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번역비교

우리 몸과 마음에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원리를 보아야

담마다사 이병욱 2016. 8. 2. 11:52

 

우리 몸과 마음에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원리를 보아야

 

 

 

깨달았는지 확인하는 방법

 

깨달은 자에 대하여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첫쩨, 언행일치에 대한 것이다말하는 것과 행위하는 것이 다른지 보는 것이다. 낮에 한말 다르고 밤에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면 언행일치가 안되는 자일 것이다.

 

둘째, , , 치에 대한 것이다. 욕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밥먹는 것 등에서 나타난다. 분노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화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리석음과 관련해서는 부처님 가르침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사견에 빠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단 한번이라도 욕심부리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또 그가 가르침 외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떠나라고 했다.

 

셋째, 연기법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정견과 관련이 있다.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고 개인적인 견해를 진리인 것처럼 말한다면 사견에 빠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사견은 어리석음과 동의어이기 때문에 정견을 말하지 않는 자는 깨달은 자로 볼 수 없다. 정견은 부처님 가르침이고 그 중에서도 핵심은 연기법이다. 따라서 연기법적으로 말하지 않는 자는 깨달은 자라 볼 수 없다.

 

이것이 연기법이다

 

연기법이란 무엇일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말이 이것이 있으므로 해서 저것이 있다.”라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싱거운 말처럼 들린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에 심오한 진리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연기법정형구를 모두 보아야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Iti imasmi sati ida hoti,

imassuppādā ida uppajjati.

Imasmi asati ida na hoti,

imassa nirodhā ida nirujjhati.

 

이처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S12.21, 전재성님역)

 

 

 

 

 

 

이것이 연기의 구조이다. 조건발생연기와 조건소멸연기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기의 구조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이 연기의 일반적인 원리는 전형적인 십이연기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다른 일반저적인 인과원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그것이 우주론적이든 사회적이든 심리적이든 생물학적이든 모두 이 원리에 따르고 있다. 서양의 경험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인과율에 관한 공식은 만일 C이면 언제나 E이다.(If C, then E always)’인데 그것은 연기의 일반원리의 첫 번째 명제인 이것이 있다면, 저것이 있다.”는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 원리의 맹점을 보완한 과학철학자 마리오 붕게의 인과성의 원리는 만일 C가 생겨나면 그것에 의해 언제나 E가 생겨난다.(If C happens, then E is always produced by it)’인데, 그것은 연기의 일반원리의 두 번째 명제인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는 원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첫번째와 두 번째의 존재론적 명제와는 달리 세 번째와 네 번째는 해탈론적인 것이다. 이 네 가지 일반원리는 각각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의 존재론적 바탕이기도 하다.”(상윳따니까야 2권 해제, 전재성님)

 

 

연기의 일빈적 원리는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과학의 분야에도 예외가 아니다. 컴퓨터프로그래밍 언어 중에 ‘C언어가 있다. 주로 ‘if’로 시작되는 조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연기법은 현대과학과도 매우 밀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기는 크게 일반연기와 조건발생연기로 나뉜다. 일반연기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라는 구조로 되어 있고, 조건발생연기는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대승에서는 두 연기 중에 전자, 즉 일반연기만을 취하여 법계연기로 설명하고 있다. 단멸론자들 역시 전자만 취하여 몸과 정신이 의존해 있으므로 몸이 죽으면 정신도 죽어서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부처님은 분명히 조건발생연기도 설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처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일반연기)”라고 하신 다음에, 반드시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조건발생연기)”라 하신 것이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원리를 보아야

 

부처님이 일반연기와 조건발생연기를 설하신 것은 사성제의 구조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사성제는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네 구절로 되어 있는 연기송과 일치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라는 문구는 사성제에서 고성제와 집성제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는 사성제에서 멸성제와 도성제에 해당된다.

 

부처님은 연기의 조건발생과 조건소멸을 통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윤회에서 벗어나게도 해 주었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구조는 십이연기로 설명된다. 그래서 연기송 이후에 이어지는 가르침은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로 시작 되는 십이연기정형구가 뒤따른다.

 

상윳따니까야 열 가지 힘의 경(S12.21)’에서는 연기송 정형구를 표현해 놓았다. 사성제의 바탕이 되기도 하고 확장하면 십이연기가 되는 연기송 정형구는 오온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연기송 전에 물질은 이와 같고 물질의 원인은 이와 같으며 물질의 소멸은 이와 같다.”라는 사성제 구조의 문장 이후에 곧바로 이처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라고 시작 되는 연기송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연기송은 오온의 발생과 소멸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오온의 발생과 소멸은 십이연기로 이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온의 발생과 소멸, 연기송, 십이연기 순으로 경이 설명 되어 있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물질은 이와 같고 물질의 원인은 이와 같으며 물질의 소멸은 이와 같다. 느낌은 이와 같고 느낌의 원인은 이와 같으며 느낌의 소멸은 이와 같다. 지각은 이와 같고 지각의 원인은 이와 같으며 지각의 소멸은 이와 같다. 형성은 이와 같고 형성의 원인은 이와 같으며 형성의 소멸은 이와 같다. 의식은 이와 같고 의식의 원인은 이와 같으며 의식의 소멸은 이와 같다. 이처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말하자면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감수가 생겨나며, 감수를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생겨나며,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생겨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며,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감역이 소멸하며, 여섯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감수가 소멸하며, 감수가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취착이 소멸하며, 취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소멸한다.” (S12.21, 전재성님역)

 

 

그가 깨달은 자인지 알려면 연기적으로 말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있으므로 해서 저것이 있다라는 말이 매우 싱거운 것 같이 보이지만 연기송 네 가지 구절속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사성제의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구성된 오온의 발생과 소멸구조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몸과 마음을 떠나 우주론 등을 이야기한다면 부처님 가르침과 팔만사천리 떨어진 이야기가 된다. 어디 까지나 우리 몸과 마음에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원리를 보아야 함을 말한다.

 

 

2016-08-0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