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속에 삼막사로 구법여행
요즘 열대야라 잠을 설치기 일쑤입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며 잠의 질은 좋지 않습니다. 토요일 오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사무실로 부리나케 달려 갑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말도 없이 언제나 가는 아지트 입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먼저 핸드드립 커피를 만듭니다. 이메일을 점검하여 급하지 않음 일은 뒤로 미루고 걸어 오면서 구상했던 글을 씁니다. 토요일 오전 연기법에 대한 글을 경전에 근거하여 써서 올렸더니 숙제를 다 한 것 같습니다.
국민휴가주간 주말 날씨는 폭염입니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 가만 있으면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때는 도시탈출 해야 합니다.
우리계곡은 어디에
지난 번 우리계곡으로 탈출했습니다. 이에 대한 글을 올렸더니 사람들이 다 아는 듯 합니다. 어느 법우님은 전화 걸어서 우리계곡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법우님들 모임에서도 우리계곡을 알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더니 어느 법우님은 댓글에서 자신도 가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계곡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도에는 우리계곡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냥 명칭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관악산 남사면에 있는 관악산산림욕장 입구에서 출발합니다. 죽 가다 보면 팔각정이 나옵니다. 왼편에 계곡이 하나 있는데 불성사가 있는 국기봉에서 계곡이 시작 됩니다. 지도에는 비산3동이라는 글자가 써진 곳입니다. 계곡을 죽 타고 내려 가다 보면 서울대수목원에 도착 합니다. 수목원에서 부터는 안양예술공원계곡(구안양유원지)라 합니다.
삼막사계곡 가는 길에
토요일 이른 오후 집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삼막사 계곡입니다.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6-2번 마을버스를 타면 경인교대 입구까지 갈 수 있습니다. 삼막사계곡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삼막사계곡에 오랜만에 와봅니다. 작년 가을에 왔으니 거의 10개월 만 입니다. 매년 찾는 계곡에 변화가 있습니다. 터널 공사가 한창 진행 중 입니다. 관악산을 관통하여 강남까지 연결 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함일 것 입니다. 지도를 보니 2017년 5월 완공예정이라 되어 있습니다. 도로명은 안양성남고속도로입니다.
모든 것이 강남중심입니다. 강남을 중심으로 하여 고속도로가 만들어졌고 심지어 고속철도까지 놓였습니다. 이번에는 인천공항에 가기 편하게 하기 위함인지 관악산을 뚫고 있습니다. 강남에서 관악산을 관통하여 제3경인고속도로와 연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전국 방방곡곡 잘 닦여진 도로를 봅니다. 마치 고속도로와 같은 국도를 보면 거침 없습니다. 막히면 뚫어서 터널을 만들고 왠만하면 다리를 놓아 시원시원 합니다. 그러나 아래녁으로 내려 갈수록 차량이 드뭅니다. 이럴 때 과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사대강사업을 할 때처럼 돈을 쏟아 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입니다. 결국 건설사들만 배불리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입니다. 삼막사 입구 계곡의 터널공사도 과잉투자 하는 것이 아닌지하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삼막사를 향하여
폭염속 삼막사 계곡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서민들과 소시민들 입니다. 멀리 피서 가지 못하고 가까운 계곡을 찾은 것 입니다. 매년 이맘때 볼 수 있는 풍경 입니다.
비가 온지 몇 일 되어서 인지 물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류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없는 상류로 올라갔습니다. 상류로 갈수록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이 말라 버려 사람이 없는 것 입니다. 날씨는 더워 땀이 비오듯 하는데 물이 없는 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올라 가기로 했습니다. 목표를 삼막사계곡에서 삼막사로 수정 했습니다.
삼막사 가는 길은 두 개가 있습니다. 도로와 등산로 입니다. 등산로가 지름길 입니다. 그러나 가파르기 때문에 도로로 올라 갔습니다.
폭염속에 땀이 비오듯 합니다. 삼막사까지는 사십분 정도 걸어서 올라 가야 합니다. 폭염속에 산행을 하니 마치 고행하는 것 같습니다. 물을 찾아 상류로 갔지만 물이 말라 버려서 사막을 가는 것 같습니다. 그때 삼장법사 현장스님의 구법여행이 떠 올랐습니다. 구법여행하듯이 현장스님을 생각하면서 삼막사에 오르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막하연적, 막하연적, ...” 하며
7세기 초 현장스님은 국경을 넘었습니다. 인도에 가서 직접 불법을 배우기 위해서 입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 된 이후 구마라집 등 역경가들이 번역을 했지만 불분명한 것이 많아서 직접확인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중국에서 제작된 다큐 현장대사에서 알 수 있습니다.
중국다큐에서 영문자막을 보면 현장스님이 구법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옮겨 보면 “현장은 지식을 찾아서 그의 첫번째 여행을 떠났다. 그는 수 많은 불경을 섭렵하였다. 그리고 불법의 대의를 알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퍼즐 맞추기외 같은 문제에 봉착하였다. ‘현장법사전기’에 따르면 “어떤 경전은 내용이 누락 되어 있고, 번역 또한 혼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부정확하다. 어느 누구도 불교의 정수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보통사람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수행으로 성불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라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구법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현장스님이 여행를 떠날 때는 당나라가 성립된지 불과 십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당태종 이세민이 즉위한 ‘정관의 치’ 원년(618년) 입니다. 영토가 아직 서역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황 밖 옥문관이 국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스님은 구법에 대한 열정으로 말을 타고 홀로 국경을 몰래 넘어 갔습니다.
현장스님이 국경을 넘자 마자 거대한 사막과 마주쳤습니다. 막하연적(莫賀延磧) 이라는 이름의 고비사막 입니다. 중국에서 제작된 다큐 '현장대사' 1편을 보면 마하연적은 옥문관에서 하미까지 400키로미터라 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거리 입니다. 이에 대하여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손에, 대당서역기와 현장대사(玄奘大師)(2013-6-22)’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막하연적 이야기는 물을 잃어 버린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로지 말한필에 의존하여 거친 고비사막을 건너고 있는데 취급 부주의로 생명이나 다름 없는 물을 그만 사막에 쏟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죽음에 문턱에 이르고 갖가지 환각과 환청, 신기루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몇 일을 절망적인 상황에서 보내다가 극적으로 오아시스를 발견 합니다.
현장스님은 막하연적에서 기적적으로 빠져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국경 너머에 있는 ‘이오’에 도착한다. 오늘날 ‘하미’를 말합니다. 국경을 벗어 났으므로 더 이상 추격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국경을 넘기 전에는 수배자 신세이었으나 이제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현장스님의 막하연적을 떠 올리며 삼막사를 목표로 걸었습니다. 폭염에 걷는 것을 막하연적 건너는 것에 대입하여 “막하연적, 막하연적, ...” 하며 걸었습니다. 도중에 등산로로 바꾸었습니다. 가장 가파른 길과 마주 했습니다. 이른바 삼막사 깔딱고개 입니다. 어느 산이든지 깔딱고개가 있기 마련인데 삼막사 역시 숨이 턱밑에 이를 정도로 가파른 고개가 있습니다.
깔딱고개를 넘자 눈 앞에 삼막사가 나타났습니다. 늘 보던 절이지만 이렇게 폭염에 땀을 전신 가득히 흘리면서 오르기는 처음 입니다. 마치 현장스님이 마하연적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합니다. 물이 말라 버린 상류계곡과 달리 절에는 물이 있었습니다. 신도와 등산객을 위하여 누구나 마실 수 있도록 물통을 공양식당 마당에 설치해 놓았습니다.
폭염속의 삼막사는
천년고찰 삼막사는 청계사와 함께 자주 찾습니다. 사는 곳과 가까이 있는 것이 큰 이유 입니다. 90년대 초반에 처음 찾은 이래 매년 몇 차례 찾는데 늘 느끼는 것이지만 고즈넉해서 좋습니다. 저 아래 세상은 아수라판이지만 이곳 삼막사는 부처님 세계입니다. 폭염 때문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평소와 다르게 한적 합니다.
삼막사는 관음기도도량입니다. 주법당이라 볼 수 있는 육관음전에는 갖가지 형상의 관음상이 있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분노하는 모습의 마두관음입니다.
천불전으로 들어 갔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습니다. 9배를 했습니다. 3배 할 수도 있으나 9배 한 이유는 불법승 삼보에 대하여 삼세번 예경하기 위함입니다. 남방 테라와다에서는 9배 하는 것이 최상의 예경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08배가 유행입니다. 108가지 항목을 만들어 오체투지 하는데 108번 반복하면 근육이 뻐근합니다. 생전의 법정스님은 성철스님과 대담할 때 “108배는 굴신운동 아닙니까?”라 했다 합니다. 불법승 삼보에 대한 예경은 3배로 충분 합니다. 좀 더 신심을 낸다면 9배 할 수 있습니다. 남방에서는 9배가 최상의 예를 표현 하는 것이기 때문에 108배는 굴신운동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천불전 법당에 앉았습니다. 9배를 하고 그냥 나가기가 아쉬워서 잠시 입정하기로 했습니다. 넓은 대청마루에서 눈을 감고 그저 가만히 있었습니다. 폭염에 열기가 있기는 하지만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감미롭습니다. 앞문, 옆문 모두 활짝 열린 대청마루 법당에서 조용히 앉아 있으니 매미 소리가 요란 합니다. 가끔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려 오기도 합니다. 이대로 죽 앉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폭염속의 삼막사는 한적 합니다. 저 아래 세상은 뜨거운 열기로 끓고 있지만 이곳 삼막사는 한산해서 제대로 도시탈출한 것 같습니다. 현장스님의 구법여행을 생각하며 오르니 구법여행한 것 같습니다. 한적한 곳에 앉아 저 아래 폭염의 세상을 내려다 봅니다.
“한낮 정오의 시간에
새는 조용히 앉아 있는데
바람이 불어 큰 숲이 울리니
나에게 즐거움이 생겨나네.” (S1.15)
2016-08-07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현스님의 갑질은 언제까지 (0) | 2016.08.11 |
---|---|
블로그는 전문가영역, 블로그 개설 11주년에 (0) | 2016.08.09 |
헛되지 않은 삶이란 (0) | 2016.08.06 |
우월자의 자만과 열등한 자의 자만 (0) | 2016.08.05 |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에게 결혼이란 (0) | 2016.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