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등의 짐은 너무 무거워
광복절 오후입니다. 오전에 글을 하나 쓰고 오후에 도시탈출 했습니다. 목적지는 우리계곡 입니다.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우리계곡에 팔월 들어 세 번째 입니다.
베낭에 먹을 것을 잔뜩 챙겨 넣었습니다. 밥을 싸고 김치 등 반찬통을 여러 개 준비 했습니다. 소나기가 올지 모른다 하기에 우산도 챙겼습니다.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무게가 꽤 나갑니다. 폭염속의 답답한 도시에 있느니 한시 바삐 숲속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일단 숲에 들어 가기만 하면 별천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비산 관악산산림욕장 입구에서 계곡까지는 30분이면 족합니다. 산 하나만 넘으면 별세계에 도착하기 때문 입니다. 마치 오아시스를 찾아 가는 사막의 대상처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 갔습니다.
연일 35도 가량 되는 폭염에 습도는 높아 불쾌지수가 높습니다. 숲에 들어 가면 그나마 낫습니다. 키 높은 나무가 그늘막이 되어 땡볕에 걷는 것과 다릅니다. 그럼에도 등에 잔뜩 짊어진 짐으로 인하여 다리는 후들 거리고 땀은 비오듯 쏟아집니다. 이렇게 다리가 뻐근하도록 걸으면 운동도 되고 잠도 잘 온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사서 고생하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습니다.
산길을 오르면서 내 등에 진 짐이 무겁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폭염에 땀까지 흘려 가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 갈 때 포기하고픈 생각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저 산만 하나 넘으면 물이 흐르는 암반계곡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기를 쓰고 올라 갔습니다.
등에 진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먹을 것을 잔뜩 챙긴 짐도 고행하듯이 올라 사는 산길에서는 큰 부담이듯이, 내 등뒤에 진 인생의 짐은 너무 무겁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 했습니다.
“내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 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이 시는 어느 복지단체의 벽면에 걸린 액자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내 등에 진 짐이 너무 무겁지만 이 짐이 없었다면 인생을 막 살았을 것이라 합니다.
누구나 짐을 지고 살아 갑니다. 한 개가 아니라 두 개, 세 개 아니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 살아 가기도 합니다. 짐이 너무 무거울 때, 짐을 감당할 수 없을 때 포기하고픈 생각도 들어 갑니다. 그러나 어차피 내가 짊어야 할 짐이기에 오늘도 내일도 내일도 묵묵히 짐을 지고갑니디.
계곡에 다 왔습니다. 비가 오지 않은지 십일이 넘었지만 암반계곡에는 물이 철철 흐릅니다. 산이 머금고 있던 물을 조금씩 풀어 주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물을 저장하고 갈수기에는 물을 내주는 것을 보면 자연의 신비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아래 쪽 계곡에 자리 잡았습니다. 고래바위가 있는 곳 입니다. 사실 고래바위도 그냥 붙인 이름 입니다. 이름은 붙이기 나름이라 그대로 통용되면 이름이 됩니다. 고래바위쪽 계곡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기본적으로 암반으로 되어 있는 계곡에서 암반 사이로 솟아난 소나무를 보면 강한 생명력을 느낍니다.
광복절 휴일이어서인지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회장님, 이 계곡을 뭐라 해요?:라고 물어 봅니다. 아마 계곡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나이 지긋한 회장이 “뱀골이라 하는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계곡이 뱀골이라 합니다. 처음 들어 보는 말 입니다. 그러나 지도에 뱀골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계곡 고래바위 부근에 자리잡았습니디. 도시에 있으면 폭염속에 선풍기나 에어컨에 의지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TV시청하는 것이 고작일 것 입니다. 그런데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계곡에 외 있으니 이 보다 좋을 순 없습니다. 계곡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다름 없습니다.
인생의 사막을 건너게 해 주시는 분이 부처님 입니다. 그래서 삿타데와마눗사(천인사)라 합니다. 캐러밴의 우두머리와 같은 부처님은 인생의 짐을 내려 놓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짐과 짐꾼과 짐을 짊어지고 내려놓는 것에 관해 설할 것이니 듣고 잘 새기도록 해라.
수행승들이여, 무엇을 짐이라고 부르는가? 다섯가지 집착다발을 짐이라고 부른다. 다섯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예를 들어 물질의 집착다발, 느낌의 집착다발, 지각의 집착다발, 형성의 집착다발, 의식의 집착다발이다.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을 짐이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을 짐꾼이라고 부르는가? 사람을 짐꾼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름, 이와 같은 성씨를 지닌 사람이 있다면 수행승들이여, 그를 짐꾼이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을 짐을 짊어지는 것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재생을 가져오고 향락과 탐욕을 수반하며 여기저기에서 환희하는 갈애이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짐을 짊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을 짐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하는가?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되고 포기되고 방기되어 집착 없이 해탈하면,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짐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한다.” (S22:22)
부처님은 오온이 짐이라 했습니다. 오온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을 짐꾼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오온이라는 무거운 짐을 왜 지고 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온이라는 짐을 있게 만드는 갈애와 집착때문이라 했습니다. 갈애와 집착 때문에 세세생생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현실에서 내가 짊어진 짐은 너무 무겁고 감당하기 힘듭니다. 때로 도망가고 싶습니다. 초월적 존재를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떠넘길수도 있습니다. 또 운명으로 받아 들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말대로 내 등에 짊어진 짐으로 인하여 인생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내짐뿐만 아니라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사회의 짐, 국가의 짐을 지게 되었을 때 더욱 하심할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 등의 짐에 대하여 오히려 고마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은 언젠가 내려 놓아야 합니다. 세세생생 지고 갈 수 없습니다.
“짐은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이며
세상의 짐꾼은 사람이니
짐을 짊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며
짐을 내려놓는 것이 안락이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
다른 짐을 짊어지지 않는다.
갈애를 뿌리째 뽑아버리고
욕심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네.” (S22:22)
2016-08-1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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