다”라는 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법륜스님의 동영상 강좌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특히 즉문즉설의 경우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유행하는 팟캐스트방송 사이트에서도 실려 있다. ‘팟빵이라 불리우는 팟캐스트 사이트를 보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실려 있는데 팟캐스트 순위 10안에 늘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법륜스님의 강좌를 듣다 보면 용어에 있어서 혼란을 준다. 연기법을 연기설이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발견한 연기법은 뉴턴이 발견한 중력의 법칙과도 같은 것임에도 연기설이라 하는 것이다. 법륜스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연기법이 단지 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설이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윤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윤회설이라 한다. 업도 업설이 될 것이다. 과연 업과 윤회와 연기가 설이 될 수 있을까?

 

부처님이 발견한 연기법은 엄연한 연기법칙이다. 윤회 역시 윤회법칙이다. 업 또한 업의 법칙인 것이다. 이는 업과 윤회와 연기는 중력의 법칙처럼 이 세계를 형성하는 법칙인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감각적인지와 과학적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는 학자나 스님들은 단지 ()’로 보는 것 같다.

 

그들은 어디에 갔을까?

 

우주의 성주괴공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어느 때인가 어느 분이 댓글을 보내 왔다. 우주가 괴멸할 때 검댕이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파괴 되었을 때 지옥중지옥부터 색계중생에 이르기 까지 모두 남김없이 사라지는데 그들은 어디에 갔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행위가 남아 있는 한 그 행위로 인하여 다음 세상이 결정되는데 만일 지옥중생이 우주가 괴멸되어 사라졌다면 이는 열반과도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단멸론이 정당화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경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분이 있다면 꼭 물어 보고 싶었다.

 

닫멸론이 힘을 받는 것은 아직까지 죽어서 돌아 온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만을 사후이야기를 하면 증거를 대야 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학자들은 좀처럼 업과 윤회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행과 포교로 살아 가는 스님들이 업과 윤회를 부정하고 과학적 사실을 들어 불교를 이야기한다면 넌센스이다. 한마디로 경전을 읽어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초기경전에는 우리 불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모든 사항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팔만사천이라는 방대한 법문이 있는 것은 어느 경우에서라도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면 틀림 없다. 우주괴멸에 따른 업과 윤회도 마찬가지이다. 겁화가 일어나 중생들은 단멸된 것은 아니다. 이를 초기경전에서 발견하였다.

 

삼천대천세계, 니까야에도 있었네

 

금강경에 삼천대천세계라는 말이 있다. 금강경 한구절을 보면 약인만삼천대천세계칠보이용보시(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한다면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삼천대천세계는 어떤 뜻일까?

 

삼천대천세계에 대하여 사전을 보면 소천, 중천, 대천의 세 종류 천세계가 이루어진 세계.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 , 사대주(四大洲), 육욕천(六欲天), 범천(梵天)을 합하여 한 세계라 하고, 이것의 천 배를 소천(小千)세계, 또 이것의 천 배를 중천(中千)세계, 다시 이것의 천 배를 대천세계라 한다.”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우주를 말하는 것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한 우주가 한세계라면 그런 세계가 천개가 모인 것이 소천세계이고, 소천세계가 천개가 모인 것이 중천세계, 중천세계 천개가 모인 것이 대천세계라 한다. 그런 대천세계는 1000 3승이 되므로 1,000,000,000, 10억이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은 세상이 10억개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삼천대천세계이다. 그런데 금강경에 표현 되어 있는 삼천대천세계라는 말이 니까야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앙굿따라니까야를 보다가 금강경 삼천대천세계의 근거가 되는 경을 발견하였다. 경의 이름은 아비부의 경(A3.80)’이다. 경에 따르면 삼천대천세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Tena hānanda suāhi, sādhuka manasi karohi, bhāsissāmi'ti. Eva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Bhagavā etadavoca: yāvatā ānanda candimasuriyā pariharanti, disā bhanti virocanā, tāva sahassadhā loko. Tasmi sahassadhā loke sahassa candāna, sahassa suriyāna, sahassa sinerupabbatarājāna, sahassa jambudīpāna, sahassa aparagoyānāna, sahassa uttarakurūna, sahassa pubbavidehāna, cattāri mahāsamuddasahassāni, cattāri mahārājasahassāni, sahassa cātummahārājikāna, sahassa tāvatisāna, sahassa yāmāna, sahassa tusitāna, sahassa nimmāaratīna, sahassa paranimmitavasavattīna, sahassa brahmalokāna. Aya vuccatānanda sahassī cūlanikā lokadhātu.

 

Yāvatā ānanda sahassī cūlanikā lokadhātu, tāva sahassadhā loko. Aya vuccatānanda dvisahassī majjhimikā lokadhātu.

Yāvatā ānanda dvisahassī majjhimikā lokadhātu, tāva sahassadhā loko. Aya vuccatānanda tisahassī mahāsahassī lokadhātu.

Ākakhamāno ānanda tathāgato tisahassīmahāsahassī lokadhātu sarena viññāpeyya, yāvatā pana ākakheyyāti.

 

[세존]

아난다여, 해와 달이 운행하며 광명의 제방을 비추는 곳까지의 천배가 하나의 세계이다. 그 가운데는 천 개의 달, 천 개의 해, 천 개의 수미산왕, 천 개의 잠부디빠 대륙, 천 개의 아빠라고야나 대륙, 천 개의 웃따라꾸루 대륙, 천 개의 뿝바비데하 대륙, 사천 개의 대해, 사천 명의 대왕, 천의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 천의 서른 셋 신들의 하늘나라, 천의 축복을 받는 신들의 하늘나라, 천의 만족을 아는 신들의 하늘나라, 천의 자신이 만든 것을 기뻐하는 신들의 하늘나라, 천의 남이 만든 것을 지배하는 하늘나라, 천의 하느님 세계가 있다. 아난다여, 이것을 소천세계라 한다.

 

아난다여, 일천소천세계의 천배의 세계가 있다. 아난다여, 이것을 중천세계라고 한다. 아난다여, 이 중천세계의 천배의 세계가 있다. 아난다여, 이것을 삼천대천세계라고 한다. 아난다여, 여래는 원한다면, 목소리를 내어 삼천대천세계에 원하는 데까지 전할 수 있다.”

 

(아비부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3.80, 전재성님역)

 

 

 

 

이 경을 설하게 된 동기는 아난다가 과거불 시킨붓다의 시자 아비부에 대하여 물어 보았기 때문이다. 아비부는 천의 세계에 목소리를 전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얼마나 많은 세계에 목소리를 전달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삼천대천세계(tisahassīmahāsahassī lokadhātu)’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아난다여, 여래는 삼천대천세계를 빛으로 가득 채워 뭇삶들이 그 빛을 알게 되면, 그 때 아난다여, 여래는 목소리를 내어 그 소리를 듣게 한다.”(A3.80)라 하였다.

 

한사람의 부처가 출현하였을 때

 

이 세상에 한사람의 부처가 출현하였을 때 자비광명이 비추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신들의 위력을 능가하는 측량할 수 없는 광대한 빛으로 묘사 되어 있다. 그래서 빛이라고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각지대의 아비지옥 중생들도 부처가 출현하면 환한 빛을 본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곳에 태어난 존재들은 그 빛으로 ‘벗이여, 다른 존재들도 참으로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서로를 알아보았다.” (M123)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경에 따르면 부처가 출현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목소리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주의 개념은 확장된다.

 

우리가 사는 은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은하는 은하단에 속해 있고 또 은하단은 초은하단에 속해 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삼천대천세계는 마치 오늘날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 듯 보인다. 비론 물리적 우주에 대한 것은 아닐지라도 업에 의하여 형성된 우주이고, 또 그런 우주는 성주괴공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런 우주가 무려 산술계산적으로만 따졌을 때 10억 개라 한다.

 

업이 남아 있는 한 단멸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종종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설명하는 경이 있긴 하지만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우주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성주괴공하는 우주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연기법칙에 적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조건 발생하여 조건이 다하면 소멸하는 것이다. 이는 마음이 생주이멸하고, 사람이 생노병사하듯이, 우주역시 성주괴공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렇게 연기법칙은 오온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적용된다. 그럼에도 오로지 자신의 감각전인지 과학적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는 회의론자들은 업과 윤회의 법칙을 부정한다.

 

회의론자들은 사생이 삼계를 윤회하는 것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람이 동물이 되고 사람이 동물이 되는지 회의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렁이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라고 의문하는가 하면, 십이연기에서 오온의 태어남에 대하여 무색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한다. 더구나 겁화가 일어났을 때 모든 중생들이 사라졌을 때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한다. 이는 초기경전과 논서를 읽어 보지 않음에 따른 무지에 기인한다.

 

겁화가 일어났을 때 아래로는 아비지옥에서부터 범천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파괴된다. 그렇다고 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일 업이 남아 있음에도 다시 태어남이 없다면 단멸론이 될 것이다. 마치 청정한 삶을 살아 완전한 열반에 드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삼천대천세계로 확장하면 그런 의문은 해소 된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괴멸되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우주가 성겁기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생들이 단멸할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10억개나 되는 삼천대천세계로 확장 될 수 있다. 그래서 겁화가 일어나도 업이 남아 있는 한 다른 우주에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단멸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남섬부주가 있는데

 

아비부경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여 사해와 사대륙이 있다고 하였다. 또 욕계육욕천과 범천도 한세상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겁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정거천, 즉 색계사선천과 무색계천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삼천대천세계에서 색계사선천과 무색계천은 공통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세상이든지 범천까지는 주기적으로 성주괴공하지만 색계사선천과 무색계천만은 삼천대천세계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수명을 보면 알 수 있다.

 

색계4선천에서 정거천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색구경천은 수명이 16,000겁이다. 이는 우주가 16,000번 성주괴공 해도 무너지지 않는 안전지대나 다름 없다. 그러나 수명이 1겁 밖에 되지 않은 범천(색계초선천)의 경우 겁화를 피해 갈 수 없다.그런 한우주, 한세계가 수미산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고 보는 것이 불교적 우주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남섬부주라 한다. 이를 빠알리어로 잠부디빠(jambudīpā)’라 한다. 남쪽이 있다면 북쪽도 있고, 동쪽도 있고 서쪽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네 개의 대륙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동쪽 대륙을 뿝바비데하(pubbavidehā: 동승신주), 서쪽대륙을 아빠라고야나(aparagoyānā: 서우화주), 북쪽을 웃따라꾸루(uttarakurū: 북구로주)라 한다.

 

사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우리는 남섬부주에 산다. 그런데 초기경을 보면 북쪽대륙, 웃따라꾸루(북구로주)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경도 있다. 어떤 내용일까? 앙굿따라니까야 측면의 경(A9.2)’을 보면 삼심삼천과 함께 남섬부주와 북구로주에 대하여 비교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서로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욕계천상인 삼십삼천에 대해서는 하늘의 수명을 지닌 것, 하늘의 용모를 지닌 것, 하늘의 행복을 지닌 것이 두 대륙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구로주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이에 대하여 나의 것을 여읜 것, 소유를 여읜 것, 정해진 수명을 지닌 것이 삼십삼천과 남섬부주를 능가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북구로주가 남섬부주 보다 더 수승한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남섬부주가 삼십삼천과 북구로주를 능가하는 것은 무엇일까? 경에서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Tīhi bhikkhave, hānehi jambudīpikā manussā uttarakuruke ca manusse adhigahanti deve ca tāvatise. Katamehi tīhi:

Sūrā, satimanto, idha brahmacariyavāso. Imehi kho bhikkhave, tīhi hānehi jambudīpikā manussā uttarakuruke ca manusse adhigahanti deve ca tāvatiseti.

 

[세존]

수행승들이여, 용기가 있는 것, 새김이 있는 것, 청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잠부디빠의 인간들은 웃따꾸루의 인간들과 서른 셋 하늘나라의 신들을 능가한다.”

 

(hāna sutta -측면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9.2, 전재성님역)

 

 

이런 사실을 보면 잠부디빠, 즉 남섬부주에 태어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천상보다 수명은 짧고 행복은 적어도 깨달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용기(Sūrā)와 사띠(Sati)와 청정한 삶(Brahmacariya)을 들었다.

 

주석에 따르면 천상은 오로지 즐거움만 있기 때문에 새김(sati)이 강력하지 못하고, 지옥의 뭇삶들은 오로지 괴로움만 있기 때문에 새김이 강력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오로지 인간만이 괴로움과 줄거움이 섞여 있기 때문에 새김이 강력하게 발달한다.”(Mrp.III.188) 라고 하였다. 핵심은 사띠이다. 사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이 윤회계를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2016-01-0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