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집도 절도 없다면, 거지성자를 읽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6. 5. 12. 11:03

 

 

집도 절도 없다면, 거지성자를 읽고

 

 

 

성자의 조건은

 

성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쌍팔배의 성자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도와 과를 이루신 분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과를 이루신 네 쌍으로 된 여덟의 성자이다. 이는 라따나경(보배의 경, Sn2.1)에서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 참사람으로 칭찬 받으니 바른길로 가신님의 제자로서 공양 받을 만 하며, 그들에게 보시하면 크나큰 과보를 받습니다.”(stn227) 라는 구절로 알 수 있다.

 

성자가 된다는 것은 성자의 흐름에 든 것부터 시작 된다. 단계적으로 탐욕과 성냄 등의 오염원을 소멸시켜 나가는 것이다. 마침내 모든 오염원이 소멸되었을 때 아라한이 된다. 부처님도 아라한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을 대아라한이라 한다. 이와 같은 아라한에 대하여 청정도론에 따르면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적과 바퀴살을 부수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악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Vism.7.4) 이러한 이유로 아라한이라 했다.

 

숫따니빠따에는 성자의 조건에 대하여 무수하게 언급되어 있다. 아니 초기경전 자체가 성자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숫따니빠따 성자의 경(Sn1.12)’을 보면 성자의 조건에 대하여 잘 설명되어 있다. 그 중에 한 게송을 보면 홀로 살면서 해탈자로서 방일하지 않고,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님, 현명한 님들은 그를 또한 성자로 안다.”(stn213) 라 되어 있다. 홀로 숲속에 살며 탁발에 의지하고 분소의를 입은 성자를 떠 올리게 한다.

 

거지성자

 

최근 책을 하나 샀다. 책의 제목은 거지성자이다.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여러 차례 사 보려 하였으나 기회가 되지 않았다. 1999년에 책이 나왔으므로 거의 20년 가까이 된다. 그런 책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그것은 전재성님을 만나고 나서 부터이다.

 

지난 3월 한국빠알리성전협회를 방문하였다. 전재성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재성님이 번역한 빠알리니까야를 이용하여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하여 오래 전부터 고대하던 만남이었다. 이에 대하여 한국빠알리성전협회를 방문하고(2016-03-20)”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바 있다.

 

전재성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시작 하기 전에 전재성님 거지성자를 읽어 보았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듣자 부끄러웠다. 오래 전에 읽어 보았어야 했으나 마치 숙제를 하지 않고 선생님을 만난 듯 하였기 때문이다.

 

거지성자의 저자가 전재성님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으로서 책광고에 자주 보았다.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한번쯤 읽어 보았을 책이다. 어떻게 보면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의 필독서라 볼 수 있는 거지성자를 읽지 않고 저자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히 미안했다. 그래서 늦게 나마 책을 구하여 읽었다.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전재성님의 거지성자는 일종의 자전적 에세이라 볼 수 있다. 책에서 언급되어 있듯이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살아 가는 어느 독일인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전재성님의 젊은 시절 삶의 모습도 엿 볼 수도 있다.

 

거지성자를 읽기 전에는 전재성님에 대하여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 다만 동국대정각원법회에서 본 인터넷동영상강연을 통하여 삶의 단편을 엿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보니 젊은 시절 고뇌와 유학시절의 힘겨운 삶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결코 순탄치 않은 인생이다. 특히 학생운동으로 투옥되고 늘 경찰의 감시하에 있었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어서일까 잠자다가도 경찰에 잡혀 가는 꿈을 오랫동안 꾸었다고 했다. 마치 군대 갔다 왔는데 또 영장이 나와서 징집되어 끌려 가는 꿈을 자주 꾸는 것과 같다.

 

거지성자를 조금씩 읽었다. 한꺼번에 하루밤에 다 읽지 않고 여러 차례 나누어 읽었다. 소설처럼 쉽게 읽고 쉽게 잊어 버릴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사유를 요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거지성자라 불리우는 주인공 페터 노이야르가 말한 것을 주의 깊게 읽었다. 페터 노이야르가 카비르의 시를 읊는 장면이 있는데 어떻게 이를 기억하여 책을 썼는지 놀라웠다. 아마 메모를 해 놓았거나 일기를 써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거지성자의 주인공 페터 노이야르는 누구일까? 거지성자 말미에 실려 있는 페터 노이야르의 편지를 보면 내가 도서관 앞의 숲속에 사는 이유는 거기에 성현들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네. 오늘날의 사원이나 수도원은 더 이상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있네.”(거지성자, 309) 라 되어 있다.

 

페터 노이야르는 출가하려 했다. 나이 40세 가량 되었을 때 독일 내의 테라와다 사원으로 출가하려 하였으나 나이에 걸려 출가를 이루지 못하였다. 그 때 홀로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것도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홀로 사는 것이다. 그것도 대학 도서관 근처이다. 인적 없는 깊은 숲속이나 산속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 학교 도서관 근처의 숲에서 산 것이다.

 

거지라도 같은 거지가 아니다

 

전재성님은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홀로 사는 페터 노이야르에게 거지성자라는 칭호를 붙였다. 빌어 먹으니 거지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거지라도 같은 거지가 아니다. 이는 걸인과 걸사의 차이와 같다. 어느 날 바라문걸식자가 부처님에게 존자 고따마여, 저도 걸식자이고 그대도 걸식자입니다. 우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S7:20) 라고 물었다. 똑같이 탁발에 의지하며 살아 가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은 것이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세존]

“다른 사람에게 걸식을 한다고

그 때문에 걸식자가 아니니

악취가 나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걸식 수행자가 아니네.

 

공덕마저 버리고 악함도 버려

청정하게 삶을 살며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자가

그야말로 걸식 수행승이네.(S7:20)

 

 

속담에 빛난다고 하여 모두 금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빌어 먹고 다닌다고 하여 모두 거지로 볼 수 없다. 탁발에 의존하여 살아 가는 부처님의 제자들은 청정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계정혜 삼학으로 살아 가는 걸사와 탐욕과 분노와 사견으로 살아가는 걸인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악취나는 견해를 가진 걸인(乞人, bhikkhaka)’ 과 청정한 삶을 추구하는 걸사(乞士, bhikkhu)’와는 다른 것이다.

 

걸사로서 페터 노이야르

 

책속의 페터 노이야르는 걸인임에 틀림 없다.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여자도 없는 걸인이지만 친구는 많다. 그것도 멀리 타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겉모습은 부랑자차럼 보이지만 내면은 대단히 맑은 사람이다. 더구나 성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려 한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하는 것이다. 이는 숲속에서 살며, 탁발에 의존하며, 헤진 옷을 입고 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비록 머리를 기르고 겉으로 보기에 걸인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수행자이다. 그래서 걸인이 아니라 걸사, 즉 빅쿠라 볼 수 있다.

 

걸사로서 페터 노이야르는 대학 근처 숲속에서 산다. 여름이라면 모를까 겨울에도 숲속에서 잠을 자는 것이 경이롭다. 특히 독일의 겨울 날씨는 우리나라 못지 않게 추운데 나무 밑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전재성님은 나는 선생의 놀라운 체력과 인내력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추운 밤에도 밤하늘의 별을 벗삼을 수 있는 것일까. 일년 내내 무더운 인도나 스리랑카의 수행자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행이었다.”(거지성자, 207) 라고 적어 놓았다.

 

페터 노이야르는 겨울날씨가 영하 18도 까지 내려 가도 나무아래서 잤다고 했다. 다만 비가 오면 도서관 낭하로 옮겨 잤다고 했다. 아열대지방도 아닌 온대지방에서 영하의 겨울날씨를 노지에서 견딜만한 사람이 있을까? 아직 한국 수행자 중에 영하의 겨울에 소나무 밑에서 잠을 잤다고 들은 적이 없다. 동안거를 하지만 난방시설이 갖추어진 쾌적한 분위기에서 참선하는 것이 보통이다.

 

추위를 견딜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페터 노이야르는 추위를 견딜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은 것 같다. 호기심 많고 염려 하는 자에게 페터 노이야르는 이렇게 말했다.

 

 

저 청년은 내가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자니까 무슨 신비한 비법이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있더군. 그래서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네. 나도 어렸을 때는 한겨울에 창문을 여는 것 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해 주었지. 그리고 나처럼 되려면 비법을 터득할 것이 아니라 성현들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말해 주었네. 특히 붓다의 가르침을! 하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어.”(거지성자, 247)

 

 

한국불교에 동안거제도가 있다. 여름의 하안거와 함께 스님들은 일년에 두 차례 안거를 든다. 겨울에 안거를 드는 것은 추위가 가장 큰 이유라 한다. 원래 부처님 당시 안거는 우기철 단 한차례 뿐이었다. 그러나 북방불교에서는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겨울에도 한차례 안거를 더 하여 일년에 두 번 안거를 든다. 그런데 페터 노이야르는 겨울철에도 야외에서 잠을 잤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했다. 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왜 두타행을 하는가?

 

페터 노이야르는 자신이 숲에서 사는 것에 대하여 오늘날의 사원이나 수도원은 더 이상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있네라 했다. 여름에는 냉방이 되는 곳에서 하안거를 하고, 겨울에는 난방이 되는 곳에서 동안거를 하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본다면 페터 노이야르는 사실상 두타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타행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가 홀로 숲에서 머무는 것은 사실상‘두타행’이라 볼 수 있다. 숲에서 살면 집 없이, 돈 없이 탁발에 의존하며 분소의로 살 수밖에 없다. 이런 두타행으로 깟사빠가 유명하다.

 

두타제일이라 불리우는 깟사빠는 무엇이든지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상윳따니까야 깟사빠의 모음에 따르면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 깟사빠는 어떠한 의복에도 만족한다.”(S16.1) 라 하였다. 이런 만족은 의복에 그치지 않는다. 부처님은 여기 이 깟사빠는 어떠한 탁발음식에도 만족한다.” “여기 이 깟사빠는 어떠한 와좌구에도 만족한다.” 등으로 말씀 하였다. 이런 두타행에 대하여 깟사빠는 이렇게 말했다.

 

 

[깟싸빠]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유익한 점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숲에서 사는 자로서 숲의 생활을 찬탄하고, 또한 저는 걸식하는 자로서 걸식의 생활을 찬탄하며, 또한 저는 분소의를 걸친 자로서 분소의를 입는 것을 찬탄하고, 또한 저는 세 가지 옷만을 소유한 자로서 세 가지 옷만을 소유하는 것을 찬탄하며, 또한 저는 욕심이 적은 자로서 욕심이 적은 것을 찬탄하고, 또한 저는 만족을 아는 자로서 만족을 아는 것을 찬탄하며, 또한 저는 홀로 있는 자로서 홀로 있는 것을 찬탄하고, 또한 저는 사교하지 않는 자로서 사교하지 않는 것을 찬탄하며, 또한 저는 정진하는 자로서 정진하는 것을 찬탄해왔습니다. (S16.5)

 

 

깟사빠는 숲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집 없이 걸식하며 분소의를 입고 사는 삶이다. 이런 삶에 대하여 부처님은 “깟싸빠여, 훌륭하다. 깟싸빠여, 훌륭하다. 그대는 많은 사람의 안녕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참으로 이와 같이 실천해왔다. 그러므로 깟싸빠여, 닳아빠진 베로 만든 그 분소의를 걸치고 걸식하러 다니며 숲속에서 살아라. (S16.5)”라며 칭찬해 주었다. 숲속의 두타행이 후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 하였다.

 

깟사빠를 연상케하는 페터 노이야르

 

페터 노이야르의 숲속에서의 삶을 보면 부처님의 제자 깟사빠를 연상케 한다. 집없이 걸식하며 기워 입은 옷으로 사는 모습이 부처님당시 깟사빠가 행하였던 그대로이다. 어느 면으로 본다면 더욱 더 가혹한 것이다. 독일의 추운 겨울 날씨와 부랑자 취급당하며 심지어 아이들의 돌팔매질 까지 당한 삶이라면 깟사빠와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두타행 하나만 보아도 성자의 조건에 들어간다.

 

두타행을 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깟사빠는 부처님에게 나 자신의 바로 현세에서의 행복한 삶을 보면서, 그리고 후세의 뭇삶들에 대한 자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S16.5) 라 했다. 키워드는 현세의 행복한 삶뭇삶의 자비심이다. 두타행을 하여 청정한 삶을 사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이를 귀감삼아 후대사람들이 따른 다면 이는 뭇삶의 자비심이 된다는 것이다.

 

페터 노이야르는 두타행을 함으로 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명을 주었다. 더구나 이를 지켜 본 사람에 의하여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두타행은 청정한 삶이다. 청정한 삶을 살면 성자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페터 노이야르는 성자임에 틀림 없다.

 

헤진 옷을 깁는 것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부처님의 행적을 보는 것 같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헤진 옷을 깁는 것이다. 옷을 깁는 이야기는 책에서 여러 차례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이렇게 써 놓았다.

 

 

선생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얇은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앉아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처음 내가 선생의 망토를 보았을 때는 검은 색이었다. 그러나 17년의 세월이 흘러 버린 지금 선생의 망토는 천연색의 지도처럼 되어 버렸다. 해진 곳이 있으면 다시 천을 대고 기웠기 때문이다.”(거지성자, 216)

 

 

거지성자 책을 보면 페터 노이야르가 늘 옷을 깁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기우다 보면 그야말로 누더기처럼 보일 것이다. 이는 천조각을 일부로 기운 승복과는 다른 것이다. 집도 절도 없이 홀로 사는 걸식자의 옷은 온통 기운 것이다. 천조각을 이곳저곳 대어 기운 누더기 옷에 대하여 마치 천연색의 지도같다고 묘사했다.

 

페터 노이야르는 천조각을 수 없이 기운 누더기를 입고 다녔다. 이 옷으로 겨울날 덥고 잔다고 했다. 마치 세 벌의 옷으로 살아가는 부처님제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세 벌의 옷 중에서 겉옷 개념의 상가띠(saghāi)가 있다. 이는 우리말로 ‘대가사’ 또는 ‘중복가사’라 불리운다. 용도는 추울 때 입는다. 또 침구가 없을 때 침구로도 활용된다. 겨울이 아닌 때에는 어깨에 매거나 들고 다닌다. 페터 노이야르의 천조각을 기운 옷도 아마 상가띠개념이라 볼 수 있다.

 

율장을 보면 기워 입는 옷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이 라자가하 시의 남쪽지역인 닥키나기라지방에서 잘 정리된 네모난 모양의 밭을 보고서 힌트를 얻어 이를 옷에 적용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아난다여, 그대는 수행승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옷을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조각을 만들고 기워야 할 곳들을 깁되, 수행자에게 적합하고, 도적들이 부러워 하지 않게 할 정도로 현명하고 크게 슬기롭다. 수행승들이여, 잘린 조각의 외투, 잘린 조각의 상의, 잘린 조각의 하의를 허용한다.(율장대품, 8장 의복의 다발, 세 벌 옷에 대한 규정2)

 

 

분소의는 수행자에게 적합한 옷이다. 모든 것에 대하여 만족하는 삶을 사는 자에게 있어서 옷은 세 벌이면 충분하다. 헤진 곳이 있으면 기워 입으면 된다. 그렇게 기워 입다 보면 마치 밭을 연상케 한다.

 

부처님은 밭을 보고서 여러 조각의 천을 보기 좋게 네모나게 만든다면 좋을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말씀 하신 것은 수행승들에게 반드시 분소의만 고집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페터 노이야르는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한 옷이 아니라 실제로 입을 옷을 기운 것이다. 숲에서 살고, 탁발에 의존하고, 누더기 옷을 입은 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한 것이다.

 

비오라덴에서

 

거지성자의 먹는 것은 어떠할까? 두타행을 하기 때문에 먹는 것 역시 부처님 당시처럼 빌어 먹는 것이다. 청정도론 두타행에 따르면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수행(piṇḍapātikaga), 차례대로 탁발하는 수행(sapadānacārikaga), 한 자리에서만 먹는 수행(ekāsanikaga),  발우의 탁발음식만 먹는 수행(pattapiṇḍikaga), 나중에 얻은 밥을 먹지 않음(khalupacchābhattikaga) 이렇게 네 가지가 소개 되어 있다. 거지성자 역시 얻어 먹는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페터선생이 소나무 밑에서 깨어나는 시간은 보통 새벽 다섯 시쯤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선생은 늘 도서관 앞 호숫가에 단정히 앉아 독좌정관(獨坐靜觀)의 위빠싸나를 수수행했다.  날이 밝으면 선생은 주로 해진 누더기를 기우며 시간을 보내다가 상점이 문을 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비오라덴에 들러 먹을 것을 구해왔다.” (거지성자, 258)

 

 

거지성자의 경우 하루 한끼만 먹는다. 그런데 비오라덴에 들러 먹을 것을 구해왔다.’라 했다. 비오라덴은 어떤 곳일까? 이에 대하여 책에서는 무공해 식품점이라 했다. 1980년부터 생겨 나기 시작 했는데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했다. 비오라덴에서는 각종 농산물 뿐만 아니라 흑빵, 우유, 요구르트 등도 판다고 했다.

 

페터 노이야르는 비오라덴에서 어떻게 음식을 구했을까? 이는 책에서 여자 점원은 오랫동안 페터선생을 친절하게 대하며 팔다 남은 것을 후하게 보시했다.”(거지성자, 225) 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비오라덴이라는 무공해 식표품점에서 팔다 남은 것, 약간 썩은 것을 얻어 먹은 것이다.

 

음식절제에 대하여

 

거지성자의 경우 하루 한끼만 먹는다. 먹을 것을 구한 다음에는 호숫가로 돌아와 식사를 하는데 단물이 나올 때까지 천천히 씹는다고 했다. 보통 먹는데 보통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걸린다고 했다.

 

부처님은 먹는 것과 관련하여 절제를 말씀 하셨다. 음식절제에 대한 이야기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음식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이는 다음과 같은 정형구로 알 수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치료가 될 때까지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또한 예를 들어 짐을 옮길 수 있도록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이것은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 몸을 유지하고 해를 있지 않도록 하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불편했던 경험을 제거하고 새로운 고통을 초래하지 않겠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살리라.’라고 이치에 맞게 성찰해서 음식을 섭취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이 음식을 먹을 때에 알맞은 분량을 안다.(S35.239)

 

 

부처님은 음식절제에 대하여 수행의 원리로 설명했다. 그래서 청정한 삶을 위하여 세 가지 원리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하는 것, 음식을 먹을 때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 그리고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 이렇게 세 가지 원리를 말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청정한 삶의 조건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음식은 즐기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섭취하는 것을 말한다.

 

음식절제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부처님은 첫째 거칠거나 미세한 물질의 자양분, 둘째 접촉의 자양분, 셋째 의도의 자양분, 넷째 의식의 자양분이다.” (S12.11) 라 하였다. 먹는 음식인 단식(段食)을 포함하여 촉식(觸食), 의사식(意思食), 식식(識食)이 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에 대하여 이미 태어난 뭇삶의 섭생을 위하거나 혹은 다시 태어남을 원하는 뭇삶의 보양을 위한 네 가지 자양분이 있다.” (S12.11) 라 하였다. 네 가지 음식에 집착하는 것은 결국 윤회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은 음식절제를 말씀 하셨다.

 

집도 절도 없다는데

 

늦게나마 거지성자를 읽었다. 오래 전에 읽었어야 하나 매우 늦은 감이 있다. 십수 년 전에 나온 책임에도 느낌이 생생하다. 그것은 저자 전재성님의 자전적 이야기가 실려 있고 무엇 보다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살아 간 어느 성자의 삶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흔히 집도 절도 없다는 말을 한다. 비슷한 말로 가정도 직장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남자가 가정이 없으면 방황한다. 직장이 없으면 역시 방황한다. 가정과 직장도 없으면 더욱 더 방황할 것이다. 그런데 집도 절도 없다고 했을 때 어떠할까?

 

누구나 돌아 갈 집이 있다. 언젠가 해외성지순례를 했다. 순례객 중의 한명이 소감을 말할 때 여행을 마치고 돌아 갈 집이 있어서 다행입니다.”라 했다. 아무리 힘든 여행을 해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 갈 집이 없는 사람이 있다. 더구나 절도 없다고 했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절은 집 다음으로 소중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집이 없으면 절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출가하면 절로 간다. 그러나 부처님당시 출가자들은 특별한 거처가 없었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들이 거처를 가지고 있다면 ‘입가(入家)’가 될 것이다. 그래서 초기경에 따르면 출가자들은 유행을 하였는데 머무는 장소는 주로 ‘숲’이었다. 그것도 마을과 가까운 숲이었다. 탁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여라는 정형구를 무수하게 볼 수 있다.

 

페터 노이야르는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살았다. 여기에 하나 더 하면 절 없이 살았다. 집도 절도 없었던 것이다. 거의 완벽한 두타행이다. 이런 걸인에게 성자라는 칭호를 붙여 줄 만 하다.

 

 

2016-05-1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