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탐욕으로 음식을 먹었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16. 7. 9. 09:23

 

탐욕으로 음식을 먹었을 때

 

 

 

배속에서 전쟁이라도 난 듯 합니다. 배가 부글부글하고 속이 편치 않습니다. 무얼 잘못 먹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어제 저녁에 먹은 햄버거가 원인인 것 같습니다.

 

요즘 일감이 밀려 야간작업을 해야 합니다. 마땅히 먹을 것이 없어 햄버거를 샀습니다. 두툼한 패티만 있는 것입니다. 패티가 두 개 있어서 더블버거라 합니다. 평소 점심을 간단히 때울 때는 점심특별가라 하여 2,900원 짜리 햄버거를 먹습니다. 패티하나짜리 버거와 고구마스틱과 콜라가 있는 셋트이지만 점심값의 반도 안되는 가격입니다. 반값에 점심을 해결 할 수 있어서 마땅히 먹을 것이 없을 때 즐겨먹습니다.

 

이날 저녁 패티 두 개짜리 버거만 시켰는데 가격은 5천원 입니다. 저녁에는 점심특별가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정가대로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5천원짜리 더블버거에는 치즈 등 느끼한 인공화합물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먹을 때는 좋았습니다. 씹지 않아도 삼킬 만큼 부드럽고 달콤했습니다. 포만감도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뒤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개운치 않은 여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순간 잘못 먹었다는 생각이 일어 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목구멍을 지나 배속에 있었기 때문 입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새벽에 속이 불편했습니다. 전쟁이라도 난듯이 부글거렸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햄버거를 먹지 않고 다른 것을 먹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의 마음이 일었습니다.

 

후회는 일종의 분노 입니다. 자기자신에 대한 분노입니다. 성냄과 시기와 인색과 함께 성냄을 뿌리로 하는 마음입니다. 또 한편 그 순간 탐욕에 사로잡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별탈이 없었으면 잘 된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속이 편치 않았을 때 잘못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잘 생각해보니 욕망이 발동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패티 한 개짜리만 먹었으면 되는데 잘 먹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따라 그만 두툼한 패티 두 개짜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 순간 분명히 욕망이 작동된 것입니다.

 

햄버거 하나로 인하여 내면에서 일어난 탐욕과 성냄을 보았습니다. ‘이왕 먹는 김에 잘 먹자라며 패티 두 개짜리를 선택한 것은 탐욕입니다. 먹고 나서 속이 편치 않은 것을 알았을 때 후회의 마음이 생겨 난 것은 성냄 입니다. 햄버거 하나로 인하여 탐욕과 성냄이 그대로 드러난 것 입니다.

 

속이 편치 않습니다. 해결하는 방법은 한끼 굶는 것입니다. 불편하면 먹지 않는 것이 최상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된장입니다. 진한 재래식 된장에 밥을 비벼먹거나 된장국을 물 마시듯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희안하게도 속이 편안해집니다. 물론 자신만의 비법입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탈이 나는 것 같습니다. 대게 욕망이 발동 되었을 때입니다. 먹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는 먹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먹는 것 하나만 봐도 그에게 탐욕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대한민국은 욕망의 나라가 된 듯 합니다. 티브이를 켜면 온통 먹방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음식절제를 말씀 하셨습니다. 물론 수행자에게 해당하는 말이지만 때 아닌 때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남방 테라와다에서는 지금도 빅쿠들이 하루 한끼만 먹는다고 합니다. 탁발에 의존 하는 등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음식절제는 사실상 수행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먹는 행위자체가 탐욕과 관련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탐욕으로 먹게 됩니다. 패티 두개 짜리를 사려 했을 때 , 나에게 탐욕의 마음이 일어났구나!”라며 알아차려야 했으나 그 순간 욕망에 지배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음식대하기를 기계에 기름칠 하는 정도로, 상처 난 부위에 연고를 바른 정도로 대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아들고기대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보약 먹듯 음식을 대한다면 식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탐진치로 살아 갑니다. 좋으면 거머쥐려 하고 싫으면 밀쳐 내려 합니다. 호불호가 명확 합니다. 느낌대로 살아 갑니다. 그런 느낌을 알아차리라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림을 놓쳤을 때 탐욕과 성냄의 포로가 되기 쉽습니다. 어리석은 삶 입니다.

 

어리석음은 잘못된 견해에 기인합니다. 이를 사견이라 합니다.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 빗나간 견해입니다. 대부분 사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욕망으로 분노로 살아갑니다. 탐진치로 사는 것입니다.

 

사견은 무지에서 비롯 됩니다.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것 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름아닌 부처님 가르침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늘 고통속에서 허우적거립니다.

 

가르침을 아는 것을 정견이라 합니다. 정견은 사성제의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사성제를 모르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무지한 자를 어리석은 자라 합니다. 사성제에 대한 무지 입니다. 사성제를 모르는 것에 대한 무지 입니다. 사성제를 모르는 것에 대한 무지의 무지, 중층의 무지 입니다. 그래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세생생 윤회 하게 됩니다.

 

욕망으로 먹은 햄버거로 인하여 후회의 마음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작동한 것 입니다. 매번 반복 되는 것 입니다. 알아차리는 힘이 약해서 일 것 입니다.

 

새벽 이 글을 쓰는 동안 속이 부글거리는 것이 멈췄습니다.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같습니다. 음식절제의 상징과도 같은 된장국을 먹으면 치유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된장이 치료제 입니다. 욕망으로 과식하게 되었을 때, 피치 못하게 과음하게 되었을 때 된장이 즉효약 입니다. 진한 된장국물이 모든 것을 정화 하는 듯 합니다.

 

 

2016-07-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