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가야 할 여정을 끝낸 자

담마다사 이병욱 2016. 4. 7. 16:50

 

가야 할 여정을 끝낸 자

 

 

인생은 나그네길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말이 있다. 오래 전 유행가 제목이기도 하다. 길을 걷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두 갈래 길을 만났을 때 이쪽으로 가야 할지 저쪽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남들이 다니는 길로 가 보기도 하고 때로 길 없는 길로 가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다. 해는 저물어 산그늘이 졌을 때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지 모른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길을 떠나야 한다. 그 길이 때로 가시와 자갈의 고난길이 될 수 있고 때로 향기로운 꽃이 만발한 탄탄대로가 될 수 있다. 대게 정처 없는 길이 되기 쉽다. 그러나 목적지가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법구경 거룩한 님의 품(Arahantavaggo)에 이런 게송이 있다.

 

 

Gataddhino visokassa

vippamuttassa sabbadhi,
Sabbaganthappah
īassa

pariāho na vijjati.

 

가야 할 여정을 끝내고

슬픔 없이 일체의 관점에서 해탈하고

일체의 속박을 버린 님에게

고뇌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구경 Dhp90, 전재성님역)

 

 

すでに(人生の)旅路え、

いをはなれ、あらゆることがらにくつろいで、

あらゆる束縛をのがれたには、

みは存在しない。

(법구경 Dhp90, 中村元)

 

 

이미 이 세상의 여행을 마치고

근심과 걱정을 떠나 모든 속박을 끊고

자유를 얻은 사람 그에게는

털끝만한 고뇌도 없다.

(법구경 Dhp90, 법정스님역)

 

 

去離憂患 거리우환

脫於一切 탈어일체

縛結已解 박결이해

冷而無暖 냉이무난

(법구경 Dhp90, 한역)

 

 

아라하뜨에게 생사의 윤회는 끝났다.

슬픔과 오온의 현상으로부터 해탈하고

모든 얽매임을 다 파괴해 버린 그에게

이제 더 이상의 마음의 괴로움은 없는 것이다.

(법구경 Dhp90, 거해스님역)

 

 

In one who

has gone the full distance,

is free from sorrow,

is fully released

       in all respects,

has abandoned all bonds:

       no fever is found.

(법구경 Dhp90, Thanissaro Bhikkhu)

 

 

 

 

 

여행을 계속 하는 자가 있는 가 하면 여행을 끝낸 자가 있다. 인생길을 오늘도 내일도 가고 이생에서도 내생에서도 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인생길을 가지 않아도 되는 자가 있다.

 

여행을 끝낸 자는 누구일까? 아라한이다. 이라한이 되면 더 이상 긴 여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야 할 여정을 끝내고(Gataddhino visokassa”라 했다.

 

가야 할 여정을 끝낸 자

 

빠알리어 ‘gataddhino’가 있다. 이는 ‘one who has completed his journey’의 뜻으로 여정을 끝낸 자라는 의미이다. 여행의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험난한 지형의 길과 윤회의 길이 있다. 험난한 지형의 길을 출발한 자는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않는 한 여행자이다. 그가 목표에 도달하면, 여정을 끝낸 자이다. 윤회의 소용돌이에 말려든 자도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사는 한, 여행자이다. 왜냐하면 그 소용돌이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름에 든 자도 여행자이다. 그러나 번뇌를 부순 거룩한 님은 그에게 윤회의 소용돌이가 종식되었기 때문에 여정을 끝낸 자이다. (DhpA.II.166, 전재성님역)

 

 

아라한 만이 여행을 끝낼 수 있다. 거룩한 님, 아라한이 되기 이전에는 모두 인생길을 가는 여행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행자 중에는 정처 없는 길을 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정처 있는 길을 가는 자도 있다.

 

대부분 정처 없는 길을 간다. 목적지가 없는 것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지 모른 채 하루 하루 연명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 지 알고 있다. 목적지가 있는 것이다.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지금 힘들고 고단해도 인내할 수 있다. 이미 흐름에 들어선 자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일곱 생 이내면 여행을 끝낼 수 있다.

 

여행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번째 문구를 보면 일체의 관점에서 해탈하고(vippamuttassa sabbadhi)”라 했다. 여기서 ‘vippamutta’벗어나다또는 자유로 되다의 뜻이다. 다름 아닌 해탈을 말한다.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일까? 주석에 따르면 오온, 십이처, 십팔계를 말한다.

 

오온, 십이처, 십팔계는 일체이다. 이와 같은 일체(sabbadhi)’에서 벗어났을 때 더 이상 가야 할 길이 없다. 그리고 슬픔도 없다. 윤회의 원인이 되는 슬픔이 사라진 것이다.

 

네 가지 속박(gaṇṭha)이 있는데

 

여정을 끝낸 자는 대자유를 얻은 자이다. 그래서 세 번째 문구를 보면 일체의 속박을 버린 님(Sabbaganthappahīassa)”이라 했다. 여기서 빠알리어 gaṇṭha묶는다(ties)’라는 뜻이다. 그래서  ‘bond; fetter’로 영역된다. 한역으로 속박이라 했다.

 

주석에 따르면 네 가지 속박이 있다. 탐욕의 축적에 의한 계박, 악의의 축적에 의한 계박, 규범과 금기의 취착에 의한 신체적 계박, 독단적 견해의 고집에 의한 신체적 계박 이렇게 네 가지를 말한다.

 

속박을 뜻하는 빠알리어 간따(gaṇṭha)는 매듭이라고도 번역된다. 초불연 아비담바길라잡이에 따르면 매듭에 대하여 간탐의 몸의 매듭, 악의의 몸의 매듭,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의 몸의 매듭, 이것만이 진리라는 독단적인 신조의 매듭 이라고 번역하였다.

 

네 가지 간따에서 네 번째 독단적 견해의 고집이 있다. 이에 대하여 이것만이 진리이다라 했다. 이는 정신적 신체적 속박에 매여 있는 자를 말한다. 한면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자와 같다. 어떤 자가 그럴까?

 

어떤 수행자들과 성직자들은 세계는 영원하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Ud66) 라고 주장하였다. 이 이론은 우빠니샤드 범아일여 사상에 대한 것이다. 자아가 영원하고 불사이고 항상하고 견고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진리라 말하는 것은 선입견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것은 모두 거짓이라는 증상견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선입견과 증상견을 가지면 독단적 견해를 가지게 된다. 그런 독단적 견해는 열 가지로 나타난다. 이는 부처님 당시 형이상학적 주제와 같은 것이다.

 

궁극적으로 번뇌가 소멸한 자에게는 고뇌가 없다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에게 더 이상 고뇌는 존재하지 않는다.(pariāho na vijjati)라 했다. 여기서 고뇌에 해당되는 빠알리어가 pariāho이다. 이는 ‘Burning, fever; grief, pain, distress’의 뜻이다

 

주석에 따르면 신체적 고뇌와 정신적 고뇌가 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신체적 고뇌는 더위나 추위 등에서 오는데 번뇌를 다한 아라한에게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바까와 부처님의 문답을 보면 궁극적으로 번뇌가 소멸한 자에게는 고뇌가 없다.”라는 사실이다.

 

부처님은 데바닷따가 굴린 바위에 다리를 다쳤다. 상윳따니까야 돌조각위 경에 따르면 세존께서 돌 조각 때문에 상처를 입으셨다. 세존께서는 몸이 몹시 아프고 무겁고 쑤시고 아리고 불쾌하고 언짢은 것을 심하게 느끼셨다.”(S1.38) 라고 되어 있다. 부처님도 고통을 느끼신 것이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으로 그친다. 정신적 고통으로까지 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라는 문구로 알 수 있다. 육체적 고통이라는 제1의 화살은 맞아도 정신적 괴로움이라는 제2의 화살을 맞지 않은 것이다.

 

부처님이 돌조각에 다리를 다치고 난 후 하루 밤이 지났다. 의사 지바까는 걱정이 되서 세존이시여, 큰 고통을 겪지 않으셨습니까?”라며 물었다. 이에 부처님은 지바까여, 보리수의 보좌에 오른 이래 모든 고통은 여래에게서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부처님은 가야 할 여정을 끝내고 슬픔 없이 일체의 관점에서 해탈하고 일체의 속박을 버린 님에게 고뇌는 존재하지 않는다.”(Dhp90) 라고 말씀 하셨다. 번뇌가 소멸한 아라한에게는 근본적으로 고뇌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2016-04-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