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법을 지키는 자 법이 보호한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6. 3. 9. 10:37

 

 

법을 지키는 자 법이 보호한다

 

 

 

오류가 발견 되었을 때

 

종종 책을 보면 오류가 발견된다. 니까야 번역서에서도 역시 발견 된다. 주로 각주나 주석에서 발견된다. 종종 본문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본문에서 발견된 오류의 경우 원문과 정반대로 번역된 것도 볼 수 있다.

 

각주에서의 오류는 대부분 사소한 것이다. 오자나 탈자 등이 많다. 이런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저자 또는 편저자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지나치기 쉽다. 그럴 경우 오류가 있는 채로 유통 될 것이다.

 

니까야에서 오류는 글로서 지적 하려 한다. 별도로 메모해 놓기도 한다. 그러나 메모해 놓은 것이 종종 깨지는 경우도 있다. 주로 컴퓨터를 포맷 하거나 새로운 버전의 프로그램을 깔았을 때 이다. 그러나 웹에 올려 놓은 것은 안전하다. 그래서 글로서 가급적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웹에 올려 놓는 것만큼 안전한 것은 없다.

 

법을 지키는 자 법이 보호한다

 

종종 책을 선물 받는다.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에 업지만 책장에 ‘11일간의 특별한 수업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 저자는 아신 빤딧짜스님으로 되어 있다. 아무 곳이나 열어 보았더니 눈에 확 띄는 문구를 발견하였다. 그 문구는 법을 지키는 자 법이 보호한다라는 소제목이다.

 

짧은 에세이류의 글의 소제목으로 붙어 있는 법을 지키는 자 법이 보호한다라는 말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 말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일까? 읽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법과 위빳사나, 부처님의 법이란 무엇인가? 법구경에 보면 담모 하웨 락카띠띠 담마짜리(Dhammo have rakikhati dhammacāri)라는 말이 나옵니다.

 

(11일간의 특별한 수업, 법을 지키는 자 법이 보호한다, 아신 빤딧짜스님)

 

 

아신 빤딧짜스님은 빠알리어 원어로 소개하고 있다. 법구경에 나온다고 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법구경의 몇 번 게송에 대한 것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법구경에서 법을 지키는 자 법이 보호한다라는 문구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테라가타 303번 게송에서

 

빠알리 원어를 이용하여 어느 경전에 실려 있는지 찾아 보기로 하였다. 인터넷 검색창에 빠알리원문 Dhammo have rakikhati dhammacāri’을 입력하자 테라가타에 실려 있는 것임을 알았다. 검색한 결과에 따르면 테라가타 303번 게송이다. 원문과 영문번역, 그리고 한글번역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Dhammo have rakikhati dhammacāri
Dhammo suci
ṇṇo sukhamāvahāti,
Es
ānisaso dhamme suciṇṇe
Na duggati
gacchati dhammacārī.

 

(Thag.303)

 

 

The Dhamma protects

those who live by the Dhamma.

The Dhamma well-practiced

       brings bliss.

This — the reward

when the Dhamma's well-practiced:

one who lives by the Dhamma

doesn't go to a bad destination.

 

(Thag.303, Thanissaro Bhikkhu)

 

 

담마는 담마를 따르는 사람을 보호한다.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을 할 때에

담마는 이익이 있고,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런 사람은 다시는 낮은 단계에 나지 않는다.

 

(Thag.303, 정낙선역)

 

 

 

Buddhist-monks

 

 

인터넷검색으로 찾아 낸 것이다. 요지는 법을 지킬 때 법이 보호해 준다는 내용이다. 반대개념도 성립할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법이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다.

 

테라가타 이후 게송을 보면

 

테라가타 303이후 이어지는 세 개의 게송을 찾아 보았다. 빠알리원문과 타닛사로빅쿠역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Na hi dhammo adhammo ca ubho samavipākino,
Adhammo niraya
neti dhammo pāpeti suggati.

 

Tasmā hi dhammesu kareyya 'nda
Iti modamāno sugatena tādinā,
Dhamme
hitā sugatavarassa sāvakā
Nīyanti dhīrā sara
avaraggagāmino.

 

Vipphoito gaṇḍamūlo
Ta
hājālo samūhato,
So khī
asasāro na catthi niñcana
Cando yathā dosinā pu
ṇṇamāsiyāti. 

 

(테라가타 Thag.304-306)

 

 

For Dhamma and non-

don't bear equal results.

Non-Dhamma leads you to hell;

Dhamma, to a good destination.

 

So you should engender desire

for acts of Dhamma,

rejoicing

in the one   Well-gone,

the one      who is Such.

Standing firm in the Dhamma,

of the foremost

One Well-gone,

his disciples are guided

— enlightened —

to the foremost

refuge supreme.

 

Burst        is the root of the boil;

the net of craving uprooted.

He, having ended his wandering-on,

has no stain —

like the moon

on a clear full-moon night.

 

(타닛사로빅쿠역 Thag.304-306)

 

 

게송에서 말하는 담마(Dhamma)는 무엇일까?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문에서 대문자를 사용하여 Dhamma’라 하였을 때 이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을 때 이득이 올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테라가타 303에서 306까지 네 개의 게송에 대한 핵심어는 법을 지키는 자 법이 보호한다.(Dhammo have rakikhati dhammacāri)”라는 말이다.

 

담마짜리(dhammacāri)에 대하여

 

빠알리어 담모 하웨 락카띠띠 담마짜링(Dhammo have rakikhati dhammacāri)에서 담마(Dhamma)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 담마짜리(dhammacāri)는 빠알리사전에 따르면 ‘one who walks in the righteousness’로서 정의롭게 사는 자를 뜻한다빠알리 “Dhammo have rakikhati dhammacāri라는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진실로 정의롭게 사는 자를 보호한다.”라는 뜻이 된다.

 

담마짜리는 정의롭게 사는 자를 말한다. 유사한 말로서 담마짜리야(dhammacāriya)가 있다. 사전적 의미는 ‘observance of righteousness’ 또는 ‘Religious life’를 뜻한다. 정의로운 삶 또는 종교적 삶을 뜻한다.

 

정의로운 삶의 경(Sn2.6)에서

 

숫따니빠따에 정의로운 삶의 경(Sn2.6)’이 있다. 경의 빠알리어 제목은 담마짜리야숫따(Dhammacāriyasutta)’이다. 법정스님은 이치에 맞는 행복이라고 이름 붙였다. 정의로운 삶, 종교적인 삶은 어떤 것일까? 첫 번째 게송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Dhammacieya brahmacieya etadāhu vasuttama,
Pabbajitopi ce hoti ag
ārasmā anagāriya.

 

정의로운 삶, 순결한 삶,

이것을 위없는 재보라고 한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였더라도 마찬가지이다.(stn274)

 

 

첫 번째 게송을 보면 정의로운 삶(dhammacieya)’순결한 삶(brahmacieya)’을 동격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순결한 삶이라 번역된 브라흐마짜리야청정한 삶또는 청정범행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많은 이익이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삶에 대하여 위 없는 재보와 같은 것이라 하였다. 마치 보배와 가진 것처럼 이익이 되는 삶을 말한다.

 

악처에 태어나지 않으려면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자만을 보호한다는 말이 있다. 법으로 보호 받기 위해서는 법을 지켜야 함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는 보호받게 되어 있다. 어떻게 보호되는가? 그것은 악처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법을 지키는 자 법이 보호한다라 하였을 것이다.

 

 

 

2016-03-1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