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유신헌법 같은 염화미소법

담마다사 이병욱 2016. 4. 6. 10:40

 

 

유신헌법 같은 염화미소법

 

 

이심전심으로

 

법회중에 부처님이 갑자기 꽃을 들었다. 이때 유독 가섭만이 미소를 지었다. 이에 부처님은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이를 대가섭에게 부촉하노라.”라 했다. 인터넷백과사전에 실려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옮긴 것이다.

 

선종에 조사선의 근거가 되었다는 세 개의 설이 있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이련하반곽시쌍부(泥連河畔槨示雙趺) 이렇게 세 가지를 말한다. 특히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는 염화미소로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것이 언설 없이도 스승과 제자사이에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 법이 전승되었다는 사사상승의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선종에서는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을 이야기한다. 진리는 언어나 문자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사이에 마음과 마음으로 또는 뜻과 뜻으로 전승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요약하면 첫째, 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둘째,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고, 셋째,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않고, 넷째,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않음을 말한다.

 

부처님이 대중들 앞에서 꽃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 이유가 없다고 한다. 다만 거기에 꽃이 있어서 들었을 뿐이라 한다. 거기에 막대기가 있었다면 아마 막대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법은 이미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선을 말하는 이에 따르면 지금 여기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법이라 한다. 따로 법을 찾을 필요 없이 지금 여기서 이렇게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진리를 알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처럼 법이 명백히 드러나 있음에도 말로서 설명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 한다.

 

79조 진제스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이 꽃을 들었는데 오로지 한사람 가섭만이 그 의미를 알았다고 한다. 이런연유로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은 가섭에게 이심전심으로 전승되었다고 한다. 그런 법은 가섭에서 아난에게 또 전승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후대로 전승된 법은  달마에 이르렀는데 달마는 중국에 법을 전승해 주었다고 한다. 또 그런 법은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선종에 따르면 부처님이 초조이다. 가섭은 2조이고, 아난은 3조이다. 인도의 마지막 조사 달마는 29조라 한다. 인도에서 법의 전승은 29조 달마로 끝이 난 것이다. 중국에 전승된 법은 초조가 혜가이다. 6조는 한국선종의 뿌리라 볼 수 있는 혜능이다. 그런데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된 법은 해동으로도 전승 된다.

 

한국에서는 태고보우선사가 57조라 한다. 이후 서산대사가 63조이고, 근세에 이르러 75조를 경허선사라 하고 76조를 혜월명월, 77조를 운봉성수, 78조를 향곡혜림이라 한다. 진제선사는 향곡선사로부터 법을 전수 받았기 때문에 79조가 되는 것이다. 부처님으부터 전승된 법이 현재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에게까지 이른 것이다.

 

곽시쌍부이야기

 

선종의 성립근거가 되었다는 삼처전심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 오로지 대승경전에서만 볼 수 있는 삼처전심은 부처님의 원음이라 볼 수 있는 니까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삼처전심 중에 ‘곽시쌍부’가 있다. 이는 ‘대열반경’ 다비품(茶毘品)에 근거한 것으로, 부처님이 열반에 들어 입관된 뒤 멀리서 온 가섭존자가 이를 슬퍼하며 울자 석가가 두발을 관 밖으로 내놓으며 광명을 놓았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이런 사실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하지만 곽시쌍부이야기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한역 대반열반경에 따르면 “(부처님이)두 발을 내미셨다.”라 되어 있다. 이에대한 원문을 보면 대가섭은 향더미로 향해 걸어갔다. 바로 그때 부처님께서 겹곽 속에서 두 발을 내미셨는데, 발에 이상한 빛이 있었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니까야를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다. 디가니까야에서는 “(마하깟사빠가)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라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한 원문을 보면 그 후 존자 마하깟싸빠가 꾸씨나라 시의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족의 탑묘에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가 있는 곳으로 찾아 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한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합장하여 세 번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 쪽으로 돌아, 하단부를 열고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라고 되어 있다.

 

두 경전을 비교해 보면 정반대의 내용임을 알 수 있다. 한역아함경에서는 부처님이 두 발을 내민 것으로 되어 있고, 빠알리 니까야에서는 깟사빠존자가 두 발에 예배를 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원음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는 시대에 선종에서는 아직도 설화 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가르침의 상속자

 

삼처전심중의 염화미소를 보면 부처님법이 마치 가섭에게 비밀리에 전승한 것처럼 보인다. 부처님이 꽃을 든 의미를 아무도 이해 하지 못하였지만 미소를 지은 가섭만이 안 것으로 되어 있다. 과연 그럴까? 빠알리니까야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빠알리니까야에서 부처님이 가섭에게 법을 부촉하는 듯한 내용이 있다. 상윳따니까 깟싸빠의 모음(S16)’에 따르면 부처님이 깟싸빠여, 그대는 내가 입고 있는 삼베로 된 분소의를 받아라.”(S16.11) 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부처님은 두타행을 하는 깟싸빠에게 분소의를 주었다. 이에 대하여 깟싸빠는 아난다에게 벗이여, 만약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 대해 ‘세존의 아들로 그 분의 입에서 태어났고 가르침에서 태어났으며 가르침에 의해 형성되었고 가르침의 상속자이며 삼베로 된 분소의를 입었다’ 고 말한다면, 그는 나에 대해 ‘세존의 아들로 그분의 입에서 태어났고 가르침에서 태어났으며 가르침에 의해 형성되었고 가르침의 상속자이며 삼베로 된 분소의를 입었다’ 고 말해야 할 것이다.” (S16.11) 라 했다.

 

상윳따니까야 가사의 경(S16.11)’에 따르면 깟싸빠는 가르침의 상속자이었다. 더구나 부처님으로부터 가사를 전수받았다. 부처님이 깟싸빠에게 자신의 옷을 넘겨 준다는 것은 부처님의 열반이후에 승단을 이어갈 여법한 계승자이었음을 말한다. 하지만 선종에서처럼 꽃을 들어 미소 짓는다는 이심전심을 말한 것은 아니다. 주석에 따르면 가르침의 상속자란 아홉가지의 출세간적인 상태인 구차제정의 유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이라 해석하고 있다.

 

스승의 주먹

 

부처님은 법을 남김없이 전달 하였다. 비밀스런 가르침을 따로 알려 준 바 없다. 이는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D16)에서 “나는 안팍의 차별을 두지 않고 가르침을 다 설했다.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은 없다.(D16) 라 하셨다. 부처님은 가르침을 남김 없이 다 설했다고 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밀리에 전승된 법이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여기 스승이 있다. 그런데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다. 마치 꽉움켜쥔 스승의 주먹(師拳: ācariyamuṭṭhi)’에 무언가 비밀스런 가르침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빈주먹일 뿐이다. 부처님은 가르침을 다 설했다고 했다.  경이나 게송 등 구분교의 형태로 남김 없이 법을 설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이심전심이라 하여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유신헌법 같은 염화미소법

 

현재 조계종 수뇌부에서는 염화미소법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총무원장을 뽑는 제도를 말한다. 마치 선종에서 말하는 이심전심의 염화미소를 떠 올리게 하지만 놀랍게도 추첨제이다. 마치 뺑뺑이돌리는 것 같다. 세 명의 총무원장 후보자에 대하여 종정스님이 추첨하는 방식을 말한다.

 

염화미소법은 마치 제비뽑기하듯 선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금권선거와 매관매직을 근본적으로 막아 보자는 것이라 한다. 누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 한다. 또 한편으로 종정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100인 대중공사 자료에 따르면 종단의 대표자인 총무원장을 신성성과 법통을 계승한 종종예하가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정통성과 도덕성을 부여라 했다. 여기서 종정에 대하여 신성성과 법통을 계승한 종종예하라 했다. 현재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을 말한다. 진제스님은 부처님으로부터 부촉된 79조이다. 79조 진제스님이 추첨으로 뽑았을 때 정통성과 도덕성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총무원장선거는 직선제로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말을 바꾸어 직선제의 폐해를 열거하며 염화미소법을 추진하고 있다. 큰 저항이 없는 한 종단권력을 가진 스님들의 뜻대로 되기 쉽다. 그렇다면 왜 총무원장 자리에 집착할까? 그것은 이익과 명예와 칭송 때문일 것이다. 그런 총무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100인 대중공사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종단대표권

종단행정 통리권

종단인사권

-총무원 임직원

-각사찰 주지 임면

종단재무권

-종단과 사찰 재산의 감독권과 처분의 승인권

-특별분담사찰과 직영사찰등 중요사찰의 예산승인권 및 예산조정권

 

 

 

 

 

총무원장은 한국불교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인사, 재무 등 종단 전 분야에 걸쳐서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다. 국가로 따지면 대통령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을 등진 출가자들이 세속의 제도를 그대로 모방한 총무원장이 되려 할까? 그것은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이익 뿐만 아니라 명예와 칭송도 따른다. 그래서 한번 종단권력을 잡은 권력승들은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직선제가 대세이고 직선제가 공약이었음에도 이제까지 그랬듯이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가볍게 뒤집어 버린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염화미소법이라 볼 수 있다.

 

똥벌레들은

 

염화미소법을 추진하고 있는 종단권력승들을 보면 세속의 정치인들이나 다름 없다. 한번 잡은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대중들의 여망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마치 유신헌법처럼 영구집권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염화미소법이다. 이는 이득과 명예와 칭송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출가자로서 이득과 명예와 칭송에 사로잡힌 자에 대하여 똥벌레의 비유로 설한 바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득과 명예와 칭송은 두렵고 자극적이고 거친 것으로 멍에를 여읜 위없는 안온을 얻는데 장애가 된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똥벌레가 똥을 먹고 똥으로 배를 채우고 똥으로 충만하고도 그 앞에 큰 똥덩이가 남아 있다면, 그 똥벌레는 ‘나는 똥을 먹고 똥으로 배를 채우고 똥으로 충만하고도 내 앞에 큰 똥덩이가 남아 있다.’고 다른 똥벌레들을 무시한다.(S17.5)

 

 

 

2016-04-0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