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강세의 제주불교, 제주관음사 성지순례
“바다가 육지라면~”
불자들은 사찰순례를 자주 다닌다. 주로 전통사찰이다. 이른바 천년고찰이라 불리운다. 전국적으로 900여개의 전통사찰이 있다. 다 보려면 평생가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불자들에게 있어서 유서 깊은 전통사찰을 순례하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중의 하나이다.
도로만 있으면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다. 섬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요즘은 왠만한 섬은 연륙교가 있어서 거침이 없다. 그러나 바다 건너 저 멀리에 있는 제주도는 예외이다. 하늘길이나 바닷길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럴 때 유행가 가사처럼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래서일까 큰마음 먹기 전에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이 제주도이다.
테마가 있는 여행
이번에 제주여행을 단체로 하였다. 테마가 있는 여행이다. 단순히 볼거리나 즐길거리를 찾아 가는 여행이 아니라 ‘성지순례’라는 주제를 가지고 떠난 여행이다.
이틀간의 여행에서 모두 다섯 곳을 선정하였다. 이는 제주일보기자의 조언을 받아 정한 것이다. 기자는 산방사(보문사), 약천사, 관음사, 평화통일불사리탑, 동암사(성산)을 추천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사찰이자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고등어조림으로
순례팀은 약천사를 참배하고 관음사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점심식사를 했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는 바람에 대부분 아침을 먹지 못하였다. 운전기사겸 가이드가 안내하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 날의 점심메뉴는 고등어조림이었다.
여행을 하면 많이 걷게 된다. 이 코스 저 코스 다니며 버스 오르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체력소모가 심하다. 그래서일까 점심시간은 활기가 넘쳤다. 이렇게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고 웃음에 따라 더욱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제주도의 무덤을 보니
식당 한켠을 보니 무덤이 보였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이다. 돌이 많은 제주에서 돌을 이용하여 담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무덤주위에 있는 담을 ‘산담’이라 한다. 밭에 담을 만들면 ‘밭담’이 된다. 화산석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제주에서 어디를 가나 돌을 쌓아 만든 담을 볼 수 있다.
장사속의 석부작테마파크
점심식사후 관음사 가는 도 중에 두 곳을 들렀다. 석부작테마파크와 천지연폭포이다. 석부작테마파크의 경우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마치 분재처럼 화산석에 갖가지 진귀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곳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것들이다.
석부작테마파크는 농민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외국에서 값싼 오랜지가 들어 오게 됨에 따라 귤농사를 포기한 농민들이 돌붙임식물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산삼배양을 한 엑기스를 파는 것이 주업인 듯하다. 이날 관광객들을 한 곳에 앉혀 놓고 장시간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난대성식물의 보고(寶庫)
천지연으로 이동했다. 원래 ‘엉또폭포’를 보려 했으나 비가 400미리 이상 내려야 폭포가 형상된다고 하여 도중에 바꾼 것이다. 그런 천지연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특히 난대성식물의 보고이다.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아열대성 식물이 매우 풍성하다. 물과 숲이 어우러진 천지연 주변길은 이미 성하의 계절처럼 열대정글처럼 신록으로 무성하다.
저 멀리 한라산이
천지연폭포에 가면 또 하나 들러야 될 곳이 있다. 새연교이다. ‘새섬’에 연육교를 놓았다고 하여 새연교라 한다. 새연교 가는 길에 서귀포항이 있다.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다. 이곳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새연교에서 보니 우중에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도가 코딱지만하다고?
천지연관광을 마치고 관음사로 향하였다. 관음사는 어디에 있을까? 지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지도를 보니 약천사에서 관음사까지는 34키로미터 약 50분 걸린다. 제주도가 결코 작은 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제주도에 대하여 속된 말로 ‘코딱지’만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제주도는 무척 큰 섬이다. 어느 정도 큰 섬일까? 서울면적의 세 배라 한다. 운전기사겸 가이드에 따르면 일주하는데 쉬지 않고 차로 4시간 걸린다고 했다.
제주도는 면적이 1,845제곱미터이다. 해안선 길이가 253키로미터라 하니 코딱지만한 섬이 결코 아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인구는 53만명이다. 그러나 가이드에 따르면 60만이라 한다. 가이드가 제주에 사오년전 정착하였는데 불과 사오년만에 인구가 거의 9만명이 늘었다고 한다.
장선우감독과의 인연
사람들이 제주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자연환경에 반해서일 것이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자연과 따뜻한 기후 탓이라 본다. 그래서일까 은퇴한 사람들이나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욕심을 버린 사람들이 제주를 많이 찾는 것 같다. 제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장선우감독’도 그런 케이스에 속할 것이다.
장선우감독은 불교영화제작자로 잘 알려져 있다. 관심 있는 불자라면 알고 있는 불교영화 ‘화엄경(1993)’이 있다. 이외 ‘성공시대(1988)’ ‘우묵배미의 사랑(1990)’‘경마장 가는 길(1991)’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거짓말(1999)’등이 있다. 영화 남부군에서는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하였다.
장선우감독이 블로그의 글을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하나 보내 왔다. 부처님일대기에 대한 시나리오 ‘따타가따’이다. 이에 대하여 “장선우감독의 친필 사인을 받고, 구도(求道)시나리오‘따타가따’(2012-07-25)”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긴 바 있다.
장선우감독은 왜 제주에 오게 되었을까? 이는 시나리오 ‘따타가따’ 서문에서 ‘유배’ 또는 ‘귀양살이’라는 용어로 알 수 있다. 영화 ‘성냥팔이소녀의 재림(2002)’이 흥행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제주도에 내려와 살고 있는데 책에서 “그런데도 살만해서 사실은 너무 좋아하여 서울에서 내려와서 5년째 살고 있습니다. 시골집을 고쳐서 불 때고, 텃밭도 가꾸고, 찾아오는 손님이 의외로 많아서 저의 색시가 시골집을 하나 더 얻어 카페를 열었는데 <카페물고기>라고. 이름이 좋아서인지 자리가 좋아서인지 제법 사람들이 붐빕니다.”(따타가타) 라 했다.
장선우감독은 제주에 살면서 작은 불교모임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공부모임을 하면서 블로그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보내 준 책 따타가타에다 “진흙속의연꽃님께! 이 책을 쓰는 동안 님의 블로그를 즐겨 찾았습니다. 다시 한번 가르침을 청하며… 西歸에서 장선우120708”라고 친필서명을 했다.
블로그로 장선우감독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장선우 감독은 제주에 오면 꼭 자신의 카페를 들르라고 했다. 그래서 “사진 보이신데 한번 놀러 오시면 바람부는 포구에서 막걸리 한잔 나누십시다. 제주 막걸리 괜찮거든요. 연꽃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라고 글을 남겨 놓았다.
장선우감독은 자칭 유배 또는 귀양살이를 하면서 불교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이는 시나리오 ‘따타가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장선우 감독의 공개편지 “장선우 감독의 공개편지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 묻습니다””(2012-07-28)”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긴 바 있다.
제주에 가면 꼭 장선우감독을 뵙고 싶었다. 그러나 단체여행이라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다음에 제주 갈 일이 있으면 서귀포 ‘카페물고기’에 꼭 가보려 한다.
금빛 일주문이 반겨주고
순례팀을 실은 버스가 관음사에 도착했다. 한라산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관음사는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가는 비가 내리는 우중에 갑자기 안개가 끼여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정도이다. 그런 한편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야가 확보 되어 안개가 걷혔다. 왜 이렇게 기후가 변화무쌍할까? 그것은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이다. 해발 650미터이다.
해발650고지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절만 덩그러니 있었다. 한라산 중턱 산록 너른 대지에 금빛 일주문이 반겨 주었다.
관음사는 어떤 절일까?
관음사는 어떤 절일까? 조계종 23교구본사이기도 한 제주관음사는 자료가 많지 않다. 교구본사급 사찰임에도 홈페이지도 없다. 네이버백과사전에 따르면 “제주시 아라동 한라산에 있는 사찰로 숙종 때 폐사되었다가 1912년 비구니 봉려관에 의해 다시 창건 되었다.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라고 간단히 설명 되어 있다.
제주관음사는 말사 30여개를 관장하고 있는 교구본사이다. 우리나라 사찰이 대부분 심산유곡에 있듯이 교구본사 역시 사람이 살지 않은 한라산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제주불교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불교신문에 따르면 불과 10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불교가 전래 되었지만 1702년 이형상 제주목사의 훼불로 200여 년간 이어진 무불시대(無佛時代)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4.3항쟁 당시 이곳 관음사는 폐허가 되었다. 1964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순례팀 한팀 뿐
관음사에는 커다란 금빛 미륵불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산중에 미륵불은 세상을 향하여 앉아 있다. 그러나 미륵불 뒤로는 화산암으로 만든 각종 불상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제주도에 수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가지만 이곳 깊은 산중에 까지는 오지 않는 것 같다. 물반고기반 처럼 관광지마다 중국인들로 넘쳐 나지만 이곳 관음사에서만큼은 우리 순례팀 한팀 뿐이다.
압도적 강세의 제주불교
제주불교는 역사가 길지 않다. 육지에서처럼 천년고찰은 찾을 수 없다. 길어야 100년 안팍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제주의 불자는 얼마나 될까? 문광부에서 발표된 2009년 ‘한국의 종교현황’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불자수는 17만3천명이다. 이는 개신교 3만8천명과 천주교 5천명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이다. 백분율로 따졌을 때 제주인구 53만명 중에 불자는 17만명으로 32%이고, 개신교는 3만 8천명으로 7.1%, 천주교는 5천명으로 0.9%이다. 이는 개신교에서 작성한 ‘복음화지도’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개신교작성 대한민국복음화지도
개신교에서 작성한 복음화지도를 보면 붉은 색이 불교세가 강한 곳이다. 초록색일수록 기독교세가 강한 곳이다. 대체로 불교는 경상도와 제주도가 강세임을 알 수 있다.
제주도는 불과 백년 안팍의 불교역사를 가졌다. 그럼에도 타종교를 압도한다. 아마 제주도만의 독특한 역사에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몽고의 침략, 일제의 수탈, 그리고 비극의 4.3항쟁에 이르기 까지 수난의 역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외세의 종교보다 전통종교인 불교에 의지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봉려관스님의 오도송과 열반게
제주 관음사에는 창건주 해월당 봉려관스님(1865년-1936년)의 행적비가 있다. 도를 깨달았다는 석굴 ‘해월굴’ 바로 옆에 다음과 같은 오도송과 열반게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구름걷히니 낮이 붉음을 보네.
구름있을 적엔 그름이 붉은 줄 알았다.
봉우리 오르려는 참 뜻을 아는가.
무주공산이란 이런 것이구나.
(해월당 봉려관스님 오도송)
이 몸 타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연기가 고르게 오르지 못할까 걱정이다.
낙조의 붉음을 따라 갔다가
또한 붉음을 보거든 나의 원력이 그런 줄 알아라.
(해월당 봉려관 스님 열반게)
2016-04-2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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