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열면 안되나? 사부대중100인 대중공사 시즌2에 참여하고
사부대중공사에 참석하였다. 정식명칭은 ‘사부대중100인 대중공사’이다. 이름이 말해 주듯이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사부대중이 모여서 논의 하는 모임을 말한다.
사부대중공사는 조계종에서 추진하는 모임이다. 2015년 1월에 처음 열렸다. 이후 9차 대중공사가 진행되었다. 올해 처음 열리는 대중공사는 ‘시즌2’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사부대중공사에 참여 하게 된 동기가 있다. 그것은 불교박람회장에서 허정스님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총무원장 선출과 관련된 대중공사가 열릴 것이란 말을 들었다. 이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자 허정스님은 적극적으로 참석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사무국에 연락하여 추천하였다. 이런 연유로 사부대중공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100인 대중공사 시즌2
100인 대중공사 이야기는 교계언론을 통하여 접하고 있었다. 한국불교 미래를 위하여 각종현안을 격의 없이 토론하는 마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까지 토론한 것을 보면 미래세대를 위한 불교, 사찰재정투명화, 종단불신문제, 종단개혁과 서의현 전총무원장 건, 수행풍토진작 등이다. 크고 굵직하고 거대한 담론이다. 이렇게 논의된 것들이 실천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번 토론회는 총무원장선출에 대한 것이다. 현행 간선제를 바꾸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994년 종단개혁이후 20년간 유지되어 현행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금권선거’와 ‘매관매직’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래서 직선제 등 다양한 방법에 대하여 논의 하기 위하여 대중공사를 연 것이라 했다.
공사가 열린는 곳은 불광사이다. 잠실역이 있는 석촌호수 옆에 있다. 그런데 공사는 평일에 열렸다. 3월 31일(목)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까지 8시간 열리게 되어 있다. 모두 다 일하는 평일에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밀린 일도 있고 처리해야 될 것도 많았다. 그럼에도 참석하기로 하였으니 잠실역을 향하여 전철에 올랐다.
70년대 신불교운동의 중심지
불광사는 처음 가 보았다. 말로만 듣던 불광사이다. 광덕스님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는 불광사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70년대 중반 대각사에서 불광법회를 시작한 것이 역사의 시작이다. 그때 당시 광덕스님을 중심으로 하여 ‘신불교운동’이 일어나 불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최근에는 우람한 가람을 새로 지어서 입주하였다.
불광사에 도착하였다. 큰 건물 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꼭대기에는 팔작지붕형태의 건축물이 있어서 이곳이 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가까이 다가가니 일주문 형태의 입구가 보인다. 현판에는 ‘전법도량 불광사’라 쓰여있다.
지하 4층에 있는 커다란 홀
대중공사가 열리는 장소는 지하에 있다. 지하 4층에 있는 커다란 홀이다. 지하 4층에 내려가니 접수처가 보인다. 접수처에 이름을 확인하고 서명하면 이름표를 나누어 준다. 이름표를 보니 ‘진흙속의연꽃 운영자’라 되어 있다.
홀안으로 들어 갔다. 천정이 매우 높다. 지하 3층과 지하 4층을 한꺼번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중앙에는 커다란 원형의 좌석이 마련 되어 있다. 두 개의 원형이 보이는데 아무나 자유롭게 앉을 수 있다고 한다. 대체로 안쪽 원에는 스님들이 앉고 바깥 원에는 재가자들이 앉는다.
여법하게 시작하고
10시가 되자 모두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작은 여법하게 진행된다. 스님들은 가사를 수한 모습이다. 가사를 수 했을 때 여법해 보인다. 더구나 삼귀의 등 법회의식을 행할 때 장엄해 보이기도 한다.
입재식은 개회, 삼귀의, 반야심경, 발원문 순으로 진행되었다. 반야심경은 우리말로 된 것을 낭송했다. 한문으로 된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종이를 보면서 낭송해야 한다.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의 여는 말,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모시는 말이 있었다. 이어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발원문이 있었다. 미리 배포된 자료를 함께 낭송하는 식이다. 내용 중에 “문제를 지적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기쁘게 대안까지 마련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있어서 밑줄 그었다. 발원문이 끝나자 ‘석가모니불’ 100번 염송이 있었다. 100인 위원이 함께 한다는 뜻으로 100번 석가모니불 정근하는 것이라 한다.
머리수를 세어보니
입재식이 끝나자 자리에 앉았다. 이날 사회는 일감스님이 보았다. 검색해 보니 현재 불교문화재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불교TV에서 ‘내비둬콘서트’ 진행자로서 활약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매우 능숙하다.
이날 행사에 얼마나 참석하였을까? 머리수를 세어 보았다. 안쪽 원에 50명이고 바깥쪽 원에는 60명 가량 된다. 모두 110명 가량 된다. 이 중에 재가자는 42명이다. 약 38% 정도이다. 실재로 등록된 인원은 모두 125명이고 이중 재가자는 49명아라 한다.
어떤 사람들일까?
대중공사 명칭에 100이라는 숫자가 들어간다. 그래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라 한다. 그런데 명단을 보면 훨씬 더 많다. 자료를 보니 모두 198명이다. 어떤 사람들일까? 분류해 보았다.
198명 중에는 당연직이라 하여 32명이 있다. 종무기관과 종무원이 해당된다. 즉 총무원장, 교육원장 등 종무기관장과 교구본사주지 중앙종회위원장 등이 당연히 들어가 있다. 그래서 당연직이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두 참석한 것은 아니다.
출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골고루 분포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추진위원장 6, 교구본사주지 16, 중앙종회 7, 중진 7, 승가대학 3, 율원 3, 비구니 17 명이다. 이외 지역-교구라 하여 61명이 있는데 출가와 재가로 구성되어 있다.
198명 중에 순수한 재가자 그룹인원은 60명이다. 재가-시민사회 12, 재가-전문가 17, 재가-현장활동가 8명이다. 명단을 보니 재가-전문가 그룹에 속해 있다.
등재된 198명의 위원 중에 참석자는 125명이다. 이렇게 본다면 참석률은 6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참석률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평일에 행사를 개최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 본다.
왜 평일에 할까?
평일에 시간 내기 힘들다. 특히 재가자들이 그렇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월차휴가를 내지 않는 한 참석하기 힘들 것이다.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 역시 자리 비우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고객관리를 잘못 하면 직접적 또는 간적접 타격을 받는다. 그럼에도 평일에 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공사가 반드시 평일에 열려야 한다는 법은 없을 것이다. 주말에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부분 주5일제라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쉰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토요일과 일요일 부담 없이 쉰다. 그러나 평일에 시간 내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큰 마음을 내야 참석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공사 날자를 평일로 정한 것은 승가위주의 발상이라 보여진다. 스님들 위주로 토론회를 진행하다 보니 평일로 잡았을 것이다. 더구나 총무원장 스님의 모두 발언도 있었는데 이렇게 고위층 스님을 배려 하다 보니 평일로 잡혀진 것 같다.
198명의 위원이 부담 없이 참석하려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업에 바쁜 재가자들을 위해서 주말에 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심페이를 강조하지만
참석한 위원 중에는 먼 곳에서 오신분들도 많았다. 주로 지역 교구본사에서 참석한 스님들이나 재가자들이다. 충청권의 경우 새벽같이 올라오는 것이 가능하지만 더 아래쪽 지방의 경우 하루 전에 올라 왔을 것이다.
어느 재가불자는 전남 광주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이렇게 평일날 일부로 시간 내서 올라온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여비가 따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점심공양하는 것 외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허정스님은 이런 글을 남긴 바 있다.
"종단에서는 백인대중공사 위원들이 자긍심을 갖도록 마땅히 교통비를 지급해야합니다. 스님들이 하루종일 시간을 내기도 어렵지만 재가자는 더욱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이들에게 ‘信心페이’를 강요하는 것으로 대중공사가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해마다 대중공사 예산이 적절하게 책정되어야 합니다."
(허정스님, 백인 대중공사 방향 제안, 2015-11-26)
평일날 열리는 대중공사에 재가자들이 참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지방에서 일부로 참석하는 위원의 경우 모두 자비부담이다. 이런 분들에게 여비라도 지원하여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점심공양 한끼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직장에 다니면 월급이 나온다. 이를 근무일수로 나누면 일당이 된다. 장사하는 사람은 하루벌이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사업하는 사람 역시 하루에 얼마를 벌어야 유지되는지 알 수 있다. 업계 마다 일당이 있다. 일당개념으로 따진다면 시간은 곧 돈인 것이다.
대중공사에 참석하면 하루일당을 손해 보게 된다. 그럼에도 재가자에게 오로지 신심만 강조한다면 ‘신심페이(信心Pay)’가 되고 말 것이다. 마치 청년들에게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적은 월급에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대중공사에 참석하는 위원에게 일당을 지급하라는 말은 과도하다. 그러나 여비정도는 지급 가능할 것이다. 멀리 지방에서 하루 전에 온 위원이라면 더욱 더 배려 해야 한다.
생업에 바쁜 재가불자를 위한다면 평일을 피해야 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평일을 고수한다면 승가위주의 운영방식으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염화미소법, 직선제, 종단쇄신위원회안
오전에는 조기룡교수의 발제문 발표가 있었다. 총무원장선거제도에 대한 브리핑과 논의 될 세 가지 방식에 대한 장점과 단점에 대한 설명이다. 세 가지 방식은 염화미소법, 직선제, 종단쇄신위원회안이다. 이 중에서도 종단 고위층 스님들은 거의 대부분 염화미소법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비구니 스님들이나 재가자들은 직선제를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는 계속 유지 될 것 같다.
점심공양
점심공양은 비빔밥으로 했다. 커다란 식당에서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함께 식사하였다. 그렇다고 자리를 함께 한 것이 아니다. 스님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스님들은 스님들끼리, 재가자들은 재가자들끼리 식사하는 모습을 보니 두 그룹으로 정확하게 갈렸다. 승가와 재가의 구분이 삭발과 유발로 구분되듯이, 식사할 때도 확연하게 구분 되는 것이다.
옥상의 대웅전
식사가 끝나고 대웅전이 있는 꼭대기로 올라갔다. 올라가니 전면7칸의 매우 커다란 전각이 보였다. 옥상에 전통양식의 전각을 그대로 구현 해 놓은 것이다. 지하 5층 주차장에서부터 지상 5층에 이르기 까지 10 개층으로 이루어진 건물 최상층의 공간에 팔작지붕의 전각을 보니 마치 산사에 와 있는 듯 하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전면이 7칸이어서 그런지 공간이 매우 넓다. 평일 임에도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 절하는 사람 등이 있다.
마무리단계의 초고층빌딩
대웅전 밖에 서면 석촌호수가 보인다. 이제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어서일까 노랑개나리와 매화가 피어있다. 무엇 보다 전방에 롯데잠실점과 롯데월드가 눈에 띤다. 가장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초고층빌딩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빌딩은 건축중이다.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추첨민주주의인가 제비뽑기인가
오후에는 세 가지 안에 대하여 패널들의 토론이 있었다. 염화미소법은 스님이 패널로 참가했다. 그러나 직선제와 쇄신안은 재가자가 맡았다.
종단의 고위직 스님들은 염화미소법에 관심이 많았다. 염화미소법을 처음 발의한 법등스님의 긴 설명도 있었다. 이에 총무원장 자승스님도 적극옹호했다. 이렇게 되자 다소 맥빠진 분위기가 되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염화미소법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염화미소법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장점도 있지만 이해 할 수 없는 단점도 있다. 그것은 추첨식이기 때문이다. 마치 통속에 있는 행운권을 뽑는 식이다. 세 후보에 대하여 종정스님이 추첨으로 뿝는다. 이런 방식에 대하여 ‘추첨민주주의’라 설명한다. 그러나 어느 교수는 이런 방식에 대하여 ‘제비뽑기’와 같다고 비판했다.
돌아 가며 한마디씩 하였는데
세 가지 선출방식에 대한 패널들의 설명이 끝난 후 참석자 마다 돌아 가며 한마디씩 하는 시간이 있었다. 3분이내로 세 가지 방식 중에 어떤 것이 좋은 지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것이다. 차례가 돌아 오자 직선제가 좋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직선제를 하되 재가자들도 선거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발언자들의 이야기를 노트하였다. 총무원장 자승스님까지 포함하여 모두 50명이 발언하였다. 고위층 스님들은 염화미소법을 선호하고, 비구니스님들과 재가자들은 직선제를 선호 하였다. 두 그룹으로 뚜렷하게 갈린 것이다.
지리멸렬
토론회는 오후 6시 가까이 되서 끝났다. 그러나 처음 시작 할 때와 분위기는 달랐다. 두 개의 원에 마련된 자리가 꽉 차 있었으나 끝날 때쯤 되자 반이 채 되지 않았다. 재가자들의 머리수를 세어 보니 17명에 지나지 않았다. 42명에서 17명으로 줄어 든 것이다. 자리를 뜬 스님들도 있었으나 자리를 지키는 스님들이 더 많았다.
처음과 비교해 보면 ‘지리멸렬’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특히 도중에 자리를 뜬 썰렁한 재가자들의 자리를 보면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재가자들은 사부대중이라 하여 사부대중 평등권을 주장하지만 이렇게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 주었을 때 승가로부터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어려운 발걸음하여 참석하였다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지방에서 올라 왔다는 우바새와 우바이는 시종 꼿꼿하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2016-04-0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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