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즐기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몇 시간 작업한 것이 저장을 하지 않아 한순간에 날아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맥빠집니다. 다시 작업하려 하지만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시간도 아깝지만 무엇보다 그 동안 쏟은 노력과 정열이 한순간에 물거품 되었을 때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허망한 정열 입니다.
종종 인생을 허망한 정열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귀결 되었을 때 그 동안 추구했던 노력과 열정이 물거품 된 듯 합니다. 특히 돈벌기에 올인 하는 삶을 살았을 때 더욱 그러하리라 봅니다. 그래서인지 생활명언에 빠지지 않는 말이 “인생을 즐겨라!” 일 것입니다.
결실로 나타나지 않는 삶은 허망한 정열이 되기 쉽습니다. 돈벌기 선수가 되어 대부분 시간을 돈벌기에 올인하여 돈을 벌어 보지만 다 쓸 수 없습니다. 설령 돈을 모았다고 해도 나중에 보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TV에서 어느 할머니는 “이 손으로 돈 많이 벌었어요. 그러나 통장에 돈이 없어요.” 라 했습니다.
은행에 맡겨 두었다거나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그 것이 내 것이라 볼 수 있을까요? 재산권을 행사함이 없이 맡겨 두거나 묵혀 두고 있다면 내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겼다면 은행 것입니다. 은행에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활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금이나 부동산은 ‘잉여’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하루 세 끼 먹고 삽니다. 부자라고 해서 다섯 끼 열 끼 먹지 않습니다. 나 보다 백배 부자라면 하루 삼백끼를 먹어야 하나 많이 먹어 보았자 세 끼 입니다. 하루 대부분 시간을 투입하여 일생동안 개미처럼 일만 하며 모은 돈이나 온갖 불법과 탈법 그리고 불로소득으로 형성된 천문학적 재산이나 내 수중을 떠나 있으면 잉여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잔고상으로 장부상으로 등재 되어 있기 때문에 내것이라는 만족감으로 살아 가고, 든든한 백으로 여겨 오만하게 살아 갑니다.
돈벌기선수가 되어 돈벌기에 올인하는 삶은 허망한 정열이 되기 쉽습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어 보이는 가난하고 힘없는 노인의 삶과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열심히 즐기려 합니다. 맛집을 찾아 다니고, 쇼핑을 하고,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등 욕망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욕망은 추구하면 할 수록 갈증만 나고 업만 무겁게 만든다는 사실 입니다.
내려 놓으면 가볍지만 무언가 하려 하면 생각의 무게로 인하여 힘들어집니다. 일생동안 욕망충족만을 위한 삶을 살았을 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거우면 아래로 가라 앉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 악처에 떨어질 것이라 합니다.
[세존]
“촌장이여,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커다란 큰 돌을 깊은 호수에 던져 넣었다고 합시다.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그것을 두고 ‘커다란 돌이여, 떠올라라. 커다란 돌이여, 떠올라라’ 라고 기도하고 찬탄하고 합장하고 순례한다면 촌장이여, 그대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커다란 큰 돌이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합장하고 찬탄하고 순례한 까닭에 물 속에서 떠오르거나 땅 위로 올라올 것입니까?
촌장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사랑을 나뭄에 잘못을 범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성내는 마음을 가지고, 삿된 견해에 사로잡혔다면, 그에게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기도하고 찬탄하고 합장하고 순례하더라도 그 때 그 사람은 몸이 파괴 되어 죽은 뒤에, 고;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입니다.”(S42:6)
아비담마논장에 따르면 즐기는 삶은 탐욕만 증장시킬 것이기 때문에 악업 짓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럼에도 “인생을 즐겨라!”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지나고나면 한순간 입니다. 임종에 이른 자의 과거는 꿈과 같은 것 입니다. 팔만사천대겁을 사는 비상비비상처천의 존재도 임종에 이르면 긴 수명도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즐기는 것 외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면 두려움에 떨지 모릅니다.
천상의 존재는 과거 지은 공덕을 까먹기만 했지 새로운 공덕을 지은 것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에 떤다고 합니다. 한량없는 수명을 가진 천상의 존재는 한량없는 기간동안 오로지 즐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공덕의 잔고가 남아 있을 리 없을 것 입니다. 마치 마이너스 통장처럼 미리 땡겨 공덕을 썼다면 그 다음 생은 뻔 한 것입니다. 선업공덕은 다 찾아 먹고 남아 있는 것은 과거 전생 어느 땐가 지었던 악행입니다. 과거에 뭔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악행에 대한 과보가 익었을 때 대게 악처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 일 것 입니다.
인간도 죽음에 이르면 두려움에 떨지 모릅니다. 아무 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는 허무한 생각이 들 때 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즐기는 삶보다 베푸는 삶 입니다. 베풀면 마음이 가벼워져서 선행공덕을 쌓기 때문에 업이 깃털처럼 가벼워져서 선처에 태어나게 됩니다. 반면 일생을 즐기는 삶을 살게 되면 욕망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탐진치의 삶을 살게 되어 업이 바위덩어리처럼 무거워지기 때문에 악처로 이끌게 됩니다. 이래도 인생을 즐기며 살자고 얘기 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 노잣돈이고
행운이 보물창고이며
욕망이 사람을 괴롭히고
욕망이 세상에서 버리기 어려운 것이니
줄에 묶인 새와 같이
뭇삶들은 자신의 욕망에 묶이네.” (S1.79)
2016-08-1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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